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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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Active Literature: Jan Tschichold and New Typography

크리스토퍼 버크 지음, 박활성 옮김

20세기 타이포그래피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얀 치홀트, 그 신화를 정면으로 다룬 현대적 평전

얀 치홀트(1902~74)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타이포그래퍼이다. 그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Neue Typographie)’ 운동을 이끌며 20세기 타이포그래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 『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얀 치홀트의 모더니스트 시기를 집중 연구하고 한 시대의 길을 연 새로운 작업들을 풍요롭게 선사한다.

얀 치홀트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은 우리에게 일정 부분 신화로 남겨져 있는 역사적 페르소나를 현대적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평전이다. 저자이자 타이포그래퍼인 크리스토퍼 버크는 폭넓고 깊이 있는 조사 가운데 발견된 치홀트의 수많은 글과 작업 도판, 교정쇄와 노트는 물론 당시 새로운 타이포그래퍼 및 아방가르드 인사들과 그가 나눈 편지와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초중반 역사적 격동기를 산 얀 치홀트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인생의 후반부에 그의 관점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바뀌게 되는지 입체적으로 다룬다.

얀 치홀트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향해: 이론가이자 작업자였던 ‘새로운 타이포그래퍼’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 주창자, 서체 사봉(Sabon) 창안자, 영국 펭귄북스 출판사의 북 디자인 고문. 얀 치홀트의 디자인 업적은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그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 책의 서문을 쓴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인 로빈 킨로스는 그간 디자이너들이 얀 치홀트의 디자인 작업에 어린 신비에 스스로 위압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또한 미술사나 디자인사 연구자들이 여전히 1920~30년대 작업을 바우하우스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뭉뚱그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서술할 뿐, 그 어떤 흥미로운 방식으로도 치홀트의 작업을 논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제는 치홀트 생전 그리고 사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재활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당시 제작된 인쇄물, 타자 문서와 교정쇄, 편지와 엽서,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잡지와 팸플릿 같은 중요한 자료를 놓고 당대의 타이포그래퍼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버크의 논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얀 치홀트를 작업자인 동시에 이론가로 바라본다. 그가 지적하듯, 얀 치홀트의 유산을 풍요롭게 하고, 오늘날 사람들이 계속해서 치홀트를 참조하도록 하는 것은 이론가이자 작업자로서 얀 치홀트가 행한 이중 역할이다.

“동시대 사람들과 그를 더욱 차별화한 것은 이른 시기부터 보여준 풍부한 저작 활동이었다. ‘나는 항상 강의 중이다’라고 말했을 만큼 그는 정밀하고 다작하는 필자였다. 그는 모호이너지와 리시츠키가 쓴 짧은 글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나눈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적용 가능한 타이포그래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쇄 분야의 이론적, 역사적 근거 위에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정립시키기를 원한 것이다.” (본문 25쪽)

얀 치홀트의 대표적인 저작, 「근원적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 실린 여러 글에는 오늘날 현대 타이포그래퍼 내지 그래픽 디자이너의 역할을 암시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말을 건넨 독자층은 인쇄업자와 식자공, 견습생 및 학생들이었다. 사실 타이포그래퍼나 그래픽 디자이너는 1920년대만 해도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직종이었다. 당시 누구도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치홀트만큼 사색적이고 유용한 글과 웅변적인 작업을 진취적으로 결합하지 못했다. 그는 인쇄학자 게오르크 쿠르트 샤우어의 평가대로, (현대적 의미에서 바라볼 때 당시 불모지에 가까웠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풍경에 거석처럼 우뚝 선 이론적 체계”를 일궈낸 사람이었다.

이 책은 치홀트를 철저히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주창자이자 기록자로 다룬다. 저자는 치홀트의 경력 전반부, 즉 1940년대 후반 치홀트가 전념했던 펭귄북스 작업들 그 이전을 바라본다. 즉 치홀트가 고전주의자로 돌아서기 전 바이마르 독일에서 드러냈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투쟁에 집중한다. 당시 치홀트의 새로운 작업과 글에 팽팽히 드리워진 긴장감은 전통과 현대의 기로에 서 있던 바이마르 문화에서 짧은 시기에 일어난 폭넓은 투쟁을 반영하며, 또한 시각 문화에 눈뜬 한 젊은 타이포그래퍼가 디자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책 『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이렇듯 치홀트의 글과 작업이 서로를 반영해가며 진화하는 모습을 각종 자료와 문서 및 책의 반 이상을 할애한 도판을 통해 다각도로 조망하는데, 한편 여기에 치홀트가 라슬로 모호이너지, 엘 리시츠키, 쿠르트 슈비터스 등 당대의 아방가르드 인사들과 수년간 주고받은 서신들이 곁들여지면서 그 전개가 보다 다채로워진다. 특히 이렇게 치홀트가 어떤 사람들과 접촉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규준들을 창조해냈는지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치홀트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얻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지인들에게 의존했는데, 이는 그의 관심사 및 편향은 물론 그 역사적 발전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세부 자료들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대적 배경(세계대전)과 그에 따른 복잡다단한 시각 문화 역사의 흐름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며, 나아가 우리가 얀 치홀트라는 신화적 디자이너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지 그 단초를 제공한다.

얀 치홀트의 삶과 작업: ‘근원적 타이포그래피’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얀 치홀트(Jan Tschichold)’는 슬라브어를 독일식으로 옮긴 이름으로, 그는 1902년 독일 인쇄 산업의 중심지였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치홀트는 국제 도서그래픽전람회를 방문하고, 책과 문자의 역사에 눈떠 1919년 라이프치히 주립 그래픽미술출판아카데미에 입학한다.

라이프치히 아카데미에서 보낸 5년 동안 치홀트는 캘리그래피 작업에 심취하는 한편 시집 시리즈를 디자인하고 인쇄소에 자원해 조판하는 법을 익히는 등 고전 타이포그래피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1923년 여름, 그는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서 열린 첫 전시를 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예술 사조의 혼란에 휩싸여 돌아온 치홀트는 바우하우스 기초 과정을 맡고 있던 헝가리 구성주의자 라슬로 모호이너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새로운 예술은 1924년으로 넘어갈 무렵 자신의 이름을 요하네스 대신 이반으로 바꿀 만큼 치홀트를 자극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8일, 치홀트는 라이프치히 타이포그래피협회가 주최한 강연 ‘구성주의에 대해’에 연사로 나섰다. “인쇄 디자인 분야에서 우리 동료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목적에서였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포문을 연 「근원적 타이포그래피」

얀 치홀트는 곧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일어난 새로운 운동의 중요성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그의 생각을 글로 다듬어내는 일에 착수했다.

1925년 여름,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움직임에 고무된 그는 “여전히 낡은 것 안에서 새로운 삶을 숨 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과거는 이미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어 러시아 절대주의와 네덜란드 신조형주의, 특히 구성주의와 관련된 타이포그래피 자료들을 정리한 원고 ‘근원적 타이포그래피’를 같은 해 10월 독일 인쇄교육연합 저널 『튀포그라피셰 미타일룽겐』에 싣는다.

그러나 치홀트는 구성주의에 경의를 표했을지언정, 자신의 글이나 출판물을 구성주의로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더 중립적인 ‘근원적 타이포그래피’라는 용어를 택했다. 치홀트는 “특정 개인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모두를 위한 공통의 디자인 작업”을 원했다. 즉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들(글자, 숫자, 기호, 선)을 엄격히 제한하고, 이를 “정확한 이미지(사진)”와 결합할 것을 강조했고, 그리하여 당시 독일 상업 인쇄물에 만연한 고질적인 장식물,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들을 쓸어내고자 했다.

치홀트의 선언문 「근원적 타이포그래피」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인쇄업계에 강한 인상을 안겼으며 “출판을 통한 선동”이라는 구성주의 강령을 성취했다. 모든 식자공이 그의 이름을 알 만큼 효과가 엄청났고, 특히 바우하우스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첫 번째 모던 그래픽 디자인 안내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얀 치홀트의 계획은 더욱 원대해져 갔다. 그는 1927~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곳곳에서 최소한 열아홉 번 이상 강연했다. 그 제목은 대부분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였다. 치홀트는 옛 타이포그래피들의 예술성은 인정했지만, 이전 방식으로 조판된 타이포그래피가 이 시대에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동시대 타이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관습적으로 주어진 편견 타파
  2. 개인적 표현 회피
  3. 내용에 의거해 배치한 시각 형태
  4. 현대적 인쇄 공정의 완전한 활용 ― 본문 72쪽

1928년 6월, 얀 치홀트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신문과 잡지, 포스터, 그리고 표준화된 상업 서식류 디자인을 포괄하는 첫 모던 그래픽 디자인 안내서였다. 말레비치의 「검정 사각형」을 암시하는 듯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책의 외관은 웅변적이다. 재킷을 씌우지 않고 질 좋은 검은색 천을 사용한 표지에는 아무 글자도 없으며 저자와 책 제목만 책등에 은색으로 찍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거의 70여 년 동안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따라서 읽히지 않은 위대한 모던 타이포그래피 책이 되었다. 이 책에 부여된 지위는 이를테면,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검정 돌기둥을 연상시켰다. 무언의, 그러나 모든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지위 말이다.” (본문 77쪽)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서 치홀트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와 현대적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시대에 시작된 각 분야의 모든 새로운 것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태도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필요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즉 치홀트의 궁극적 목표는 “삶의 통합”이었다.

“그는 새로운 운동에서 뚜렷하게 발견되는 양식적 속성보다는 더 근본적인, 일종의 교리를 위한 책을 만들고자 했다. (…) 그가 말했던 일반적인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누구나 수긍할 만한 타당성을 지니고 우리에게 강한 자극을 준다.” (본문 80쪽)

“모든 새로운 문화가 그래야 했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하는 작업의 동기는 낡은 것에 대한 거부입니다. 설혹 이것이 이상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지라도 저는 쇄신과 재건에 대한 욕망을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여깁니다. 이를 향한 우리에게 젊은 수습공과 훈련생들은 힘을 실어줍니다. 그들 대다수는 새로운 것에 호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우리가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구조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순전히 지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의견으로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고전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지니고 있던 내용과 기술, 형태 사이의 조화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 본성의 지적인 표현에 완전히 적대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신적 경향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만의, 그와 유사한 적절한 표현에 도달할 것입니다.” (본문 87~8쪽)

얀 치홀트의 ‘능동적 도서’

이 책의 제목 ‘능동적 도서’는 1930년 치홀트가 저술한 『한 시간의 인쇄 디자인』 서문에서 비롯된 말이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기술하면서 그는 “수동적 가죽 장정이 아닌 능동적 도서(Active Literature)”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특징이라고 단언한다. 치홀트 시대의 ‘현대주의’를 여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서 바라보고 ‘능동적’이라는 뉘앙스를 살리고자 택한 한국어 번역 제목 ‘능동적 도서’는 단순한 직역과 의역 구분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얀 치홀트라는 타이포그래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위 서문에서 치홀트가 밝힌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려진 글자가 아닌 활자
손 조판이 아닌 기계 조판
드로잉이 아닌 사진
목판이 아닌 사진제판
수제 종이가 아닌 기계 생산 종이
수동 인쇄기가 아닌 동력 인쇄기
등.

그리고 또한,
개인화가 아닌 표준화
비싼 한정판이 아닌 값싼 대중판
수동적 가죽 장정이 아닌 능동적 도서
(본문 664쪽)

그렇다면 얀 치홀트가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했던 “능동적 도서”란 무엇일까?

“1920년대 엘 리시츠키가 예견한 전자도서관이 실현된 지금, ‘능동적 도서’란 과연 무엇일까. 생존을 걱정하며 시장과 기술에 끌려가는 듯한 현재의 전자책은 이 시대의 능동적 도서라 할 수 없다. 속도의 문제를 제외하면 그 당시 사람들이 마주한 지각변동은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이며, 문화적 충격은 더 컸을 터이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 속에서 신념을 일구고 행동했던 치홀트를 비롯한 당시의 전위들은 갈수록 답답해지는 출판 환경에서 책을 만드는 역자 같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능동적 도서가 되었다.” (「역자 일러두기」, 본문 19쪽)

이제 우리는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얀 치홀트를 당시 그가 놓여 있던 맥락 가운데 정확히 바라보고, 그가 당대의 다른 이들과 무수히 벌인 토론 가운데 면밀히 살피고, 그가 원하던 ‘능동적 도서’의 생산과 연계해 논해야 한다. (로빈 킨로스의 말대로) 이 책 『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그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발췌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그 원칙들이 조금씩 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순수한 타이포그래피 형태가 지닌 추상적 표현력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넓어지면서 발전되어 나간다. 바깥에서 볼 때 이는 점진적 진전으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그것을 개척한 이들의 작업이 점차 이해받으면서 상식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128쪽)

우리의 관심은 새로움 자체가 아니라 옳은 것, 혹은 좋은 것에 있습니다. 또한 낡았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엉터리들, 나쁜 것, 혹은 새로운 척하는 것들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불쾌한 기념비들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각 형태로 눈을 돌려야 바람직할 것입니다. 새로운 양식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에 깊이를 더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것이 널리 퍼지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극소수의 사람들이 새로움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그 과실을 더욱 풍성하게 해오기는 했지만, 새로운 무언가는 전적으로 부수적일 뿐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133쪽)

1925년 나는 정말로 추한 활자 무리들 대신 오직 한 종류의 활자만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바로 산세리프체 (…) 비대칭을 형태 구성의 원칙으로 삼아서 말이다(비대칭이란 말은 가운데 정렬의 반대어로서 부정확하다). 그렇게 나는 치유를 위해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던져버렸다. 결과적으로 추한 서체와 멍청한 장식들은 사라졌다. 좋은 활자들을 추려내고 그것을 대중화하기 위해 취한 첫 시도로서 그 방법은 옳았을 수도 있다. 당시 내 사고는 이렇게 진행됐다. “무엇이 최고의 활자인가? 가장 단순한 활자. 무엇이 가장 단순한 활자인가? 산세리프체. 따라서 산세리프체가 최고의 활자이다.” 이 생각은 오류였다. 최고의 서체는 가장 읽기 좋은 서체이다. (161쪽)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흠결 없는 기법과, 새로운 공간 감각에 상응하는 요소를 활용하여 타이포그래피적 이미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데 있다. 무조건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아니다. 결과물의 형태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반미학적이라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장식물이나 선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동시대 정신을 위배하거나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형태는 오직 글과 이미지의 내용에 맞춰 알기 쉽고 모호하지 않게 생겨나야 하며, 인쇄물의 기능에 따라야 한다. 신전통주의 타이포그래피가 요구하는 바도 정확히 똑같다. 그러나 신전통주의는 결과물의 완성도뿐 아니라 그것이 지닌 굉장한 금욕주의와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빈곤한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공간에 대한 과거의 감수성에서 작업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매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낡은 예술에서 풍겨 나오는 매력이다. 동시대의 공간 감수성으로 창조하려는 시도야말로 우리에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235~6쪽)


차례

서문: 얀 치홀트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향해

프롤로그
1 요하네스에서 이반으로
2 역사를 만들다
근원적 타이포그래피
베를린, 뮌헨, 그리고 작은 검정 책
아방가르드의 형성
새로운 광고 디자이너 동우회
사진과 포토몽타주
빈의 통계학
동부 유럽과의 관계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국제적 발전
태풍의 눈: 1933년 설문 조사
3 체포
4 서체, 활자, 그리고 책
산세리프체와 소문자
서체 디자인: 1929~31년
서법과 글자 드로잉에 관한 두 권의 책
북 디자인: 1925~33년
사진식자를 위한 서체: 1933~36년
5 망명
영국과의 관계
전위에서 후위로

에필로그

도판

부록
얀 치홀트의 저술
A. 근원적 타이포그래피(1925년)
B. 서적 ‘예술’?(1927년)
C.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1930년)
D.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1932년)

참고 문헌 및 자료
얀 치홀트 저작 목록
참고 문헌
자료 출처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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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크리스토퍼 버크는 타이포그래퍼, 활자체 디자이너, 활자 역사가이다. 영국 레딩 대학교 타이포그래피ㆍ그래픽 커뮤니케이션 학과를 졸업하고 모노타이프 사에서 일했다. 1995년 레딩 대학교에서 활자체 푸투라(Futura)를 디자인한 파울 레너(Paul Renner)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활동 중이다. 패러블(parable), 셀레스트(celeste), 프라그마(pragma) 등의 활자체를 디자인했고, 파울 레너의 삶과 작업을 다룬 『파울 레너: 타이포그래피 예술』을 썼다.

옮긴이

박활성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일했다. 격월간 디자인 잡지 『디자인디비』와 『디플러스』 편집장을 지냈으며 민음사 출판그룹 세미콜론 편집팀장을 거쳐 현재 워크룸 공동 대표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공역)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