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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격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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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격투
All-in Fighting

윌리엄 이워트 페어번 지음, 노정태 옮김

“나를 도와주는 극단적인 방법들, 늦은 밤일수록 도움이 되네, 내가 갔던 극한의 장소, 그곳엔 불빛조차 없네…” —모비(Moby), 「극단적인 방법(Extreme Ways)」

역사가 만들어낸 평행우주 속 아이러니

이 책 『실전 격투』는 실전에서 통하는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다. 여기서 ‘실전’은 결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가 맞붙는 전쟁, 그중에서도 최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거나 무의미한 총력전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실전에서 총 없이도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는 기술 및 훈련 방식을 설명하고 가르치기 위해 군인이 써낸 군사 매뉴얼이다. 이 책의 원전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전쟁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영국에서 쓰여지고 출판됐다.

저자 윌리엄 이워트 페어번(William Ewart Fairbairn)은 군인으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실용적으로 연구해왔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유도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도쿄의 강도관(講道館)에서 검은띠를 받고, 북경의 황궁에서 서태후의 신하들에게 중국식 ‘복싱’을 가르친 차이칭퉁(Tsai Ching Tung)을 사사하기도 했다. 1940년 7월부터 특수 훈련 센터(Special Training Centre)의 근접전 수석 교관으로 부임하는 한편, 더욱 발전한 그의 격투 방법론은 영국 육군의 표준 훈련 방식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의 몸은 수십 군데도 넘는 자상으로 뒤덮혀 있었다 하니, 이는 이제껏 격투에 헌신해온 그의 역사를 드러낸다.

이 책에서 페어번은 수제자를 대하듯 독자에게 실전 격투의 거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대가 공격해야 할 상대의 신체 부위는 다음과 같다. 손목의 양 옆 또는 뒤. 아래팔. 손목과 팔꿈치 중간 지점. 이두. 목의 양 옆 또는 뒷목. 목울대 바로 아래. 신장 또는 척추 아랫부분. 모든 가격은 최대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또는 “전쟁에서 공격에는 오직 두 가지 목적만이 있다. 상대를 죽이거나 생포하거나. 적은 사로잡히거나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리라는 점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함께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은 손날, 주먹, 무릎, 대검, 심지어 의자, 성냥갑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과정을 ‘지나치게 친절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독자는 원전의 목적처럼 실전 격투의 전문가가 될 게 분명하다.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Jason Bourne)이 탐독했을 이 책에서 설파하는 바를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할 독자는 거의 없을 테다. 증오하는 누군가를 향한 복수는 대개 머릿속에서 이뤄진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사망자는 민간인을 포함해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우가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 사무실에서 매뉴얼을 작성하는 사람이 있다. 빠뜨린 사항이 없도록 평온한 마음으로, 실전에서 실수가 없도록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역사가 만들어낸 평행우주 속 아이러니를 체험하는 것. 당시의 실용성이 무화한 오늘날, 『실전 격투』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실용성이다.

워크룸 실용 총서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발췌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무장하지 않은 채 기습당했거나 무기를 빼앗긴 군인에게 이 책이 제공하는 훈련은 승리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자신감과 결단력, 그리고 무자비함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훈련이 제공해주는 근본적인 가치는 구체적으로 육체적으로 남을 제압하거나 벗어나는 게 아니다. 그 가치는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 자세를 함양해주는 심리적 자세임을 독자는 곧 알게 될 것이다.” (10쪽)

“이 책에 소개된 기술 대다수는 극히 잔인하고 실전적이다. 유도와 달리 합의된 규칙 따위는 없다. 이 책은 단지 구경꾼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이종격투기를 가르치기 위한 게 아니다. 이 위험한 시기에 본인과 그대, 즉 우리의 적에 맞선 국가적 대비 태세의 일환으로 쓰이고자 할 따름이다.” (11쪽)

“그대에게 이 모든 기술을 숙달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열 가지 정도를 골라 지속적으로 숙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기술이 실행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개인에 따라 어떤 기술을 다른 기술보다 빨리 숙달할 수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주로 키, 몸무게, 체격,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적 기형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모든 요소는 숙달하려는 기술을 최종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숙고해야 할 사항이다.” (15쪽)

“가령 로버트 러들럼(Robert Ludlum)의 1980년작 소설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에서 기억을 잃은 전직 비밀요원 제이슨 본(Jason Bourne)은 강력한 살인 기술을 되살려가며 적을 쓰러뜨린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지르는 동작은 쿵푸의 그것이다. 로버트 레들럼이 소설을 쓸 무렵만 해도 대중들은 동양 무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가 해당 작품을 영화화할 때 쿵푸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살인 기술의 자리는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군용 격투기로 대체됐다. 왕년의 ‘실전 격투’가 같은 작품 속에서 오늘날의 ‘실전 격투’에 자리를 내준 셈이다.” (222쪽, 「옮긴이의 글: 실전, 문명, 스포츠」)


목차

서문
들어가며

가격하기
붙들렸을 때 벗어나기
제압하기
도판으로 보는 실전 격투
던지기
기타 실전 조언
권총 무장 해제

옮긴이의 글: 실전, 문명, 스포츠


지은이

윌리엄 이워트 페어번(William Ewart Fairbairn, 1885~1960)은 영국의 군인, 경찰, 무술 연구가다. 해병대에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한 뒤 상하이 조계 지역에서 경찰로 근무하며 동양 무술을 두루 섭렵하고 ‘실전’에 적합한 형태로 정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영국, 캐나다, 미국 등의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는 교관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디펜두』(Defendu, 1926), 『과학적 호신술』(Scientific Self-Defence, 1931), 『실전 격투』(All-In Fighting, 1941), 『겟 터프』(Get Tough, 1942), 『여성과 소녀를 위한 호신술』(Self Defence for Women and Girls, 1942), 『손 떼! 여성을 위한 호신술』(Hands Off!: Self-Defense for Women, 1942), 『생존을 위한 사격』(Shooting to Live, 1942) 등이 있다.

옮긴이

노정태(1983~)는 한국의 저술가, 번역가, 칼럼니스트다.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다방면에 걸쳐 저술 및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논객시대』(2014), 『탄탈로스의 신화』(2016)가, 역서로는 『아웃라이어』(2010),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2013), 『밀레니얼 선언』(2019), 『모던 로맨스』(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