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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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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이재민 지음

그래픽 디자인과 거의 무관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컴필레이션

이 책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은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이 2016년 가을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instagram.com/round.midnight)에 1~2주에 한 번씩 게시해온, 음악에 관련한 글을 추려서 다듬고 덧붙인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음악이라기보다는 음반에 가깝고,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음반 자체라기보다는 음반을 둘러싼 기록과 감상이다.

2006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fnt를 설립한 뒤 문화계와 상업계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한 이재민에게 음반 수집가는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호칭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수집해온 음반은 이제 3,000여 장에 달한다.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ypnosis) 때문이라고 말해온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마스코트 에디[Eddie]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음반과 음악에 대한 애호는 그동안의 작업 결과물에서 이미 드러난다. ‘9와 숫자들’의 모든 음반을 비롯해 『성불사의 밤』(맹원식과 그의 째즈 오케스트라), 『의례』(김성배), 『시티 브리즈』(박재범·기린), 『지니』(이재민) 등 비트볼뮤직그룹과 오름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발매한 음반의 완성도는 음반과 음악이 오랫동안 생활이 된 이가 도달함직한 영역이다.

음악으로 하는 청소

책에 실린 음반은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R&B)로 시작해 아트 블래키(Art Blakey), 자니 그리핀(Johnny Griffin), 에릭 돌피(Eric Dolphy, 이상 재즈), 야마시타 타츠로( 山下達郎 ), 안리( 杏里 , 이상 시티 팝), 아이언 메이든(헤비 메탈) 등을 거쳐 유스 라군(Youth Lagoon, 일렉트로닉)으로 마무리된다. 음반을 고르는 데 특정한 규칙 같은 건 없다. 그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반려묘의 발자국이 찍힌 선반에서 꺼내졌다.

이재민에 따르면 청소와 음악은 닮은 구석이 있다. 우리의 지금 상태를 보다 좋게 만들어주는 건 물론이고, 상쾌함, 청량함, 명랑함 같은 게 있는 두 음절짜리 단어라는 점에서. 그에게 청소와 음악은 어수선한 일상을 자기 식으로 보듬는 일종의 도구인 셈이다.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제목을 ‘음악으로 하는 청소’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한 이유다. 따라서 “청소를 하려면 청소기를 돌리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러면서 음악을 듣는 게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만의 청소 노하우나 음악 (또는 음반 디자인) 평론을 기대한 독자는 얼마간 허전할지 모른다. 하지만 독자의 허전함은 일과 생활을 노련하게 분리하고, 순간 순간 좋음과 그 이유를 찾으려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이재민은 이 책에서 독자가 ‘일상적 헐렁함’을 건져내기를 권한다. 그것은 그리드나 타이포그래피 같은 ‘엄밀함의 세계’ 밖에, 이 책을 덮은 뒤 이미 우리 옆에 있다.


추천사

이재민의 호흡은, 귀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의 대기 중에는 산소가 아니라 음악이 있다. —요조(뮤지션, 책방 무사 주인)

종이로 된 LP 커버 이곳저곳의 닳은 흔적, 예스런 번역투로 쓰인 노래 제목들, 맥락은 없지만 어째서인지 근사한 선곡, 뭔가 시작이 될 듯 말 듯 그치는 이야기들. 이 책은 마치 구식인 듯하면서도 알수록 세련되고 산뜻한 신사 같다. (때때로 울적한.) 청소를 하게 되지는 않지만, 이 작고 매력적인 책을 방 안에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정결해진다. —김하나(카피라이터, 『힘 빼기의 기술』 저자)


발췌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놓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누워서 주말을 보낸다. 아무렇게나 클릭해서 고른 음악이 피쉬만즈다. 어둑한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어제 파먹고 남은 자몽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31쪽)

주말 오후 『멀리건과 함께 노래를!』을 들으며 멍하니 창밖의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니 야외로 소풍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시간 정도를 운전해서 도착한 한적한 곳의 적당한 꽃나무 아래 자리를 잡아 접이식 테이블을 펴고, 깅엄 체크 테이블보를 펼친 뒤 바구니에 담아온 와인이나 가츠 샌드 같은 걸 늘어놓는다. (61쪽)

1990년생인 맥 드마르코는 올해로 스물일곱이다. 슬슬 기초대사량도 떨어지고, 목과 허벅지가 두꺼워지고,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찌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어른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지루하고 조금 더 농밀한 세계에. (85쪽)

대단히 멋지고 낭만적인 재즈 훵크, 소울, 디스코 음악을 담은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나』는 음악만 들을 때와 달리 패키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수상한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115쪽)


차례

2막의 디바 — 다이애나 로스
여름의 마지막 조각 — 무라타 가즈히토
잘 드러나지 않는 우수 — 트리오: 빌리 빈, 할 게일러, 월터 노리스
누군가에겐 쉬운 것 — 롤랜드 한나
하얗던 겨울 — 자니 하트먼
상냥한 대화 — 폴 데즈먼드·게리 멀리건
긴 겨울밤을 위해 — 냇 킹 콜 트리오
재즈의 세계 — 존 루이스
어른을 위한 자장가 — 빌 에반스
첫눈 내리는 시간 — 듀크 조던
오래전의 별 — 피쉬만즈
시간은 강물처럼 — 조니 미첼
크리스마스의 기적 — 폴 데즈먼드와 모던 재즈 쿼텟
황금을 찾아 — 가도마츠 도시키
불과 얼음 — 아트 페퍼
사랑의 메신저 —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와 바르네 윌랑
소박한 노동요 — 냇 애덜리
봄을 기다리며 — 빌 에반스
재즈와 소묘 — 에릭 돌피와 부커 리틀
재즈와 우동 — 자니 그리핀
북구의 봄 — 아트 파머 퀘텟과 짐 홀
상춘곡 — 플릿 폭시스
4월이 오면 — 사이먼 앤 가펑클
피크닉 — 애니 로스와 게리 멀리건 쿼텟
만개하지 못한 봄 — 엘모 호프 트리오·엘모 호프 퀸텟
실패한 자장가 — 셀로니어스 몽크
쿼텟 나그네의 춘심 — 셸리 맨과 친구들
기묘한 정원 — 니나 시몬
푸르던 나날 — R.E.M.
늙는 법 연습하기 — 론 카터
선연한 과거 — 디스트로이어
파리의 남자 — 덱스터 고든
유년기의 끝 — 야마시타 타츠로
소년의 음악 — 맥 드마르코
조용한 위로 — 빌 에반스·짐 홀
디어 마르가리타 — 데이브 브루벡 트리오와 게리 멀리건
여름방학 — 티어스 포 피어스
비 오는 밤의 인터플레이 — 빌 에반스
빗속의 호랑이 — 마이클 프랭스
이지 리빙 — 스티브 모스 밴드
한밤의 고기 요리 — 케니 버렐
낯선 곳에서의 결정적 순간 — 마테오 스톤맨
지나간 여름 — 안리
짐승의 숫자 — 아이언 메이든
길티 플레저 — 에릭 존슨
콩코드 광장에서 — 모던 재즈 쿼텟
여러 용도의 음악 — 라사
엘리스의 섬 — 9와 숫자들
여름의 술, 겨울의 음악 — 폴 데즈먼드와 짐 홀
누런 개 — 제임스 테일러
겨울잠의 나날 — 유스 라군


지은이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은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2006년에 설립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fnt를 기반으로 동료들과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극장 등과 문화 행사나 공연을 위한 작업을 해왔다. 한편, ‘9와 숫자들’의 모든 음반을 비롯해 『성불사의 밤』(맹원식과 그의 째즈 오케스트라), 『의례』(김성배), 『시티 브리즈』(박재범·기린), 『지니』(이재민) 등 비트볼뮤직그룹과 오름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발매하는 음반의 커버 아트워크를 디자인하고 서울레코드페어의 그래픽을 총괄하는 등 음악과 관련한 일에도 애정을 기울인다. 재즈를 즐겨 듣는 두 고양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편집

민구홍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