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들」은 워크룸 프레스의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입니다. 새 창을 열 때마다 워크룸 프레스와 작업실유령 도서의 인용문을 출력합니다. 내려받기

코멘터리 2: 박정현,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97쪽

코멘터리 2: 박정현,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97쪽

워크룸 프레스(W): 인터뷰 전에 골라 주신 페이지를 펴 봤더니 익숙한 문장이 보이더라고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건축은 미의 차원에서는 역사에 졌고, 숭고의 차원에서는 건설에 졌다.” 인상적인 문구여서 출간 당시 SNS에서 저 구절이 많이 인용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박정현(P): 97쪽이면 아직 책의 절반도 넘지 않은 시점인데, 여기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종의 중간 평가를 내리는 부분이거든요. ‘썩 잘하지 못했다’라는. 그런데 이 진단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송도를 보세요. 해외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외국인이 들어오면 보여 주고 싶은 한국의 모습이 송도인 거예요. 고층빌딩이 늘어선 가운데 한옥이 보이는, 여전히 이 책에 나오는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W: 듣고 보니 송도 센트럴파크의 경관과 완전히 부합합니다. 여전히 국가적 표상이 필요한 곳에는 한옥 지붕이 빠지지 않는 셈이군요.

P: 이 페이지를 고른 또 다른 이유는 위쪽에 나오는 문장 때문이에요. “시간(역사)을 공간(구체적인 장소)으로 바꾸는 작업은 한국 사회가 통과해 나가야만 했던 의례였다.” 책에서는 아주 짧게 한 문장으로 지나친 이야기라 코멘터리가 필요하다면 여기라고 생각했어요. 1960년대에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공공 건축물이 지어질 때 한국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든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는 게 건축에 주어진 과제였는데, 전통 건축을 현대적인 재료로 모방한 건물들이 우후죽순 지어지는 상황에 대해 당시 건축가들은 매우 퇴행적이고 모순적이라고 폄하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한국 사회가 이 과정을 안 겪고 통과하기란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종합박물관 현상 설계 투시도 일부, 1966. ‘콘쿠리’로 지붕을 만든다고 적혀 있다. 출처: 국가기록원.

W: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는 말씀인가요?

P: 프랑코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 개념을 건축에 대입해 바라보면 그렇습니다. 소설의 발달과 마찬가지로 건축 역시 국민국가의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점들이 여럿 있어요. 유럽을 예로 들어 보면, 우리가 유럽에 가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을 둘러보면 기념비적 건물들의 양식 차이가 크게 안 느껴질 수 있지만, 아니거든요. 서구 사람들에게 한국, 중국, 일본의 목구조 건축물이 모두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청해 기념비적 건축물을 맡기려고 했는데, 프랑스 지식인들이 정작 설계안을 받아보니 이탈리아 건축가의 안은 프랑스 정체성과 안 맞는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서서히 자신들의 양식을 만들어 내거든요. 국민국가 형성이 늦은 독일은 그보다 훨씬 뒤인 1800년대 중반쯤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요. 다만 유럽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일이라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통과 충돌 없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한국은 그들이 거쳤던 200-300년간의 과정을 1960년대 본격적인 ‘국민국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압축적으로 겪어야 했던 거죠. 당시 한국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건축가들의 희망대로 현대 건축의 문법대로 지을 수 있었다? 오히려 시행착오가 당연한 일이에요.

W: 오시기 전에 오랜만에 책을 다시 한번 살펴봤는데, 새삼 구성이 굉장히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서술이 느슨하게 시간 축을 따르고 있지만 완전히 통사적인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건너뛰며 초점이 옮겨 다니는데, 건축에 문외한이어서 몰랐던 것들이 지금 보니까 다 면밀하게 배치되어 있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 좋았어요. 사실 편집할 당시에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가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나요?

P: 딱히 없는데요?

W: 그냥 생각만 했나 보네요. 뭔가 딱 부러진 결말이 아니라 열린 결말 같은 느낌이어서 좀 애매하다 싶은 구석이 있었거든요.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맨 마지막 장 「국가는 건축의 적인가」에서 갑자기 만프레도 타푸리(Manfredo Tafuri, 1935-1994)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이탈리아로 건너가니까 ‘어, 이제 좀 있으면 끝나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P: 대개 건축사를 논할 때 국가는 배제해야 하는 존재에요. 서양 건축사만 해도, 물론 국가 단위로 기술되곤 하지만 단순히 서술을 위한 지리적, 역사적 장치에 불과해요. 특히 현대 건축이 상정하는 대상은 국가가 아닌 시민 사회거든요. 국가는 건축에 방해가 될 뿐이죠. 타푸리는 이걸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1930년대 국가 사회주의와 미국의 뉴딜 정책 같은 국가 주도 계획이 등장하면서 현대 건축은 죽었다고 말해요. 건축이 갖고 있던 고유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국가에게 빼앗긴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현대 건축은 국가를 빼놓고 쓸 수 없다는 게 제 기본 입장이거든요. 원래는 이런 이야기를 책 서문에서 더 충분히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W: 그럼 책이 재미없어졌겠죠. 그런데 저는 타푸리가 『건축과 유토피아』(1973)에서 했던 말이 그런 뜻이라는 걸 이 책을 편집하면서 알게 됐어요. 사실 예전에 워크룸 프레스에서 펴낸 『디자인과 미술』에 타푸리의 글도 실려 있어서 당시 시중에 유통되던 『건축과 유토피아』를 사서 읽어 봤는데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P: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나왔던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책이었는데, 저본이 됐던 영어 번역이 너무 안 좋아요.

W: 맥락은 다르지만 1980년대 건축에서 타푸리가 수용된 방식과 디자인에서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7-1998)이 수용된 방식이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더라고요. 『건축과 유토피아』가 나오기 2년 전에 파파넥이 썼던 ‘현실 세계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이라는 제목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인간을 위한 디자인』으로 번역되어 소개됐거든요. 자본에 봉사하는 디자인에 비판적인 책이긴 하지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하니까 당시 1980년대 사회 상황과 맞물리면서 일종의 오독을 일으킨 지점이 있어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한국의 현대 건축은 국가를 빼놓고 쓸 수 없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 소개됐던 ‘국가 아방가르드’ 개념과 맞닿는 말이잖아요?

P: 기본적으로 발전 국가 시기 한국에서 국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였기 때문에 빼놓고 서술할 수 없다는 뜻이고요. 건축의 입장에서 본다면, 덕분에 당시에 일반적인 건축가라면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규모로 아방가드르적인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건축가들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이 둘이 만나 어쩌면 서구 입장에서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국가’와 ‘아방가르드’를 병치시킨 조합이 가능했던 시기가 바로 1960년대입니다. 한국 현대 건축을 통틀어 가장 낙관적인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실현 가능성을 떠나 여의도 종합계발계획이라든가, 오사카 만국박람회 한국관 같은 게 가능했던 때가 1960년대 말이고, 1970년대도 대규모 기획이 이어지긴 하지만 1972년 유신 이후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니까요.

W: 국가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인데, 이 책에서는 그 국가를 대리하는 행위자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해서 재밌어요. 좀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는데요. 예를 들면 1966년 종합박물관 건립 때 대놓고 전통 건축에서 베껴 와서 짜깁기하라고 요구하자 건축가들이 항의하러 몰려간 상황이 그래요. 문화재관리국장이 ‘그러면 당신네들이 팔상전이나 영남루보다 더 나은 건물을 지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돌아오는 장면이요. 종합정부총사 설계 변경 때 등장하는 황인권 준장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좀 슬프게 웃깁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공간』 창간호부터 22호까지 발행인으로 적힌 석정선이에요. 아마 저처럼 『공간』을 김수근 선생과만 연결지어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분 이력을 보면 좀 황당해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설립을 주도하고, 중앙정보부 창설에 기여하고, 공화당 창당 자금줄이었던 ‘4대 의혹 사건’ 당사자에다 일요신문사 사장, 문화영화 제작 단체 회장 등등... 책에 이런 문장도 나오죠. “김종필이 박정희 정권의 브레인이었다면, 석정선은 손이었다.” 이 석정선이라는 분에 대해 혹시 책에 싣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면 꼭 듣고 싶습니다.

P: 아쉽게도 없어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활동했던 사람인데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김종필 회고록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주로 다룬 대상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였기 때문에 생존해 있다면 인터뷰를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그때 확보한 자료로는 미국에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으로 건너간 시기가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는 시점과 맞물려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박정희 정권이 끝났을 때 한국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수근이 설계한 서울 삼청동 석정선 자택 내부, 1960년대 후반. 출처: 개인 소장.

W: 책에 실린 사진은 어떻게 확보하셨어요?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석정선 자택 내부에서 찍은 사진이라 꽤 개인적인 자료로 보이는데.

P: 석정선을 기억하는 사람을 수소문하던 중에 당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만들 때 함께 일했던 분을 찾았어요. 그분도 3공화국 시절 테크노라트 중 하나였는데, 그분이 소장하던 사진이에요.

W: 책이 나온 지 4년 정도 되었는데 후속작은 언제쯤 쓰실 예정인가요? 전에 2010년대 이야기를 쓰시기로 했었는데....

P: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010년대에 앞서 1990년대를 다루려고요. 가제도 생각해 뒀어요. ‘4.3그룹과 그들의 시대.’

W: 제목은 이전 책과 비슷한 느낌이면 좋을 것 같은데, 어쨌든 1990년대면 저는 더 좋습니다. 정말 이 책의 후속작이 되겠네요. 책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잖아요.

그러나 그들[4.3그룹]의 언어는 건축만의 고유한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와 자본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인문학의 언어로 지은 규방(閨房)은 1990년대 건축이 머물던 자리였다. 광장의 구호로 시작된 1980년대는 규방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1990년대로 끝났다.

한국 건축에서 4.3그룹의 등장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P: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한국 건축의 헤게모니가 김수근이나 김중업 선생 세대에서 완전히 다른 세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에요. 1986년에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시고 2년 후인 1988년에는 김중업 선생도 돌아가세요. 그러면 다음이 김원, 김석철 같은 분들인데 1987년 6월항쟁 이후 올림픽과 해외여행 자유화 등을 거치면서 시대 분위기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동안 본의건 아니건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분들의 발언권이 건축에서 굉장히 축소돼요. 책에서도 썼지만 바로 그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축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그 중심에 4.3그룹이 있었어요.

W: 어쩌다가 만들어졌나요? 선후배 관계도 아닌 것 같은데.

P: 그 점에서도 4.3그룹은 의미가 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같은 학교 동문 모임밖에 없었거든요. 서울대에 목구회가 있었다면, 홍대에는 금우회, 한양대에는 한길회가 있었죠. 당시에는 SNS도 없었을 때니까, 그야말로 알음알음 모인 거예요. 유명한 설계사무소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너희 사무실에서 아무개가 제일 잘한다며?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이러면서요.

W: 만나서요?

P: 여행도 다니고 세미나도 하고, 친목을 다지면서 한동안 각자 설계한 건축물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요. 건축물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물어뜯는 거죠. 제가 알기로는 제일 신랄한 말을 들은 사람이 이성관 선생이에요. 이분이 전쟁기념관을 설계했는데, 건축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건립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욕을 먹은 거죠.

W: 왜요?

P: 건축 외부의 요인으로 이 건축을 설명하는 거니까요. 4.3그룹의 몇몇 건축가들은 정권이나 자본 같은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건축을 추구하려 했거든요. 이분들이 보기에, 예를 들면 198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불었던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은 상업주의에 휘둘린 건축이었어요. 같은 논리로 보면 청건협(청년건축협의회)의 건축은 좌파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건축이죠. 건축이 바깥에 있는 외부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고유의 논리로 만들어지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었던 건데, 문제는 그런 훈련이 안 되어 있던 시대라는 점이었죠. 그래서 그 빈자리를 인문학적 담론으로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빈자의 미학’ 같은 것으로요.

W: 그 전에 김수근 선생도 비슷한 시도를 하지 않았나요?

P: ‘자갈리즘’ ‘궁극공간’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딱히 건축론이라고 하기에는 약해요. 다른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일은 차고 넘치니까, 그 일들만 처리하기에도 바쁜 시절이었죠.

W: 후속권에 대해 스포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4.3그룹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되나요?

P: 일단 멤버들의 희비가 좀 갈리죠. 백문기, 우경국, 김병윤, 이종상, 이런 분들 아세요?

W: 아니요.

P: 승효상, 민현식, 조성룡, 김인철, 이분들은?

W: 압니다.

P: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아요. 긴 이야기지만 4.3그룹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건축가들의 향후 행보가 크게 달라집니다. 담론의 주도권이 재편되게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서 할게요. 그다음에, 모든 운동에는 재생산이 중요하잖아요? 결국 그분들의 관심이 건축 교육 쪽으로 확장되게 됩니다.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서울건축학교 같은 건축 설계 교육에 대한 큰 변화가 1990년대 중반에 벌어지게 되는데, 여기서도 4.3그룹 건축가들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W: 서울건축학교 로고를 안상수 선생이 디자인했죠.

4.3 그룹의 첫 전시회에 맞추어 발간된 작품집, 『이 시대 우리의 건축』, 서울: 안그라픽스, 1992.

P: 1992년에 열렸던 4.3그룹 첫 전시회 도록도 안상수 선생 디자인이니까 그 세대이신 거죠. 이 도록이 정말 문제작입니다. 본문 레이아웃, 문장 배치, 사진 등 모든 것에 의도가 있었고, 4.3그룹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안상수 선생과 4.3그룹 건축가들이 답사 중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는데,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 같기도 합니다. 서울건축학교는 나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이어져요.

W: 그다음 헤게모니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게 흥미진진할 것 같은데, 언제 쓰실 건가요?

P: 머릿속에 구상은 다 있어서 쓰면 진짜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1990년대 사회나 문화를 다루는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책들을 보면 건축은 등장하지 않아요. 인문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건축에 너무 관심이 없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나 책이 많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제 일차적인 목표는 1990년대 담론에서 빠져 있는 건축의 빈자리를 메우는 겁니다.


대화

박정현, 박활성

2024년 2월 27일


박정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1989~1997』(이상 공저)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을 비롯해 『아웃 오브 디 오디너리』(Out of the Ordinary, 2015, 런던), 『한국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Cosmo-politan Look 1989~2019, 2019, 부다페스트)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건축 비평가로 활동하며 잡지 발간을 준비중이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살펴보기

http://www.workroompress.kr/books/what-did-architectur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