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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절판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Design and Art

알렉스 콜스 엮음, 장문정·박활성 옮김

디자인과 미술의 관계를 다룬 36편의 엄선된 글과 인터뷰를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

1990년대 말, 미술 평론가 알렉스 콜스는 지금까지 자신을 매혹시킨 미술들이 디자인으로부터 여러 요소와 전략들을 끌어와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1960년대 이래 꾸준히 부상해온 ‘디자인미술’ 현상을 다룬 『디자인아트』(2005)를 출간한다. 이 책에서 콜스는 앙리 마티스부터 도널드 저드, 호르헤 파르도에 이르는 미술가들이 문양과 가구, 인테리어, 건축을 다루는 방식을 폭넓게 검토했다.

그러나 책이 나온 직후, 그는 디자인 비평가 릭 포이너로부터 다음과 같은 비판을 들어야 했다. “콜스가 취한 방식은, 미술가에게는 어떤 혜택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둘의 관계에 있어 미술의 우위를 확고하게 해주는 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 미술가들은 미술을 확장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디자인을 향한 여행이 허락된다. 그러나 아무도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는 이가 없는 이 여정은 일방통행처럼 보인다.” 이 책 『디자인과 미술』은 알렉스 콜스가 이러한 비판의 정당성을 깨닫고 미술과 디자인을 똑같이, 비평적으로 다룬 문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 책의 목적은 갈수록 혼성적 움직임을 보이는 동시대 미술과 디자인 실천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다. “매체 특수성 및 학제 범주들의 불안정한 상태”가 “이미 지배적인 현상이거나 문화 실천에 주어진 조건”이 된 우리 시대에 미술과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담론의 영역을 떠나 일상의 삶과 결부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알렉스 콜스는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던 초기의 현대 아방가르드 운동에 관한 글들을 제외하고, 1945년 이후를 출발점으로 삼아 팝아트와 미니멀리즘 이래로 부상한 ‘디자인미술’ 현상은 물론 2000년 이후 전통적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실천들까지, 더 동시대적 논의들을 한곳에 모았다.

1장 「패러다임」은 디자인과 미술의 본질에 대한 고찰로서,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포착한다. 그 관계의 역동성은 전통적으로 ‘심미성 대 기능성’ 사이에 그려진 선의 이분법적 대비가 맥락과 입장에 따라 점차 흐릿해지거나 사라지는 데 있다. 조지 넬슨이나 노먼 포터, 폴 랜드처럼 각 영역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부터,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제시하는 할 포스터, 권미원, 릭 포이너 등의 글이 여기 포함된다. 문화 이론가 빌렘 플루서는 단순히 ‘디자인’이라는 말의 어원을 탐구함으로써 미술과 디자인, 기계, 기술 영역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왜 현재에 이르러 디자인이 문화 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됐는지 근거를 제시한다.

2장에서는 미술, 혹은 디자인이라는 “꼬리표나 경계를 향한 예민한 칼날은 접어두고”, 역사적으로 미술과 디자인의 융합이 활발하게 번성해온 주제, 즉 「유토피아와 협업」을 다룬다. 현대의 도시 조건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을 다룬 아키그램의 ‘플러그인 시티’, 유토피아를 꿈꾼 20세기 초 아방가르드들의 이상이 어떻게 산업과 생산의 조직화라는 자본주의의 목적에 봉사하게 됐는지 밝히는 만프레도 타푸리, 경계를 가로지르는 집단적 협업을 통해 생태적, 사회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N55, 슈퍼플렉스,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 등의 글과 프로젝트가 여기에 속한다.

3장 「조정자들」에서는 하나의 작동 방식으로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접점을 다룬다. 20세기 전반, 전시를 새로운 대중 매체로서 인식하고 혁신적인 설치 디자인을 제시했던 프레데릭 키슬러의 사례부터, 마리아 린드나 리암 길릭처럼 하나의 조직화 전략으로서 미술과 디자인을 전시 및 작업과 연결 짓는 실천가들, 전통적 분과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세스와 맥락을 너무도 쉽게 전환하는 M/M 같은 디자이너가 여기에 속한다.

미술과 디자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그들의 접점이 향하는 끝은 어디인가

이 책의 제목 ‘디자인과 미술’은 그동안 ‘아트 앤드 디자인(Art and Design)’이라고 표현해온 영미 문화권의 관습에서 벗어나 두 단어를 도치시킴으로써 처음부터 그 속내를 드러낸다. 이는 미디어들이 요란하게 (실은 대부분 얄팍한 상술을 가리기 위해) 떠들어대는 ‘디자인의 부상’과 별개로 여전히 확고하게 작동하는 두 분과 사이의 역학 관계에 재고를 요청한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이러한 재고를 요청하는 융합 혹은 혼성적 움직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몇몇 함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혼성’이라든가 ‘초학제’라든가 하는 수사들도 자칫 그것을 또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림으로써 우리 시대의 ‘진기한 것’으로, 흐름에 부응하는 ‘패션’으로 팔아먹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서문에 ‘디자인미술을 넘어’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편협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자는 알렉스 콜스의 제안이 자칫 목적을 잃고 왜곡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종국에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애초에 왜 이것이 (새로운 것도 아니면서) 다소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중요한 현상이 되었나 하는 질문일 것이다.

여기에 실린 다양한 논의들은 공통적으로 디자인과 미술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역사적, 장르적으로 밝히는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이 미술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포섭해왔음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미술이 디자인을 포섭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가 미술을 포섭하는, 자의든 타의든 종국에는 폭력적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기왕에 모든 예술 활동이 삶을 미학적으로 포착하는 것인 바, 모든 것이 디자인인 세상과 미술이 접속하는 것은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대처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조심스러운 가능성은 이 책의 핵심 주제에 속하는 ‘협업과 조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접점에 존재하는 실천가들은 실제로 대부분 협업자이자 조정자의 속성을 갖고 있다. 중간, 사이, 접점에서 활동하는 실천가에게 ‘조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접점이 아닌 여럿이 만드는 관계의 역동성에서 보다 급진적이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자인과 미술』 자체가 관계의 역동성을 보여줌으로써 해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각 글들은 내적으로 연결되며 다양한 맥락을 생성해낸다. 예를 들어 미니멀아트에 대한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관점은 댄 그레이엄이나 릭 포이너의 글을 통해 재맥락화되고, 뒤이어 도널드 저드가 직접 자신이 만든 가구에 대해 언급하는 글이 나온 후, 호르헤 파르도나 익스페리멘틀 젯셋,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다시 소재로 등장하는 식이다. 독자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독서를 요구하는 이러한 교차와 재맥락화는, 이론가 및 역사가들의 글을 실천가들의 인터뷰와 나란히 배치하는 편집 방식을 택한 엮은이의 의도이며, 또한 이 책을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혼성적 움직임에 대한 좋은 길잡이로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발췌

디자인’이라는 말이 일상의 담론에서 어떻게든 핵심적인 자리를 유지하게 된 것은 우리가 가치의 원천으로서 예술과 기술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 뒤에 있는 디자인에 눈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빌렘 플루서, 78쪽)

대부분의 디자인 미술에 내재된 무용성은 구성이나 전시 방식에서 가시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최종적인 인체 공학적 실패는 다소 짜증나는 (그리고 값비싼) 유인 상술이 되는 것이다. 미술로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의 실망이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 유용해지는 데 따르는 위험은 떠안지 않은 채, 유용해 보이려는 미술의 욕구는 우리를 슬프고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조 스캔런, 90쪽)

동시대 디자인은 예술과 분과의 경계를 다시 허물고, 관습에 대한 도전을 관례화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의 일환이다. 자율성, 혹은 준자율성조차 어쩌면 환영이거나, 기껏해야 허구일지 모른다. (할 포스터, 103쪽)

만약 리트벌트 의자와 도널드 저드의 의자를 런던에 있는 코벤트 가든으로 가져가 하나씩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느 것이 디자인이고 어느 것이 예술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당신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겠죠. 왜 그런 구별이 필요하지? (론 아라드, 142쪽)

디자인이 예술에 아주 가까이 다가설 때, 우리는 흔히 디자인이기를 그만두고 예술이 되려 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디자이너들은 종종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동료들을 제일 먼저 비난하고 나선다. 어떤 이들은 그런 모험을 쓸데없는 자기표현으로 보고 깊은 혐오감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런 모험적인 디자인이 기능 면에서 필요조건을 만족시킬 때도 그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릭 포이너, 144쪽)

우리는 그래픽 디자인을 미술로 보지 않지만 미술을 디자인의 한 형식으로 본다. 비록 미술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미술의 맥락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시 공간, 갤러리, 미술관, 미술 잡지, 미술 출판사, 미술사, 미술 이론 등등 명백한 기반 구조가 존재한다. 미술은 이러한 특정 구조 안에서 기능하도록 의도된 사물, 개념, 활동의 생산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생산물은 분명 디자인의 특별한 형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익스페리멘틀 젯셋, 153쪽)


목차

알렉스 콜스 — 서문: 디자인미술을 넘어

1장 패러다임
조지 넬슨 — 좋은 디자인: 무엇을 위한 것인가?(1957)
리처드 해밀턴 — 디터 로트(1961)
클레멘트 그린버그 — 조각의 근황(1967)
노먼 포터 — 디자이너는 예술가인가?(1969)
폴 랜드 — 디자인의 정치학(1981)
댄 그레이엄 — 디자인으로서 미술, 미술로서 디자인(1986)
도널드 저드 — 좋은 램프를 찾는 건 어려워(1993)
빌렘 플루서 —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대하여(1993)
호르헤 파르도 — 프리츠 하에그와의 인터뷰(1999)
조 스캔런 — 자, 명품을 드세요(2001)
할 포스터 — 디자인과 범죄(2002)
권미원 — 호르헤 파르도의 디자인에 대한 디자인(2002)
키스 도르스트 — 아니, 그게 미술인가요?(2003)
루이세 스하우벤베르흐 — 헬라 용에리위스와 나눴을 법한 대화(2003)
릭 포이너 — 미술의 동생(2005)
익스페리멘틀 젯셋 — 루시엔 로버츠와의 인터뷰(2005)

2장 유토피아와 협업
피터 쿡, 아키그램 — 플러그인 시티(1972)
만프레도 타푸리 — 아방가르드의 변증법(1974)
디터 람스 — 미래의 전망과 유토피아 개념: 프랑수아 부르크하르트와의 인터뷰(1980)
베냐민 베일과 안드레아 지텔 — 집이란 미술이 있는 곳 / 안드레아 지텔의 답변(1994)
유프 판 리스하우트 — 으뜸과 딸림 유닛(1994)
루시 오르타 — 폴 비릴리오와의 인터뷰(1995)
N55 — 미술과 현실(1996)
슈퍼플렉스 — 아사 내킹과의 인터뷰(1998)
더글러스 커플랜드 — 멋쟁이 과학자(2000)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2002)
토비아스 레베르거 — 반 고흐 위에서 잠자기: 앤서니 스피라와의 인터뷰(2004)

3장 조정자들
메리 앤 스타니제프스키 — 프레데릭 키슬러의 설치 디자인(1998)
앤디 워홀 —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레첸 버그와의 인터뷰(1967)
데이비드 보든 — 출판인(혹은 책쟁이) 루쉐: 에드 루쉐 인터뷰(1972)
찰스 임스 — 디자인이란 무엇인가?(1972)
마크 위글리 — 토털 디자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1998)
마리아 린드 — 어떻게 될까?(2000)
리암 길릭 — 캐추 로버츠와 루시 스티즈와의 인터뷰(2000)
폴 엘리먼 — 너무 많은 정보(2005)
M/M — 영국 왕립예술학교 데이비드 블래미와의 토론(2006)

저자 및 작가 약력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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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지은이

알렉스 콜스는 영국 미술 평론가이자 저술가다. 『디자인아트(DesignArt)』 (2005), 『초학제 스튜디오(The Transdisciplinary Studio)』(2012)의 저자이며 최근에는 미술, 디자인, 건축을 가로지르는 주제로 매년 1회 발행하는 『EP』(2013) 창간호 편집을 맡았다. 영국 허더즈필드 대학교의 미술, 디자인, 건축 학교에서 초학제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이

장문정은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AGI society에서 대표와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시각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공간과 배치/재배치’, ‘정렬의 정치학’, ‘가치와 상대성’에 관심이 많으며, ‘주변 시각’, ‘소란스런 경계’, ‘열호’ 등의 독립 프로젝트들을 발표했다. 현재 조지아 주 주립대학교 미술대학 그래픽 디자인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활성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일했다. 디자인 잡지 『디자인디비』와 『디플러스』 편집장을 지냈으며 민음사출판그룹 세미콜론 편집팀장을 거쳐 현재 워크룸 공동 대표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 『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Active Literature: Jan Tschichold and New Typography)』가 있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본문 강경탁,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