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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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Dramaty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정보라 옮김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는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희곡집이다. 대표작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와 「결혼식」과 「오페레타」에 이어 파편으로 전해지는 「역사-이야기」까지, 곰브로비치의 모든 희곡이 실려 있다.

그간 국내에서 곰브로비치의 작품들은 프랑스어 판본이 중역되어왔다. 곰브로비치가 폴란드를 떠나 아르헨티나와 유럽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작품들이 서유럽에서 먼저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게 된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브로비치는 자신의 나라에 일부러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며, 그 증거를 보여주듯 평생 폴란드어로 글을 썼다. 이 곰브로비치 희곡집은 폴란드 문학 전공자 정보라가 폴란드어 판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폴란드 문예 출판사에서 출간된 2012년 최신 판본을 기준으로 곰브로비치 연구자 예쥐 야젱브스키의 서문과 콘스탄티 옐렌스키의 해설 또한 동일하게 수록했다. 곰브로비치의 희곡이 그 작품 세계 전반의 기반이 되었듯, 이후 한국에서 활발해질 곰브로비치 작품 연구에서 이 책이 중요한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연극성”의 세계

비톨트 곰브로비치는 폴란드 모더니즘의 거장이며 “고전적인 현대 작가”이다. 장편소설 『페르디두르케』와 『코스모스』로 널리 알려진 그는, 실은 폴란드의 20세기 가장 뛰어난 아방가르드 희곡작가 중 하나였으며, 그 희곡들은 곰브로비치 작품 세계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정작 곰브로비치는 자기 작품의 공연조차 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 있어 희곡이란 바로 “읽는 희곡(레제드라마)”으로, 반드시 현실의 무대 위에 올려야만 하는, 즉 공연을 위한 대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희곡작품은 (연출을 배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감독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되 오히려 읽기에 적합하다. 곰브로비치의 희곡이 지속적으로 책으로 읽혀오며 수많은 해석을 낳게 된 이유다.

어쨌든, 어떠한 요소도 곰브로비치 희곡의 자연스러운 연극성, 즉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연극성을 없애지 못한다. 폴란드 야기엘로인스키 대학교 교수이자 곰브로비치 연구자로서 희곡집 서문 「역사의 드라마 속 자아의 드라마」를 쓴 예쥐 야젱브스키는 “연극성”이 곰브로비치의 심리적 특성이었다고 말한다. 즉 곰브로비치의 내면에서 가면을 쓴 여러 “나” 사이에 끝없는 다툼이 벌어진 듯하며, 이러한 연극성은 곰브로비치 희곡은 물론 단편 및 장편 소설 전반에 내재된 특성이라는 것이다. 즉 곰브로비치에게 극장의 가면과 역할이란 인간의 삶 전체였고, 그리하여 그는 연극적 존재였다.

이러한 곰브로비치의 “연극성”이 가장 효과적인 형식으로 드러난 이 희곡들은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에게 가족이란 누구나 자신의 콤플렉스를 투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회적 구조이자,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러한 모습은 희곡에서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부모”로, 가족과 그 질서가 확장된 “궁정”으로, 궁정 내부에서의 “모략”으로, 주인공의 자아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자 자아를 실현할 기회가 되는 “약혼녀”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상징적 등장인물과 상황을 통해 곰브로비치는 전통적 질서 안에 편입되지 못하는 인물, 즉 자신의 모습을 조망한다. 기존 질서에 투쟁했지만 패배해 다시 돌아갔다가(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다시 의식적으로 질서를 파괴하지만 역시 패배하다가(결혼식), 결국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근본적 가치와 고유성, 자발성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오페레타). 더불어 이 희곡들은 20세기 사회에 일어난 사건들의 상징적 축약으로도 읽을 수 있다. 즉 곰브로비치의 희곡은 20세기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서 현대 사회와 체제의 거대한 변화를 다룬다. 인간 본성과 가치 체계들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나”를 이루는 바탕을 찾아내기 위해 드라마를 펼쳐나가고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나”의 환상에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연구자 예쥐 야젱브스키의 지적에 따르면, 스스로 만들어낸 사상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러한 모습을 곰브로비치는 “현대적 전체주의”로 가는 길로 바라본 듯하다. 즉 곰브로비치의 희곡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진행되는, “전기적이거나 역사적인 한계를 넘어 영원히 새로 쓰이는 개인과 사회의 드라마”이자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 시대에 맞는 내용으로 새롭게 무대에 올려지는 드라마”이다.

곰브로비치 희곡의 또 다른 특징은 “부조리극”이라는 점이다. 꿈과 현실이 뒤얽혀 전개되거나 등장인물들이 같은 대사 혹은 행동을 반복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는 부조리극의 특징이다. 곰브로비치는 (1938 년 작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에서 볼 수 있듯이)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하기 이전에 부조리극 기법을 선보였다. 그의 희곡은 반복되는 대사와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난데없는 슬랩스틱코미디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괴함이 뒤섞인 채, 이야기 자체의 논리에 따라 달려간다.

“자신들조차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언어로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끔찍하게 펄쩍 뛰는’ 모습은 제정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우습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혐오감이 들고 불쾌한 모습이다. 이런 혐오감과 불쾌함, 불편함, 즉 기괴함(grotesque)과 온몸을 던져 뛰고 부딪치고 넘어지는 ‘몸 개그’는 본래 부조리극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 웃음과 기괴함이 언제나 일정 비율로 섞여 있는 것은 곰브로비치만의 독특한 조롱과 풍자 때문이다. 웃음이 나오지만 편하게 웃을 수 없고, 혹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다. (…) 부조리극은 본래 그 이야기 자체의 논리를 따라 전개된다. 그 논리는 말 그대로 ‘부조리’하기 때문에,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논리에 따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헨리크의 아버지는 주정뱅이가 ‘손꾸락’으로 건드리는 것을 어째서 그토록 두려워하는가? 알베르틴카는 어째서 모든 여성이 원할 만한 화려한 옷을 거부하고 나체를 꿈꾸는가? 샤름과 피룰레트는 어째서 끊임없이 괴상망측한 방식으로 대결을 벌여야만 하는가? 대답은 — ‘그냥 그렇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이 미치광이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냥 보면서 즐기면 된다. 이 장면에서는 웃어야 한다거나 저 장면에서 분개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어디가 웃기고 어디가 슬프고 어디가 끔찍한지는 각자 알아서 느끼면 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곰브로비치의 부조리극들은 이렇게 보는 사람의 인상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다시 태어난다.

“미성숙”한 세계

곰브로비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또 다른 특징은 “미성숙”이다. 원래 법률을 공부했던 곰브로비치는 1933년 단편집 『성장기의 회고록』으로 문학계에 데뷔하는데, 이 데뷔작의 제목에서 이미 곰브로비치 작품 전반의 특성이 드러난다.

“청소년기, 성장기, 미성숙함과 유치함은 곰브로비치가 일평생 천착했던 주제였다. 곰브로비치는 이러한 미숙함과 유치함 속에서 인간 본연의 솔직함과 고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태도는 언제나 반어적이라서, 주인공을 포함하여 유치하고 미성숙하며 자기중심적인 측면을 기탄없이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과감하게 묘사하고 거침없이 비웃기도 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미성숙함, 엉뚱함, 유치함이 결국 세상의 가장 깊은 진실에 맞닿아 있다는 작가의 관점”은 작품 도처에 드러난다. 곰브로비치의 작품에는 왕과 왕비, 왕자, 조신, 고관대작 등 상류 계층들이 곧잘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들의 유치하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 그 위선과 허위를 낱낱이 까발리며 풍자하고 조소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들을 비웃는 곰브로비치 또한 상류 계층 출신이었으며, 곰브로비치는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조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미성숙한 모습은 비단 위에 있는 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희화화했듯, 이는 실은 모든 이들의 특징이다.

“소설 『페르디두르케』에서 30 세의 작가는 고등학생으로 변신한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희곡 「역사-이야기」에서 40 세의 작가는 본인의 이름을 넣지만 졸업 시험을 하루 앞둔 열일곱 살 비톨트의 입을 통해서 말한다. 전자나 후자나 그 방식 자체에서 곰브로비치의 기본적인 발견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 안에 미성숙과 성숙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안감에 어린아이가 꿰매져 있다’”. — 콘스탄티 옐렌스키, 「맨발에서 나체까지(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알려지지 않은 희곡에 대하여)」 중에서

성숙해 보이는 겉모습 안에 누구나 품고 있는 미성숙함을 곰브로비치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국 어리석은 자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줄거리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제1막
필리프 왕자는 매력 없는 이보나와 약혼한다. 이보나의 불행한 표정 때문에 왕자의 품위가 손상된 데다, 이 슬픈 아가씨가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는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약혼 소식을 받아들인다.

제2막
어찌 됐든 이보나는 왕자와 사랑에 빠진 듯하다. 그녀의 사랑에 놀란 왕자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

제3막
이보나의 침묵, 사나운 행동, 소심함, 어색한 태도 때문에 궁은 조롱 섞인 웃음에 휩싸인다. 무의미한 의혹이 일어나고 어리석음과 부조리가 쌓여가는데, 이 사실을 모두 깨닫게 된다. 왕자도 이를 알지만 여기에 맞서지 못하는데, 이보나 앞에서 그 자신도 부조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왕자는 시녀 이자에게 키스하면서 현실로 돌아오고, 이보나와 파혼 후 이자와 약혼한다. 왕자는 이보나를 죽이기로 한다.

제4막
왕, 시종장, 왕비와 왕자는 각자 이보나를 죽이려 하나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상황이 지나치게 바보 같거나 부조리하다. 시종장의 조언에 따라 겉보기에 모든 영광과 위엄과 장엄함과 우아함을 갖춘 뒤에야 살해가 계획된다. 음모는 성공하고 왕실은 정상으로 돌아온다.

결혼식

제1막
군인 헨리크의 꿈. 꿈속에서 집은 술집을 겸한 여관으로 변해 있고 부모님은 여관 주인이다. 헨리크는 여관 하녀가 자신의 약혼녀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아본다. 여기서 주정뱅이들이 나타난다. 주정뱅이가 마니아를 건드리려는 것을 아버지인 여관 주인이 막아내자 주정뱅이는 아버지를 핍박한다. 헨리크는 비통해하다가 아버지를 신성불가침의 왕으로 변신시킨다. 뒤이어 헨리크의 경외심이 약해지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제안한다. 네가 나를 왕으로 인정한다면 나는 왕권으로 네 약혼녀에게 품위와 순결을 돌려주고 그녀를 불가침의 처녀로 변신시켜 너희에게 기품 있는 결혼식을 마련해주라고 명할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것이 신성해지고 정화될 것이라는.

제2막
헨리크와 마니아의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왕권은 반역에 의해 위협받는다. 헨리크는 모든 일이 자기가 자신의 꿈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현명하게 행동하는지 아니면 바보같이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 그는 현명한 연설을 하고 그 덕분에 반역자 무리 위에서 잠시나마 중심을 잡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어야 할 순간에 주정뱅이가 숨어들어와서 다시 한 번 왕을 공격한다. 헨리크는 아버지와 약혼녀를 돕기 위해 달려간다. 현실은 바보스러움과 현명함 사이에서 요동친다. 주정뱅이는 헨리크의 현명함에 패배하여 겉으로는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헨리크에게 한옆에서 대화하기를 제안한다. 헨리크는 마침내 주정뱅이의 속삭임에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한다! 그래도 그는 마지막 순간에 물러나고, 반역하지 않는다. 그러나 왕이자 아버지는 이제 두려움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 자기 아들을 겁내기 시작하고 이 두려움이 헨리크를 진정한 반역자로 탈바꿈시킨다. 그는 아버지를 쫓아내고 자신을 왕으로 선포한다. 드디어 그는 스스로 국왕으로서 결혼식을 거행할 것이다! 그러나 주정뱅이는 모두 보는 앞에서 마니아와 헨리크의 친구 브와지오를 연결시켜 새로운 왕을 질투에 빠뜨린다.

제3막
헨리크의 치세는 폭군의 치세다. 그는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한다. 그는 신하들에게 숭배와 복종의 표시를 통해 자신을 신성성으로 부풀려주도록 강요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되면 그는 신성한 결혼식을 거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투가 그를 약하게 만든다. 부모는 그의 의심의 불길을 더욱더 부채질한다. 브와지오의 죽음만이 그에게 평온과 힘을 되돌려줄 수 있다. 결혼식을 거행해야 하는 순간 왕은 양심의 가책과 질투에 지쳐서 이제 다시 전투에 나선 주정뱅이의 공격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브와지오의 시신이 발견된다. 친구는 헨리크의 의지대로 실행해 자살한 것이다. 자신이 저질렀지만 저지르지 않은 행동,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행동에 상심하여 헨리크는 자신의 무죄를 선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의 형식적인 논리, 자신에게 살인자의 역할을 지정한 형식의 압박에 굴복하여 그는 자신을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한다.

오페레타

제1막
샤름 백작은 아가씨 중에 으뜸인 알베르틴카를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아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샤름은 은밀한 계획을 꾸민다. 이 일을 위해 특별히 데려온 도둑놈 한 명이 잠든 알베르틴카에게 몰래 다가가서 뭔가 훔쳐낸다. 그러면 샤름이 도둑놈을 잡아서 예의범절을 어기는 일 없이 알베르틴카에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찌 된 일인가?! 알베르틴카는 잠결에 도둑놈의 손길을 사랑의 손길이라고 착각했다. 처녀는 흥분하고 매료되어 나체를 꿈꾸기 시작한다… 저주받을! 왜냐하면 샤름은 잘 차려입은 백작으로서 나체를 부끄러워하고 좋은 옷을 흠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베르틴카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차려입히기를 원한다! 이때 파리에서부터 방문차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거장이며 패션계의 독재자인 피오르 선생! 성에서는 패션쇼와 함께 무도회가 기획되었으며, 이 패션쇼에서 거장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로 예정되었다. 거장은 그러나 불안해하고 있다. 이 시대에 대체 어떤 패션을 선보일 것인가? 백작이며 기수인 후프나기엘이 조언한다. 손님들에게 공동 작업을 부탁하자는 것이다. 이 행사를 가장무도회로 해서, 패션 경쟁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은 스스로 기획한 미래의 의상 위에 자루를 씌워두게 한다. 신호가 떨어지면 자루를 벗기고, 심사위원들이 가장 좋은 기획에 상을 주고, 피오르 선생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얻어서 앞으로 몇 년간 적용될 패션을 선언하면 된다. 저주받을! 알고 보니 후프나기엘은 전에 대공의 시종이었던 유제프인데, 지금은 선동가이며 혁명운동가이다. 하, 하, 하! 이 가면을 쓴 테러리스트는 하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혁명을 원한다!

제2막
무도회. 패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자루에 든 손님들이 찾아온다. 샤름이 알베르틴카를 데리고 온다. 알베르틴카는 아직도 나체에 대한 꿈을 꾼다… 이 때문에 샤름과 피룰레트는 미칠 지경이 되어버린다. 샤름은 도둑놈에게 목줄을 매어 끌고 무도회에 도착한다. 경쟁자인 피룰레트도 자기 도둑놈에게 목줄을 매어 데리고 왔다. 샤름과 피룰레트는 서로를 조롱하며, 결국 결투에 이르게 된다. 무도회는 화려함의 정점에 이르고, 절망에 빠진 발기불능의 경쟁자들은 도둑놈들의 목줄을 풀어준다. 도둑놈들이 원하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저지르고, 무엇이든 손대도록 하려는 것이다! 혼란. 공포. 손님들은 누가 자신들을 간지르고 만지고 쓰다듬는지 알지 못한 채 광란한다! 사방에 음탕함이 판을 치는 가운데 후프나기엘-기수-테러리스트는 하인들의 선두에 서서 전속력으로 움직인다… 혁명이다.

제3막
폐허. 세계대전이 모두 지나갔고 혁명도 지나갔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미쳤다. 전등 대공, 여성 사제, 히틀러의 제복, 방독면… 모두들 자신을 숨기고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기수 후프나기엘을 선두로 하인들의 기병대가 파시스트와 부르주아를 쫓아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거장 피오르 선생은 어떻게든 이 새로운 패션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쓴다. 잡혀온 파시스트들에 대한 재판이 벌어진다. 돌풍! 돌풍! 강풍이 모든 것을 산산이 날려버린다. 그러나 이 어찌 된 일인가?! 샤름과 피룰레트가 등장하고, 그 뒤로 무덤 파는 인부 두 명이 관을 들고 따라온다. 두 사람은 슬픈 사정을 이야기한다. 예전 무도회에서 알베르틴카가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풍성한 복장뿐이었다! 도둑놈들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알베르틴카가 나체가 되어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장례를 치러주기 위하여 관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찌 된 일인가?! 관에서 나체의 알베르틴카가 일어선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관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인가? 인부 두 명이 가면을 벗어 던진다 — 도둑놈들이다! 바로 이 두 사람이 무도회에서 알베르틴카를 훔쳐내 옷을 벗기고 관 속에 숨긴 것이다. 영원히 젊은 나체 — 젊음의 영원한 나체 — 나체의 영원한 젊음 — 영원히 젊음의 나체….

발췌

왕자. 왜냐하면 말입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아가씨를 뭔가에 이용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거든요. 예를 들면 아가씨한테 줄을 묶어서 달리게 한다든가 아니면 아가씨를 이용해서 우유를 배달한다든가, 핀으로 아가씨를 찌른다든가, 아니면 아가씨를 흉내 내든가 말이죠. 아가씨는 신경을 건드려요, 아시겠습니까, 아가씨는 마치 붉은 천 같아요, 사람을 도발한단 말입니다. 하! 남들의 허를 찌르고, 짜증나게 하고, 광기를 불러일으켜 완전히 미치게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존재하지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사람마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 아가씨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 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그 조그만 다리를 흔드는 것! 이런 건 상상도 못 해봤어요! 이건 굉장해요! 이건 혁명적이라고요! 아가씨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죠?
이보나. (침묵)
왕자. 아, 이렇게 침묵하다니! 이렇게 침묵하다니! 그런데 또 아가씨는 기분이 상한 것 같군요! 아가씨의 겉모습은 정말 완벽해요 — 오만한 여왕님 같아요! 아가씨는 뭔가 심술이 나고 기분이 틀어졌군요 — 아, 그 자만심과 그 냉소! 아니, 난 미치겠어! 누구나 자기를 열에 들뜨게 하는 존재가 있게 마련이죠, 아가씨가 나한테는 그런 존재예요! 아가씨는 내 사람이 될 거예요! 찌릴— 찌프리안!
(찌릴과 찌프리안 다가온다)
너희들을 이 비뚤어진 여왕님에게, 이 오만한 빈혈증 환자에게 소개하겠다! 봐, 저 입술 움직이는 모습을……. 뭔가 악의에 찬 말을 하고 싶지만 사실상 머리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거지.
(36쪽)

아버지. 부탁인데 제발 이 돼지 같은 돼지 새끼들 돼지 소리를 지르면서 저 돼지 년하고 돼지 오줌에 돼지처럼 뒹굴면서 돼지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어머니. 저이가 침을 흘리네!
아버지. 돼지, 돼지, 돼지!
(주정뱅이 굴러 들어온다)
주정뱅이. 만카 돼지!
아버지. 나가주시오!
주정뱅이. 만카 돼지 나한테 줘, 나한테 돼지고기를 줘!
아버지. 내가 직접 내보내주마!
헨리크. (반대편에서, 재미있어하며) 만카 돼지!
아버지. (헨리크에게 달려간다) 한 방 먹여주마!
주정뱅이. 만카 돼지 나한테 줘!
헨리크. (사납게) 만카 돼지!
주정뱅이. 돼지고기, 돼지!
헨리크. 돼지 같아!
아버지. 오 하느님 맙소사!
주정뱅이. 돼지!
헨리크. (허공에 대고 강하게 소리친다) 돼지!
브와지오. 돼지!
어머니. (방백) 제발 하느님 맙소사 저 돼지들을 놔두지 마시길!
아버지. (주정뱅이에게) 부탁이니 나가주시오!
주정뱅이. 고슈카 한 병 내놔!
아버지. (헨리크에게) 부탁이니 나가라!
헨리크. 고슈카 한 병 내놔!
주정뱅이. (더 큰 소리로) 고슈카 한 병 내놔!
헨리크. (더 큰 소리로) 고슈카 한 병 내놔!
아버지. 오 하느님 맙소사!
주정뱅이. 고슈카 내놔 돼지!
헨리크. 고슈카 내놔 돼지!
브와지오. 고슈카 내놔 돼지!
(주정뱅이들 등장)
주정뱅이들. 림, 림, 림!
아버지. 여러분, 제발 정신 좀 차리시오! 밤이 늦었소. 만카, 문 잠가라!
(169~71쪽)

샤름. (노래)
오, 나한테 남작이 대수인가!
하, 하, 하, 남작!
난 샤흠 백작
여성들의 지배자!
난 건달 샤흠
그히고 한량 샤흠
살롱의 유명한 버흣없는 망나니, 휘유, 휘유,
콧수염, 외알 안경
내 지팡이, 내 실크해트, 내 몸가짐 (하품)
하지만 총독 부인들과
공주들과
백작 부인과 읍내 여자들과 재봉사들과 흑인 여자들과
오, 오, 소중한, 아, 거부할 수 없는, 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 마술과도 같은, 아, 켈 시크, 켈 샤흠 그히고 켈 마니에흐!
(330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서문
역사의 드라마 속 자아의 드라마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결혼식
오페레타

부록
맨발에서 나체까지(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알려지지 않은 희곡에 대하여)
역사-이야기(오페레타) — 부분들

옮긴이의 글
비톨트 곰브로비치 연보


지은이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본명은 마리안 비톨트 곰브로비치(Marian Witold Gombrowicz)이다. 1904년 폴란드 동남부 산도미에시 근처의 작은 마을 마워쉬쩨에서 귀족 가문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르샤바 김나지움에 이어 바르샤바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파리로 건너가 파리 국제 관계 대학원에 진학한다. 법원에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자 문학에 대한 관심을 살려 1933년 첫 단편집 『성장기의 회고록』을 출간하고(1957년 ‘바카카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이어 1937년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를, 1938년 희곡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를, 1939년 장편 『악령 들린 사람들』을 발표한다. 그해 취재차 여객선 흐로브리 호에 탑승한 곰브로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그는 은행원 등으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1953년 장편 『대서양 횡단선』과 희곡 「결혼식」을 발표한 곰브로비치는 1955년 전업 작가로 나선다. 1957년 『일기: 1953~6년』과 단편집 『바카카이』를, 1960년 장편 『포르노그라피아』를, 1962년 『일기: 1957~61년』을 발표한 그는 1961년 유럽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폴란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서베를린에 머물다가, 이듬해 프랑스 남부 방스로 떠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곰브로비치는 1965년 장편 『코스모스』를, 1966년 『일기: 1961~6년』과 희곡 「오페레타」를, 1968년 회고록 『증언』을 발표하고 그해 리타 라브로스와 결혼한다. 1969년 숨을 거둔다.

옮긴이

정보라는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예일 대학교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어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강의하며 슬라브어권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번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보리스 싸빈꼬프의 『창백한 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구덩이』,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타데우슈 보롭스키의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다』,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고기』, 브루노 슐츠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 밀로시 우르반의 『일곱 성당 이야기』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본문 강경탁,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