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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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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술

서현석, 김성희 지음

서현석, 김성희의 『미래 예술』은 1990년대부터 201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의 주요 공연 예술을 다룬다. 그간 국내외에서 ‘다원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공연 예술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진행되어 왔지만 정작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던 상황에서, 『미래 예술』은 이제까지의 공연 예술 흐름을 조망하고 앞으로 공연 예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데 단초가 될 책이다.

저자 서현석은 연구자이자 작가로, 국내외 공연 예술에 대한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는 한편 근대성의 맥락에서 공간과 연극성의 관계를 다루는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을 해왔다. 저자 김성희는 기획자로, 2007년 다원 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을 창설해 이끌어왔고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 이어 최근에는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예술극장 초대 예술 감독을 역임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국제적인 플랫폼을 구축해왔다. 또한 이들은 ‘무대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다루는 다원 예술 잡지 『옵.신』을 공동 출간하면서 오늘날의 예술 행위나 현상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다각적인 관점들을 모색하고 여러 대화 방식들을 제안해왔다.

『미래 예술』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인, 열려 있는 책이다. 『미래 예술』은 일반적인 공연 예술 평론이나 리뷰를 넘어 ‘미래’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연극, 춤, 몸, 언어, 극장, 실재, 관객 등 여러 시선으로 작품들을 조망하며 그 다채롭고 역동적인 면모 속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현실에 대한 ‘질문’을, ‘미래’를 발견한다.

‘미래 예술’의 시작

앙토냉 아르토가 꿈꿨던 ‘미래의 연극’과 이사도라 덩컨이 갈망한 ‘미래의 무용’을 발판 삼아 출발하는 이 책은, 미래를 향한 아르토나 덩컨의 분홍빛 비전과는 다른 길에 선다. ‘미래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니, ‘미래 예술’이란 무엇이 아닌가?

“이 책은 여러 구체적인 작품을 횡단하지만, 일련의 정해진 잣대로 작품을 평가하는 평론서도 아니고, 중요시되는 동시대 작품들을 유형화하는 아카이브도 아니다. ‘훌륭함’의 기준을 제안하는 이론서는 더더욱 아니다. 특정한 작품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문제에 집중할 뿐, 그 작품의 총체적인 의미를 규명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해독하지 않는다. 이 책은 최근의 뜨거운 화두나 유행하는 개념을 정립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다원 예술, 통섭, 융복합, 탈경계, 탈매체, 다큐멘터리 연극, 장소 특정 연극, 포스트 드라마 연극, 농당스, 관계 미학, 수행적 퍼포먼스 등 오늘날 공연장과 미술관 안팎을 떠도는 적지 않은 개념들이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작품과 이미 인연을 맺고 있겠지만, 이 책의 목적은 구체적인 사조나 양식, 혹은 흐름을 규정하거나 조망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개념적 굴레에 맞춰 작품들을 범주화하지도 않는다. 이 책에 목적이 있다면, 작품을 통해 오늘날 예술이 야기하는 가능성들을 질문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그 가능성들은 일련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발상을 넘어 특정한 현장에 발생하는 구체적인 질문들이다. 현실에 대한 질문들. ‘미래’는 그런 질문들을 위한 단초이자 도구다. 『미래 예술』은 ‘미래’로서 ‘예술’을 본다.” (본문 10~11쪽)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미래’를 새롭게 정의하며 책의 서두를 연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란,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예술이 계속해서 생성해내는 가능성들이 임박한 상태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란, 이러한 가능성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도래하지 않은 미완의 시점에서 오늘날의 예술을 바라보기. 그러므로, “미래는 늘 현재형”이다. “『미래 예술』은 ‘미래’에서 ‘예술’을 본다.”

‘미래’에서 ‘미래’로서 예술을 바라보기 위해, 『미래 예술』은 과거를 다시 바라본다. 과거의 이름은 ‘모더니즘’이다. 그간 회화의 순수성을 옹호하며 미술관에 침투하는 불순한 ‘연극성’을 경계해온 현대미술의 특징이었던 모더니즘이야말로 환영주의라는 19세기 전통에 함몰되어 한참 뒤처져 있었던 연극성에, 공연 예술에 필요한 정신이다. 이곳에서 모더니즘은 철저한 자기비판과 자기부정을 통해, 즉 “예술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기반으로 한 “미래의 근원”으로서, 공연 예술을 혁신하게 된다. 『미래 예술』은 이러한 질문들을 무대에, 현실에 던지며 시작한다. 질문이 던져진 곳에 피어날 가능성들을 바라보며.

‘미래 예술’의 지형도

『미래 예술』은 1990년대부터 2016년까지 국내외에서 열렸던 주요 공연 예술들을 세세히 다룬다. 그러므로 공연 예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동안 어떠한 공연들이 열려왔고 그 공연들이 어떤 면에서 주목을 받았는지 파악하는 데 이 책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이 책은 공연 평론이나 리뷰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엮어 보여주지 않는다. 우선 ‘미래’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 후,그 관점 아래 연극,춤,몸,언어,극장,실재, 관객 등 공연 예술의 주요 개념들을 분석하고, 그 맥락 위에 주목할 만한 공연들을 배치한다. 그러므로 『미래 예술』은 수년간 공연 예술을 기획하고 연구하고 직접 무대에 올려온 저자들이 그린 새로운 미래 예술의 지형도이다.

이 새로운 지형도에서 우리는 다음의 작품들을 만난다. 인간의 목소리로 발화된 음성언어 1천여 개를 재현하는 「말들의 백과사전—모음곡 2번」(조리스 라코스트, 2015).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시작되면서 천장에 장착된 분사기 마흔 개가 일흔네 마리 소의 뼛가루를 내뿜는 「봄의 제전」(로메오 카스텔루치, 2014). ‘반려 로봇’ 안드로이드가 죽음을 앞둔 인간 주인에게 시를 읽어주는 「사요나라」(히라타 오리자, 2010). 원형 무대 위, 하체는 고정된 상태에서 상체의 움직임 여섯 동작만으로 미세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독무 #2: 주파수」(브리스 르로, 2009). 유튜브로 부토를 익히면서 그 안무 과정 자체를 질문하는, 즉 신체를 ‘상황의 산물’로 여기는 「또 다른 상황의 산물」(그자비에르 루아, 2009). 가전제품들을 성적 파트너로 삼아 듀엣을 펼치는 「7가지 방법」(정금형, 2009). 경사진 1층 객석 뒤쪽에서 익명의 신체 20여 개가 굴러 내려와 관객을 습격하는 「1층석」(아니 비지에 · 프랑크 아페르테, 2009). 컴컴한 방,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 그 위쪽 구멍에 박혀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상체로 당혹스러운 이미지를 구현한 「천국」(로메오 카스텔루치 / 소치에타스 라파엘로 산치오, 2008). 베를린의 ‘샘플’로서 무대에 선 100명의 베를린 시민들이 주어지는 기준에 따라 움직이며 통계 분포를 그리는 「100% 베를린」(리미니 프로토콜, 2008). ‘정상인’의 체격을 갖추지 못한 남성의 신체로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는 「조르주 망델가(街) 36번지」(라이문트 호게, 2007).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춰 안무가가 임의로 관객을 지휘하는 「봄의 제전」(그자비에 르 루아, 2007). 아무런 안내 없이 두 구역에서 공연이 열리는 「헤테로토피아」(윌리엄 포사이스 / 포사이스 컴퍼니, 2006). 관객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예약한 자리를 거대한 토끼 인형들이 점령하고 있는 「베를린」(로메오 카스텔루치 / 소치에타스 라파엘로 산치오, 2005). 작가 이름도, 작품 제목도 밝히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공연되었던 (그자비에 르 루아의) 「무제」(작자 미상, 2005). 6천 5백여 개의 하얀 풍선이 허공에 떠 있는 「흩어진 군중」(윌리엄 포사이스 / 포사이스 컴퍼니, 2002). 지난 한 세기 무용의 역사를 무용으로 기록하고자 모던 댄스 안무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무대에서 샘플링하는 「무제」(티노 시걸 · 보리스 샤르마츠, 2000)…. 온갖 공연들의 면면에서, 혹은 그 사이에서, 갖가지 말들이, 뒤따르는 질문들이 발생한다.

이중 특히 ‘농당스(non-danse)’를 대표하는 제롬 벨의 작품들은 우리가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지점들을 건드리며 생각을 전복시킨다. 그자비에 르 루아가 안무하고 출연했지만 그 발상이 제롬 벨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제롬 벨의 작품이 된 「그자비에 르 루아」(제롬 벨, 2000). ‘제롬 벨’이 분명한 이가 나와 자신을 ‘앤드리 애거시’로 소개하는 등 퍼포머 네 명이 스스로를 거듭 거짓 호명하는 「마지막 퍼포먼스」(제롬 벨, 1998). 티셔츠 수십 벌을 껴입고 등장한 퍼포머가티셔츠를한장씩벗으며거기적힌메시지를드러낸채서있는 「셔톨로지(셔츠학)」(제롬 벨, 1997). ‘토머스 에디슨’과 ‘스트라빈스키 이고르’는 등장하지만 정작 ‘제롬 벨’은 나오지 않는 「제롬 벨」(제롬 벨, 1995). 춤을 추지 않는(‘농당스’) 대신 안무가의 아파트에서 찾아낸 사물들을 가지고 노는 「저자에 의해 주어진 이름」(제롬 벨, 1994). 짜여진 동작을 넘어 춤을 추는 행위 자체, 춤을 추는 동기를 묻는 그의 작품들은 안무에 대해, 작품에 대해, 관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작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수한 관객만이 존재할 뿐.”(본문 191쪽)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들려면 퍼포머가 수동적이어야 한다. 모두가 수동적으로 머물면 좋겠다. 최소한의 계약. ‘ 미래의 연극’이랄까. 극장 안에서 누구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을 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는 발생한다.”(본문 372쪽)

안무가 제롬 벨의 말을 통해, 관객인 우리가 무대를 바라볼 때 취해야 할 시선을 생각해 볼 수있다. 혹은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던져진 질문들을 통해, 우리 또한 새로운 가능성의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예술』은 그 여정의 지표가 될 책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촉발되어 발생한 ‘공백’ [...] 모더니즘의 산물이자 단절. ‘텅 빈 시간’. 그것이 ‘미래 예술’의 ‘역사’다. ‘미래’에 가하는 ‘예술’적 해석이자 행위. ‘창조’.” (본문 558쪽)

참고: 디자인에 관한 주석

“제목 없는 앞표지에는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 사요나라(2010년)에서 시를 읽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진을 실었다. 표지는 내지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얇은데, 이 연약한 느낌은 굵고 대담한 본문 타이포그래피로 보완된다.”
― 슬기와 민(https://www.sulki-min.com/wp/future-art-kr/)


발췌

모더니즘의 질문은 무대에 ‘던져짐’으로써 하이데거가 “세상에 내던져져 있음(Geworfenheit)”이라고 표현한 생경함을 일깨운다.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연출한 공연 작품 「지옥」(2008)에서 둔탁한 공기의 파장을 일으키며 무대 바닥으로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지는 텔레비전 모니터들처럼, 무대에 ‘던져진’ 모더니즘의 화두들은 현실에서 공명한다. 지금, 이 순간. (32쪽)

재현 연극의 ‘생명’이 연기자의 내면에 있다면, 오늘날의 ‘내면’은 무한한 관계의 망으로 대체되어 있다. 전통 연극의 ‘죽음’이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이었다면, 바르트 이후의 ‘죽음’은 문화적이고 언어적이다. ‘생명’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자의 죽음’이 상징하는 텍스트의 개방이 초대하는 유기적인 소통의 장이 무대에서 이루어질 때, 주인공은 더 이상 “내면을 현현하는” 연기자로 존립할 수 없다. ‘연기자의 죽음’ 속에서 ‘내면’은 더 이상 순수한 척할 수 없다. 로절린드 크라우스가 외부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순수하고 독립적인 내부를 설정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피력한 것은 순수성의 종식을 의미한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고찰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 작품에서 우리가 만나는 신체적 표현들이 ‘행동’이 아닌 ‘제스처’에 가까운 것도 역시 당연한 일이다. ‘제스처’의 언어가 촉발하는 ‘의미’의 체계는 다각적으로 열린다. 열린 소통의 세계에 들어서는 관객은 복합적인 의미의 체계를 ‘해석’하는 대신 ‘횡단’할 뿐이다. 해석이 텍스트에 종속되는 행위라면, 횡단은 ‘종속’의 조건들을 재고하는 ‘탈행위’다. 연극 장치를 재발명하고 재배치함이 중요한 이유는 이로써 이러한 ‘횡단’의 새로운 궤적을 개척하고 개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궤적 속에서, ‘내면’은 비판적 질문의 성역이 될 수 없다. ‘내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신화에 대한 재고이자 인간에 대한 통찰이다. ‘내면’의 빈자리는 사유의 새로운 지평이다. (46~7쪽)

오늘날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말한 미메시스의 근원적 원칙들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모방을 넘어 자연을 회복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무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관계들을 초기화하고 기존의 개념적 설정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 미메시스의 퇴색된 의미가 연극을 속박해왔음은 사실이지만, 연극의 시급한 사명은 미메시스의 근본적 의미와 기능을 소환함을 넘어 미메시스 담론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이다. 미메시스의 근원을 재고함은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초는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으로 열려야 한다. 21세기 연극은 ‘모방’뿐 아니라 미메시스의 총체적인 틀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즉, 연극의 감각은 다양한 경로로 발생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 사람과 예술, 사회와 예술의 새로운 관계. 시어터의 가능성은 개인과 개인의 근본적인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한 본질적인 예우에 있다. 시어터는 사유이자 관계이며, 미학이자 윤리다. 연극의 무대에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113~4쪽)

춤에 대한 성찰은 모더니즘이 내렸던 불완전한 강령들로부터 혁신을 추출한다. 모더니즘의 질문은 모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활로이다. 모더니즘의 방법론은 모더니즘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형식’이라는 말로 보호되었던 ‘모던 댄스’의 빗장을 허물기. 사유와 신체를 개방하기. 사유의 새로운 궤적은 다양한 ‘본질’들을 발굴하고 상상하고 창출한다. 현재형의 다발적 발생들. 묵은 질문은 이 다각적인 궤적을 재사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춤’이란 무엇인가? (149~50쪽)

예술은 일련의 개인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구성되고 체험되고 평가되고 기술된다. 창작자의 가치관과 훈련 방식, 인식 체계로부터 기획자의 감각과 기준, 평론가와 역사가의 관점과 같은 사적인 영역은 총체적인 체제를 구성한다. 국가의 창작 지원 제도나 검열제도, 후원이나 홍보를 통한 대기업의 개입, 관람자의 감상을 유통하는 소셜 미디어 등은 작품의 제작이나 감상의 형태를 결정하고 조종하는 광범위한 관계의 망을 형성한다. ‘작품’은 현실을 바라보고 사유하기 이전에 현실의 산물이다. 장치적 과정들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오늘날 공연 예술에서도 중시되는 까닭은, 예술적 체험을 무조건 반복 양산하는 것보다 그 과정과 효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드러내는 것은 곧 스스로를 질문하는 것이다. (358쪽)

오늘날 극장이라는 기본적 장치를 환기시키는 작품들은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새로운 인식의 영역으로 불러들인다. 재활용된 모더니즘의 폐기품은 연극이나 무용이 품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들로 화려하게 되살아난다. 극장이라는 기본적 장치는 오늘날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사유를 촉진할 수 있을까? 무대와 객석 같은 즉각적인 물리적 조건은, ‘연극’이라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거대하고 유기적인) 장치에 대한 어떠한 사유를 촉발할 수 있을까? 즉각적 조건들에 대한 자기비판은 ‘연극’이라는 장치 자체를 어떻게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무대(scene)를 제거(ob-)하는 것은 외설(obscene)이다. 길들여진 감각을 뒤흔들기. 장치를 풀어 헤치는 것은 곧 감각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370쪽)

오늘날 예술의 기능을 재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 매체의 은유적 위상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통찰력 자체에 대한 놀라움에 그치는 안위가 아니다. 세상이 연극을 닮는다는 사실이 연극의 매체적 우수성을 말하기 위한 비약적 논리로 작동될 수는 없다. ‘실재로서의 무대’, 그리고 ‘무대로서의 실재’의 효험을 입체화하기 위해 오늘날 필요한 것은, 실재에 내재하는 작위적 장치를 통찰하는 일, 그리고 재현 체제에 내재하는 작위적 장치를 통찰하는 일이 아닌가. 세상은 전부 복제이며, 실재는 장치일 뿐이다. (400쪽)


차례

들어가며 ― ‘미래’의 고고학

1 무대의 모더니즘, 혹은 ‘미래’의 잔상
2 연극이란 무엇인가?
3 춤이란 무엇인가?
4 몸이란 무엇인가?
5 언어란 무엇인가?
6 극장이란 무엇인가?
7 실재란 무엇인가?
8 관객이란 무엇인가?

나오며 ― 미래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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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서현석은 근대성의 맥락에서 공간과 연극성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헤테로토피아」(서울, 2010~1), 「영혼 매춘」(서울, 2011), 「매정하게도 가을바람」(요코하마, 2013), 「From the Sea」(도쿄, 2014) 등의 장소 특정 퍼포먼스, 「Derivation」(2012), 「잃어버린 항해」(2012~ ), 「하나의 꿈」(2014), 「Zoom out / Zone out」(2013~4) 등의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다원 예술 잡지 『옵.신』을 공동 출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괴물 아버지 프로이트: 황금박쥐/요괴인간』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김성희는 기획자로서 다양한 예술 형식과 관점을 소개, 제작해왔다. 2007년 다원 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 을 창설해 2013년까지 초대 감독을 맡았고, 국제현대무용제(Modafe, 2002~5), 백남준아트센터 개막 축제 스테이션 2(2008),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예술극장 초대 예술 감독(2013~6)을 역임했다. 동시대 예술의 국제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아시아 동시대 예술에 관한 담론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원 예술 잡지 『옵.신』을 공동 출간하고 있으며,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