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 299개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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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 299개 어휘

김형진, 최성민 지음

지난 10년간 서울의 그래픽 디자인

이 책은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발견되는 그래픽 디자인의 한 흐름을 용어 해설집의 형식을 빌려 서술하고 있다. 수록된 어휘는 모두 299개에 달하며 인물, 단체, 행사, 출판물은 물론 사회 현상과 기법, 개념을 망라한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소위 ‘소규모 스튜디오’라 불리는 개체들이 벌여온 그간의 활동을 점검하고, 그 의의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우선 ‘소규모 스튜디오’라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규모 스튜디오란 단지 규모가 작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즉 신자유주의 질서가 가속화한 가운데 기존 디자인 전문 회사들이 취해온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자, 그에 대응해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취해온 생존 모델 자체를 지칭하는 말에 가깝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로 규정되는 단순한 그래픽 디자인 생산 어법에서 벗어나, 기획자·저술가·작가·큐레이터 등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주로 저예산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때로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여온 이들 소규모 스튜디오(혹은 개별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은, 디지털 기술이 촉매가 된 ‘독립 출판’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다른 사회 흐름과 맞물리며 단순히 규모와 분야의 문제를 떠나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기간 동안 생산된 그래픽 디자인 어법 역시 단순히 우발적, 산발적 움직임으로 치부하기엔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여기에는 지난 세기 발흥했던 현대주의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은 물론, 지리적 시대적 격차를 무화시키거나 혹은 그 흔적을 없애고 모든 것을 초현실적으로 병치시키는 21세기의 이미지 풍경 역시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모든 변화를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며, 2005년부터 하나하나 어휘를 나열해 나간다.

이 책의 용법과 서술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즉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2005년’ 항목부터 2015년 발간된 『그래픽』 34호 특집 제목이기도 한 “XS—영 스튜디오 컬렉션”까지 차례로 읽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가나다순으로 나열된 이 책의 구성이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서사 대신 교차하는 그물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 방법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평소 이 책이 포괄하는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뒤에 실린 찾아보기에서 관심 어휘를 찾고 거기서부터 읽어나가는 방법이다. 각 용어의 서술에는 그와 연관된 표제어가 표시되어 있으므로, 책을 읽다가 관심 가는 항목이 보이면 해당 페이지로 건너뛰면 된다. 대체로 개별 고유명사보다는 ‘그래픽 디자인’이나 ‘가운데 맞추기’, ‘레트로’와 같은 일반명사와 기법, 사회 현상 등이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혹은 자신이 눈여겨보던 디자이너나 행사, 출판물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항목별 서술은 보편적 정의와 사실에 입각하면서도, 되도록 뜻풀이와 역사적 관찰을 연관하려 했다. 예컨대 ‘왼끝 맞추기’ 항목은 그 배열 방법의 정확한 뜻을 기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기에 따라,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의 그래픽 디자인에서 어떻게 발현됐는지도 간략하게나마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한 용어 풀이집이라기보다, 그 형식을 빌린 역사서 성격도 띤다.”

앞으로의 미래, 혹은 300번째 어휘

어휘란 특정 사건이나 현상 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저자들 역시 여기에 소개된 어휘들이 “객관적 근거나 다수의 합의에 따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 거의 같은 시기에 엇비슷한 태도와 방향을 지지하며 활동한 두 사람이 —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쓴 말을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한 목록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런 언급이 없더라도 정말로 299개의 어휘로 이 시기를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몇 개의 단어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소규모 스튜디오, 독립 출판, 아이폰, 트위터, 텀블벅, 언리미티드 에디션, 과자전… 모두 지난 10년간 새로 생겨나거나, 혹은 새로운 의미를 얻은 말들이다. 가가린, 커먼센터, 『DT』 등의 고유명사 역시 앞으로의 미래가 서술할 어휘들을 위한, 변별점으로서 과거가 될 것이다. 지난 10년은 돌아보건대 무엇 하나 또렷한 초점 없이, 그러나 같은 곳으로 향한다는 (혹은 내몰린다는) 느낌으로 지속된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함께 겪은 서울과 그래픽 디자인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300번째로 도래할 미래의 어휘에게 보내는 편지다.


발췌

몇몇 보통명사와 대다수의 고유명사로 이루어진 목록을 읽다 보면, 이 책은 이미지와 본문이 증발하고 각주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평소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자라면 이 책은 상상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 소설의 설정집처럼 쉽게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이 책이 훑고 있는 시기의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관심을 두던 독자라면 자신의 기억을 회고하면서—어디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샀는지—먼지 쌓인 책장을 다시 살펴볼 수도 있고, 증발한 본문을 유추하면서 지난 세월의 역사를 나름대로 짜 맞춰 볼 수도 있다.(5쪽)

책에 수록된 어휘는 공교롭게도 ‘2005년’으로 시작해 ‘XS — 영 스튜디오 컬렉션’으로 끝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적절한 시작과 끝이다.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2005년에는 “슬기와 민이 디자인한 모다페 2005가 열렸으며, 김기조가 붕가붕가레코드 로고를 디자인했다. 종로구 창성동으로 자리를 옮긴 갤러리 팩토리에서 활자공간의 전시가,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카럴 마르턴스와 폴 엘리먼의 전시가 열렸다.”(13쪽) 그로부터 10년 후, 즉 2015년에 ‘XS — 영 스튜디오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에코 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소개한 『그래픽』 34호와 전시회를 서술하면서, 이 책은 “또 다른 ‘새로운 물결’”을 기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여기에 미래에 관한 특정 종류의 비관 혹은 낙관을 추가할 수 있는지도, 또한 그런 것이 가능한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는 관측을 인용한다.(317~18쪽)

우리는 이 책에 300번째 어휘를 추가할 수 있는지, 그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여기서 그만 마침 하기로 했다.( 9쪽)


차례

299개의 각주, 혹은 299면체 / 함영준
서문—2005년부터 XS까지 / 김형진 · 최성민

299개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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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형진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SADI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2002~4년 박활성이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 『디자인 DB』 객원 기자로 활동했고, 2005년 안그라픽스 디자인 사업부에 입사했다. 2006년 종로구 창성동에서 이경수, 박활성과 함께 워크룸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 아드리안 쇼네시가 쓴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세미콜론, 2007), 필 베인스가 쓴 『펭귄 북디자인 1935~2005』(북노마드, 2010), 요스트 호훌리가 쓴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워크룸 프레스, 2015)가 있으며, 『휴먼 스케일』 (워크룸 프레스, 2014)을 공저했다. 한유주와 함께 16시 총서 『작가를 위한 워드프로세서 스타일 가이드』(안그라픽스, 2015)를 만들기도 했다. 계원예술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강했으며, 2016년 최성민과 함께 전시회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일민미술관)을 기획했다.

최성민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웹 디자인 에이전시 이미지드롬에서 일했다. 1999년 박해천, 임근준과 함께 『디자인 텍스트』를 창간하고, 예일 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 디자인 연구원으로 일하며 디자이너 최슬기와 공동 작업을 시작했고, 2005년 한국에 돌아와 슬기와 민이라는 그래픽 디자인 듀오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옮긴 책으로 노먼 포터의 『디자이너란 무엇인가』(스펙터 프레스, 2008), 로빈 킨로스의 『현대 타이포그래피』(스펙터 프레스, 2009), 크리스토퍼 버크의 『파울 레너』(워크룸 프레스, 2011),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작업실유령, 2014) 등이 있다. 타이포잔치 2013을 감독했고, 김형진과 함께 전시회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일민미술관, 2016)을 기획했다. 2009년에는 개인전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1992, 2004, 2009)»(갤러리 팩토리)를 열었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