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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림보 연극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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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림보 연극 일지

김한민 지음

연극으로 탄생한 그림 소설 『카페 림보』, 그 험난한 과정의 기록

2013년 어느 날,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문화 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바퀴벌레 더듬이 모양의 머리띠를 착용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마이크를 든 한 사람이 2층에서 걸어 내려와 말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전시 연극 「카페 림보」의 도슨트 역할을 맡은 김한민이라고 합니다.” 연극 「카페 림보」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김한민 작가가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레지던시 기간 동안 자신의 그림 소설 『카페 림보』(워크룸 프레스, 2012)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한 과정을 그린 기록물이다.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텅 빈 공간이 아닌 3층으로 이뤄진 카페 전체가 연극의 무대였고, 도슨트가 관람객을 이끌고 다니며 건물 곳곳에 설치된 전시물을 설명하면서 극이 전개되는 형식이어서 ‘전시 연극’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일지는 연극 시작으로부터 한 달 반 전, 작가가 처음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그림 소설 『카페 림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에 매료된 작가는 이곳을 무대 삼아 『카페 림보』를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이윽고 연출가이자 고민 전문가 J,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무대 디자이너 ‘검기’(검은 기둥의 줄임말), 여섯 명의 림보 대원과 바퀴들이 속속 모여드는 와중에 극은 전시와 연극이 합쳐진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해나간다. 하지만 세상에 ‘가난한 연극’만큼 고달픈 경험도 없는 법, 풀어야 할 문제는 넘쳐나고 넘어야 할 산도 끝이 없다. 그러던 와중 연극 일지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작가는 범인을 찾아 나서는데…

모두가 똑같이 생긴 병원에서 태어나 똑같은 걸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가고, 경쟁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등 일생에 걸쳐 만인을 획일화된 생존 기계로 만드는 이 세상에 맞서 여섯 명의 림보 대원들이 벌이는 사투를 그린 『카페 림보』.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험난하기만 하다. 이 모든,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겪으며 작가는 계속되는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연극을 하고 있나. 그 과정을 왜 일지로 남기나. 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극이 끝나고 나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책에서 전시로, 전시에서 연극으로, 일지와 영상으로

지금까지 『카페 림보』와 관련해 나온 결과물은 모두 다섯 개다. 책(그림 소설)과 전시, 연극, 그리고 그 연극을 기록한 일지와 영상.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혹자는 『카페 림보』가 ‘원 소스 멀티 유스’에 성공한 화려한 작품인 줄 알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소박하게 벌어졌다. 아주 작은 공간에서,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 앞에서, 아주 적은 예산으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리고 사라져버렸다.” 그 사라짐을 참기 힘든 작가는 기록의 펜을 든다.

이 모든 결과물이 거창한 계획 없이 이뤄졌다는 작가의 말은 아무런 밑그림 없이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즉흥적으로 그려나간 연극 일지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어쩌면 연극의 원작이 된 『카페 림보』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일지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작가와 출판사는 원작의 정신, 즉 바퀴족에게 전쟁을 선포하며 림보 대원들이 외쳤던 선언(어조를 완화시키지 마라. 친절하지 마라. 이해를 구하지 마라. 웃지도 마라)을 따라 실제 일지의 잘못된 그림, 거친 테이프 자국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찢긴 페이지까지 최대한 충실히 재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욱 이야기/그림꾼으로서 작가 김한민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이 책은 『카페 림보』와 작가 김한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 고릴락상상스튜디오가 촬영한 전시 연극 「카페 림보」 영상은 유튜브와 비메오에서 볼 수 있다(검색어: ‘전시 연극 카페 림보’).
    vimeo.com/123713121
    youtu.be/PF1PLnWbqyE

발췌

어릴 때, 여름철 등굣길의 나뭇잎들이 어느새 가을 낙엽으로 변해 있으면 괜히 분해지곤 했다. ‘멍청이, 색이 변하는 그 순간을 똑똑히 봐뒀어야지, 올해도 놓쳐버렸잖아!’ 그 비슷한 심정으로, 『카페 림보』가 연극으로 변할 때 정확히 어떤 점이 어떻게 변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매체가 바뀌면 하려던 얘기도 변할 텐데,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빠질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약 두 달간 기록을 했다. 사전 계획이나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쓰고 그렸다.

연극에서는 원작보다 바로 이 ‘놓침’이 한층 강조된 것 같다. 연극 일지도 마찬가지다. 가령, 등장인물 중 ‘박새’의 비중을 비교해보면 이를 잘 느낄 수 있다. 관객으로 꽉 찬 공간에서 군중들은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박새를 짓밟으면서도 짓밟는지 모르고, 림보들이 새를 포착하고 구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뛰어들지만 너무 늦어버린 그 장면… 연극 「카페 림보」의 이 장면을 회상하면, 위에서 말한 연극의 정의를 이렇게 비틀고 싶다. “꽉 찬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을 림보들이 가로질러 갔고, 이 모든 걸 놓친 사람들이 있었다.”

연극, 그중에서도 가난한 연극. 안 해본 사람은 모르고, 해본 사람은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험. 그것은 일종의 투쟁. 이를 테면 사소한 것들과의 격렬한 투쟁.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나? 단지 재밌어서? 하고 싶으니까? 허무와의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라도? 글쎄… 쉽진 않을걸?

한번 물어보자. 지금 기분이 어때? 떨려? 뭘 느껴? 이 연극, 잘 시작한 것 같아? 후회는 없어? 하면서 남은 게 있어? 달라진 게 있어? 너도 잘 모르겠어? 이걸 왜 하는지, 왜 했는지? 아니.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날도 추운데! 설명하긴 힘든데 재미나? 그럼 일단 해봐야지. 이미 해본 척하지 말고.


지은이

김한민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카페 림보』, 『사뿐사뿐 따삐르』, 『도롱뇽 꿈을 꿨다고?』,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등의 책을 쓰고 그렸다. 엮고 옮긴 책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선 『페소아와 페소아들』이 있다. www.hanmin.me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