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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장진영 옮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저 아래』는 위스망스가 초기 심취했던 자연주의적 경향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탐미적이고 퇴폐적으로 나아간 『거꾸로』 이후, 그러한 모색을 심화해 쓴 19세기 말 소설이다.

세기말, 분기점에 선 소설

“위스망스의 삶과 작품은 자연주의와 그 이후로, 혹은 기독교 입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나누건 그 사이에서 전과 후를 가르는 분기점에 『저 아래』가 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는 법과대학에 다녔지만 문학에 심취했고, 내무부 공무원으로 정년까지 일하면서 글쓰기를 병행했다. 그의 소설들은 전기의 자연주의 계열과 후기의 기독교 문학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저 아래』는 그사이 과도기에서 확고한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위스망스의 대표작은 『저 아래』보다 7년 전 발표된 『거꾸로』이다. 이는 작가가 초기 경도되었던 자연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소설로, 예술, 과학, 역사, 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탐미주의적 내용으로 점철되어 19세기 말 ‘데카당의 지침서’로 여겨졌다. 『거꾸로』 이후, 위스망스는 내면의 성찰, 영혼의 탐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그는 자연주의가 집요하게 묘사하는 산업화 시대의 물질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이를 다방면으로 비판하면서, 점차 과거 충만했던 정신이 다시금 우위에 선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시대에 실망하고, 사라져버린 정신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종교 주변을 맴돌고 악마주의나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 아래』는 이러한 위스망스의 당시 관심사와 심경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소설이다. 그리하여 『저 아래』 출간 이듬해인 1892년 위스망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후 가톨릭 문학가로 자리를 잡는다.

신비주의의 여러 모습들

『저 아래』에서, 주요 인물 뒤르탈과 그 친구 데 제르미는 위스망스의 분신과 같다. 그들은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에 대해, 특히 세기말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악마 숭배 의식에 대해 토론하며, 실제로 그러한 의식에 휘말리기도 한다. 소설은 뒤르탈이 아동 연쇄살인마 질 드 레에 대해 집필하고자 고심하면서 시작되는데, 한때 잔 다르크의 전우였지만 가산을 탕진하고 신비주의에 빠진 후 다른 길을 걷게 된 ‘푸른 수염’ 질 드 레의 잔혹한 이야기에서 15세기 중세의 어두운 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또한 뒤르탈이 신비로운 여인 이아생트(가톨릭 역사학자 샹트루브의 부인)를 만나면서 참여하게 되는 기괴한 의식에서 19세기 당시 파리에 횡행한 악마 숭배의 양태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위스망스는 이 소설을 통해 연금술, 강신술, 중세 마법, 마녀 집회, 신성모독 등, 자신이 종교와 더불어 관심을 가졌던 신비주의의 다종다양한 면모를 연구한다.

“실증주의가 정점에 도달한 시기에 신비주의가 잠에서 깨어나고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열기가 시작”되는, “모든 것이 흔들리고 동요”하는, “유물론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마법이 흥”하는, “정말 이상한 시대”. 이 책은 이러한 세기말의 기운을 담아내되, 당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한다. 더불어 (전작 『거꾸로』의 주인공 데 제생트를 닮은) 의과대학 박사 데 제르미의 탐미주의적 취향, 종지기 카렉스의 종에 대한 오랜 집착과 그가 평생 모은 고서들, 그리고 이들이 자리를 함께할 때마다 종지기의 부인이 내오는 각종 음식이며 독신자 뒤르탈과 동거하는 새침한 고양이 이야기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언뜻 시대를 잘못 타고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세기말을 나름대로 세기말답게 보내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소설을 마친 이후 위스망스는 종교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오늘의 독자들은 이미 여러 길을 걷고 있다.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그 가운데 퍼져 있는 악마주의, 신비주의의 상세한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적절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발췌

“성인이 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 남는 건 악마가 되는 일뿐이지.” 데 제르미가 말했다. “모 아니면 도인 셈이지. 무기력에 대한 혐오, 평범한 것에 대한 증오, 그게 아마 악마 숭배에 관한 가장 너그러운 정의들 중 하나일 거야!”
“아마 그럴 걸세. 성인이 선행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듯이 누군가는 범죄의 업적을 쌓는 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지. 질 드 레의 본질이 바로 그거야!” (91쪽)

“그런데, 자네 얘기는 이상하군.” 뒤르탈이 말했다. “결론적으로 현대에서는 악마주의의 중요한 일이 마법 의식이라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네. 그리고 주술이며, 몽마(夢魔)며 몽정마녀(夢精魔女)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해주지. 아니, 차라리 그 문제들에 대해 나보다 더 전문가인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자네에게 이야기해주겠네. 신성모독적인 미사, 주술, 그리고 몽정마녀, 이것들이 악마주의의 진정한 정수라네!” (116쪽)

이 짐승은 다정다감하고 아양을 잘 떨었지만 성격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교활했다. 어떠한 환상도, 어떠한 일탈도 인정하지 않았고,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잠잘 것을 요구했다. 불만스러울 때면 침울한 눈빛 속에 아주 분명하게 분노의 낌새를 보이곤 했는데, 주인인 그는 그러한 느낌을 잘못 감지한 적이 없었다.

그가 저녁 열한 시 이전에 되돌아올 때면 고양이는 현관에서 그를 기다렸고, 그가 방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문에서 나무 문을 긁어대며 야옹거리곤 했다. 그러고 나서 슬픔을 호소하는 듯한 녹색 기운이 도는 황금빛 눈동자를 굴리며 그의 바지에 자신의 몸을 문지르고, 가구들 위로 뛰어올라 말처럼 뒷발로 일어서서, 그가 다가가면 우정의 표시로 머리를 그에게 디밀곤 했다. 열한 시가 지나면 고양이는 그의 앞을 지나가지 않았고, 그가 가까이 가도 일어서기만 했으며, 등을 둥글게 하긴 했지만 애정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더 늦은 경우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가 감히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 아래쪽을 긁어주기라도 하면 불평하듯 그르렁거렸다. (123~4쪽)

“여러 해를 두고 토론해도 끝없을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파고들고요, 나로서는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그 유토피아의 단순성이 존경스럽군요!” 뒤르탈이 소리쳤다. “하지만 천만에요, 결국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태생적으로 이기주의자이고 기만적이며 비열합니다. 당신들 주변을 둘러보세요, 자! 끝없는 투쟁, 파렴치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회, 부유한 부르주아들에 의해, 고기깨나 먹고 지내는 사람들에 의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가난한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을요! 어디에서나 승리는 악당들이나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거둬가고, 영예는 정치판이나 은행을 거머쥔 불한당들이 차지하잖아요! 당신들은 그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창세기 때에도 곪아 있었고, 현재도 그때 못지않게 부어 있고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하는 죄악들의 형태만이 변했을 뿐이에요. 진보한 바가 있다면, 악덕들을 세련되게 만드는 위선이 그렇지요!” (441~2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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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위스망스의 서문

옮긴이의 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연보


지은이

조리스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 1848~907)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1848년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빅토르고드프리드 위스망스와 프랑스 출신 교사 엘리자베트말비나 바댕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자퇴 후 바칼로레아에 합격해 법과대학에 진학하지만 문학에 심취했으며, 내무부 공무원으로 일하며 정년까지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한다. 위스망스는 1874년 산문집 『당과 항아리』를 자비 출판하며 데뷔한다. 당시 졸라와 자연주의에 열광한 그는 『마르트, 어느 창녀의 이야기』, 『바타르 자매』, 『결혼 생활』 등 자연주의적 소설들을 주로 쓴다. 그러나 1884년 데카당적 면모를 드러내는 『거꾸로』를 통해 새로운 소설을 모색하며 자연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한 의도는 1891년 『저 아래』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이후 위스망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출행』(1895), 『대성당』(1898), 『제3회인』(1903)을 출간한다. 소설가 위스망스는 문학비평가이기도 했다. 활동 초기 평론 「졸라와 목로주점」을 발표했고, 상징주의 선구자 베를렌과 말라르메가 주목받도록 조명을 비췄다. 미술비평에서도 업적을 남긴다. 비평서 『현대미술』과 『어떤 이들』을 펴내며 당시 배척받던 인상주의를 지지했고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는 화가들을 발굴했다. 위스망스는 1900년 리귀제 생마르탱 수도원에서 제3회인으로 생활하기 시작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파리 베네딕트파 수도원 분회당에 정착한다. 순례지 루르드를 여행한 뒤 『루르드의 군중』을 펴낸 해인 1906년 구강암이 발병한다. 1907년 5월 11일 사망한다. 유해는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 있다.

옮긴이

장진영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와 가천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의 『파리의 풍경』(공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본문 양으뜸,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