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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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무
Papeles de Recienvenido y Continuación de la Nada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엄지영 옮김

보르헤스의 정신적 스승

소설, 단편, 시, 신문 논평, 철학 에세이, 그리고 기존의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종류의 글(‘이야기’)을 쓴 작가. 아르헨티나의 아방가르드 작가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낯선 이름,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를 손쉽고도 확실히 알리려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름이 필요하다.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던 보르헤스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마세도니오와의 우정과 그에 대한 존경심을 물려받았다고 고백한다. 보르헤스는 마세도니오와 직접 교류하며 그의 문학관과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점은 보르헤스의 여러 작품들에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오랜 기간,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는 ‘전설’의 작가였다. 그간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를 둘러싼 전설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와 검사로 활동했는데, 검사였을 당시 어떤 피고에게도 유죄를 선고하지 않아 해임되었다는 일화. 보르헤스의 아버지를 포함한 주변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그가 파라과이 삼각주에 세운 바 있다는 ‘아나키즘 공동체’. 초현실주의적인 선거 운동을 펼쳐 보이려는 의도로 무려 대통령직에 출마했다가 참패했던 과거. 아내 엘레나 데 오비에타가 세상을 떠나자 남은 가족을 등진 채 유랑했던 일. 그 자신이 출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글들이 단편적인 원고나 쪽지의 형태로 흩어져 있고, 자연히 그의 생애 당시보다 사후 출간된 작품 수가 더 많다는 사실. 그러나 이러한 ‘전설’들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남다른 행적 주변을 맴돌 뿐, 정작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 책 『계속되는 무』는 1874년생인 마세도니오의 생전에 출간된 4권의 책 중 가장 마지막에 출간된 『방금 도착한 이의 기록 그리고 계속되는 무』(1944)를 옮긴 것이다. 이 『계속되는 무』 또한, 마세도니오의 여느 글들과 마찬가지로, 책으로 출판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쓰이지 않았다. 마세도니오가 당시 잡지에 단발적으로 발표했거나 혹은 여기저기 써놓고 만 글들이 모인 책이다.

이 책에서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는 그가 문학을 통해 오래 추구했고 애지중지 키워냈던 ‘무’에 대해, ‘이야기’들을 통해 말한다. 마세도니오의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게 읽히는 듯하지만 그 문맥은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책을 펼치기 전 품게 된 질문은 책을 덮은 후 되돌아온다. 그리하여, ‘무’란 무엇인가? 작가는 왜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이제, ‘이야기’

『계속되는 무』의 분량은 여느 중편소설 정도다. 하지만 각 글들이 때마다 잡지에 별도로 발표되었기에, 책은 일반적인 소설의 형태와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에세이라 부르기도 난감하다. 자전적인 내용과 픽션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기존 소설 형식을 넘어서는 이 글들을, ‘이야기’라고 부르면 어떨까?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는 ‘여담(digression)’의 계보를 잇는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줄거리와 별도로 흘러가는 여담 내지 사설에 대해, 세르반테스를 신적 존재로 여겼고 마크 트웨인을 애호했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여담을 한참 풀어낸 후 이렇게 말한다.

“독자여,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지식을 얻어 뿌듯한 느낌마저 들 것이다. 하지만 독자여, 이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당신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배우는 것은 좋지만 본론에서 벗어난 사설은 문제가 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사설이 많은 게 옥에 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의 역사, 미술 비평, 교향곡 분석, 그리고 사회학적 구원 가능성과 같은 어마어마한 내용(이는 가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보다 가까이에 있는 ‘자연’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으로 가득 차 있는 장편소설의 시대가 다 지나간 마당에 단편이든 과학 논문에서 여담 한번 했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여담과 사설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일수록 친구들이나 가족과 식사하면서 더 활기차게 대화를 나눌뿐더러, 밤이건 낮이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고 단 한순간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내가 이토록 여담을 길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보는 척하기 위해서다.” (본문 223~5쪽)

마세도니오는 이렇게 여담을 늘어놓는 이유를 능청스레 뭉뚱그리고 있지만, 작가로서 여담 내지 사설을 글에 개입시키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독자의 의식에 일대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의 인식과 의미의 일상적인 생산―공통 의미―을 중지시킴과 동시에 그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것”, “정설(orthodox)이라는 단일한 흐름에 역설(paradox)을 침투시켜 이를 단절시키는 것”(옮긴이, 「해설」 중에서). 주요한 이야기의 흐름이 일시 중단되고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독자는 순간 혼란스러워지지만, 이어 서서히 새로운 흐름을 의식 깊숙이 받아들이게 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욱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랜 구전 전통 기법을 의도적으로 되살린 이러한 논리는 “글 속에 각종 사설과 괄호 글을 넣는다거나 각주를 다는 방식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듣는 이야기가 가장 분명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마세도니오의 지론에 기초하고 있다. 중단과 끼어들기를 통해 독자의 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층들을 쌓아 올리고, 삶 속에 사물을 침잠시켜, 뇌리에 더 깊게 박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여담 내지 사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마세도니오는 괄호와 각주를 통해, 또한 (‘연속성’의 느낌을 부여하는 접속사와 부사인) ‘그리고(y)’와 ‘이제(지금)’라는 단어로 서로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연결해버린다.

“단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그리고(y)’라고 할 수 있다.” (본문 210쪽)

“‘그리고’와 ‘이제(지금)’를 자주 사용하면 어떤 말을 이어도 이야기가 된다. 다시 말해 모든 말을 서로 꿰어 [일정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한편, 나는 오로지 ‘건너뛰면서 읽는 독자’에 대해서만 작가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다른 작가들은 [독자들이] 집중해서 자기의 글을 읽도록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나는 그런 데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편안하게 글을 쓴다. 그건 내가 [독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욕심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듣는 사람 혹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내가 발견해낸 (혹은 발견해냈다고 믿고 있는) 고유한 특성, 즉 멜로디나 인물들, 혹은 사건 등이 너무 강렬해서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연속적으로 듣거나 읽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건너뛰며 듣거나 읽는 경우, 그러한 요소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더 깊이 각인된다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본문 225쪽)

즉 마세도니오에게 ‘이야기’란 “믿게 하는 것(hacer creer)”이다.

무의 형이상학: 글쓰기와 존재에 대한 사유의 문학

그렇다면 마세도니오는 이 일종의 이야기, 『계속되는 무』를 통해 무엇을 들려주고자 했던 것일까?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문학에서는 ‘기다림’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마세도니오의 문학은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것, 즉 리얼리즘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현존’의 형이상학을 파괴하고, 그 ‘빈자리’에 ‘무(Nada)’를 채워넣고 증식시키는 것, 즉 ‘무의 형이상학’을 세우는 것이 바로 마세도니오 문학의 요체이다. ‘무의 형이상학’으로서의 ‘사유’의 문학. 따라서 그의 문학은 ‘아직-존재하지-않는-것’, 하지만 ‘항상-도래하는-것’에 대한 지속적인 ‘기다림’이다.” (옮긴이, 본문 22~3쪽)

그러나 이러한 ‘무의 형이상학’을 향한 마세도니오의 사유와 문학은 현학적 지식에 기반한 글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어리석은 허영심, 즉 자신이 사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이자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미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마세도니오가 지닌 “전혀 다른 모습”은 지식을 넘어 그 지반, 즉 “우주의 비밀”까지 꿰뚫어 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편협한 지적 체계 너머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서를 밝혀냄으로써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무의 형이상학. 사유가 문학이 되고, 문학이 사유가 되는 세계. 따라서 그의 작품은 모두 글쓰기와 존재에 대한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글쓰기와 존재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마세도니오의 ‘무’는 ‘아직-존재하지-않는-것’, 하지만 언젠가 ‘도래할-것’을 기다리면서, 이를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계기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가능한, 따라서 불가능한 것마저 가능한 절대적 가능성-긍정의 지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 속에 잠재하는 세계 그리기. 그러므로, ‘픽션’.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인 ‘계속되는 무’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픽션이란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없이 무한하게 전개되고, 변형되고, 또한 증식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독자들이 기존의 삶의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존재 방식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무한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옮긴이, 본문 49쪽)

그러므로 자전적 내용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 이야기는 결국 ‘픽션’이다. 이 ‘픽션’ 『계속되는 무』를 여는 첫 글 「(정상참작)」의 도입부에서 마세도니오는 이렇게 선언한다.

“무(無)에 관한, 그리고 ‘무’를 포함한 모든 것. 모든 것이 아니라, 오직 ‘무’에 관한 것. ‘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그 주변에 관해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본문 49쪽)

글 말미에 이어지는 작가 자신의 짐작대로, “‘무’는 앞으로도 계속 자라나서 더 커”질 것이다.


발췌

나는 그다지 장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은 ‘무’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물론 수많은 이야기와 갖가지 “기억”으로 종이 위에 가득 채워진 거대한 ‘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숲처럼 울창한 ‘무’ 속으로 독자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어떤 면에서는 유일무이한―예술이라고 분명하게 예고하는데도 독자가 ‘현존하는 것’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그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러니 ‘무’여, 어서 시작하라. 크기를 줄이려 애쓰지 말고 어서 시작하라. ‘무’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에 담겨 있는 만큼의 ‘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책 속에서 완결된다고 생각하진 마시기를. (52쪽)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말고는 내 삶에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바야흐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도 이제 작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하던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최근 ‘문학’에 입문했다. 그런데 내 법률 의뢰인 중 누구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내 작품을 읽어줄 독자가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누구든 [내 작품을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작가의 최초의 독자가 되기만 하면, 후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영원히 인정해줄 것이다. (…) 그러니 독자들이여,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그대들이 최초의 독자가 될 수 있는 이는 이 마세도니오밖에 없다는 점을 부디 잊지 마시라. (61쪽)

나는 어려운 것이 좋다. 사실 게으름을 피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유로운 게 더 좋다. 하지만 내가 뭔가 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여태껏 꾸물거리면서 연습한 게으름을 부리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가끔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게으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적어도 그런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124쪽)

오래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바보’가 최소한 한 명이라도 있어야 마땅했다. 앞으로 또 다른 바보를 찾게 된다면, ―두 번째 바보와 전혀 닮지 않았더라도―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꾀어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바보가 되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 바보 노릇을 했지만, 앞으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될 것이다. (139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방금 도착한 이의 기록
계속되는 무(분명한 후반부)

부록
의식 절제 수술
우주가 된 호박(성장에 관한 이야기)
해설

옮긴이의 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연보


지은이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Macedonio Fernández, 1874~952)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죽은 작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는 소설, 단편, 시, 신문 논평, 철학 에세이, 그리고 기존의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종류의 글(‘이야기’)을 썼다. 보르헤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그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아방가르드 작가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마세도니오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변호사와 검사로 활동했는데, 검사였을 당시 어떤 피고에게도 유죄를 선고하지 않아 해임되었다는 일화가 떠돈다. 그는 주변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파라과이에 ‘아나키즘 공동체’를 세운 바 있으며, 초현실주의적인 선거 운동을 펼쳐 보이려는 의도로 대통령직에 출마했다가 참패하기도 했다. 지극히 아꼈던 아내 엘레나 데 오비에타와는 네 자녀를 두었다. 그리고 엘레나의 때 이른 죽음을 애도하며 쓴 엘레지는 아르헨티나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마세도니오의 글은 일견 쉽게 읽히는 듯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는 여러 일간지와 문학지에 시를 싣곤 했는데, 글들은 대개 단편적인 원고나 쪽지의 형태로 남아 있어 생애 당시 출간된 작품보다 사후 출간된 작품 수가 더 많다. 생애 출간된 대표작은 『눈을 뜨고 있다고 다 깨어 있는 것은 아니다』(1928), 『방금 도착한 이의 기록』(1929), 『시작하는 소설』(1941), 『방금 도착한 이의 기록 그리고 계속되는 무』(1944) 등이다. 사후 출간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시집』(1953), 『영원한 여인의 소설 박물관』(1967), 『전체와 무에 관한 노트』(1972), 『이론들』(1974), 『전집』(10권)(1974), 『아드리아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마지막으로 나쁜 소설』(1975), 『서한집』(1976).

옮긴이

엄지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교 대학원과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대학원에서 라틴 아메리카 소설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루이스 세풀베다의 『우리였던 그림자』, 공살루 M. 타바리스의 『예루살렘』,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본문 강경탁,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