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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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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
Le Condamné à mort et autre poèmes suivi de Le Funambule

장 주네 지음, 조재룡 지음

장 주네의 『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는 「사형을 언도받은 자」를 비롯한 6편의 장시와 시의 파편을 모은 「찾아낸 시편(詩片)」, 산문 「외줄타기 곡예사」를 수록한 책이다(이중 시 4편은 ‘사형수’라는 제목의 책으로 1995년 번역 출간된 바 있다[오세곤 옮김, 솔 출판사]). 여러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건 희생 제의로서 예술을 대했던 주네의 비장한 태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희생 제의로서의 예술

『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는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잘 알려진 장 주네의 첫 책, 첫 시집이었다. 이름 모를 아버지와 매춘부였던 어머니 아래 태어나 버려지고 잦은 도벽과 동성애로 수차례 감옥을 드나들었던 주네는 자신의 성향과 체험을 글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였는데, 그 시작은 시였다. 그는 1942년 4월 감옥에서 사형수 모리스 필로르주에게 바치는 첫 시 「사형을 언도받은 자」를 쓰고, 그해 9월 약 100부의 시집을 자비 출판한다. 이어 희곡과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이듬해 2월 「사형을 언도받은 자」를 읽고 감명받은 장 콕토를 만나 이후 작가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간 주네의 시는 그의 명성에 비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 주네의 굴곡진 삶과 희곡과 소설을 연구한 자료는 상당하지만 그의 시를 살핀 평론은 적다. 주네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여러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중 주네가 잠시 절필하게 만들었던 방대한 평론 『성자 주네, 배우 그리고 순교자』를 쓴 장폴 사르트르는 이 평론에서 주네의 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사르트르는 주네가 직접 구술한 일화를 다각도로 추적하면서 이 범죄자가 왜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 최초의 동기를 풀어내고자 하였는데, 사연은 이렇다. 미결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감방에 주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을 때, 누군가 거기서 제 누이동생에게 보내는 감상적이고 엉망인 시를 써서 자랑을 하고 있었고, 어설픈 그의 시를 동료들은 칭송했다. 주네는 그만 짜증이 났다. 얼마 안 가, 주네가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선언한 이후 두 사람은 경쟁이라도 하듯 시를 써서 감옥에서 낭송했고, 이렇게 해서 남겨진 작품이 바로 「사형을 언도받은 자」였다는 것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이 책을 옮기며 시 번역에 처음 도전한 번역가이자 평론가 조재룡은 「사형을 언도받은 자」를 비롯해 주네 작품 세계의 출발이 된 이 책의 시들이 주네의 소설, 산문, 희곡과 적극적으로 통한다고 지적한다. 즉 주네의 시와 소설과 산문과 희곡은 “크고 작은 변형을 서로 허용하고 적극적으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텍스트성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작품 도처에서 목격되는 감옥에서의 생활과 동성애 체험을 기본으로, 그 대상과 모티브와 상징이 겹치고, 나아가 예술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한곳을 향한다. 그곳은 ‘죽음’이다.

동성애자였던 주네의 시는 성을 정면으로 다룬다. 집필 당시 감옥에서 남성 도형수, 사형수들과 24시간을 함께했던 주네에게 죽음은 당면한 과제였고, 에로티시즘이란 “죽음을 유보하고 정지시킬 유일한 가능성”(조재룡)이었다.

“에로티시즘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기서 새삼 확인하는 것으로 주네의 독특하고 야릇한 시 세계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폭발하듯 정지하는 시간을 발명해야 한다고 여겼던 필요성만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육신의 현재와 이에 따른 부수적인 시간에 그 어떤 새로움도 있을 수 없는것이라면(왜냐하면 감옥의 죄수이기에), 육신의 미래라는 말, 그 말은 주네에게 얼마나 매혹적이었을까? 없는 곳에 도달해서라도, 없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해서라도, 없는 타자가 현존할 상상의 세계 속에서라도, 또다른 현재의 순간을 지금-여기에서 펼쳐내기 위해, 그에게 허용되었던 유일한 길이 바로 정사(情事)이자 정사(情死)였을 것이다. (중략) “그것”은 성애의 궁극적 도달점이자, 오로지 질퍽하고 원색적인 성행위를 통해서만 움켜쥐어야 “광휘 속에서 시간마저 상장(喪章)으로 뒤덮”게 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죽음을 유보하고 정지시킬 유일한 가능성인 것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더없이 충족되고 있는 저 갤리선 위의 이 시간은 오로지 성애를 통해 체현될 시간일 뿐이며, 현실의 시간을 끊어내는 순간, 관능이 폭발하듯 완성을 넘보는 바로 그 찰나이자, 차라리 사정의 짧은 몇 초의 순간이라면,그 순간이야말로 주네에게는 죽음을 정지시키는 순간일 것이다. 주네에게 에로티시즘은 죽음을 현실에서 대면하게 해주지만, 오로지 현실적인 죽음(예컨대, 처형)을 유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연의 장치로 표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에로티시즘의 순간과 순간을 덧대어 죽음을 유보할 수 있을까? 폭발하며 흩어지고, 이내 꺼져버릴 불꽃을, 사랑의 의지로, 정사의 힘으로, 정념의 발산으로 지속시키면서 연장해나갈 수 있을까? 그의 시가, 무언가에 매달린 듯 대롱거리며 현실에서 제 가치를 모색해내는 일에서 정점을 찍는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의 긴장을 웅장한 언어로 분출하듯 쏘아 올려, 저 망망대해를 저어 나갈 이정표로 하나를 내려놓고, 허공에 그린 무늬의 흔적처럼 승화시키는 데 성공적으로 합류하기 때문은 아닐까?” — 「옮긴이의 글」 중에서

그러나 죽음은 제자리를 지킨다. 유보할 수 있을지언정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주네는 에로티시즘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듯 예술로서 받아들인다. 죽음을,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건 예술. 주네는 우회하는 법을 모르는 작가였다.

“피로 흥건하게 젖은 네 하늘을 훔쳐야 하리 훔쳐야 하리 / 저 풀밭, 저 울타리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죽음들로 / 저 눈부신 죽음들로, 그의 죽음을, 그의 청춘의 하늘을 / 준비할 수 있게 단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내야 하리….” — 시 「사형수」 중에서

“죽음 — 내가 너에게 말하는 죽음 — 은 네가 추락하여 뒤따라갈 그것이 아니라, 외줄 위의 네 등장에 앞서 나타나는 그것이다. 네가 죽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외줄로 올라가기 직전이다. 춤을 출 인간은 죽게 될 것이다 — 아름다움을 모조리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을 때. 네가 등장하면 창백함 — 아니다, 나는 공포가 아니라, 그 반대, 그러니까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을 어떤 대담함에 대해 말하려 한다 — 어떤 창백함이 너를 뒤덮어버릴 것이다. 네 분장과 네 스팽글들에도 불구하고, 너는 새파랗게 질릴 것이고, 네 영혼은 납빛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너의 정확성이 완벽을 기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 무엇도 더 이상 너를 바닥에 묶어놓지 않은 그런 상태에서 너는 떨어지지 않고 춤출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외줄 위로 등장하기 전에 죽을 수 있게, 그리고 시체 하나가 외줄 위에서 춤을 추게 신경 써야 한다.” — 산문 「외줄타기 곡예사」 중에서

주네는 세상에 드리워진 죽음의 모습을 아는 작가였다. 그는 이 죽음을 애써 피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작품 도처에서 죽음을 논하며, 세상에 편재하는 죽음의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붙잡으려 했다. 추상적인 죽음이든 물리적인 죽음이든 죽음이란 그 대상, 희생 제물, 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극단적 예술론이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작가 주네 자신이 몸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주네를 문학으로 이끈 자들도 주네와 같은 길을 걸은 이들이었다. 죄수, 하녀, 창녀, 노예, 흑인, 피식민자, 그리고 동성애자. 주네는 시대의 편견과 차별에 의해 죽음을 딛고 삶의 밑바닥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언어를 구사했던 작가였다.

“주네는 우리가 희생양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던 이 우수리들, 이 발가벗은 생명(nuda vita)들의 편에 서서, 사회가 그들에게 가한 온갖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고자 문학에 입회했으며,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때론 현장에서, 자주는 붓의 힘으로, 그 가능성을 현실에서 열어보이려 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그러므로 이 시집은 평생 낮은 자로서 소설을 통해, 희곡을 통해, 예술론을 통해 죽음과 예술을 조망했던 작가 장 주네의 씨앗이 담긴, 그의 첫 책이다. 그가 시에 이어 발표했던 첫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에서 밝힌 바대로, “자발적”인, “어떤 포기가 아니라, 감각에 의해 입사하는, 자유롭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하나의 입구”인 그의 시에 입문할 것을 권한다. “오로지 현실의 경험에 토대하여, 기억술과 상상력을 제 재능으로 삼아, 낯설고 굳게 닫혀 있는 미지의 문을 열려는 용기를 꺼내들었고 이 용기로 사랑을 궁굴려내려 했을 뿐”(조재룡)인.


발췌

오, 머나먼 저편 견디기 힘든 저 도형장의 감미로움이여!
오, 아름다운 탈옥의 하늘이여, 저 바다여, 종려나무들이여,
맑게 비치는 저 아침들이여, 미쳐 날뛰는 저녁들이여, 평온한 밤들이여,
오, 바짝 깎아 올린 머리칼과 저 사탄의 피부들이여.
(17쪽)

소금 나무가 제 푸르른 잔가지를 하늘로 내뻗고 있다.
피로 올리는 저녁 예배에 나의 고독이 입술을 바삐 놀리며
금빛 거품의 아리아 하나를 노래하고 있다.
사랑의 아이 하나 장밋빛 속옷을 입고
내 침대에서 황홀한 포즈를 취하려 애쓰고 있었다.
별 하나 제 이빨에 문 창백한 어느 마르세유의 비렁뱅이는
나와 나눈 사랑의 격투에서 패자가 되었다.
내 손은 아편이 적재된 비탄의 짐짝과
별들 총총한 저 깊은 숲을 남몰래 빼돌렸다,
그대 두 눈의 그림자에서 그대 두 손 그대의 주머니를,
침묵이 어둠의 보물 하나 앗아갈 바로 이 독수리의 둥지
명성 가득한 문을 되찾기 위해 나의 손은
온갖 길을 헤매고 다녔다. 나의 웃음은
우뚝 선 바람을 거스르다 깨져버렸다.
내게 방금 허용된 감옥의 공기를 맛보며
낱말도 문자도 없이 쓰인 시 한 편의 유충에게
환멸로 제공된 저 서글픈 잇몸이여.
(61쪽)

풀이 무성한 황야를 지나, 풀어헤친 네
허리띠 아래 목구멍은 말라붙고 팔다리는
녹초가 되어 우리는, 그것의 근처에 도달한다.
그것의 광휘 속에서 시간마저 상장(喪章)으로 뒤덮여
그 아래에서 태양과, 달과, 별들이,
그대의 두 눈이, 그대의 울음이 필경 빛을 발할 것이다.
시간도 그의 발밑에서는 어두워지리라.
그곳에서는 오로지 기묘한 보라색 꽃들이
이 울퉁불퉁한 구근으로부터 피어날 뿐이다.
우리의 가슴에다가 우리의 두 손을 모아놓고
우리의 이빨 위에는 주먹을 가져다 놓자꾸나.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가엾은 손가락 사이로
이 물이 흐르는 걸 볼까봐 나는 두렵다. 나는 감히 너를 삼킬 수도 없다.
나의 입은 여전히 허무한 기둥 하나를 빚고 있다.
그것이 가볍게 가을의 안개 속으로 내려온다.
우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듯, 나는 사랑 안에 도착한다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눈먼 채, 붙들어놓은 나의 오열이
나 자신 안에 너의 존재를 공기로 부풀어 오르게 하면
그곳에서 너의 존재는 육중해지고, 영원을 얻으리. 나는 너를 사랑한다.
(104~5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사형을 언도받은 자
장송행진곡
갤리선
파라드
사랑의 노래
쉬케의 어부
찾아낸 시편(詩片)

산문
외줄타기 곡예사

원문
Le Condamné à mort et autre poèmes suivi de Le Funambule

옮긴이의 글
장 주네 연보


지은이

장 주네(Jean Genet, 1910~86)는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다. 파리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카미유 가브리엘 주네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양육원에 유기되고, 이어 파리 빈민 구제국을 통해 프랑스 중부 지방의 가정에 위탁된다.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상급 단계로 진학하지 않고, 파리 근교의 달랑베르 직업학교에 입학하지만 곧 도주한다. 반복된 도주와 체포 후 1926년 주네는 파리의 라 로케트 소년원에서 3개월 간의 첫 수감 생활을 시작한다. 같은 해 9월 기차에 무임승차한 죄로 투렌의 메트레 감화원에 수감되고, 이곳에서 2년 반을 보낸다. 이어 1929년 프랑스 식민지 부대에 지원 입대해 몇 년간 아랍 지역에서 근무한 후 유럽을 떠돈다. 수감 생활에 이은 방랑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이후 주네의 글쓰기를 지배한다. 자전적 글 『도둑 일기』(1949) 외에도, 그의 작품은 대개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1942년 4월 책을 훔쳐 프렌 교도소에 머물게 된 주네는 이곳에서 첫 시 「사형수」를 쓴다. 역시 수감 중 희곡 「엄중한 감시」를 쓰고, 이해 말 첫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을 쓰고, 이듬해 7월 상테 교도소에서 두 번째 소설 『장미의 기적』을 쓴다. 그다음 해 봄 여러 작가들의 지지 덕에 자유의 몸이 된 주네는 이후에도 절도죄 등으로 감옥을 드나드는 가운데 시와 소설과 희곡과 시나리오와 예술론을 집필한다. 한편 1947년 희곡 「하녀들」이 파리 아테네 극장에서 공연되면서 주네는 극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어 「발코니」, 「흑인들」, 「칸막이들」 등의 희곡이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국과 미국 무대에 오른다. 말년에 서아시아 지역과 미국을 오가며 베트남 반전운동과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팔레스타인들을 돕고자 했던 주네는 1986년 4월 15일, 전해 완성한 소설 『사랑의 포로』 교정차 파리의 한 호텔에 머물다 숨을 거뒀다. 유언에 따라 모로코 북쪽 해안의 오래된 에스파냐 공동묘지 라라슈에 묻혔다.

옮긴이

조재룡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파리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와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고려대학교 번역과레토릭연구소의 전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비평』지에 문학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며, 시학과 번역학, 프랑스와 한국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평론을 집필하였다. 지은 책으로 『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시학, 번역, 주체』, 『번역의 유령들』,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번역하는 문장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앙리 메쇼닉의 『시학을 위하여 1』, 제라르 데송의 『시학 입문』, 루시 부라사의 『앙리 메쇼닉, 리듬의 시학을 위하여』, 필립 라브로의 『스테파니의 비밀노트』,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