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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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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Les Cent Vingt Journées de Sodome ou l’École du libertinage

D. A. F. 드 사드 지음 / 성귀수 옮김

워크룸 프레스와 번역가 성귀수가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 사드 전집 2권,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이하 『소돔 120일』, 19세 미만 구독 불가)는 D. A. F. 드 사드 사후 200주기였던 2014년 12월 2일 사드 전집 1권이 출간된 이후 3년 8개월 만의 성과다. 이번 한국어 판본에서 번역가 성귀수는 그간 출간된 판본들의 오류를 교정하는 한편, 사드의 강박적 문체와 각종 비속어를 최대한 살려 번역했다. 또한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본문에 풍부한 주석을 더했고, 일찍이 이 책을 펴냈던 오이겐 뒤렌의 1904년 판본 서문과 모리스 엔의 1931년 판본 서문을 자료로 번역해 실어, 『소돔 120일』의 새로운 한국어 판본이 2018년 현재 다시금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소돔 120일』의 실체

“사드를 ‘정말로’ 읽는 사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고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만 한다. “나는 왜 사드를 읽는가?” 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는, 그러나 나를 이탈하여, 어쩌면 내가 말살되는 지점으로까지 답을 찾아 나설 용기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본질적이고, 심지어 추상적이다.” — 해설 「두루마리 원고 혹은 4단 생체 해부도」 중에서

『소돔 120일』은 사드 후작이 1783년 뱅센 감옥에서 쓰기 시작해 1785년 말 바스티유 감옥에서 완성한 장편소설로, 애초의 모습은 폭 11.5센티미터, 총 길이 12.1미터 두루마리 형태의 원고였다. 사드는 수감 중 이 글을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작은 종이들을 이어 붙여가며 작고 뾰족한 글씨로 글을 쓴 다음 그 종이를 말아 감옥 돌벽 틈에 숨겨 보관했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 가장 불순한 이야기”로 악명 높았던 이 책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재산과 취향이 엇비슷한 리베르탱 네 명(블랑지스 공작, 아무개 주교, 퀴르발 판사, 뒤르세 징세 청부인)이 검은 숲 속 실링 성에 요새를 갖추고서, 초로에 접어든 여자 네 명(마담 뒤클로, 마담 샹빌, 마담 마르텐, 마담 데그랑주)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엄선해둔 소년 소녀들과 온갖 성행위부터 고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일탈 행위를 벌인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2~4부는 세부 계획만 기록된 미완성작이지만, 끔찍하리만치 상세하고 치밀하게 기술된 계획들은 그 내용이 온전히 집필된 1부의 집요함과 강박을 그대로 뒤잇는다.

사드는 자신이 감옥에 기약 없이 갇혀 있는 동안 이 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고,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서 규칙적으로 써내려갔다. 언제 다시 세상에 나올지 알 수 없었던, 자유를 박탈당했던 그는 왜 이 소설에 집착했을까?

‘방탕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소돔 120일』의 리베르탱들은 일견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 속에서 육체가 이끄는 대로 욕망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 30일로 이뤄진 제1부의 하루하루를 지날수록, 이들의 쾌락은 실은 욕망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욕망이 충족되면, 욕망은 지속될 수 없고, 그러면 욕망은 그 생명력을 잃게 되므로, 욕망의 충족은 욕망에 반한다는 논리. 그리하여 이들은 “현장에 없는 것”을 향해 끝없이 다가간다. 즉 이들의 쾌락은 “한없는 접근만 있을 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체험”이다—“불가능”을 향한.

새 한국어 판본의 특징

번역가 성귀수는 『소돔 120일』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운 후 이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첫 번째, 가급적 매끈하게 다듬는 방식을 지양했다. 잘 정돈된 문장을 통해 자칫 단순히 줄거리만을 전달하게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그저 외설물로 읽힐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예컨대 기존 한국어 판본의 경우 문장이 지나치게 매만져진 탓에 사드의 굴곡진 정신세계를 전혀 드러내지 못했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그러다 보니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상당수 건너뛰기도 했다. 또한 영어 판본 중 하나는 원작에서 찾아볼 없는 설명과 수사를 장황하게 첨가해 유들유들하고 화려한 글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소돔 120일』은 결코 매끈하게 완료된 작품도 아니거니와, 집필 당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화려하게 다듬어진 글이 나올 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분위기로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내용 자체가 험악해서뿐 아니라 따라가기 만만치 않은 문장들이기에, 다소 읽기 어려운 글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강박적이고 편집광적이며 자폐적인 문체를 최대한 살린다. 번역가는 사드의 문장이 미문은 아닐지언정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논리적인 문장이라고 보았다. 사드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논리적 연결점을 집요하게 짜맞춰가며 자신의 망상을 풀어놓았다. 수학적인 글이라는 인상까지 안길 정도로, 수사와 치장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의 논리적인 구조를 정확하게 모두 다 드러내려고 애썼다. 거의 생략 없이 반복적이고 중복적이기까지 한 구문들이 그런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리하여 우리말로 옮겼을 때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워 의미를 전달하기가 버거운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그러한 원문의 맛을 살려 옮기려 노력했다.

세 번째, 비속어를 포함한 용어의 변별적 가치를 최대한 존중한다. 번역가는 지금까지 나온 사드 번역본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점이 지켜지지 않은 데 있다고 보았다. 그가 읽은 사드는 내용뿐 아니라 어휘와 표현에서도 사드 그 자체였다. 사드는 아주 거칠고 사납고 노골적인 비속어를 마구 사용했는데, 이 점이 그간의 한국어 번역본에서 거의 무시되었다. 이를테면 남성 성기를 지칭하는 표현만 십수 개가 넘는데, 이를 모조리 음경이나 성기로 옮긴다면? 쌍욕 또한 마찬가지다—리베르탱 네 명의 입은 그야말로 “지옥의 아가리”다. 이러한 비속어를 최대한 살려 옮긴 점은 이번 『소돔 120일』의 중요한 성과다.

한편 책 외형의 경우, 표지는 사드 전집 1권의 표지 그림을 맡았던 월터 와튼(Walter Warton)이 다시 한 번 작업했다. 그는 이 책의 특징을 신체의 정교한 해체와 재구성이라고 판단해, 같은 논리로 하나의 직사각형을 정밀히 잘라낸 후 잘라낸 부분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또한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는 기존의 표지 제호를 좀 더 날렵하게 다듬어 선보였다. 이렇듯 『소돔 120일』의 새로운 한국어 판본은 내용상으로도, 형태상으로도 확연히 진화한 모습으로 2018년에 도착했다.


발췌

우리는 사드 후작의 ‘명예 회복’을 목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단어 자체가 가당치 않거니와, 그와 같은 시도는 사드의 모든 악덕을 걷어냄으로써 오히려 그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 일일 뿐입니다. (25쪽)

친애하는 독자여, 이상 소개한 인물들이 요컨대 그대가 향후 몇 달을 함께 지내야 할 네 명의 악당들이다. 네 명 모두 그대가 속속들이 파악해 앞으로 기술될 각종 일탈 행위에 놀라지 않도록,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묘사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취향들을 가지고 있는지 당장 파헤치기는 불가능했음을 밝혀둔다. 그 모두를 공개했다면 자칫 이 저작의 뼈대에 손상을 주어 흥미를 반감시켰을 테니 말이다. 이제 이야기 진행을 주의 깊게 따라가다 보면, 그들 네 명의 사소하고 습관적인 죄악과 가장 즐겨 탐닉하는 광기 어린 방탕 행각이 제각각 그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들 모두가 남색에 빠져 있으며, 규칙적으로 비역질을 당하는가 하면, 하나같이 항문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만 말해둔다. (50쪽)

상당한 입담과 이런 일에 걸맞은 성향의 소유자를 추리느라 골몰했기에, 일단 자신이 할 일을 숙지하자, 네 여자는 각자의 파란만장한 경험담 속에 더없이 기상천외한 일탈 행위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순서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첫 번째 여자는 인생을 회고하면서 제일 단순하고 가장 덜 기발한, 지극히 평범한 150가지 정념의 일탈 현상들을 담아내기로 했다. 두 번째 여자는 같은 수의 조금은 더 기괴한 정념들을 담아내는데, 주로 여자 여럿이 남자 한 명이나 여럿을 상대하는 구도다. 세 번째 여자 역시 150가지의 가장 범죄적이면서 법과 자연, 종교를 극도로 유린하는 광태(狂態)들을 경험담에 담아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기는 결국 살인에 이르거니와, 방탕의 일환으로 저지르는 다양한 살인 행각 속에서 리베르탱의 불붙은 상상력이 채택하는 무궁무진한 고통의 양상까지 감안해, 네 번째 여자는 150가지에 이르는 각종 고문 방법을 경험담 속에 상세히 묘사해 넣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의 아내들과 그 밖 온갖 부류의 쾌락적 대상들을 거느린 우리의 리베르탱들은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한껏 머리를 달군 뒤, 그로 인해 불붙은 격정을 아내들이나 다른 대상들을 통해 잠재울 것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바로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음란한 방식이야말로 이 계획에서 가장 선정적인 부분에 속한다. 이 책은 네 여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그로 인한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된 방식들로 채워질 것이다. 하여, 독실한 신앙을 가진 모든 이에게 권하니, 누구든 죄를 범하고 싶지 않거든 이쯤에서 책을 덮으시라. 그다지 정숙하지 못한 줄거리임을 충분히 눈치챘을 터, 미리 단언컨대 그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도는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60쪽)

내가 얼마나 저 태양을 공격하고 싶어 했는지, 우주로부터 저 태양을 빼앗거나 아예 태양으로 세상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싶어 했는지 알기나 할까? 그 정도는 되어야 죄악이라고 할 수 있지. 1년 만에 고작 사람 열두어 명 흙으로 돌려보내느라 제멋대로 저지르는 소소한 일탈 행위를 죄악이라고 할 순 없어. (215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사드 전집에 대하여

해설
두루마리 원고 혹은 4단 생체 해부도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

자료
1904년 판본의 서문 / 오이겐 뒤렌
1931년 판본의 서문 / 모리스 엔


지은이

D. A. F. 드 사드(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 6. 2. ~ 1814. 12. 2.])는 유서 깊은 프로방스 지방 대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받는 군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불같은 기질과 극단을 탐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가 요망되는 이단아의 삶을 살게 된다. 평생 두 번의 사형선고와 15년의 감옥살이, 14년의 정신병원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최소 열한 곳 이상의 감금 시설을 전전했다. 이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구체제의 충격적인 붕괴와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 혁명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격동기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험난한 삶을 헤쳐가며 그가 써낸 엄청난 분량의 기상천외한 글은 상당수가 압수당하거나 불태워졌고, 그나마 발표한 작품들도 명성보다는 오명으로 그의 운명을 구속했다. 사후에 혜안을 지닌 극소수 작가들이 진가를 알아보았으나,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정신 혁명을 만나기 전까지 100여 년 간 그는 이상성욕을 발광하는 일개 미치광이 작가로 줄곧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필리프 솔레르스는 이렇게 말했다. “18세기를 휩쓴 자유의 파도가 사드를 태어나게 했다. 19세기는 그를 검열하고 잊어버리느라 무진 애를 썼다. 20세기는 야단법석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를 드러내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제 21세기는 명확한 의미로 그를 고찰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문학뿐 아니라 언어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신학, 예술 등 인간을 논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는 그의 독보적 상상력이 펼쳐 보인 전인미답의 세계가 인간의 가장 심오하면서 치명적인 영역의 비밀들을 폭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가 사드적(sadique)이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마, 아직까지도, 그는 사람들이 작품을 잘 읽지 않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한 중요한 작가일 것이다.

옮긴이

성귀수는 음절배열자, 번역가이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과 ‘내면일기’ 『숭고한 노이로제』가 있고, 옮긴 책으로 아폴리네르의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장 폴 브리겔리의 『사드―불멸의 에로티스트』, ‘스피노자의 정신’의 『세 명의 사기꾼』, 샤를 루이 바라의 『조선기행』,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꽃의 지혜』, 폴린 레아주의 『O 이야기』, 장 퇼레의 『자살가게』, 크리스티앙 자크의 『모차르트』(4권), 모리스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10권), 수베스트르와 알랭의 『팡토마스』 선집(5권),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 등 100여 권이 있다. D. A. F. 드 사드 사후 200주년을 맞아 2014년부터 사드 전집을 번역하고 있다.

표지 그림

월터 와튼(Walter Warton)

표제 글자

이용제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