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질보다 따끔함

발길질보다 따끔함
More Pricks than Kicks

사뮈엘 베케트 지음, 윤원화 옮김, EH 사진

사뮈엘 베케트의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1930년대 초에 베케트가 영어로 쓴 단편 10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단편들은 젊은 시절의 베케트를 닮은 벨라콰 수아라는 인물을 중심에 둔다.

베케트가 영어로 쓴 초기 단편들

이 책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데뷔 시절 면모와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그의 관심사 일부가 후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책에 수록된 단편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 벨라콰는 베케트가 탐독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 등장하는 이로, 임종의 순간에도 게으름을 부려 연옥 입구에 웅크리고 있다. 이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받은 베케트는 자신의 작품에서 벨라콰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호명한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위니, 알바, 스메랄디나-리마 등 벨라콰를 둘러싼 여러 여성 인물들도 베케트의 다른 시, 소설, 희곡에 같은 이름으로 등장한다.
책 뒤에는 베케트 연구자 커샌드라 넬슨의 객관적인 시각이 담긴 해설을 수록해 초창기 베케트의 글쓰기에 대해 보다 냉철히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 속 벨라콰 수아라는 인물은 젊은 시절의 베케트를 여러모로 닮아 있는데, 이는 베케트가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반영한 결과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근무하던 20대 중반의 베케트는 1932년 초 파리로 떠나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을 쓴다. 이 소설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번 반려되었고 결국 베케트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그중 일부가 수정되어 이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에 실리게 된다. 베케트는 더블린 교외로 돌아가기 전 단편 「단테와 바닷가재」를 파리의 문학지에 투고했다. 이 단편은 첫 장편과 마찬가지로 벨라콰 수아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이제 베케트는 벨라콰를 주인공 삼아 연관된 단편들을 쓰기 시작한다. 단편 「단테와 바닷가재」와 「퇴장」은 완성되어 있었고, 단편 「축축한 밤」과 「스메랄디나의 연애편지」는 첫 장편에서 발췌되었다. 한편 베케트가 겪은 반복적인 패턴(고향을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기)은 단편 「딩동」 속 벨라콰의 움직임과 비슷하고, 목과 발가락 수술을 받으며 겪은 병원 생활은 단편 「노란색」의 바탕이 된다.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사촌 페기는 등장인물 스메랄디나-리마의 모델이 되었고, 아버지의 사망을 둘러싼 경험은 단편 「찌꺼기」에 반영된다. 현란한 인용과 말장난, 무신경한 듯 통렬히 펼쳐지는 풍자와 조롱, 반항적인 유머로 점철된 단편들 가운데 맴도는 서글픈 어조. 이는 분명 베케트가 아꼈던 페기와 윌리엄의 죽음이 미친 영향이리라고 연구자 커샌드라 넬슨은 지적한다.

“찬란하게 과잉적이고 재치 있는”

1934년 5월, 사뮈엘 베케트의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이 런던의 출판사 채토 앤드 윈더스에서 출간되었다. 저술한 책으로서는 1930년 7월의 시집 『호로스코프』와 1931년 3월의 평론집 『프루스트』에 이어 세 번째였고, 소설로서는 첫 출간이었다.

멸시(“식자층을 위한 익살극”, “일류가 되기에는 너무 영리하다”), 당혹감(“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긍정(“분명 신선한 재능이 숨어 있지만, 이 재능은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듯하다”). 베케트는 자신이 추앙했던 제임스 조이스와 비교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몇몇 평자는 베케트가 흉내쟁이는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그가 헨리 필딩과 조너선 스위프트, 로런스 스턴 등의 풍자적 면모에 영향을 받았음을 지적했다. 가끔 좋은 평도 있기는 했다. “찬란하게 과잉적이고 재치 있는 표현 양식 (…) 베케트 씨는 모든 것을 엄청나게 만든다. 그것이 그의 기예다. (…) 순수하게 즐거운 움직임의 자유와 독창성을 보여 준다.” 베케트의 첫 단편집은 그의 나라 아일랜드에서는 외설적 표현을 금하는 출판 검열법에 따라 금서로 지정되어 제대로 유통되지 못했고, 영국에서는 10개월 동안 600부 미만으로 팔리며 출판사에 적자를 안겼고 재고가 파쇄되었다. 그리고 30여 년 후, 베케트가 성공하면서 재판본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발길질보다 따끔함(More Pricks than Kicks)’이라는 제목은 베케트가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원제목으로 붙였던 ‘찌꺼기(draff)’를 스스로 바꾼 결과로, 「사도행전」에서 사울이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라는 하늘의 목소리를 듣고 개종하는 대목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푼돈보다 발길질(more kicks than halfpence)’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는 공연에서 호객하는 원숭이가 주인에게 발길질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가혹하게 구는 것을 이른다.


발췌

점심은, 제대로만 된다면, 아주 근사한 일이었다. 그의 점심이 즐거워지려면, 그것은 정말로 아주 즐거워질 수 있었는데, 그는 절대적 평정 속에서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이때 방해를 받는다면, 어떤 수선스러운 수다쟁이가 이때 뛰어 들어와서 거창한 생각이나 소원을 늘어놓는다면, 그는 아예 먹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 음식이 그의 입안에서 쓴맛을 내거나, 또는, 더 심하면, 아무 맛도 안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밀하게 혼자 남겨져야 하고, 그는 완전히 조용하고 사적인 상태로,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단테와 바닷가재」, 12–3쪽)

“봐.” 그가 가리켰다. 그녀는 초점을 맞추려고 눈을 깜빡거리며, 보았다. “크고 붉은 건물이 있지.” 그가 말했다. “만 건너편에, 근처에 탑들도 있고.” 드디어 그녀는 그가 가리키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저기 멀리,” 그녀가 말했다. “둥근 탑이 있는 곳?” “저게 뭔지 알아?”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바로 저기 있거든.” 그래, 그녀는 생각했으니, 이제야 네가 속내를 보이는구나. “아니,” 그녀가 말했다. “나한테는 그냥 빵 공장 같아 보이는걸.” “포트레인 정신병원이야.” 그가 말했다. “아,” 그녀가 말했다. “거기 의사를 하나 알아.” 그리하여, 그녀는 친구가, 그는 자기 마음이, 포트레인에 있으니, 그들은 거기 가 보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핑걸」, 32쪽)

한때 나의 친구였던 벨라콰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세상을 즐기게 되기 전, 유아론의 마지막 시기를 활기차게 보내고 있었으니, 여기저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어쩌다 이런 결론을 얻었는지 몰랐지만, 그게 분명 여기저기 떠돌기를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이른바 복수의 여신들을 허탕 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즐거웠다. 그런데 장소로 말하자면 어느 곳이나 다른 곳만큼 좋았는데, 왜냐하면 그 장소들은 그가 거기서 멈춰 서는 순간 죄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오르고 나아가는 단순한 행동이, 어디서 어디로 가든 상관없이, 그에게는 좋았다. 그게 그랬다. 거창하게, 땅과 바다에서, 그가 바라는 만큼 이 기분에 탐닉할 수단을 누리지 못하는 게 유감이었다. 땅과 바다 여기저기로! 그는 그럴 여력이 없었는데,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소하게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화롯가에서 창가로, 아기 방에서 침실로, 심지어 도시의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갔다 왔다 하는 이런 작은 운동 행위는 그가 할 만한 것이었고, 이는 확실히 그에게 대체로 조금 좋았다.
(「딩동」, 45쪽)

그는 시가를 비벼 끄고 전등을 켰는데, 이는 빛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좀 더 확신이 설 때까지 새벽을 보류하려는 것이었다. 새벽과, 그것이 암시하는 추잡한 탄생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완전히 나락에 빠져서, 이 규칙적이고 거의, 그가 때로 느끼기에, 피상적인 분만의 장면을 견딜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어리석은 생각이었고 그도 그것을 잘 알았다. 그는 그 자신을 고쳐 보려고, 겁을 주거나 웃겨서 이 허약함을 벗어나도록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지쳐서 혼잣말하곤 했다. 내가 나지. 그것이 그의 모든 묵상과 노력의 결말이었다. 내가 나지. 그는 예전에 어디선가 그 구절을 읽고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노란색」, 204쪽)

이 특정한 수아 부인, 여태 진술된 이 인물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처녀명 셀마 보그스와 같이 말하지 않고, 애초에 그녀가 아니다. 처녀명 셀마 보그스는 그때 코네마라에서 석양과 밀월로 횡사했다. 그다음에는 얼마 안 있어 갑자기 그들 전부 죽은 모양으로, 루시는 물론 오래전에 죽었고, 루비는 예상대로 죽었고, 위니는 품위 있게 죽었고, 알바 퍼듀는 집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자연히 죽었다. 벨라콰가 주위를 둘러보니 스메랄디나만 유일하게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단숨에 그녀는 그의 정신을 결단으로 몰고 갔으니 앞에 인용된 편지에 피력된바 그녀는 단순히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흡사 고르곤처럼 안달하면서 그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이제 수아 부인으로서, 1년 남짓 그가 노파 역을 맡은 노파와 청년의 복합체를 이루고 자외선의 친밀함을 누린 후에, 그녀가 그보다 더 오래 살기 시작했음을 신문에서 읽게 된다.
(「찌꺼기」, 225쪽)


차례

단테와 바닷가재
핑걸
딩동
축축한 밤
사랑과 레테
퇴장
이 무슨 불운
스메랄디나의 연애편지
노란색
찌꺼기

해설 / 커샌드라 넬슨
작가 연보
작품 연표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89)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윤원화는 시각 문화 연구자로 주로 동시대 서울의 전시 공간에서 보이는 것들에 관해 글을 쓴다. 저서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2016),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2017),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2018), 역서 『청취의 과거』(2010),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2011), 『기록시스템 1800 · 1900』(2015) 등이 있다.

표지 사진

EH(김경태)는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전공했다. 「스트레이트—한국의 사진가 19명」,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등 여러 전시에 참여했으며,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와 『로잔 대성당 1505~2022』가 있다.


편집

김뉘연, 신선영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