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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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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튜디오

이주요, 김선정, 김장언, 닉 에이킨스, 이레인 베인스트라, 찰스 에셔, 헹크 비쉬 지음

서울 이태원에서 시작된 이주요 작가의 ‘나이트 스튜디오’, 그 긴 여정의 흔적

이 책은 2010년 서울 이태원에서 시작된 이주요 작가의 ‘나이트 스튜디오’가 네덜란드와 독일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어지고 변형되어온 흔적을 좇은 기록이다.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작업해온 이주요는 2008년 이태원 시장 길에 위치한 한 연립주택에 임시적으로 거주 공간을 마련한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과 이야기들을 미술의 언어를 빌어 신체적, 물리적 형태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해 주변의 사물을 변형시키고, 언뜻 보기에 임시적으로 보이는 장치들을 고안해낸다. 여기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작가가 집 주변에서 발견된 날카로운 사물들을 모아 만든 「방범창」, 얼음을 이용한 시간적/청각적 냉각장치 「쿨링시스템」, 어눌하고 기묘한 스토리텔링 장치인 타자기 연작, 올라서는 순간 균형을 잡기 어렵게 흔들리는 「무빙플로어」 등이 있다.

그러나 작가가 처한 삶의 조건에 대한 일종의 번역이자, 예술가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나이트 스튜디오’는 특정 작품이나 작업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미묘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2010년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오픈 스튜디오를 열고 한정된 방문객에게 자신이 사는 집이자 작업실을 공개한다. 맨 처음 실린 김선정의 「네 번의 같은 공간」은 이 오픈 스튜디오 기간 동안 그곳의 공간과 사물, 그리고 이주요의 정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주는 글이다.

이후 ‘나이트 스튜디오’는 서울을 떠나 네덜란드 반아베 미술관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찰스 에셔의 글 「남은 것은…… (사람과 사물의) 양가적 관계들」은 작가의 작업실과 그곳에 깃든 내밀한 이야기가 유럽의 흰색 갤러리 벽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다. 그는 평범한 사물과 일상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세부를 만들어내는” 이주요의 작업에 깃든 비밀을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벗겨내고, 작가가 제공하는 변형의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일러준다. 이어서 이레인 베인스트라는 김선정과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 반아베 미술관에서 이주요의 작업을 관찰한 후 유럽의 문화 맥락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며, 네덜란드 작가 헹크 비쉬는 이주요의 작업을 픽션의 언어로 번안해낸다. 그리고 2013년,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나이트 스튜디오’는 그 긴 여정의 끝에 서 있다. 하지만 김장언이 「이주요의 여행」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또 다른 떠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신체 사이의 관계를 조정해서 신체적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했던” 초기작 ‘Two’부터 최근작 ‘나이트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이주요의 작업은 대부분 작가가 겪은 자전적 경험과 중요한 순간에서 그 출처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이 대면한 적대적 환경에 맞서기 위해, 시인 심보선의 말처럼 “그저 생존하는 것이 아닌 그냥 존재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결정짓는 사회적 조건들을 되돌아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사회가 강요하는 이러저러한 조건들을 너무나 손쉽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이주요와 우리의 차이점은 단지 그것뿐이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수많은 이주요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이 제공하는 반성적 사유는 공유되어야 한다. ‘나이트 스튜디오’는 결국, “자신이 있는 곳에 적응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의해 영향을 받는” 한 작가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발췌

불안하고 낯선 이 상관관계를 보며 나는 그것들의 기능–혹은 기능장애–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들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일 수 있을까? 아마도 이와 비슷한 질문들이 이주요에게 나이트 스튜디오를 만들게 하고, 이곳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열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는 이런 것들을 만드는가? 그가 끄적인 드로잉과 수집한 물건들은 언제 미술이 되는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 불명확한 상태가 여기 이주요가 살고 작업하는 공간에서는 모두 이해되는 것 같았다. 이곳은 그가 가진, 우리가 가진 ‘일상의 조건’들이 시험에 드는 모색의 장소였다.(김선정, 18쪽)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을 설득하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자신이 불충분함을, 성취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결국 그들이 상상하는 인간관계의 변형을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극인 동시에 이들이 지닌 힘이다. 그 작품들은 다른 장소 즉 이주요에게 속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할 수만 있다면 거기에 남도록 허락한다.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상상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허락된 특권이다.(찰스 에셔, 113쪽)

타자기는 2010년 여름, 적대적이고 숨막힐 듯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시장 사람들이 사는 이태원에서, 서울 거리에 있는 그 집에서 그 사람은 ‘나이트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다. 그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동안 혼자 일했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 모든 것에 저항하며 살았고 이는 분명 몸부림 그 자체였다. 나는 의자를 챙겨 집으로 갔다. 말은 이제 그만, 그냥 자전거만 타자. 이곳 에인트호번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이레인 베인스트라, 161쪽)

갑자기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을 자면서 말하고 있었다. 주로 짧은 문장들이었다. 어떤 때는 단순한 동사만 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명사만, 어떤 때는 방언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질질 끄는 단조로운 단어들. 순간 나는 그 여자가 나와 다른 현실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말하는 단어들은 아주 멀리서 왔음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잠은 지금 이곳을 다른 시공간과 연결하는 다리였다. 그녀는 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앉았다.(헹크 비쉬, 201쪽)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 현재를 유지시키는 것은 또 다른 굳건한 것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연약한 현재를 발명하는 것이다. 작가의 여행은 어쩌면 이러한 잠재적 파국의 상태에서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여행의 방법을 실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떠나지만 떠날 수 없는 여행일 것이고, 머물지만 머물 수 없는 삶의 이야기일 것이다.(김장언, 246쪽)


차례

이태원, 서울
네 번의 같은 공간 / 김선정

에인트호번, 네덜란드
남은 것은… (사람과 사물의) 양가적 관계들 / 찰스 에셔
안전지대 밖에서 / 이레인 베인스트라
드러난 손목 / 헹크 비쉬

프랑크푸르트, 독일
말, 벽, 스토리텔링 / 닉 에이킨스

소격동, 서울
이주요의 여행 / 김장언

작가 및 필자 소개


지은이

이주요은 서울에서 태어나 지난 20여 년간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변화무쌍한 외부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미술 작품으로 확장해서 기술하고자 노력해왔다. 작고 약한 자신의 신체와 선택 불가한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유머러스하게 바라본 아트북 시리즈를 시작으로, 최근 5년간은 예술가가 살아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김선정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사무소’ 디렉터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아트선재센터 학예실장,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플랫폼’의 총감독, 2010년 미디어 시티 서울 2010 ‘트러스트’전 총감독, 2012년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과 카셀 도큐멘타(13) 에이전트로 활동하였다. 2006년부터 아트선재센터의 전시 기획을 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김장언은 독립 큐레이터이자 미술 평론가다. 2009년부터 독립적 동시대 미술 실험실인 노말타입(www.normaltype.net)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대안공간 풀 큐레이터, 안양공공예술재단 예술팀장, 2008년 광주비엔날레 제안전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다. 최근 비평집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현실문화, 2012)를 출간했다.

닉 에이킨스는 에인트호번 반아베 미술관 큐레이터다. 아른험에 있는 네덜란드 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런던 ‘아웃셋 컨템퍼러리 아트 펀드(Outset Contemporary Art Fund)’를 위해 국제적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레인 베인스트라는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과 BRD(Städtische Gallerie Nordhorn)에서 일했다. 저서로 『마음 속의 공간과 함께(With space in mind)』(1991), 『풍경의 길 위에서(On the way in the landscape)』(1996)가 있으며 독립 연구자로서 글쓰기에 기반한 문화에 앞선 시각적 생각의 진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찰스 에셔는 에인트호번 반아베 미술관 큐레이터이며 런던 센트럴 세인트마틴스에 근거를 둔 에프터올 북스 편집 이사다. 2002년 광주 비엔날레, 2005년 이스탄불 비엔날레, 2007년과 2009년 라말라 이왁 비엔날레, 2011년 류블랴나 U3 트리엔날레에서 전시를 기획했으며, 2014년 제31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았다.

헹크 비쉬는 시와 드로잉에 열정을 가진 네덜란드 조각가로 30세부터 전시를 시작했다. 1988년 베니스비엔날레, 1992년 카셀 도큐멘타 IX 등에 참여했으며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중국, 싱가포르, 일본, 독일에서 공공 작업을 했다. 2005년부터 뮌스터 미술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표지 이미지

이주요, 『Walls to Talk to』 전시 전경, 반아베 미술관, 에인트호번, 2013.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