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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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
Gestes et opinions du docteur Faustroll, pataphysicien: roman néo-scientifique

알프레드 자리 지음, 이지원 옮김

알프레드 자리의 『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17권으로 출간되었다. 초현실주의와 부조리극에 큰 영향을 끼친 희곡 「위뷔 왕」으로 잘 알려진 자리의 이 소설은 파타피지크(’Pataphysique)라는 상상적 과학을 창안한 저자의 신묘한 상상 세계가 그와 동시대를 향유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와 뒤얽히면서 다른 차원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파타피지크라는 과학

“정의: 파타피지크는 상상적 해법의 과학으로서, 대상의 가상이 묘사하는 대상의 속성을 대상의 윤곽에 상징적으로 부여한다.” (본문 37쪽)

이 소설은 구성상 총 8권(8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권(2부) 「파타피지크의 기초」에서 자리는 파타피지크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한다. 위의 정의에 따른다면, 파타피지크는 형이상학과 과학의 경계에 걸쳐 있으면서 이를 넘나드는 새로운 개념으로 보인다. 자리의 설명 또한 그러하다.

“파타피지크는 형이상학의 범위 안 또는 바깥에 덧붙는 과학으로, 형이상학이 물리학을 넘어서는 만큼 형이상학을 넘어선다.” (37쪽)

부수적이고, 우연적이고, 특수하고, 예외적인, 초형이상학적 과학. 현재의 일상적 세계를 보완하는 다른 세계, 우리가 보아야 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비(非)학문.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자리는 전작 희곡 「위뷔 왕」에서도 그러했듯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것들과 추하고 저속하고 상스럽게 여겨지는 것들을 뒤섞어 전면에 드러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자리는 왜 이러한 선택을 고집했을까? 이렇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63세로 태어나 63세에 자살한 포스트롤은 결국 조금도 살지 않았고 그래서 죽지도 않았을 수 있지만, 그 죽음이라는 것도 1센티미터 길이의 자 하나만 있으면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악랄하게 순진하고, 실없이 진지한 농담의 편에서 조망할 때, 현실의 죽음과 삶은 소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상상 초상들

“파리의 이 동네에는 승합마차도, 기차도, 전차도, 자전거도 다니지 않았으며, 호기심 많은 자들이 여행 중에 찾아온 스물일곱 권의 가장 훌륭한 예술적 정수를 발치에 놓고 있는 파타피지크학자와 팡뮈플이라는 이름의 집행관(이하 르네이지도르로 서명), 그리고 인간의 말이라고는 ‘아 아’밖에 모르는 뇌수종 걸린 개코원숭이를 태우고 동일 면상에 놓인 세 개의 작은 강철 바퀴로 구르는,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리 직물 배도 아마 다닌 적 없었을 겁니다.” (본문 57쪽)

소설은 포스트롤 박사와 그 일행의 파리 여행기 형식을 취한다. 여행 중 등장하는 섬들은 자리가 택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파타피지크하게 반영한다. 우리는 자리가 그린 상상적 초상들을 통해 19세기 말 파리 상징주의 예술계 일원들의 이모저모를 보게 되는 셈인데, 물론 자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파타피지크라는 개념은 실제로 예술가들의 모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알프레드 자리의 초형이상학적인 파타피지크 개념에 관심을 둔 이들이 1948년 콜레주 드 파타피지크(Collège de ’Pataphysique)를 창단했는데, 1960년 세워진 울리포(OuLiPo, 잠재문학작업실) 창단 멤버 열 명은 대부분 콜레주 드 파타피지크 구성원이었다.

이 책의 부록은 두 가지다. 소설 속 실제 인물과 작품을 소개하면서 동시대의 새 예술을 열광적으로 추적한 자리와 연결해 보는 「인명사전」이 첫 번째다. 뒤이은 「알프레드 자리 연보」는 자리의 삶과 작품이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물 대신 술을 마셨고, 사교 자리에서 권총을 휘둘렀고, 스스로를 일인칭 복수로 칭했고, 고성능 자전거를 구입하거나 전용 활자를 제작하느라 빚을 졌지만, 거처마다 가호를 달고 글을 쓰고 낚시하며 속물주의를 조롱했던 작가. 알프레드 자리는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예술이 삶의 전부인 비타협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권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까지도 예술과 예술가들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이렇게 터무니없을 만큼 비실리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함께 깨닫기 위해서”(옮긴이) 이 책을 펴낸다.


발췌

포스트롤 박사는 1898년(20세기가 [-2]살이었던 해이다.) 체르케스에서 63세의 나이로 태어났다. 이 나이에 박사는 보통 체격의,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자 지름 (8 × 1010 + 109 + 4 × 108 + 5 × 106)개만큼을 차지하는 남성이었고, 평생 동안 같은 나이를 유지했다. 피부는 노란색에 살레 왕처럼 기른 바다빛 콧수염 빼고는 얼굴 전체가 미끈했고, 잿빛 금발과 새카만 흑발이 한 올씩 번갈아 나 태양의 위치에 따라 색이 변하는 모호한 적갈색의 머리칼, 필기용 잉크로 채워진 캡슐 속에 단치히 증류주처럼 금색 정충이 헤엄치고 있는 두 눈을 지녔다.
포스트롤 박사는 콧수염 외에는 수염이 없었다. 사타구니부터 눈꺼풀까지 이르는 피부 전체에 모낭을 쏠아 먹는 탈모 세균을 빈틈없이 번식시킨 덕분인데, 이 세균은 새로 난 털만을 공격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나 눈썹마저 빠질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 반해 사타구니부터 발까지는 사티로스처럼 검은 털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다. 박사는 품위를 넘어서는 남자였던 것이다. (17쪽)

실제 철자로 적을 때는 안이한 말장난을 방지하기 위해 앞에 아포스트로피를 붙여 ’파타피지크로 써야 하는 파타피지크는 형이상학의 범위 안 또는 바깥에 덧붙는 과학으로, 형이상학이 물리학을 넘어서는 만큼 형이상학을 넘어선다. 한편 부수 현상이 대개 우연적이므로, 파타피지크는 무엇보다 특수한 것에 관한 과학 — 보편적인 것을 다루어야만 과학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 이라 할 수 있다. 파타피지크는 예외를 지배하는 법칙을 연구하고 현 세계를 보완하는 다른 세계를 설명한다. 혹은, 야심을 덜자면, 전통적인 세계 대신에 우리가 볼 수 있고 또 어쩌면 보아야 하는 세계를 묘사한다. 우리가 전통적인 세계에서 발견하리라 믿는 법칙들은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예외들의 상호 관계이고, 결국 예외적이지 않은 예외들로 환원되어 유일성이라는 가치조차 지니지 못하는 우연한 사실들일 따름이다. (37쪽)

팡뮈플은 원숭이가 단조로운 장광설로 방해하는 바람에 포스트롤의 원고를 서론까지밖에 판독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 포스트롤은 자신이 아는 아름다움의 아주 작은 일부분, 또 자신이 아는 진실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단어의 삭망 동안 기록했다. 이 작은 편린만으로 모든 예술과 모든 학문을, 즉 모든 것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반듯한 결정체인지, 아니면 괴물인 편이 더 그럴 법하진 않은지 알 수 있을까(포스트롤은 세계를 ‘나에 비해 예외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148쪽)

친애하는 동료께,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었다 믿고 계시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죽음은 범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더 이상 지구에 있지 않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저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동의하시는 바이겠지만, 논하는 대상을 계량할 수 있고, 유일한 실재인 숫자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이 주제에 대해 뭔가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알아낸 것은 제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수정은 단단함의 나라라는 다른 곳에, 하지만 루비보다 영예롭지 못한 곳에 있고, 또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 다이아몬드는 보스드나주 엉덩이에 박힌 못보다, 이 서른두 겹 주름 — 사랑니까지 포함한 이빨 수보다 많습니다. — 은 잠재적 어둠의 산문보다 더 못한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날짜나 장소의 관점에서 다른 곳에, 앞 또는 옆에, 뒤 또는 더 가까이에 있는 걸지요? 선생님, 저는 시간과 공간을 버릴 때 있게 되는 그곳, 그러니까 무한한 영원 속에 있는 것입니다. (153~4쪽)

신은 정의상 길이나 넓이나 부피가 없다. 그러나 이 해설에 보다 명료함을 기하기 위해, 비록 실제로는 차원이 없지만, 우리 동일성의 양 변 속으로 사라지는 차원에 한한다면 영차원보다 큰 차원을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차원에 만족할 것인데, 그래야 한 장의 종이 위에다 평면의 기하학 도형들로 간편하게 그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66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1권 소송
2권 파타피지크의 기초
3권 바다를 건너 파리에서 파리로, 또는 벨기에의 로빈슨
4권 두난교(頭亂交)
5권 공식적으로
6권 루쿨루스의 거처에서
7권 쿠르무쿰
8권 에테르니테

옮긴이의 글
부록
알프레드 자리 연보


지은이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1873~907)는 1873년 프랑스 라발에서 태어났다. 렌느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후 「위뷔 왕」과 「오쟁이진 위뷔」로 발전하게 되는 희곡들을 쓰고 공연한 자리는 파리로 이사한 후 비평지와 판화 잡지를 공동 창간하고, 잡지에 희곡을 발표하고, 책을 출간하고, 공연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펼쳐 나간다. 홀로 판화 잡지 『페르앵데리옹』을 창간하면서 15세기 활자체를 복각해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후 『위뷔 왕』 표지에 사용된다. 잡지에 「위뷔 왕」을 발표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한 자리는 1896년 12월 10일 이 희극을 초연한다. 야유와 환호로 15분간 중단되기도 했던 공연 이후 평단은 자리를 “예술의 아나키스트”라고, 「위뷔 왕」을 “관객에 대한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자리는 『적그리스도 카이사르』, 『낮과 밤』, 『사랑의 방문들』, 『위뷔 아범의 연감』(익명으로 공저), 『절대적 사랑』 등을 출간하는 한편 잡지에 「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 일부를 발표하며, 포스트롤 박사의 이름으로 글을 기고하기도 한다. 이어 「사변」 및 「행적」 시리즈, 「알프레드 자리의 일기」, 오페라 대본 「교황의 겨자 제조인」, 시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잡지에 싣고, 글을 번역하고, 단행본 『메살린』, 『초남성』, 『허리로』 등을 펴내며 평생 왕성히 활동했다. 1907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으며, 『팡타그뤼엘』, 『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 / 사변들』, 『라 드라곤』, 『오쟁이진 위뷔』 등은 사후 발간되었다.

옮긴이

이지원은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데카당문학으로 동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큐레이터와 미술 프로듀서로 일한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