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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 지음, 김재리, 권령은, 남화연, 박보나, 자나 이바노바, 한스 룰스, 홍철기 인터뷰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유(思惟)는 스코어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성립되고, 완성된다. 스코어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발전시키고, 기록하는 일기이며, 미래를 예측하는 계획표이다. 또한 완성된 공연을 비추는 거울이며 또 저장고이다. 저자와 공연자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 혹은 관객이 공연을 읽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이드일 수도 있다. 때로는 공연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때, 스코어는 하나의 위치에 자신을 고정하지 않고 공연을 둘러싼 시공간을 따라 부단히 움직인다.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그 앞과 뒤를 이동하고, 공연 위로 올라가 그 전체를 내려다보거나 공연 안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되기도 한다. 공연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완성된 이후까지,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139쪽)

이 책은 작가 오민이 “영상과 퍼포먼스 작업과 병행해 온 ‘스코어 연구’를 확장시키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기획되었다.” 스코어에 관한 그의 관심은 “2015년 제작한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작업은 음악 연주를 위한 이성적, 물리적, 수행적 연습 과정을 재료로 사용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쇼팽 소나타 2번 1악장의 제1 주제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연주자가 실제로 듣게 되는 소리와 연주자의 머릿속으로 들을 법한 소리를, 비디오 편집 과정을 통해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 공연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음악을 다시 전통적 서양 음악의 악보로 옮기던 중, 작가는 “이성과 논리로 만들어진 고전 음악의 스코어와 실제 행하고 보고 들으면서 ‘몸’으로 완성한 스코어가 충돌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는 곧 스코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실제로 스코어를 만들고 사용하는 일곱 명의 예술가들을 초대해 “음악, 무용, 시각예술 등 다른 분야에서 각각 스코어를 바라보는 관점들, 혹은 같은 분야 안에서도 상이한 방식으로 스코어를 대하는 사례를” 통해 스코어를 둘러싼 개념과 형식, 내용, 그리고 그 확장 가능성을 살핀다.

무용 이론가이자 드라마투르그 김재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한다.

과거에, 그리고 동시대에 춤을 기록하는 주요한 방법은 무엇인가? 동시대 안무가들은 어떤 무보를 사용하는가? 동시대 무보가 많은 경우 개인적인 언어로 되어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안무가와 무용가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가? 무보는 춤의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동시대 무용에서 안무가와 무용가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드라마투르그의 무보와 안무가의 무보는 어떻게 다른가? 안무는 무엇인가?

안무가 권령은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춤을 만드는 데 스코어는 어떻게 사용되며 왜 필요한가? 스코어에 꼭 포함되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 스코어를 해석하는 무용수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동시대 춤이 안무가와 무용수가 함께 만드는 것이라면, 다른 무용수가 그것을 대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안무가에게 동작은 무엇인가? 동작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개념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적인 동작인가? 몸은 무엇이고 움직임은 무엇인가?

시각예술가 남화연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답한다.

시간은 당신의 작업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불완전과 미완결은 당신의 퍼포먼스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무엇이 완결이고, 무엇이 미완결인가? 스코어는 어떤 용도로 만들고, 또 누가 사용하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 스코어는 독립적인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스코어의 ‘몸’은 언제 어떻게 결정되는가? 움직임은 어디서 파생하는가?

시각예술가 박보나는 다음과 같은 사안에 답한다.

당신의 퍼포먼스 속 특정 상황은 어떻게 설정되는가? 퍼포머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시하는 계약은 일종의 스코어인가? 혹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스코어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퍼포먼스 속에서 시스템과 개인은 각각 어느 정도로 드러나기 바라는가? 퍼포먼스의 결과를 어떤 식으로 예측하고, 또 어떤 식으로 예측이 실패하는가?

시각예술가 자나 이바노바는 다음에 답한다.

당신의 작업에서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것은 필수적인가? 스코어를 만드는 주된 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는가? 사전 준비가 거의, 혹은 전혀 없이 참여하기로 동의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퍼포먼스에서 통제된 것과 통제되지 않은 것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통제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원하는 대로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가?

작곡가 한스 룰스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답한다.

당신이 관심을 두는 ‘콘서트홀 밖의 소리’라는 개념은 장소의 크기와 모양 혹은 주변 소음의 크기와 밀도 등 다양한 변수와 연관된다. 최종 결과물에 영향을 주는 이런 변수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또한 이것들은 음악의 기보와 공연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당신의 스코어를 실행할 연주자를 어떻게 찾는가? 관습적인 음악 기보를 비롯해 그래픽 스코어, 텍스트, 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의 스코어를 사용해 왔는데, 작곡과 기보법은 어떻게 구성하고 발전시키는가?

실험 음악가 홍철기는 다음과 같은 호기심에 답한다.

소음과 즉흥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소음은 정확히 어떤 소리를 말하는가? 음색과 관련된 것인가? 크기와 관련된 것인가? 숙련도와 관련된 것인가? 작곡가와 연주가, 청취자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청취하면서 연주하는 것과 청취만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가? 능동적인 청취란 고전음악을 감상할 때 필요한 청취와 다른 것인가? 즉흥 음악에서 스코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청취를 위한 악보는 연주를 위한 악보와 다른가?


발췌

‘춤에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 시대와 문화가 춤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과 같다고 생각한다. (…) 과거 안무가들이 자신이 만든 춤에 대한 의미와 비평적 시각을 모두 이론가나 비평가들에게 내어 준 것과 달리, 동시대 안무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리서치와 결과물, 혹은 담론까지 생산한다. 과거 안무가 춤 발생 직전이나 사후에 이루어졌다면, 동시대의 안무는 거기서부터 확장되어 그 사이에 존재한다.(김재리)

나는 무용수들이 해독해야 할 스코어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스코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고 싶다. 종이 위에 누워 있는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자 한다. 다만 ‘스코어를 부수라’는 지시어가 아닌 이상은 철저히 스코어 안에서 자유로이 수행하기를 원한다. (…) 나에게 동작은 표현의 한 방법이다. 동작을 만든다는 것은 표현을 위한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개념과 실제적인 동작을 나누는 기준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은 동시에 존재한다. 몸은 실체이고 움직임은 사라지는 것이다.(권령은)

내 작업에서 스코어로 기능하는 것은 주로 어떤 사건을 발생시키기 위한 조건이자 퍼포머와 나를 중재하는 수단으로 존재한다. 스코어는 대체로 나와 퍼포머를 위해 기능한다. 그러나 어떤 스코어는 그 자체로 퍼포먼스의 가이드가 될 수도 있고 독립적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코어의 시제라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스코어는 과거의 기록이기도 하면서 미래의 사건이 내재된 상태인 것 같다.(남화연)

[나에게 스코어는] 작업의 방향이 들어 있는 생각의 체계이자 큰 우산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성된 스크립트가 퍼포머에게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퍼포머의 선택에 따라 퍼포먼스의 성공이나 실패가 정해지는데, 그 역시 퍼포먼스를 설계할 때 예상하는 범위, 큰 우산이긴 하다. 실패도 예상한 계획 안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스코어는 완성돼서 제시되기보다 열린 구조로 방향을 제시하고, 퍼포머가 개별적인 완성을 이루거나 참여 관객에 의해 완성된다.(박보나)

내 퍼포먼스에서 거의 모든 경우 스크립트가 존재를 드러낸다. 때로는 라이브 혹은 녹음과 같이 듣는 방식으로, 어떤 경우는 종이에 인쇄된 물리적 형태로 제시된다. 스크립트는 공연의 작동 원리인 동시에 관련된 질문들을 제시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방식을 통해 의도와 상상, 그리고 실제 사이의 흥미로운 모순을 전면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자나 이바노바)

작곡하고 스코어를 만드는 방식은 음악의 구체적인 목표, 요구 사항 및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너무 상세하고 엄격한 스코어는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이는 콘서트홀 밖의 생활공간에서 작업한다는 생각과 상충한다. (…) 내가 만든 음악의 주요 스코어는 단순한 텍스트로 되어 있을 때가 많다. 단어들은 관습적인 음악 기보법 및 언어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 간격이 독자와 연주자가 생활공간을 개인적이고 음악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한스 룰스)

소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청취 행위의 의미를 자문하게 된다. 나는 노이즈 음악이 바로 청취가 방해되는 상황을 창출하는 데 목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음악이 아닌 배경 소음, 그리고 그 소음을 일으키는 대상이나 사건에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완전한 침묵 상황에서 뇌가 만들어 내는 이명에 공감할 수는 없을까? 비록 공감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하거나 즐거운 감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홍철기)


차례

머리말

김재리
권령은
남화연
박보나
자나 이바노바
한스 룰스
홍철기

맺음말


지은이

오민은 불안의 감각을 연구하는 미술가이다. 예측하기, 계획하기, 훈련하기, 구성하기와 같이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가 발전시켜 온 기술,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집중, 논리, 구조, 과정, 통제와 긴장감을 관찰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재료로 사용한다. 서울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1998)와 그래픽 디자인(2000)을 전공하고,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2008)를 받았다. 그의 작업은 구시립미술관(2017), 국제갤러리(서울, 2016), 아르코미술관(서울, 2016), 백남준아트센터(용인, 2015),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14), 네덜란드 중앙은행 갤러리(암스테르담, 2012), 독일 에르푸르트 미술관(2011) 등에서 전시되었다. 네덜란드 국립미술원과 삼성문화재단 파리 국제예술공동체에서 거주 작가로 활동했으며, 에르메스재단 미술상(2017), 제6회 두산연강예술상 (2015)을 수상하였다.

참여 작가

김재리는 무용학 박사, 무용 이론가이다.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를 역임했고, 성균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한국연구재단 박사 후 연구원, 신진 연구자에 선정되었으며, 『몸과 움직임 읽기』(2010, 공저), 『사라지지 않는 예술: 무용 이론을 말하다』(2016, 공저) 등을 출간했다. 안무 현장에서 이론을 구성해 내는 데 관심을 두고, 현재 안무가와 드라마투르지컬 협업 및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권령은은 한양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현대무용 및 안무를 공부했다. 2008년 서울댄스컬렉션에서 선보인 첫 개인 작업 <코코>를 시작으로, 요코하마 댄스컬렉션 EX에서 <나를 위한 기술>(2014)을, 일본 댄스 크로스에서 <망 뜨는 사람>(2015)을 초연하고, 파리 댄스 엘라지에 초청되어 <글로리>(2016)를 발표했다. 현재 서울을 거점으로 다양한 매체와 공동 작업을 통해 움직임과 몸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실험하고 있다.

남화연은 개인전 《시간의 기술》(아르코미술관, 서울, 2015)을 비롯해 《유명한 무명》(국제갤러리, 서울, 2016),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결정적 순간들: 공간 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서울, 2014), 《누벨바그》(팔레 드 도쿄, 파리, 2013)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가변 크기>(2013), <이태리의 정원>(2012)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스펙터 프레스에서 『가변 크기: 시간을 기술하기』(2014)를 출판했다.

박보나는 다양한 사회 구조 및 그 작동 방식을 드러냄으로써 미술을 포함한 사회 시스템에 질문을 던져 왔다. 사회적 조건과 미술을 병치해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는 그의 작업은 종종 미술사적 문헌을 전유해 새로운 사회적, 환경적 맥락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2016년 광주비엔날레와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2012 년 뉴욕 뉴뮤지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18년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 초청 작가이다.

자나 이바노바는 런던 퀸 매리 대학교와 암스테르담 다스아르츠에서 공부했으며, 2013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쳤다. 현재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최근 쿤스트할레 바젤(2016), 암스테르담 구교회(2016), 멘데스우드 DM(상파울루, 2016), 엘런 더 브라위너 프로젝트(암스테르담, 2016), 퐁피두 센터(파리, 2015), 데이비드 로버츠 미술재단(런던, 2015), 갤러리 라파예트 재단(파리, 2014),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2013)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한스 룰스는 현대음악 작곡가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샹닥시옹, 슈펙트라 앙상블, 전기기타 사중주단 즈베름, 스코르다투라 트리오 등이 그의 작품을 공연했다. 다양한 악기와 매체, 그중에서도 라이브 전자 기기와 음악 로봇을 위한 작품을 썼다. 2001~8년 벨기에 겐트에 위치한 실험적인 오디오 아트 센터, 로고스 재단에서 연주회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2014년 겐트 미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후 그곳에서 라이브 전자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오르페우스 협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안트베르펜 왕립 음악원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홍철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노이즈 음악을 만들어 온 실험 음악가이다. 2000년대 초반 즉흥 음악의 영향을 받아 국내외 실험 음악가와 협연 작업을 펼치는 한편, 실험 음악 공연 기획, 이론 및 역사 연구, 집필 및 교육 활동을 해 왔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