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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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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Semmelweis / Entretiens avec le professeur Y

루이페르디낭 셀린 지음, 김예령 옮김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는 작가이기 이전에 의학도였던 셀린의 의학 박사 학위논문이면서 일종의 소설로 읽히는, 즉 작가 셀린의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제멜바이스』와 셀린 전작의 전환점이라 할 소설 『Y 교수와의 인터뷰』가 함께 묶인 책이다. 뒤이은 부록 「기갑부대 데투슈 병사의 수첩」은 열여덟 살 젋은 시절 병사로서 전쟁을 마주했던 셀린의 내면을 보여주고, 연이어 실린 「졸라에게 바치는 헌사」는 『Y 교수와의 인터뷰』와 더불어 중후기 작품들의 면모를 감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워크룸 프레스에서는 이번 셀린 작품 출간을 시작으로 셀린의 초기 대표작인 『밤 끝으로의 여행』과 『외상 죽음』, 후기 대표작이자 독일 3부작으로 알려진 『성에서 성으로』, 『북쪽』, 『리고동』을 선집으로 구성해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자 김예령의 번역으로 펴낼 예정이다.

의사 데투슈가 택한 의사 제멜바이스

셀린은 의사였다. 즉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마흔 즈음까지 파리와 그 외곽 지역을 오가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보건의로 일했던 의사 루이페르디낭 ‘데투슈’가 필명으로 택했던 이름이었다. 서른 살의 의학도 데투슈는 의학 박사 학위논문의 대상으로 ‘이그나즈 필리프 제멜바이스’라는, 헝가리의 위대한 의학자이자 소독법의 창시자를 택한다. 그리고 논문을 쓴다—“서사시풍의 문체”로.

제멜바이스는 어떤 인물이었나? 1818년 7월 1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식료품상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제멜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 법학을 공부하던 어느 날 체코 출신 의학자 스코다의 강의를 듣고서 그의 제자가 되고, 한편 또 다른 스승 로키탄스키를 만나 과학적 방법론에 눈뜬다. 당대 최고의 의학자였던 두 인물에게서 배우게 된 제멜바이스의 세상은 파스퇴르 이전의 시대였고, 그리하여 당시 시행되던 외과 수술은 평균 열에 아홉 이상이 사망이나 사망에 준하는 감염으로 치닫곤 했다. “여기서 실행되는 모든 일이 내게는 참으로 무용하게 보이는 것이, 환자들의 사망이 버젓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경우, 동일한 질병 사례임에도 어째서 어떤 환자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환자는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인지 그 원인을 진정으로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저 수술만 계속하고 있다.”(본문 69~70쪽) 제멜바이스는 외과 교수로 임명되지만 공석이 나지 않는 바람에 분만 쪽으로 눈을 돌려 산부인과 박사가 되고, 이후 빈 종합 시료원에서 의사 클린(=클라인)을 도와 일하게 된다. 그리고 출산 후 무참히 죽어 나가는 임산부들의 사망률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임산부들이 불안스럽게 털어놓는 말을 듣고 제멜바이스가 알게 된 사실은, 바르츠의 병동에서 산욕열의 발병 위험이 상당히 컸다 한다면 클린의 병동에서는 심지어 어느 기간 동안 사망 위험이 확실성의 수준에 육박했다는 점이었다. 도시 사는 여자들 가운데에서 흔한 일이 되고 만 이 통계자료가 제멜바이스에게는 진실을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본문 74~5쪽) 고군분투 끝에 제멜바이스는 수술 전 염화칼슘액으로 손을 소독하면 된다는,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에 도달하지만, 그의 시대는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살인자들! 내가 산욕열을 피하기 위해 처방한 규칙들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나는 모든 이들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본문 123쪽) 결국 제멜바이스는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흡수열 및 농혈증까지 겹쳐 생을 마감한다.

번뜩이는 직관으로 소독법을 발견해 임산부들의 사망률을 현저하게 낮춘 역사적인 인물이었지만 모나고 거친 성격으로 당대 의학자들의 미움을 샀고 결국 불우한 삶을 산 천재 제멜바이스. 자신의 모습과 닮은 꼴을 찾아내 논문의 대상으로 삼은 듯한 저자는 그 논문을 이렇게 연다. “이것은 제멜바이스의 삶에 관한 참혹한 전기이다.” 데투슈 즉 셀린이 드라마틱하게 구현한 제멜바이스의 일생과 그 과업을 둘러싼 시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덕목을 바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훨씬 더 죗값이 비싼 것은, 불가피하게도, 선”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작가 셀린의 셀린 인터뷰

『Y 교수와의 인터뷰』. 이것은 셀프 인터뷰라 일컬어도 무방할 소설이다. 셀린은 Y 교수라는 인물을 내세워 자기 자신을 인터뷰한다. 왜?

“『밤 끝으로의 여행』과 『외상 죽음』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셀린은 반유태주의에 바탕을 둔 평화주의 옹호, 독일과의 협력 필요성 역설 등 민감한 내용을 담은 정치적 팸플릿을 발표했고, 결국 덴마크에서 옥고를 치른다. 『Y 교수와의 인터뷰』(1955)는 그가 프랑스로 귀국한 후 작가로서 다시 자리 잡기 위해 벌인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옮긴이,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

옮긴이의 지적대로, 셀린을 읽은 사람들은 대개 첫 두 소설(『밤 끝으로의 여행』과 『외상 죽음』)을 읽은 사람들이다. 즉 셀린 작품에 대한 그간의 이해는 대부분 이 두 초기작에 머물러왔다. 셀린 전작(全作)의 중심에 놓인 『Y 교수와의 인터뷰』는 초기 대표작들을 지나 중기에서 말년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세계의 변화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돕는 소품이자, 작가 셀린을 이루는 원형적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돌출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작가 생활 중반에 정치적 이유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셀린은 수년 후 작품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 전환점으로, 자신을 인터뷰하는 취지의 대화체 소설 형식을 택한다. “세상에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자신의 미학을 설파하려는 목적에서, 말하자면 좋든 싫든 자기 광고 격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작가 셀린의 전환점으로 기능하는 소설 『Y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는 두 가지 열쇳말은 “웃음”과 “정동(情動, émotion)”이다. 셀린은 이 작품에서 우선 “웃음” 즉 “뷔를레스크 전통을 잇는 세태 풍자와 야유, 비속성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선 우리는 『밤 끝으로의 여행』의 강렬한 비극성을 넘어선 경지의 “웃음”을, 그 “웃는 언어의 에토스”를 만끽할 수 있다. “웃음이 생명의 가열찬 자기 표명이자 그 자체로 저항이라는 얘길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밑으로 떨어지면서, 죽음과 맞대면하면서 웃는다.”(옮긴이,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 “저는 죽음의 경계의 그로테스크 속에서만 즐깁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제게 헛됩니다.”(루이페르디낭 셀린) 『Y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금의 대한민국 출판계에 견주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당시 프랑스 서점가의 심각한 불황과 이를 초래한 주범인 출판계와 독자들의 행태를 비아냥거리며 시작해, 이상하게 여겨지다 못해 기어코 낄낄거리게끔 하는 행동을 취하는 Y 교수와 셀린의 필연적으로 실패로 치닫는 인터뷰 전개 와중에, 셀린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문학관으로 향한다. 작가로서 셀린은 “메마를 대로 메마른 문어(文語)” 속에서 “구어(口語)의 생생한 정동”을 되찾고자 하며, 이 ‘인터뷰’는 결국 이러한 셀린의 “정동”을 구현하며 진행되는 셈이다.

“감정(sentiment)이나 감상에 맞서는 자신의 무기로서 셀린은 ‘정동(情動, émotion)’을 내세운다. 낭만적이고 달콤하며 소비사회의 대중 영합적인 예술 태도가 추구하는 것이 각종 ‘과잉 감정’(사랑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의 양산이라면, 그 자신의 경우처럼 안온한 삶과 손쉬운 행복의 약속으로부터 등 돌려 ‘죽음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운 없는 예술가는 세간의 몰이해와 저주, 개인적 불행을 감수하면서 정동의 생산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셀린에게 ‘정동(émotion)’은 언어의 움직임(motion)에 대한 감각(정서)이다.” (본문 171쪽)

그러므로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13권,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는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의사 데투슈로서의 면모와 작가 셀린의 문체론을 모두 담아 셀린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이 책을 필두로, 그간 초기 대표작들을 번역 소개하는 데 그쳤던 국내에서의 셀린 번역 및 연구 작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현대문학사에서 셀린의 중요성은 윤리적으로나 역사적 가치로 보나 미학적 결실로서나 후기 3부작(『성에서 성으로』, 『북쪽』, 『리고동』)에 기댄다. “셀린의 다른 힘, 즉 시간과 죽음의 변용이라는 대주제를 놓고 씨름하는 그의 장편들에 깃든 경탄할 만한 깊이와 완숙성, 유려함”(옮긴이)은 워크룸 프레스에서 김예령의 번역으로 발간될 셀린 선집에서 그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루이페르디낭 셀린 선집

『제멜바이스』(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13권 수록)
『밤 끝으로의 여행』(출간 예정)
『외상 죽음』(출간 예정)
『Y 교수와의 인터뷰』(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13권 수록)
『성에서 성으로』(출간 예정)
『북쪽』(출간 예정)
『리고동』(출간 예정)


발췌

우리 의학계가 소설 문학과 연극 분야 출신의 일부 공공연한 아첨꾼들과 열성적인 삼류 저자들이 부활시킨 각종 교태를 상당히 관대하게 참고 겪어야 할 듯 보이는 오늘날, 약간의 글재주와 종이 몇 장을 앞에 갖춘 온갖 문외한들이 앞다투어 우리의 부패상을 고발하려 들고 우리의 정신 상태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쉽사리 그 증인을 자처하는 작금, 우리의 박사 학위논문을 어느 위대한 의학자의 생애와 저작에 바치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우연히 이 인물을 취한 것이 결코 아닌바, 의학자로서의 자질과 헌신을 놓고 볼 때 결코 그에 못지않았던 여러 사람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그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의 눈길이 P. I. 제멜바이스에 멈춘 것은 그토록 아름답고 관대한 의학적 사유, 아마도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것 중 진정으로 인간적인 유일한 사유가 그의 생애 매 페이지마다 지극히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 너무나도 슬픈 시간은 언제나 행복이, 삶에 대한 이 터무니없고도 눈부신 믿음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진실에 제 자리를 물려줄 때 온다. 우리의 모든 형제들 사이에 서서 이 가공할 진실을 가장 유용하고 가장 지혜롭게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비밀과 관계하는 우리의 이 침착한 친밀함이야말로 어쩌면 인간들의 오만함이 우리 의사들에게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점 아니겠는가. (37~9쪽)

제멜바이스는 그처럼 갖가지 잔인한 불행이 잇따르는 환경마저도 결코 꺾지 못한, 나아가 적수들이 생겨날 때마다 오히려 번번이 높아졌던 꿈의 서원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는, 그토록 민감한 사람임에도, 너무나도 끔찍한 나머지 개라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날 고통의 한복판에서 살았다. 그러나 바로 그와 같이 그 모든 혼돈에 전력을 다해 자신의 꿈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발견의 세계 속에서 사는 일이다. 그것은 밤 속에서 보는 일이며, 아마도 어쩌면 세계로 하여금 자신의 꿈속에 들어가도록 강요하는 일이리라. 그는 인간들이 겪는 고통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드문 나날들의 어느 하루에 이렇게 쓴다. “친애하는 마르쿠소브스키, 나의 소중한 벗이자 따뜻한 지지자여, 나는 자네에게 내 삶이 지옥과 같았다는 사실을, 내 환자들에게 일어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로선 버티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하겠네. 특히 죽음이 삶의 두 가지 커다란 환희 사이로, 다시 말해 젊다는 사실과 새 생명을 부여하는 일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올 때 더욱 그러하네.” (97~8쪽)

뭐, 그냥 딱 잘라 사실을 말하자면, 서점가는 대단히 심각한 불황에 허덕이는 중. 다들 100000부 찍었네! 40000부 찍었네! 그러고들 우기는데 그 숫자 중 0 자 단 하나도 믿지 말라는 거지… 하다못해 400부를 찍었대도…! 말짱 거짓말이오! 얼래스…! 얼래스…! 단 하나 ‘연애담 전문지’는… 글쎄! 그럭저럭 선방이고… ‘흑색 총서’도 약간은… 그리고 ‘창백 총서’로 말하자면…. 실상엔 더 이상 아무 책도 안 팔리는 셈이니… 심각하다마다…! 영화다, 텔레비전이다, 각종 생활용품에, 스쿠터에, 2, 4, 6마력 자동차들이 책에 커다란 타격을 입히니 말이야… 왜 그 ‘할부판매’란 걸 좀 생각해보쇼! 그리고 ‘위크엔드’는 또 어떻고…! 뿐인가, 그 잘난 월 2회, 아니 3회의 휴가도 가야지…! 또 룰루랄라 크루즈 여행도 있네…! 쥐꼬리 예산아, 안녕…! 이런 이거 이 빚진 것 좀 봐…! 한 푼도 남은 게 없네그려…! 그러니 무슨 책을 사, 안 그런가…! 뭐, 캠핑카라고? 또 돈 써야지…! 책이라…? 그건 그 무엇보다도 빌리기 좋은 물건 아닌가…! 알다시피 책은 한 권당 적어도 스물… 혹은 스물다섯 명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으니… 아아, 가령 빵이나 햄이 딱 한 조각으로 그처럼 여러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한 조각으로 스물… 혹은 스물다섯 명의 소비자들에게! 그럴 수 있다면 그게 웬 횡재일꼬…! 곱절로 불어나는 빵의 기적은 당신을 몽상가로 남겨둘 일일 테지만 불어나는 책의 기적이란, 그리고 그 결과인 작가 노동의 무상성이라는 기적은 당연지사에 불과하오. 이 기적은 ‘아귀다툼의 시장’에서 세상 그 어디보다도 평온하게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도서관 열람실 등등에서 좀 태를 부리면서 벌어지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무일푼으로 남는 건 작가인 게지. 그게 원칙! (151~2쪽)

“글로 쓰인 언어 속에 정동(情動)을 불어넣는 일이지요…! 그간의 문어(文語)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는데, 그 글로 쓰인 언어에 바로 이 내가 정동을 다시 부여한 거요…! 선생에게 밝혀두는 건데…! 단언컨대 이것은 결코 시시한 막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오…! 이제부턴 어떤 바보라도 ‘글로 쓰인 것’을 통해 당신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을, 그런 비결이고 마술이오…! 문어 속에서 ‘구어’의 생생한 정동을 되찾는! 이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요…! 이것은 비록 미미하긴 해도 그러나 분명 무언가인 겁니다…!” (171쪽)

“아, 세상에! 선생은 모든 걸 데리고 간다고요?” “네, 대령…! 모든 것을요…! 8층짜리 건물들도…! 난폭하게 으르렁대는 버스들도! 표면에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는다니까요! 나는 아무것도 표면에 남기지 않소! 모리스 기둥들도, 성가신 아가씨들도, 다리 밑의 부랑자들도! 그렇소! 나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데려가오!” “다리들도 함께?” “다리들도 함께!” (268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제멜바이스
— 셀린의 탄생
— 1936년 재판본의 서문
— 필리프 이그나즈 제멜바이스(1818~65)의 생애와 저작
서문
본문
참고 문헌
부록

Y 교수와의 인터뷰

부록
— 기갑부대 데투슈 병사의 수첩
— 졸라에게 바치는 헌사

옮긴이의 글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보


지은이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 1894~961)의 본명은 루이페르디낭 데투슈(Louis-Ferdinand Destouches)이다. 1894년 5월 27일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루이 데투슈는 파리의 파사주 쇼아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루부아 소공원과 아르장퇴이 가에 인접한 공립학교 및 튈르리 가의 생조제프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에는 독일과 영국에 잠시 체류했다. 이후 파리와 니스에 위치한 여러 보석상에서 수습생으로 일한다. 1912년 입대해 랑부예에 주둔하는 기갑부대 제12연대에 배치받았으며 1914년 플랑드르 지방에서 부상을 입어 무공훈장과 함께 신체장애를 얻게 된다. 얼마간의 런던 체류 후 1916년 카메룬의 옛 독일 식민지 지역에 교역 중개인으로 지원하지만 말라리아에 걸리는 바람에 1917년 프랑스로 돌아온다. 1919년 대학 입학 국가고시를 치른다. 이어 렌과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1924년에 의학박사 논문 심사를 통과한다(「필리프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생애와 저작」). 1924년에서 1928년 사이에 국제연맹에서 일하며 미국과 서아프리카에 파견된다. 1927년부터 클리시 시 보건소에서 의사로 근무한다. 1932년, 셀린이라는 가명으로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해 르노도상을 수상한다. 1936년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이 나온다. 구소련을 방문한 후 『메아 쿨파』를 발표하고, 이어 1937년과 1938년에 『학살을 위한 바가텔』과 『시체들의 학교』를 낸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도시 생제르맹앙레에 정착하나 그즈음 전쟁이 선포된다. 마르세유와 카사블랑카를 오가는 셸라 호의 선내 의사 자격으로 승선하지만, 배는 영국 정찰선과 충돌하여 정찰선을 지브롤터 앞바다에 침몰시킨다. 이 사고로 파리에 되돌아와 당시 동원령을 받은 사르트루빌 시 의사의 후임을 맡는다. 1940년 피난기에 환자들을 이송하는 구급차를 책임지게 되고, 이어 브종 시 보건소에서 일한다. 1941년에 『꼴불견』을, 1944년에 『꼭두각시 밴드』를 출판한다. 1944년에서 1951년 사이, 망명길에 올라 독일과 덴마크에 체류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덴마크에서 체포, 투옥된다. 프랑스에 돌아온 뒤에는 뫼동에 정착해 집필을 재개했으며, 이 시기에 『다음번을 위한 몽환극』과 독일 3부작 『성에서 성으로』, 『북쪽』, 『리고동』을 쓴다. 1961년, 갈리마르에서 『Y 교수와의 인터뷰』가 출간된다. 1961년 7월 1일 사망한다.

옮긴이

김예령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7대학에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등의 『숭고에 대하여—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 안느실비 슈프렌거의 『아귀』,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등이 있다.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본문 양으뜸,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