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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서의 탄식 / 영국의 우편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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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서의 탄식 / 영국의 우편 마차
Suspiria de Profundis / The English Mail-Coach, or the Glory of Motion

토머스 드 퀸시 지음, 유나영 옮김

토머스 드 퀸시의 『심연에서의 탄식 / 영국의 우편 마차』는 문필가 드 퀸시의 산문 두 편을 엮은 책이다. 드 퀸시가 60대에 접어들며 발표한 「심연에서의 탄식」은 그가 30대 중반에 발표한 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의 속편이며, 「영국의 우편 마차」는 그가 「심연에서의 탄식」을 발표한 지 4년 후 발표한 산문이다.

삶과 죽음, 시간과 꿈

“그의 저작집 열여섯 권은 오로지 산문으로만 쓰였다. 그는 당대의 유행에 따라 수많은 주제에 대해 — 정치경제학에 대해, 철학에 대해, 역사에 대해 — 썼고, 에세이를, 자서전을, 고백록을, 회고록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 「열정적 산문」, 이 책 353쪽)

1785년생 영국 문필가 드 퀸시는 1821년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발표했다. 그리고 24년 후인 1845년 그 속편 「심연에서의 탄식」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은 1845년 『블랙우즈 에든버러 매거진』 3월, 4월, 6월, 7월 호에 네 차례 연재되었다. 익명으로 게재되었지만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속편’이라는 부제가 있어 필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하지만 편집장과의 의견 차이로 인해 글은 애초 구상했던 대로 실리지 못했고, 결국 완결되지 못했다. 1853년, 드 퀸시는 저작집 『진지하고 쾌활한 선집』(총 14권) 1~2권에 해당하는 『자서전적 스케치』 1권에 「심연에서의 탄식」 상당 부분을 수록했다. 그는 글을 완결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개정판과 묶어 출간하려 했지만,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뒤따르는 「영국의 우편 마차」는 1849년 『블랙우즈 에든버러 매거진』 10월, 11월 호에 두 편으로 나뉘어 발표되었던 글로, 1854년 드 퀸시는 두 편을 하나로 묶고 다듬어 저작집에 재수록했다.

노년의 문턱에 선 드 퀸시의 장광설을 엮은 이 책은, 나이 든 문필가를 어쩌면 평생 사로잡았던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드 퀸시는 어린 시절 누이들을 두 번 잃었다. 첫 번째는 그보다 한 살 어렸던 세 살 제인의 죽음이었다. 당시 너무 어렸던 드 퀸시는 이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뒤이은 두 번째 죽음은 달랐다. “그 사건이 일어난 밤은 내 삶 깊숙이까지 뒤쫓아 왔다. 아마도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37쪽) 그보다 두어 살 많았던 엘리자베스는 여덟 살 몇 개월 만에 숨을 거뒀고, 이 손위 누이의 시신 앞에 선 드 퀸시는 아편이 시간의 차원을 증폭하는 것과 반대되는 경험을 한다. “아편의 격상시키고 증식시키는 힘이 주로 작용하는 차원은 바로 시간이다. 이때 시간은 무한히 유연해지며 측정 불가능한 소실점에 닿을 때까지 늘어나는데, 그 감각을 깨어 있을 때의 심상한 인간 생활에 상응하는 척도로 계산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로 느껴진다. 별들의 공간에서는 지구 궤도나 목성 궤도의 지름을 척도로 삼아 계산하듯이, 어떤 꿈을 꾸는 동안 실제로 체험하는 시간을 세대 단위로 가늠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1천 년 단위로 가늠하는 것도 우습다. 지질시대의 단위로 가늠하는 것도, 그 단위가 생각보다 유한하다면 역시 우습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일생을 통틀어 오직 이때만은 그와 정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왜 이를 아편과 연관시켜 이야기하는가? 여섯 살 먹은 아이가 아편에 취해 있었을까? 전혀 아니다. 다만 이때에 아편의 작용이 정확히 반대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짧은 막간이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확장되는 대신에, 긴 시간이 일순간으로 수축되었다.”(49쪽) 이렇게 「심연에서의 탄식」은 ‘시간’의 차원에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과 연관된다.

또한 드 퀸시가 유년기에 겪은 죽음과 청년기에 접한 아편의 경험은 ‘꿈’으로도 한데 묶인다. “유년기의 경험은 아편과 동맹을 맺고 자연적으로 공동 작용한 힘이었다. 유년기의 경험을 서술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논리적으로 볼 때, 꿈꾸는 능력의 경련과 이 경험의 관계는 이것과 아편의 관계와 동일하다. 내 유년기 꿈의 극장에는 이상화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을 연출하고 채색하는 초자연적인 힘은 두 원인이 결합한 이후에야 처음으로 발달했다. 이제 그로부터 12년 반이 흘러 옥스퍼드에 있는 내 모습을 가정해 보자. 나는 청춘의 찬란한 행복 가운데 있으나 이제 아편에 최초로 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최초로 유년기의 소요가 강렬히 재개되었다. 이제 최초로 그것은, 독립적이고도 동시적인 아편의 자극 아래서 새 생명을 얻은 힘과 장대함으로 두뇌를 엄습했다.”(104쪽) 죽음과 아편은 드 퀸시의 펜 아래 이렇게 인간의 ‘시간’과 ‘꿈’을 움직이게 된다.

한편 「영국의 우편 마차」는 드 퀸시가 당시 신문물이었던 우편 마차와 말의 빠른 속도에서 움직임의 희열과 동물적 아름다움 및 힘을 발견해 내고, 그 체계가 수행했던 정치적 임무(승전보 전달)에 경도되어 써 내려간 산문이다. 드 퀸시는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 시절 접했던 우편 마차의 바깥쪽 좌석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에 이어, 1805년 트라팔가르해전부터 1815년 워털루전투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줄줄이 승전 소식을 전했던, 더불어 누군가에게는 전사(戰死) 소식으로 인한 비탄을 안길 수밖에 없었던 우편 마차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화려하고도 안타깝게 그려낸다. 또한 한밤중 맨체스터발 글래스고행 우편 마차를 타고 웨스트모얼랜드를 향해 가다 마부의 졸음 때문에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게 되면서 길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역시 마차를 탄 두 남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간신히 피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펼쳐 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굽은 길로 들어선 순간 그 광경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내 꿈속으로 밀고 들어와 영원히 자리 잡았다.”(288쪽) 뒤이어 장대한, 공포의 황홀 가득한 꿈 내지 환상을 피날레 삼아 장식한다(「갑작스러운 죽음의 주제에 의한 꿈의 푸가」). 드 퀸시는 이렇게 다시 죽음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해설

“때로 그는 농담하지만, 그건 대체로 듣기 괴롭다. 때로 그는 이야기하지만, 그건 언제나 생뚱맞다. 대개의 경우 그는 장광설을 펼치지만, 그 속에 있을지 모를 일체의 흥밋거리마저 음울하게 사그라들어 모래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우리는 더 이상 읽어 줄 수가 없다.” (버지니아 울프, 「열정적 산문」, 이 책 360쪽)

이 책에는 「옮긴이의 글」을 대신해 버지니아 울프가 토머스 드 퀸시에 대해 쓴 비평문 세 편(「열정적 산문」 「드 퀸시의 자서전」 「영국의 우편 마차」)을 실었다. 드 퀸시에 대한 울프의 예리한 비판이 드 퀸시를 더욱 정확히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리라는 믿음에서다.

울프는 드 퀸시를 “예외이자 혼자”로, “자신만이 속하는 하나의 경지”를 이룬 산문가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가 “사색을 너무 많이 하고 관찰은 너무 적게” 한다고 꼬집는다. 또한 타고난 자서전 작가로서 드 퀸시가 쓴 이 모든 장면들을 다 읽고 난 뒤, 우리는 실은 그가 알려 주고자 했던 것들만 알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울프는 드 퀸시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은 언어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온갖 종류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이런 재능은 그를 책 속에 홀로 가두었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하게 막는 어떤 자질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실 그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 그는 언제나 꿈꾸고 있었다. 이는 아편을 복용하기 오래전부터 지녔던 능력이었다.”(357쪽)

드 퀸시는 삶보다 생생했던, 그리하여 삶을 확장하고 완성했던 환상 속에서 “열정적 산문 양식”을 고안한 꿈의 산문가였다.


발췌

나는 아름다운 햇빛을 뒤로하고 시신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 천사의 얼굴이 누워 있었다. (…) 나는 잠시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공포가 아닌 경외가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동안, 엄숙한 바람이 — 인간의 귀에 닿은 가장 애통한 바람이 — 한 줄기 불기 시작했다. 애통이라! 그 말로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지난 100세기 동안 죽음의 벌판들을 휩쓸었던 바람이었다. (…)
그 순간, 내 귀가 그 아이올로스의 음률을 감지했을 때, 내 눈이 생명의 황금빛 충만함으로, 바깥에 펼쳐진 천상의 장려함으로 가득 찼을 때, 그리고 돌아서서 누나의 얼굴을 뒤덮은 서리로 시선을 돌렸을 때, 황홀경이 나를 덮쳤다. 아득히 푸른 하늘의 꼭대기에 천정(天頂)이 열리고 끝없는 수직의 통로가 뚫린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통로를 따라 역시 끝없이 밀려 올라가는 격랑을 탄 것처럼 솟아올랐고, 그 격랑은 하느님의 옥좌를 향해 굽이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옥좌 또한 우리 앞에서 달리며 계속 멀어져 갔다. 도주와 추적은 영원히 계속될 성싶었다. 서리가, 점점 짙어지는 서리가, 차디찬 죽음의 바람이 나를 밀어내는 듯했다. 나는 잠들어 있었다. — 얼마나 오래 잤는지는 알 수 없다. 서서히 제정신이 들어 보니, 나는 아까처럼 누나의 침대 곁에 서 있었다. (46~8쪽)

그러나 그 여인은 — ! 오 맙소사! 언제쯤 그 광경이 내 꿈에서 사라질 것인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의 물건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두 팔을 미친 듯이 하늘로 내저으며, 혼절하고, 기도하고, 외치고, 절망하는 광경이! 독자여, 이 사건의 제 요소들을 스스로 가늠해 보라. 이 유례없는 상황의 주변 정황을 내가 당신 마음에 일깨우는 것을 용서하시라. 저 거룩한 여름밤의 고요와 깊은 평화로부터 — 감미로운 달빛과 새벽빛과 꿈결 속 빛의 감상적 결합으로부터 — 살랑이고 속삭이고 소곤대는 저 남자의 애정 어린 밀어로부터 — 별안간 계시로 열린 창공의 방들로부터 — 별안간 그녀의 발 앞에 입을 벌린 대지로부터 — 죽음, 그 왕관을 쓴 유령은, 폭우의 물벼락처럼, 그 공포의 마차를 총동원하여,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그녀를 덮쳤다.
그 순간은 곧 지나갔다. 질주하는 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나무 그늘이 드리운 통로의 끝으로 데려다 놓았다. 거기서 길이 직각으로 꺾이며 우리 마차는 좀 전에 왔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굽은 길로 들어선 순간 그 광경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내 꿈속으로 밀고 들어와 영원히 자리 잡았다. (288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심연에서의 탄식
들어가며 이르는 말
1부
어린 시절의 고통
팰림프세스트
레바나와 슬픔의 모후들
브로켄의 유령
1부 피날레: 사바나라마르
2부

영국의 우편 마차
승리와 함께 내려가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환영
갑작스러운 죽음의 주제에 의한 꿈의 푸가

부록
A. 「심연에서의 탄식」과 관련된 수고와 기타 자료들
B. 「영국의 우편 마차」와 관련된 수고와 기타 자료들

해설 / 버지니아 울프
열정적 산문
드 퀸시의 자서전
영국의 우편 마차

토머스 드 퀸시 연보


지은이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859)는 영국의 문필가이다. 맨체스터 출신으로 직물 수입상의 아들이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하고 고전 지식에 해박했지만 그리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맨체스터 그래머스쿨을 도망쳐 나와 웨일스 북부와 런던을 떠돈 드 퀸시는 위장병에 걸리고 급기야 그 진통제로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한편 어머니, 후견인들과 화해하고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결국 학위를 받지 못했다. 워즈워스와 콜리지 등 우러르던 호반시인들을 만나 교류하다가 1818년 『웨스트모얼랜드 가제트』 편집 주간으로 임명되지만, 빚과 아편중독에 시달리다 이듬해 사임한다. 이어 『블랙우즈 매거진』에 글 몇 편을 기고하고, 1821년 『런던 매거진』에 ‘자전적 소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싣고, 그다음 해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1826년 다시 『블랙우즈 매거진』에 기고하기 시작해 1827년 연쇄살인마 존 윌리엄스의 살인을 예찬한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을 발표하고, 이후 매체를 넓혀 나가며 평생 글을 쓴다. 그중 1845년 발표한 「심연에서의 탄식」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의 속편 격이었으며, 에세이 「영국의 우편 마차」는 시적 산문의 진수를 보여 준다.
드 퀸시는 채무불이행으로 수차례 기소되고 투옥되며 일생의 대부분을 가난한 매문가로 살았다. 그러나 그 글의 가치를 알아본 보들레르와 포가 드 퀸시의 저작들에서 영감을 받는 등 문필가로서 당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1859년, 드 퀸시는 자신의 저작집 『진지하고 쾌활한 선집』을 편집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선집은 1860년 14권으로 완간되었다.

옮긴이

유나영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삼인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리처드 플래너건의 『굴드의 물고기 책』, 토머스 드 퀸시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루이스 캐럴의 『운율? 그리고 의미? / 헝클어진 이야기』 등이 있다.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lectrice.co.kr)’에서 오탈자와 오역 신고를 받고 있다.


편집

김뉘연, 홍지은

디자인

본문 황석원,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