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추방자들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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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추방자들 (개정판)
The Wretched of the Screen

히토 슈타이얼 지음, 김실비 옮김, 김지훈 감수

슈타이얼의 작업은 극도로 풍성하고, 농밀하며, 보답을 준다. 그는 미술 세계의 심장부에서 추문을 파헤친다. — 『가디언』

이 주술서를 찾아서, 당장 실천하라! — 『아트링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 히토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The Wretched of the Screen)』 개정판. 최근 전 세계 아트 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2017년 『아트리뷰』)된 그는 작업과 글, 강연을 통해 동료 작가와 큐레이터는 물론 현대 이론가들에게 줄곧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왔다.

개정판은 이 책이 함의하는 두 가지 차원, 즉 동시대 미술 실천으로서 작업과 미술 담론 및 이미지 정치학을 논하는 이론서로서 차원을 더욱 엄밀히 다룬다. 후자를 위해 비디오, 영화 이론 및 미디어 연구자 김지훈의 감수와 주석을 더했으며, 히토 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 프로젝트를 ‘포스트 재현’, ‘포스트 진실’, ‘포스트인터넷’이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 해제를 실었다. 한편 한국어판 초판(2016)에 추가되었던 「면세 미술(Duty Free Art)」(2015)과 「총체적 현존재의 공포: 미술 영역에서 현전의 경제(The Terror of Total Dasein: Economies of Presence in the Art Field)」(2015)는 워크룸 프레스에서 출간할 히토 슈타이얼의 후속작 『면세 미술: 전 지구적 내전 시대의 미술(Duty Free Art: Art in the Age of Planetary Civil War)』 (가제)에 수록될 예정이다.

자유 낙하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법

히토 슈타이얼의 글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지점을 환기하면서 시작하곤 한다. 만약 우리가 디딘 땅이 굳건한 게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세상과 함께 자유낙하 중이라면? 첫 번째 글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부터 그는 독자를 추궁한다. 그로부터 당신이 믿고 있던 세상, 보고 있는 이미지, 향유하는 미술에 대한 의혹이 떠오른다. 근대를 가능케 했던 주요 장치로서 선형 원근법을 다룬 그의 고찰은 어느덧 21세기 들어 우리에게 익숙해진 항공 시점으로부터의 시선 역시 가짜임을, 우리에게 더 이상 단단한 토대란 없음을 밝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고 되묻는다. 그런데 애초에 우리에게 근본으로서 토대가 필요했던가? 자유낙하를 만끽하며 대열을 편성하고, 그 아찔한 낙하로부터 오는 현기증과 조우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대처하는 법이 아닐까?

이렇듯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현실을 전복하는 그의 언설은 유명한 글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에서도 두드러진다. 해상도와 선예도(鮮銳度)로 가치를 평가받는 이미지의 위계질서 속에서 버림받은 이미지들, 즉 이리저리 복사되고, 편집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그러는 와중에 흐릿해진 이미지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들은 공식적인 스크린에서 추방당해 디지털 세계의 황무지를 떠돈다. 이 이미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그리고 모든 것을. 슈타이얼은 “해상도와 교환가치와는 별도로 우리는 속도, 강도, 확산으로 정의되는 또 다른 가치 형식”을 현시대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새로운 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가난한 이미지들이 수행하는 임무를 책 전체를 관통해 보여준다. 가령 「지구의 스팸: 재현에서 후퇴하기」에 따르면, 이미지스팸은 놀랍게도 현실 세계에 대한 이중 스파이로서 우리에게 현대 사회에 만연한 감시의 눈길을 피할 피난처를 제공해준다. 진짜냐고? 사실 당신은 이미지스팸을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기에 그들이 진짜 어떤 모습인지, 왜 늘 웃고만 있는지, 우리가 보지 않을 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 않은가.

동시대 미술이라는 스크린

히토 슈타이얼의 글은 또한 동시대 미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회적 공장으로서 미술관을 가리켜 그는 서슴없이 “열성껏 무급 노동하는 인턴들을 직원으로 둔, 문화 산업의 공식 대리점”이라 칭한다. 이 경제 안에서는 관람객조차 (관람이라는) 노동을 피할 수 없다. 아니 온 세상으로 확장된 미술관은 출구를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삶과의 합일이라는 예술의 오랜 숙원이, 오늘날 예술에 점령당한 삶으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술인지 뭔지를 가끔 접할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예술이 어떻게 삶을 점령하냐고? 아마도 다음 중에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항목이 있을 것이다. 예술이 한없는 자가 수행으로 둔갑하여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가? 아침에 깨면 자신이 일종의 복제물처럼 느껴지는가? 늘 자기를 전시하고 있는가?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앞에서 미화, 개선, 승격되거나 그렇게 되고자 한 적이 있는가? 허물어져 가는 옆 건물에 붓을 들고 다니는 애들 몇 명이 이사 온 탓에 집세가 배로 뛴 적이 있는가? 당신의 감정이 디자인된 경험이 있는가, 아니, 당신의 아이폰이 당신을 디자인한다 여겨지는가? […] 일회성 미술 전시에 시의 문화 예산 가운데 무지막지한 분량이 전용되는 도시에 살고 있는가? 착취적 은행이 지역의 개념 미술을 사유화하는가? 이 모든 사례가 예술적 점령의 징후이다.”

또한 동시대 미술은 자신의 분관을 세계 도처에 흩뿌리며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화하는 주요 도구이다. “동시대 미술은 예측을 불허하고, 설명되지 않으며, 반짝거리고, 변덕스럽고, 기분파이며, 영감과 천재들에 이끌린다. 독재를 꿈꾸는 모든 과두정권이 스스로를 그렇게 연출하고 싶을 법하게 말이다.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는 독재자를 지향하는 모든 이의 자화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이들에게 정부란 잠재적으로, 그리고 위험하게도,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인권이 침해당하는 나라라고?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술관을 지으면 된다!” 히토 슈타이얼의 글 곳곳에서 이렇듯 우리는 누추한 현실을 가리는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동시대 미술과 맞닥뜨린다.

해동하라. 가속하라. 거주하라. 점령하라

슈타이얼의 글은 늘 현실 그 자체로 우리를 이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가 맞이한 자유로 이어지고, 그것은 “시민적 자유의 향유가 아니며, 불확정적이고 예측불허의 미래로 던져진 많은 사람들이 으레 경험하는, 자유낙하의 자유”임이 드러난다. 모든 노동이 직업으로 전환된 오늘날 “하루를 마치고 사람들은 직업 현장을 떠나 집에 가서, 이전에는 노동이라 불렸던 일들을” 수행한다.

또한 그는 동시대 미술과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가로서 그 속에 뛰어든다. 때로는 스페인 내전 당시의 암매장지를 발굴하며 실종자들이 그들의 사체로써 남긴 증언을 어루만지고, 터키에서 처형당한 친우의 흔적을 애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작업과 연동되어 현실 세계에 개입한다. 암담한 현실을 한탄하거나 그에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정면으로 돌파할 (혹은 우회할) 길을 찾아내고, 행동을 촉구한다. 그의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선동이다. 산산조각 난 현실의 파편들을 보여주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를 다시 편집하자. 재구축하라. 재배치하라. 부수라. 접합하라. 낯설게 하라. 해동하라. 가속하라. 거주하라. 점령하라.” 스크린에서 추방당한 이미지들이 기거하는 곳, 히토 슈타이얼의 글에서 우리는 그곳이야말로 우리에게 허락된 공유지이자 점령의 영토임을 알게 된다.


발췌

수십만 년 후면 또 다른 은하의 누군가가 우리 행성에서 자본주의 교리에 인질로 잡힌 현시대의 고통을 가엾게 여기며 구경할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한 외계 지능체는 우리의 기술적 세련과 극단적인 윤리적 우매함의 그 믿기 힘든 혼합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 책은 외계인이 그 의미를, 혹은 적어도 설명을 조금쯤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11쪽)

누군가는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구든 좋으니, 무엇이 진짜인지 보여달라. 빈곤한 이미지는 더 이상 진짜에 대한, 진짜 원본에 대한 것이 아니다. 대신 이미지 자체의 실제적인 존재 조건들, 즉 군집형(swarm) 유통, 디지털 분산, 균열되고 유동적인 시간성들에 대한 것이다. 이는 순응주의와 착취에 대한 만큼이나, 반항과 전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현실에 대한 것이다.(59~60쪽)

사실 정치 영화란 이들이 항상 상영되었던 곳과 정확히 같은 곳에서 지금도 매우 자주 상영된다. 오늘날 십중팔구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구 공장들에서 말이다. 방음이 최악인 화랑, 미술 공간, 화이트큐브에서, 분명 정치 영화가 선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또한 동시대적 생산의 온상이 되었다. 이미지, 용어, 생활 방식, 가치의 생산, 전시 가치, 투기 가치, 제의 가치의 생산, 진중함을 더한 엔터테인먼트의 생산, 거리를 뺀 아우라의 생산 말이다. 이 공간은 열성껏 무급 노동하는 인턴들을 직원으로 둔, 문화 산업의 공식 대리점이다.(83쪽)

동시대 미술은 상표 없는 상표명으로서 거의 무엇에든 부착될 수 있다. 즉 동시대 미술은 극단적인 변신을 필요로 하는 장소들을 위한 새로운 창조적 필수 조건을 과대하게 선전하는 속성 주름 제거술에도, 상류층 기숙사제 학교 교육의 엄중한 쾌락과 결합한 도박의 서스펜스에도, 그리고 현기증 나는 규제 완화로 붕괴된 혼란스러운 세계를 위한 허가된 놀이터에도 부착될 수 있다. 만약 동시대 미술이 답이라면, 질문은 곧 “자본주의는 어떻게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였을 것이다.(125쪽)

전위주의의 희망은 예술이 삶에 녹아들어 혁명의 요동에 주입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비약해보자면 삶은 예술에 점령되었다. 왜냐하면 예술을 삶과 일상적 실천으로 되돌리고자 했던 애초의 시도가 점차 일상적 습격으로, 종국에는 항상적 점령/직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새 삶을 침략한 예술은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법칙이 되었다. […] 삶으로 포섭된 예술은 한때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정치적 기획이었으나, 예술로 포섭된 삶은 이제 미학적 기획이며 정치의 전면적인 미학화와 일치한다.(145~46쪽)

두터운 전파 층이 초 단위로 지구에서 송신된다. 우리의 편지, 스냅사진, 내밀하거나 공식적인 통신, 텔레비전 방송, 문자메시지가 지구를 떠나 원형 파장으로 떠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욕망과 공포를 실은 지질학적 건축이다. 수십만 년 후면 외계 지능체가 우리의 무선통신 기록을 수상쩍게 여기며 샅샅이 살펴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생명체가 실제 자료를 보면서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상상해보라. 왜냐하면 무심코 깊은 우주로 발신된 사진(picture)이 사실은 스팸일 것이기 때문이다.(205쪽)


차례

들어가며
서문 /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자유낙하: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
미술관은 공장인가?
항의의 접합
미술의 정치: 동시대 미술과 포스트 민주주의로의 이행
미술이라는 직업: 삶의 자율성을 위한 주장들
모든 것에서의 자유: 프리랜서와 용병
실종자들: 얽힘, 중첩, 발굴이라는 불확정성의 현장
지구의 스팸: 재현에서 후퇴하기
컷! 재생산과 재조합

감사의 말
도판 목록
옮긴이의 글
해제 — 포스트 재현, 포스트 진실, 포스트인터넷: 히토 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 프로젝트 / 김지훈


저자, 옮긴이, 감수자

히토 슈타이얼은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이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아트를 강의하며, 제11회 광주비엔날레,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 뉴욕 현대미술관,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제12회 카셀 도쿠멘타 등의 단체전 및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뉴욕 아티스트 스페이스, 에인트호번 판 아베 미술관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가졌다.

김실비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 이론과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아트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신자유주의적 현세의 의미를 찾는 영상 설치 작업을 하면서 서사의 구축과 위배를 반복한다. 프라하 네반 콘템포, 서울 인사미술공간, 스페이스 오뉴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제9회 미디어시티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신 베를린 쿤스트페어라인(NBK), 서울시립미술관, 리얼 DMZ 프로젝트 등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7회 신도 작가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김지훈은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부교수이다. 저서로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 Hybrid Moving Images in the Post-media Age (Bloomsbury, 2018/2016), 번역서로 『북해에서의 항해』(2017),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2005)가 있다. 실험영화 및 비디오, 갤러리 영상 설치 작품, 디지털 영화 및 예술, 현대 영화 이론 및 미디어 연구 등에 대한 논문들을 다수의 국내 및 해외 저널에 발표했다. 현재 두 권의 저작 Documentary’s Expanded Fields: New Media, New Platforms, and the Documentary와 Post-vérité Turns: Korean Independent Documentary in the 21st Century를 작업 중이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