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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야생에 있었다

그들은 야생에 있었다
they were in the wild

마텐 스팽베르크 지음 / 이경후 옮김

『그들은 야생에 있었다』는 2020년 10월 9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회 옵/신 페스티벌 기간 동안 동일한 제목으로 축제에서 선보였던 마텐 스팽베르크의 수행적 글쓰기 작품을 담은 책이다. 스팽베르크는 축제 기간 중 매일 온라인에 새로운 글을 한 편씩 게재하며 수행적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떨어져 있지만 함께하기’를 실험했다. 춤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예술과 생태계, 예술이 기술로 매개되는 현상 등에 관한 개인적인 성찰이 총 20편의 글에 담겼다. 특히 스팽베르크는 춤을 둘러싼 모든 담론이 영어로 매개되고 있는 국제 무용 현장에 비판을 제기하며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국어로만 글을 공개했으며, 이를 담은 책 역시 국문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옵/신 페스티벌 2020』과 함께 세트로 제공됩니다.


발췌

모든 것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진짜 어려운 과제는 대피를 하거나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 한복판에, 마치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남아 속도를 바꾸는 일이다. 고집스럽게 그곳에 발을 붙인 채 ‘지금 여기’를 일궈 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몰두하는, 우리가 천착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조건들, 그 환경의 생태계들을 바꾸는 일 말이다.(18쪽)

춤을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기보다는 춤이 바로 내 옆에 자리한 듯 나란히, 때로는 만나지만 결코 나와 포개지지 않는 듯 춤추기. 춤을 내 것으로 만들기보다 나 자신, 나의 정체성, 관계, 결정과 행동, 심지어 나의 기억, 꿈, 생각을 춤에게 맡겨 두고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35쪽)

그럼 생태 문제에 관해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사소한 문제, 아니면 진짜 문제? 회복 탄력성, 아니면 끈기? 세계 종말을 20분 지연시킬 약간의 CO2 감소로 괜찮은가? 아니면 당신이 작동하는 방식, 삶을 꾸리는 방식을 바꿀 준비가 되었나? 이세계와 미래 세대들의 세계에 활기를 주기 위해 그 방식을 뭘로 바꿔야 하는지 모른 채여도? 당신이 힘을 보탤 그 세상이 인간 없는 세상일지라도?(70쪽)

좋다, 그럼 오늘날 퍼포먼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냥 물어보는 거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미술관이나 상품 구조를 의문시하는 것일 리도 없고, 자본주의를 중단시키거나 소비 사회를 급정거시키는 것일 리도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특히 구 서구에서라면, 어쩐지 다양한 신체나 체현 형식을 관객들에게 보여 준다거나 인지시키는 게 목적일 리도 없을 것이다. 일단 그런 것이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나와 있기 때문인데,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83쪽)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에게 춤이 사실상 필수가 아닌 만큼 춤도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춤은 당신의 승인을 요구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할 줄도 안다. 당신의 상상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진들 춤은 문제 삼지 않는다. 춤은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지도, 권한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람객이 체험과 별개로 자신만의 권한성을 발생시킬 수 있게 해 준다. 그 체험을 보충할 수 있는 권한, 당신의 상상이 창조해 낸 그러한 권한을.(89쪽)

오늘날 예술이 경험하는 위기는 예술을 문화로 바꾸고 싶어 하는 권력과 영향력 있는 힘들의 욕망이다. 예술은 여러 문화 안에서 창조, 공개, 보급되지만 문화가 아니다. 예술은 들리지 않을지라도 주장을 내세우는 자율적 목소리들에 의해 운반되며, 문화는 잘 보이려는 중얼거림과 웅얼거림의 오케스트라다. 문화는 훌륭한 것이고 명백히 삶의 필수 조건이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으면서 변화의 약속을 전달하는 예술이 아니다.(124~125쪽)


차례

나는 극장이 좋다
무엇이든 허용될 때
커닝햄의 역설
공공장소 1
공공장소 2
공공장소 3
대중이란 무엇인가
실천 기반 무용 1
실천 기반 무용 2
예술은 정보가 아니다
생태계, 그치만 어떻게? 1
포스트휴먼인지 뭔지
생태계, 그치만 어떻게? 2
셜록 홈즈의 바이올린
나는 곧 떠나야 해
그래도 상상력을 쓰세요
날 믿어요
반복되는 질문들
당신 언제까지 할 거예요?
극장도 나를 좋아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마텐 스팽베르크
여러 영역에 걸쳐 활동하는 안무가, 무용 이론가. 확장된 영역에서의 안무, 다양한 형식과 표현을 통한 안무의 실험적 실천 등이 주된 관심사이며 다층적 형식을 띤 실험적 실천을 통해 이 문제들에 접근해 왔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스톡홀름의 무용 대학교에서 안무학을 이끌었고 2011년 『스팽베르크주의』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생태학과 후기 인류세 미학에 관한 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이경후
공연 관련 통번역을 하고 있다.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 페스티벌 봄 등에서 일하고 뮤지컬과 연극 등의 연출 통역을 했다. 책 『a second chance: 눌변』과 『거의 모든 경우의 수: parlando』를 만들었다.


편집

김신우, 박활성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