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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적 아방가르드
절판

변형적 아방가르드
Transformative Avantgarde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지음, 길예경·정주영 옮김

폴란드 출신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문집. 2017년 7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보디츠코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도록 돕는 기구/기기 작업, 그리고 이들의 상처와 증언, 치유의 희망을 기념비와 같은 공공 공간에 투사하는 대규모 프로젝션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왔다. 이 책은 그가 지난 수십 년간 쓴 에세이, 선언, 제안, 연설, 인터뷰 가운데 26편을 엄선해 수록했으며,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호소문」(2015)은 처음으로 출판되는 글이다.

“도시는 민주주의의 무대이자, 성패를 건 내기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핑턴 포스트』에는 보디츠코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기시감이 느껴지는 1980년대 사진 한 장이 실렸다. 뉴욕의 트럼프 타워를 배경으로 어느 노숙인이 보디츠코가 만든 「노숙자 수레」(1988~89)를 끌고 가는 사진이었다. 그 하루 전인 2016년 11월 14일에는 『아트넷』에 같은 사진과 함께 보디츠코가 쓴 글이 소개되었다.

“나는 1980년대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계 거물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부동산 붐과 노숙인의 급격한 증가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부동산 중계업자와 기업가들이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가난한 이들이 감당할 만한 집세와 장소들은 파괴되었다. 트럼프 타워는 이런 광경에 원인 제공자이자 상징적인 장소였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기 진행된 도시 개발 정책은 1987년 말, 뉴욕 시에만 7만여 명의 노숙인이 존재할 만큼 극심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보디츠코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해 노숙인의 긴급한 필요에 부응하면서도,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기구를 제안했다. 노숙인과 직접 대화하며 함께 만든 「노숙자 수레」(1988~89)는 노숙인에게 쉼터가 되어줌은 물론, 생활에 필요한 집기와 그들이 모은 빈병, 캔을 보관할 공간을 제공했으며, 무엇보다도 도시에 사는 거주민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노숙인들이 수레를 끌고 다니자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또는 관심두지 않았던) 그들이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수레로 다가와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라든가 ‘왜 노숙인이 되었나요?’라는 질문 대신 수레의 디자인, 색, 가격, 바퀴의 위치 등을 이야기했다.”

보디츠코의 작업에서 도시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배우다. 그곳은 모든 시민에게 평등과 자유를 약속함과 동시에 매일매일 그들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장소이며, “새로운 문화와 실천과 담론에 열려 있겠다고 약속하지만, 늘 이러한 약속을 이행해내지는 못하며 충분히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도시를 무대로, 이방인으로 인식되거나 “기껏해야 용납되는 사람들”, 즉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그가 만든 기기/기구를 착용하고 공중 앞에 나타남으로써 도시를 치유하는 환자이자 의사가 된다. 이민자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외국인 지팡이」(1992), 이를 더욱 강화된 장치로 개발한 「대변인(마우스피스)」(1993), 이방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복잡하게) 드러낸 「아이기스」(1998), 소외된 중고등학생을 위한 「탈-무장」(1999~2000),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는 참전 군인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전쟁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비-전쟁’ 문화로 나아가도록 돕는 「참전 군인을 위한 헬멧」(2015) 등은 대표적이다. 여기서 “이방인은 승자의 역사를 중단시키고 패자의 전통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예언자 혹은 전령의 역할을 한다. 이방인의 경험이 공유되고 이해받을 때마다 도시는 되살아나고 우리 모두를 위한 민주적 희망이라는 그 의식을 되찾는다. 결국 한 명의 목소리 없는 이방인을 치유하는 일은 도시 전체를 치유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가 때로 위험한 일이자 전쟁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1943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순수미술아카데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보디츠코는 1970년대 그가 열망하는 민주주의를 찾아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로부터 40여 년에 이르는,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여정의 시작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는 1977년에 민주주의를 찾아 당시 비민주적이었던 폴란드를 떠났다. 그러나 나에게 구체적인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레디메이드 혹은 기성품과 같은 민주주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나는 비민주적 체제에서 우리가 늘 받아온 나쁜 ‘선물/현재(presents)’와는 반대로 민주주의 체제는 좋은 ‘선물/현재’를 줄 거라 잘못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민주주의를 발견하고 그 ‘선물/현재’를 받겠다는 나의 희망이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국가와 도시의 새로운 경계들을 횡단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명명한 ‘문제를 일으키는 기능주의(scandalizing functionalism)’ 혹은 ‘의문의/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인(interrogative design)’과도 연결된다.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그러한 디자인이 생성된 조건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그가 전 세계 40여 개 이상의 도시에서 진행해온 프로젝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미 그 자체로 지배적이고 다른 모든 것을 시야에서 가리는 일종의 프로젝션”으로서 도시가 제공하는 배타적 기억에 맞서 진실을 투사하는 것이다. 이로써 보디츠코는 참여자이자 프로젝션 작업의 핵심을 이루는 ‘내부의 공중(inner public)’과 함께 도시의 밤마다 일어나는 악몽 같은 폭력 행위를 증언하고(크라쿠프 시청사 프로젝션, 1996), 원폭으로 고통 받는 생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히로시마 프로젝션, 1999),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값싼 (주로 어린 여성)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유지해온 ‘마킬라도라’ 산업의 민낯을 고발하고(티후아나 프로젝션, 2001), 합법적 신분을 온전히 갖지 못한 이들을 올려다보게 하고(미등록 이주 노동자, 2006), 유혈로 얼룩진 분쟁의 현장에 평화의 숨을 불어넣어왔다.(데리-런던데리 공공 프로젝션, 2013)

그러나 보디츠코에게는 이러한 예술 실천이 바로 사회에 열린 소통을, 민주주의를 가져오리라는 순진한 생각이 없다. 반대로 그에게 민주주의는(공공 공간은) “우리 자신에게, 타자에게, 그들이 또 다른 타자에게 공간을 열어젖힐 때마다” “계속해서 발명되고, 자극받고, 처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잠시나마 생성될 수는 있지만 “유령과 같아서 즉시 사라지”는 민주주의를 찾아 헤매고, 배제를 대가로 달성되는 민주적 합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가시화되고, 들리지 않는 모든 것이 들림으로써 서로 경합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열어 보인다.

“예술은 스스로의 ‘아방가르드’를 ‘재창출’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은 그가 2014년에 쓴 「변형적 아방가르드: 현재적인 것의 선언」에서 비롯했다. 이 글은 그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썼던 「공공 미술로서 아방가르드: 어떤 전통의 미래」(1987)를 후속하는 글이다. 그에 따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방가르드는 해체적 진단 후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아방가르드의 윤리적, 정치적 기운이 우리의 예술적 혈관을 따라 멈추지 않고 순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우리는 부검도 적절한 애도도 하지 않고 아방가르드를 생매장했다. 그 관에 마지막 못을 박은 후, 우리는 더 이상 선포도, 표명도, 통찰력 있는 프로젝트도, 느낌표와 함께 굵은 활자체로 작성한 글도, 강한 어조의 목소리로 말하는 일도 없을 거라는 무언의 협정을 맺었다. 우리는 새로운 유토피아와 통찰력 있는 디자인과 거리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결론을 내린 대로 이러한 시도들은 너무 순진했고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는 추진력으로서, 그리고 논쟁과 도발, 불일치의 사건과 행동을 창출하는 존재로서 지금 우리에게 아방가르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의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그러한 윤리적, 미적, 정치적 야심과 범위 및 규모의 예술적 ‘실패’를 더 겪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 이야기한다. 아방가르드는 ‘실패’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목소리는, 이윽고 우리를 보디츠코 작업의 핵심 사상인 ‘파르헤지아(parrhésía)’, 즉 미셸 푸코가 말한 ‘두려움 없는 발화(fearless speech)’로 이끈다. “푸코에 따르면, 파르헤지아는 자기가 진실되다고 믿는 바를 관념의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켜 드러내는 실천이다.” 보디츠코에게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은 스스로 현실에 저항하고, 개입할 뿐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긴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현실의 조건에서 벗어나 ‘파르헤지아를 실천하는 자’로서 설 수 있도록 도울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는 목소리를 내고, 찾고, 들리게 해온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스스로를 아방가르드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도 다른 이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도 두렵지 않다. 내가 유일하게 두려운 일은, 현재 세계에 비판적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할 때 충분히 아방가르드를 실천하지 못하거나 못했던 일이다.”

“아울러 오늘 한국에서 보디츠코를 주목해야 할 이유도 적지 않다. 동시대의 이방인/생존자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역개발에 밀려난 거주자들과 자영업자들,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학교폭력과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 사회 진출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청년 세대, 세월호를 비롯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낳은 희생자들. 그들 모두가 지팡이를 들고, 마우스피스를 차고, 갑옷으로 무장한 채 도시를 누비며 폭로하고, 연대하고, 저항하고, ‘환자이자 의사’로서 도시를 치유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보디츠코의 말처럼, “예술이 아니라 삶의 이름으로.”


발췌

디자이너들은 세상에 ‘대해’ 혹은 세상에 ‘관해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작업해야 한다. 용인할 수 없고 모순되는 세상에서, 책임을 다하는 민감한 디자인은 똑같이 용인할 수 없고 모순된 ‘해법’으로 나타나야 한다. 고통이 심한 인생 경험에 긍정적인 디자인 환상이라는 진통제를 투여해서 감추기보다 그러한 경험을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드러내야 한다.(59쪽)

역사적으로 도시는 언제나 자리를 빼앗긴 자들에게 희망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도시가 과거에 그러했듯이 이방인에게 스스로를 개방하지 않는다면 도시는 무가치하며 결국 멸망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69쪽)

공공 프로젝션은 공동 사회의 미적 반(反)의례가 될 수 있다. 공공 프로젝션을 도시의 야간 축제와 건축적 ‘서사극’으로 만들어서, 거리의 공중이 프로젝션의 서사 형식에 따라가며 감정적으로 참여하고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성찰과 휴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주의: 건축물에 투사한 이미지가 영향력을 잃고 건축물 스스로 이미지를 포장으로 전유하기 전에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반드시 꺼야 한다.)(146쪽)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순례의 여정에서, 나는 민주주의가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특권이 민주주의를 그 빠지기 쉬운 혼수상태에서 깨우는 의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민의 수동성보다 민주주의에 더 해로운 것은 없음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286쪽)

민주주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와 해결책 혹은 합의는 서로 모순된 용어다. 물론 어떠한 집단도 민주주의의 생명을 지키고자 ‘방해’하고 ‘와해’하는 경합적 임무를 수행하는 행위주체라는 이유로 독점권, 우선권 혹은 배타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역사적으로 선택받은’ 계급이나 집단이 있을 수 없다.(296쪽)

결국 도시는 이미 그 자체로 지배적이고 다른 모든 것을 시야에서 가리는 일종의 프로젝션이며, 숨겨지고 약하고 불쾌하며 불편한 것들을 간직한 다른 프로젝션을 만드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막강한 힘을 지닌 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공표를 도시 기념비와 건축물의 이념적 투사와 결합할 뿐 아니라 사회적 침묵이라는 투사와도 결합시킨다.(304쪽)

경험을 원하신다고요? 여기 있습니다! 실제 사건에 참여하고 싶다고요? 여기 그 기회가 있습니다. 유연한 일과 창조적 사업을 찾고 계신다고요? 그 또한 여기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유동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싶다고요? 여기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342~43쪽)

아방가르드 전통에서, 관련된 예술가 자신의 기대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은 없다. 이러한 역사적 아방가르드 프로젝트의 맥락적이고 발의적인 태도 덕분에 우리의 이성과 감성, 의식, 예술적 방법론 및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시대의 맥락에서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과 디자인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이다.(347쪽)


차례

1장 문화적 보철물, 기구, 수레
노숙자 수레 프로젝트: 데이비드 루리와 집필
폴리스카/자율 방범차
외국인 지팡이(제노바큘)
대변인(마우스피스)
의문하는 디자인
대변인(마우스피스) 변형: 조슈아 스미스와 작업
이방인의 도시를 위한 디자인
아이기스: 이방인의 도시를 위한 기기
탈-무장
예언자의 보철물: 크리스티안느 폴과의 인터뷰
외국인 지팡이에 관하여: 톰 핀켈펄과의 인터뷰
문화적 보철학/보철물

2장 기념비, 프로젝션
공공 프로젝션
기념물 프로젝션
더글러스 크림프, 로절린 도이치, 에바 레이어-부르하르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대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그(것)들의 동상과 대화하기
개선문: 세계 전쟁 폐지 연구소
내부의 공중

3장 변형적 아방가르드
공공 미술로서 아방가르드: 어떤 전통의 미래
메인 예술대학교 졸업식 연설
도시, 민주주의 그리고 예술 실천
미술, 외상 그리고 파르헤지아
변형적 아방가르드: 현재적인 것의 선언
미술, 디자인 그리고 교육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두려움 없는 목소리를 향한 끝없는 순례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지은이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194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순수미술아카데미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일찍부터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영역에 재능을 보였으며, 대학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부터 여러 작가들과 협업하며 작가로 활동했다. 1977년 당시 사회주의국가였던 폴란드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보디츠코는, 그가 찾던 민주주의는 어디에도 없음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뉴욕의 노숙인 문제를 다룬 「노숙자 수레」 이후 그의 작업은 더욱 서사적, 협업적 성격을 띠며 노숙인, 이민자, 참전 군인 등 소외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도록 돕는 수행적 기기/기구를 제안했다. 또한 이들의 삶과 상처, 증언, 치유의 희망을 공공 공간에 투사함으로써 도시의 기념비를 전유하 고 소생시키는 대규모 프로젝션 작업 역시 1980년대부터 전 세계 40여 개 도시에서 80회 이상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예술 실천으로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사회적 평등,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해온 보디츠코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4회 히로시마 미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원에 소속된 ‘예술, 디자인, 그리고 공공 영역’ 교수로 재직하며 뉴욕과 케임브리지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옮긴이

길예경은 온타리오 미술·디자인 대학에서 실험 미술을 전공한 후 한컴퓨터연구소, 상산환경조형연구소, 가나미술문화연구소,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일했다. 월간 『디자인』 객원 기자, 『디자인네트』 객원 편집자, 저널 『볼』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프리랜스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애드버스터: 상업주의에 갇힌 문화를 전복하라』(2004)를 기획, 번역, 편집했고, 『유령』(2010) 프로젝트 북, 제9회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2016)의 전시 도록 및 출판물 프로젝트 『그런가요』, Ideas in Contemporary Korean Art: Critical Texts Selected by Curator-Critics, 1980–2010 (근간)을 공동 번역, 편집했다.

정주영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 이론을 공부하고 「파스큐라의 미술론」(2007)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술 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우재단 연구원,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공원도서관 초청 집필가와 아키비스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 보존관리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관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T 페스티벌 201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년 특별전 『공간 변형 프로젝트: 상상의 항해』에서 출판물과 웹사이트의 번역 감수, 편집을 진행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2016) 전시와 『질량과 질서 2』(2016)의 번역을 맡았다. 제9회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의 출판물 프로젝트 『그런가요 1호: 삼인조 가이드』(2016)의 공동 필자, 『서울대학교 미술관 소장품』(근간) 편저자이다.


표지 이미지

(앞)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노숙자 수레」, 1988. 트럼프 타워 앞, 뉴욕.
(책등)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초상화」(부분), 1973. 폭살 갤러리, 바르샤바.
(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크라쿠프 시청사 프로젝션」, 1996.

편집

박활성

디자인

본문 양으뜸,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