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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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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mang

Sasa[44] 외

포스트컨템포러리 미술의 향방

『엉망』은 “동시대 문화예술계에서 생산과 소비의 관계 해석에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미술가 Sasa[44]가 “지난 20여 년 동안 편집증적으로 모은 물건들을 이용해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문화를 통찰적으로 엮어낸 아카이브 기반 작업”을 담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자 2018년 9월 현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Sasa[44]의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엉망’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이나 사물이 헝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를 뜻한다. 어쩌면 작가 개인의 삶과 작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우리 사회의 현 상태를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 같기도 한 이 말은, Sasa[44]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키워드가 된다.

Sasa[44]의 작업 일부를 보기로 하자. 지난 2006년부터 시작한 ‘연차 보고서’ 연작은 1년 동안 그가 벌였던 일상적인 활동 가운데 특정 항목을 객관적인 수로 기록한 작업이다. 2017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17년에 Sasa[44]는 설렁탕 또는 곰탕을 98그릇, 자장면을 64그릇 먹었고, 서울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10편 관람했고, 교보에서 책을 84권 구매했고, 교통카드를 355회 사용했고, 휴대전화를 872건 걸었고, 작업실 출퇴근 기록을 160건 얻었으며, 먼저 줄 선 대기인 404명을 기다렸다가 용무를 보았다.”

2015년 1월 16일, 건강 문제로 술을 끊은 후 시작한 ‘갱생’은 1년간 먹은 조·중·석식 메뉴를 식당이나 동석한 지인 이름을 더해 시간 단위로 사진과 함께 기록한다. 기록에 따르면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12시 15분에 그는 구동희, 김동희 작가와 함께 거북이집에서 보리굴비세트를 먹은 후 더블류피로 이동해 뉴욕 치즈케익과 다크초코케익과 산펠레그리노를 먹었다. 사진으로 보건대 굴비보다는 함께 나온 잡채가 더 맛있었던 듯하다. 또한 책에 실린 김동희 작가의 글에 따르면 여기서 그는 김동희 작가에게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 「10/4024」의 설치를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동희 작가는 떠나고 Sasa[44]와 구동희는 16시 40분 코렉트커피로 이동해 핫초코를 마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10/4024」는 Sasa[44]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매해 7월에서 9월 사이 3개월 동안 작업실에서 마셨던 4천24개의 빈 병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Sasa[44]에게 설치를 의뢰받은 김동희는 작업의 설치를 위해 픽건설의 박수민, 송준태, 최규석과 함께 설계시공 전담팀을 구성, 열 개의 시안을 만들고 병 크기에 따른 70개의 박스를 제작했다. 술을 끊기 전의 기록인 「10/4024」에서 “2005년부터 참이슬이 기록에 보이고, 2007년 최초로 참이슬 후레쉬(2006년 8월 18일 출시)가 등장하고, 2009년 참이슬 후레쉬가 참이슬 소비량을 추월한다. 2010년에 기존 참이슬이 아닌 참이슬 오리지널이 한 병 기록되고, 이후 2013년까지 참이슬 후레쉬만 소비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며칠 동안 특정 도시를 여행하며 제삼자가 작성한 지시문에 기반해 미션을 수행하는 ‘우리 동네’ 연작은 Sasa[44]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음악 업계 프로토콜”이 스민 작업이다. 원재료를 수집하고 거기에서 추출한 정보들을 중첩하고 재조립,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그는 일종의 ‘협업’, 그보다는 리믹스나 피처링, 매시업 등의 방법론을 가져온다. 이번에 열린 개인전에서도 그는 자신은 죽고 없다는 가정 아래 ‘우리 동네’ 섹션을 일민미술관 학예팀에게 일임하는 재맥락화 전략을 취한다.

이 밖에도 이 책은 그가 먹고 쌓아온, 사고 소비한, 수집하고 배치한, 찍고 저장한 온갖 것들로 북적인다. 자, 그래서 이것들은 어떻게 엉망이 되고, 어떻게 포스트컨템포러리 미술의 향방을 가늠하는 ‘미술’이 되는가. 그 안내자 역할은 책에 실린 임근준, 아이리스 문, 기정현의 평론과, 김동희, 손주영, 허미석, 조주현, 정해선, 남선우, 김도연, 정승완의 글, 그리고 수백 쪽에 이르는 기록과 사진의 몫이다. 여기서는 이 책이 “작가가 전시의 형태로 펼쳐놓은 데이터베이스의 이질적 복합체에 접속하기 위한 각자의 계정이라는 점”, “이 책에 인쇄된 무수한 고유 명사들을 독자 나름대로 데이터베이스화한다면 전시장에서는 볼 수 없지만 어딘가에 실재하는 또 다른 전시를 관람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만 적어 두면 충분할 것이다.


발췌

이 책은 Sasa[44]의 개인전 『엉망』에 대한 주석서이자 그 확장물이면서 동시에 전시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전시/작품/평론/설명서/부록’으로서 다중의 정체성을 지닌 것인데, 여기에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임근준, 아이리스 문, 기정현의 평론이다. 전시장의 각 층에 놓인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제안하는 그 글들은 작가에 관한 몇 개의 키워드를 공유하면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앞의 세 글이 책의 기둥 역할을 한다면, 작가와 함께 전시에 참여한 협업자들의 글은 보의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시장 3층의 큐레이팅을 맡은 일민미술관 학예팀은 작가의 연작 ‘우리 동네’에 등장하는 다섯 도시에 대한 글을 작성하고, 전시장 2층에 「10/4024」 설치를 맡은 김동희는 설치와 관련된 숫자들을 기록하며, 손주영은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힙합 리스트를 정리한다. (5쪽)

Sasa[44]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정보의 수집과 재배치/재분배는, 퍼스펙티브의 확보와 업데이트를 위한 것인데, 그런 점에선 확실히 미술적인 면이 있다. 그가 도출해 내는 새로운 관점들을 대차대조해 보면, 전지적 소비자/향유자/수용자의 시점이 나타난다. 그는 여러 파편화된 시점들을 중첩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능동적 소비자/향유자/수용자의 전지적 관점을 도출해 낸다. 하지만, 결코 해설하지 않고, 그 주체를 가시화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거의 언제나, 퍼스펙티브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이 된다. (187쪽)

빈 병과 비워지는 병이 쌓이고 또 쌓인다. 소비가 결국에는 예술 작품을 만들기에 충분한 재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Sasa[44]의 어려운 작품이 보는 이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작가의 전시회를 본 관객은 이상하게 허무하고 진 빠지거나 속은 기분으로 전시장을 떠날지도 모른다. 「Sasa[44]가 마신 것들」이나 「10/4024」 같은 작품이 자신의 삶보다 독창적인 프로젝트는 생각해 내지 못하는 작가의 산물일 뿐인지, 도움을 청하는 호소인지, 아니면 괴상한 고해 예술 작품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Sasa[44] 작업의 진정한 힘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따르는 위험 (즉 이들은 결국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있는지도 모른다. (331쪽)

Sasa[44]의 작업, 특히 서로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여러 문서나 사물을 수집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에는 음악 업계 프로토콜이 스며 있다. 나는 이 점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는 혁신에 뿌리내린 현대주의적 독창성 개념이 재조합 행위로 대체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작가성은 선별 능력으로 결정된다. (…) Sasa[44]는 보는 이가 세상과 인터페이스하는 방식에 작가의 창작물을 어떻게 연동하느냐에 따라 창작이 좌우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이를 되돌릴 길은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 특정한 해석 방식을 지원하는 코드의 구조로서, 인터페이스는 휴대용 디바이스와 컴퓨터에 내재한 상호 작용, 즉 스크린에 기초하고 디자인으로 추동되는 상호 작용 형식을 가리킨다. (685, 689쪽)


차례

서문
편집자의 글

연차 보고서 2017
갱생 170116–180116
NMD 151212–170124
더 텐 171109–180513

Sasa[44] —전지적 소비자/향유자/수용자의 퍼스펙티브와 참조적 다중 전유의 포스트컨템퍼러리 예술 (임근준 a.k.a. 이정우)

10/4024

병에 담아—Sasa[44]의 10/4024 (아이리스 문)

우리 동네—보스턴
우리 동네—시드니
우리 동네—코펜하겐

가이드북에는 없음 (기정현)

엉망 ’18
원피스 SP
10/4024 (김동희)
힙합 10년 (손주영 a.k.a. 우리고나미고)
{your[our(spot)]spot} (허미석)
여기, 우리 모두가 잠들다 (조주현, 정해선)
사흘의 사연 (남선우)
코펜하겐 산책 (김도연)
편지란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는 (정승완)

작가와 필자


지은이

Sasa[44]는 개인전으로 『쇼쇼쇼—‘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모다페 2005 프로그램), 『우리 동네』(김진혜 갤러리, 2006), 『오토 멜랑콜리아』(대안공간 풀, 2008), 『가위, 바위, 보』(시청각, 2016), 『엉망』(일민미술관, 2018) 등을 열었고, 일민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아르코 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리움, 플라토,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