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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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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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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지음, 정보라 옮김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의 희곡집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가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4권으로 출간되었다. 20세기 초에 극작가, 소설가, 화가로 두루 활동했던 폴란드 작가 비트키에비치의 대표적인 희곡 세 편과 함께 글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작가가 어떠한 이론에 기반해 자신의 작품을 전개해 나갔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뒤이은 ‘제안들’ 35권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탐욕』을 함께 펴낸다. 희곡과 소설 모두 슬라브어권 문학작품을 국내에 오래 알려 온 번역가이자 소설가 정보라가 한국어로 옮겼다.

폴란드 전위 부조리극

“비트키에비치는 후기의 스트린드베리나 베데킨트가 보여 주는 꿈과 그로테스크한 환상을 지속한다. 그의 생각은 초현실주의자들 그리고 앙토냉 아르토와 밀접하며, 베케트, 이오네스코, 주네, 아라발 등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부조리극 작가들의 걸작들로 이어진다.”(마틴 에슬린, 『부조리극』 저자)

비톨트 곰브로비치, 브루노 슐츠,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폴란드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들 중 비트키에비치는 국내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왔다. 그동안 곰브로비치의 희곡과 슐츠의 소설을 한국어로 소개해 온 번역가 정보라는 비트키에비치의 여러 희곡 중에서 영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널리 알려진 작품들인 「광인과 수녀」, 「쇠물닭」, 「폭주 기관차」를 선택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비트키에비치(활동명 비트카찌)는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길지 않은 삶 동안 문필가로서 희곡과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한편 화가로서 초상화를 비롯한 여러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자전적인 소설을 첫 작품으로 발표한 이후 희곡을 여러 편 썼는데, 희곡작가로서 비트키에비치는 부조리와 해프닝의 극예술 계보에 있다. 그의 희곡에서는 사건이 논리적으로 흐르지 않고,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불현듯 펼쳐진다. 극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다르게 드러나고 극단적으로는 극 속에서 한번 죽었던 이들이 어느 순간 버젓이 다시 살아나 있는데, 이렇게 부활해 버린 이들을 누군가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진다.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한 이의 삶은 자연히 흘러가고, 그리하지 못한 이의 삶은 뒤죽박죽이 된다. 비트키에비치의 인물들은 그렇게 참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경계를 되물으며 질주해 간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겨 온 익숙한 개념에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서 비트키에비치의 글들은 전위적이다.

순수한 형태

비트키에비치의 희곡을 읽다 보면 예술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입장과 견해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비트키에비치의 작품들은 그가 세운 ‘순수한 형태’ 이론을 구현하려는 일환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작가는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에서 이 ‘순수한 형태’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다. 글에 따르면 ‘순수한 형태’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고양감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리키며, 예술은 이러한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비트키에비치가 바라보기에 그의 시대는 “모든 종류의 형이상학이 몰락하는 시기”였다. 작가로서 그는 당시의 기존 연극을 부정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안했다. 그가 생각한 새로운 극예술이란 “형이상학적인 감각”을 직접 느끼게 해 주는 공연이다. 그는 이를 통해 ‘순수한 형태’ 즉 절대적이고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을 관객에게 안길 수 있다고 믿었고,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통해서만 극예술이 부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비트카찌는 전면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모더니스트였으나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면에서는 상징주의와 종교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했던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순수한 형태’라 이름 지었다. 희곡 세 편은 모두 주인공(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죽었다가 살아나거나 정체성을 바꾸고 가면을 벗고 진면목을 드러내는 줄거리로 전개된다. 예술을 얽매는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하고 절대적인 세계에서 순수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비트카찌가 추구했던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순수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비트카찌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그가 추구했던 ‘순수한 형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인물의 활동으로 표현한 “관념의 체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그러므로 비트키에비치에게 아름다움은 새로움이었고, 새로움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흥미롭게 펼쳐 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방향을 종잡기 어려운 그의 글은 종착역과 상관없이 독자가 뒤따라갈 수밖에 없는 재미를 갖췄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비논리적일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을 나름의 논리로 설파해 가면서 서로 거침없이 찌르고 뭉개는 말들을 뒤쫓기에 바빠지는, 읽는 재미 자체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발췌

발푸르그. 어째서? 정말 이해 못 하겠어요? “마인 쾨르퍼샬레 콘테 니히 마인 가이스테스글루트 아우샬텐.”[내 몸의 껍질은 내 영혼을 견뎌 내지 못했다.] 누가 그렇게 말했죠? 내 영혼의 불길이 내 세속의 껍데기를 태워 버렸어요. 이제는 알겠어요? 내 신경절은 나에게 글을 쓰도록 명령했던 그 저주받을 무언가를 버텨 낼 수가 없었어요. 난 중독되어야만 했어요. 힘을 모아야만 했어요.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일단 기계 전체가, 낡고 약한 기계가 이토록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니까, 이제는 더 창작을 하든 안 하든 계속 움직여야만 해요. 뇌는 바닥까지 닳아 버렸지만 기계는 계속 돌아가죠. 그 때문에 예술가들은 미친 짓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 더 이상 아무도 통제할 수 없이 공허하게 속력을 내는 엔진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커다란 공장 기계실에 기관사가 없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계기판의 바늘이 이미 오래전에 빨간 화살표를 넘어섰는데, 모든 것이 마치 광란하듯이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
(「광인과 수녀」, 21쪽)

발푸르그. 가자. 이제 난 정말로 완전히 건강해—건강하고 행복해. 굉장한 작품을 쓸 거야.
(「광인과 수녀」, 51쪽)

바르바라 수녀. (야만적으로 절망에 차서) 이게 당신들이 말하는 정신의학의 전부야! (울먹이며) 난 이 나이 먹고서 이제 누가 정신병 환자인지 모르겠어요—나인지 선생인지, 아니면 저들인지. 오, 하느님,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난 이미 돌아 버린 것 같아요. (그륀에게 팔을 뻗으며 무릎을 꿇는다.)
(「광인과 수녀」, 52쪽)

쇠물닭. 참 우스운 의심을 하고 있네! 죽음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사실이지만, 난 전혀 죽고 싶지 않아. 그러나 산다는 것도 나한테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니야. 나한테 가장 괴로운 건 바로 이 기둥 아래 서 있는 거야.
(「쇠물닭」, 61쪽)

쇠물닭. 이 남자는 어쩜 이렇게 멍청하지. 뭔가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바로 위대한 것인데….
에드가. 부탁인데 너무 멋대로 행동하진 말아 줘. 욕도 하지 말고. 그건 심지어 부조리극에서도 금지돼 있으니까.
쇠물닭. 좋아, 하지만 당신 자신도 이건 악순환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거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모두 위대해. 죽음과 첫사랑과 동정의 상실과 기타 등등 그런 종류의 일들이 위대한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이야. 몇 번씩 되풀이할 수 있는 일은 모두 그로 인해서 좀스러워지는 거야. (구름 사이로 약한 달빛의 반짝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당신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위대함을 원하잖아.
(「쇠물닭」, 63쪽)

에드가. (모두에게,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해 해명하듯이) 언제나 상황과 사람들이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해 줍니다. 난 마네킹이고 꼭두각시일 뿐이에요. 내가 뭔가 만들기 전에 내가 하려던 바로 그것이 나를 통하지 않고 벌써 혼자 움직여요. 이건 뭔가 저주 아닙니까?
(「쇠물닭」, 86쪽)

타지오. 내가 예의 바르지 않은가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어딘가 어긋났어요. 마치 꿈속에서처럼 모든 일이 일어나요. (갑자기 활기를 띠며) 있잖아요, 난 절대로 아무것도 겁내 본 적이 없어요, 오로지 꿈속에서만 겁을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일이 나한테 마치 꿈인 것 같으니까, 이제는 겁이 나요, 조금 뒤에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서 이제까지 꿈에서조차 그렇게 겁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겁이 날 것 같아요. 가끔 난 그렇게 무서워요. 그렇게 무서운 게 겁이 나요.
(「쇠물닭」, 89쪽)

에드가. (…) 예술로부터 날 지켜 줘요, 난 예술을 증오하고 두려워해요. (…)
(「쇠물닭」, 110쪽)

에드가. (평온하게) 모든 일은 이미 한 번 일어났어, 단지 조금 다른 방식이었을 뿐이지.
(「쇠물닭」, 125쪽)

텐기에르. (미코와이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쓰며) 에에에… 삶에 있어서 존재의 비밀을 표현하는 데 적절할 정도로 위대한 부조리는 없지. 그건 광인들과 언제라도 미쳐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어.
(「폭주 기관차」, 150쪽)

트레팔디. 나로 말하자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뭔가 해결 아래의 모든 생각을 훅 불어서 날려 버린 듯한 느낌이야. 난 그저 이 제어기의 연장일 뿐이야, 내 뇌를 꼬챙이에 꿰듯이 이 철제 레버에 꿰어 놓은 것 같아. 말하자면 난 기차와 나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했어. 바로 나 자신이 마치 황소처럼 공간을 질주하고 있어, 내 운명의 날에 나 자신을 꽂아 버리기 위해서. 아니, 정말 공교로운 순간이야. 우리 머리 위에 표지판을 걸어도 되겠어. “만지지 마시오, 고압, 사망 위험!” 누군가 움직이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이 나를 건드린다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뒹굴게 될 거야. 어쩌면 이건 기계화된 광기의 시작인 걸까?
트라바이야크. 당신의 겸손함이 놀랍군, 카롤.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고 확언했으면서 손풍금처럼 떠들고 있어.
(「폭주 기관차」, 159–160쪽)

율리아. (황홀경에 빠져 그에게 입 맞춘다.) 우리보다 더 미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우리 빼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들은 유일하고, 고립되어 있고, 거대해요. 위대함이 뭔지 드디어 이해했어요! 당신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당신 둘 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폭주 기관차」, 162쪽)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과연 현대의 인간이, 비록 아주 짧은 동안이라도, 사라져 버린 신화와 믿음과는 상관없이, 옛날의 인간이 그런 신화와 믿음과 관련해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감정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형태의 연극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 185쪽)

그러한 형태를 연극에서 창조하려면 그 형태를 창조해야 할 진실한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창조력을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가진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이며, 그 외에도 현재 연극계의 모든 관습, 현재 무대연출, 연기, 극예술 구성의 심리학적 기본을 이 해하는 모든 방식과 단절되어야 한다.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 186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광인과 수녀
쇠물닭
폭주 기관차

부록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

옮긴이의 글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연보


지은이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Stanisław Ignacy Witkiewicz, 1885–1939)는 폴란드의 아방가르드 극작가, 소설가, 화가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았기에 중간 이름 이그나찌와 성 비트키에비치를 합쳐 ‘비트카찌’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어 활동했다. 비트카찌는 크라쿠프 예술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들을 접하고, 1911년 첫 중편소설 「붕고의 622가지 몰락, 혹은 악마 같은 여자」를 발표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었던 러시아제국의 기병대에 입대하고, 1917년 전역한다. 1918년 폴란드로 귀환한 비트카찌는 이후 전시회를 열고 “S. I. 비트키에비치 초상화 회사”라 자칭하며 여러 초상화 기법을 실험하는 한편 희곡과 예술 이론, 소설 등을 두루 집필하기 시작한다.
부조리극의 선구 격인 비트카찌의 희곡은 예술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고양감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순수한 형태’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비트카찌는 희곡 「실용주의자들」, 「새로운 해방」, 「미스터 프라이스」, 「그들」, 「쇠물닭」, 「갑오징어」, 「광인과 수녀」, 「폭주 기관차」, 「피즈데이카의 딸 야눌카」, 「어머니」, 「벨제부브 소나타」, 「구두 수선공들」, 소설 『가을에 보내는 작별』과 『탐욕』, 예술 이론 「순수한 형태에 대하여」, 「미술의 새로운 형태와 그로 인한 오해들」,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 에세이 「마약: 니코틴, 알코올, 코카인, 페요틀, 모르핀, 에테르」 등을 집필했고, 1939년 9월 18일 자살했다. 198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유네스코가 ‘비트카찌의 해’를 선포했다.

옮긴이

정보라는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 대학교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어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라브어권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번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보리스 싸빈꼬프의 『창백한 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구덩이』,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타데우슈 보롭스키의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다』,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고기』, 브루노 슐츠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 밀로시 우르반의 『일곱 성당 이야기』,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