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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증언하는 사람: 빅토르 클렘페러 읽기

LE TÉMOIN JUSQU’AU BOUT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 ,
  • 김홍기 옮김
124 × 188밀리미터 / 168쪽 / 무선 소프트커버 / 2026년 1월 23일 / ISBN 979-11-94232-22-3 03100
  • 박활성 편집
  • ,
  • 유현선 디자인
  • 일기
  • 저항의 글쓰기
  • 메디시스상

원래 가격: ₩17,000.현재 가격: ₩15,300.

『끝까지 증언하는 사람』은 이미지 개념에 관해 독특한 사유를 펼쳐온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그동안 천작했던 사진과 영화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언어적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작업이다. 2022년 메디시스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한 이 책에서 디디-위베르만은 드레스덴의 한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페러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비밀리에 쓴 일기를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는 나눔의 언어를 발견한다.

“나는 끝까지 증언하기를 원한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3개월이 지난 1933년 4월 25일, 빅토르 클렘페러는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교 기숙사에 붙은 벽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한다. “유대인이 독일어로 글을 쓰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한평생 독일어로 쓰고 읽고 가르쳐온 그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로망스어와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의 전문가였던 그는 곧 나치가 사용하는 언어에 깃든 파괴적인 격리의 정서를 간파하고 ‘언어 노트’라고 이름 붙인 일련의 기록에 착수했다. “학술 서적을 빼앗긴 문헌학자로서 그는 끊임없이 그의 시대를 읽었고 그를 추방시킨 공간을 읽었다. 상자 공장에서 노예처럼 하루에 10시간씩 노동을 해야 했던 특히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는 비밀 일기 쓰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5천여 장의 일기가 일부분씩 차례차례 ‘아리아인’ 친구에게 보내져 어느 이중벽 사이에 숨겨졌다.”

이 특별한 일기로부터 출발한 그의 책 『LTI, 제3제국어: 한 문헌학자의 수첩』은 1947년 출간되어 이 시기 다른 중요한 증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기념비’의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1995년, 이 책의 바탕이 된 그의 『일기』가 출간된다. 가택 수사를 받던 중 게슈타포 요원에게 책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면서도 “기필코 일기를 써나갈 것이다. 나는 끝까지 증언하기를 원한다”(1942년 6월 11일 일기)라고 썼던 그의 일기, “놀라운 진실의 문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진정한 진리에의 용기의 기념비”는 그렇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나기”

“모든 실재적 독재의 기저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독재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 언어의 주된 용법이자 목표다. 언어에 민감한 문헌학자로서 클렘페러는 나치의 온갖 슬로건과 발표문을 분석하며 “어떻게 전체주의가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각인되어 일상적인 언어에까지 스며들었는지” 기록한다. 그런데 디디-위베르만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증언이나 정확성이 아닌, 일기에서 드러나는 클렘페러 본인의 감정이다.

재판에 불려 나온 증인은 정확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실을 진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목숨을 무릅쓰고 증언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취해야 하는 입장은 무엇인가. 그는 그의 감정까지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클렘페러의 일기가 비범한 이유다. 그의 증언은 복합적인 정서―절망, 공포, 불안, 분노, 수치, 무감각, 모욕, 욕지기, 그리고 ‘아주 약한 희망’―들을 향한 문학적 증언이며, 이 감정이 전제하는 윤리적 입장, 즉 나눔의 입장을 담은 증언이다. 디디-위베르만에 따르면 “감정들이 우리를 나눈다. 아마도 바로 이것—감정들, 나눔—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어떤 감정이 차올라 표현되고 폭발할 때, 그 감정은 먼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아’의 단일성을 분열시키는 일이다.” 감정은 우리를 둘로 나눠 안과 밖을 향하게 한다. 나 자신을 향해, 그리고 타인을 향해.

1941년 6월 23일, 클렘페러는 등화관제 지침을 어긴 죄로 일주일 동안 감옥에 갇힌다. 허리띠를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한 그는 감옥에서 흘러내리는 바지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안경과 책을 돌려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는 그에게 처벌의 위협이 가해진다. 그리고 그가 대학교수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 부사관이 그에게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가져다준다. 연필을 받은 그가 적은 첫 번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난다.” 그에게 글쓰기는 하루하루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써내려가는 ‘곤경의 글쓰기’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저항의 글쓰기’다. 무엇보다 ‘끝까지 증언하기’란 “증언하는 대상에 거침없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증언하기로 결심한 드레스덴의 문헌학자, 빅토르 클렘페러의 일기를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언어 속에서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빅토르 클렘페러, 「일기」, 1942년 11월 24일(세부). 종이에 잉크와 연필. 드레스덴, 작센주립대학도서관. Photo DR.

추천사

“추상으로 도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드문 사상가”
―린다 레, 소설가

“거미줄로 그물을 지은 듯한 정교함”
―필리프 랑송, 『리베라시옹』 기자

“몹시 감동스러운 윤리적, 문학적, 감성적 나눔”
―카미유 로랑스, 작가


수상 이력

2022년 메디시스상 에세이 부문 수상


발췌

감정들이 우리를 나눈다. 아마도 바로 이것—감정들, 나눔—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어떤 감정이 차올라 표현되고 폭발할 때, 그 감정은 먼저 무슨 일을 하는가? ‘자아’의 단일성을 분열시키는 일이다. 자아의 모습을 조각내고 영혼과 신체의 온전한 체제를 깨뜨리는 일이다. 모든 것의 짜임새가—자기 안으로든, 자기 밖으로든—이쪽에서 저쪽까지 뒤흔들리게 된다. 그것은 미미할 수도 있고(단순한 균형의 흔들림), 과도할 수도 있다(거대한 미지의 분출). 감정은 세계의 조직에 뉘앙스나 주름을 가할 수 있다. (7쪽)

프로이트가 애초에 몰두했던 것이 바로 모든 정신(psyché)의 분열이다. 균열들이 우리 안에서 열리는데—그리고 이로부터 징후들이 솟아나는데—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 갈등의 노리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즉, 우리는 분리되어 탄생하고, 분리되어 성장하고, 분리되어 사유하고, 분리되어 행위한다. (14쪽)

프로이트가 이런 글을 쓰던 당시에 드레스덴의 한 남자가 홀로 이와 동일한 작업—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부터 착수한—을 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조용히 저항하며, ‘징후들’에 시선을 두어 당대의 “역사적 진실”과 같은 것을 밝히고자. 이 남자가 빅토르 클렘페러다. 그는 정신분석가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단지(물론 이는 잘못된 말이다) 문헌학자였다. (19쪽)

언어란, 우리가 감각하고 사유하고 변용되고 행위하는 방식의 결정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요컨대, 언어는 어떤 ‘영역’이 아니다. 차라리 인간적으로 구성된 삶 전체의 발산하는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빅토르 클렘페러가 가장 아끼는 격언인 ‘언어 속에 진실이 있다’는 엄밀한 의미의 문헌학보다는 훨씬 더 인류학에 속하는 것이었다. (26쪽)

말하기는 우리를 분리한다. 우리가 한 단어만 발음해도, 이미 그것이 분기하며, 우리의 고유한 관념 연합과 이에 뒤지지 않는 정서적 분리를 수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말한다. 이는 우리의 실존을 타인과 나누는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될지라도 나눈다. 전적인 문제는 이런 모든 분열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로 요악된다. (31쪽)

클렘페러의 『일기』는 긴급한 와중에 단숨에 몰아서 부분적으로 종이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흘러가는 글씨로 쓰였고(항시적인 종이 부족의 흔적), 다만 나중에서야 퇴고를 거치고 강조선이 추가됐다. 이제 『일기』는 단지 놀라운 진실의 문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진정한 진리에의 용기의 기념비로 여겨진다. 편하게 안락의자에 앉은 독자일지라도 이 텍스트의 모든 강도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기가 필요하다. (45쪽)

한 나이 든 어르신이 […] 발트파르크의 출입로를 나와서 로트링어길을 가로질러 나에게 오더니 내손을 잡고 분명한 격식을 갖춰 내게 말했다. ‘당신의 별을 봤소.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소. 나는 이렇게 인종을 추방하는 것을 규탄하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답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지만 어르신은 저한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으셔서, 저는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어르신은 감옥에 갈 수 있습니다.’—그렇소, 알고 있소, 라고 그가 내게 답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내게 말하길 원했고, 이것은 그에게 의무와 같은 것이었다. (54-55쪽)

“끝까지 증언하기”란 증언하는 대상에 거침없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의 감정들을 증언하기이다. 게다가, 전체주의 언어를 관찰함으로써 어떻게 이 언어가 주체들에게 격리된 감정들을 부과하여 독재를 그럴 듯하고 심지어 효과적인 것으로 만드는지 알게 된다면, 그렇다면 자기의 고유한 되찾은 감정들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7-68쪽)

부사관 선생, […] 난 내 책과 내 안경을 압수당했소. 난 다만 연필 한 자루와 약간의 종이만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소.—그에겐 몽당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이면 충분했다. 세계가 밝아졌고—물론 상대적으로—보안문, 콘크리트 벽, 감옥과 경찰의 탄압을 가로지르는 통로가 열렸다. 물론 죄수는 그의 감방 속에서 거의 부동의 상태로 억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연필은 종이 위를 여행할 수 있었고, 단어들은 도망칠 수 있었고, 사유는 길을 나설 수 있었고, 상상은 엉뚱한 욕망의 체류지로 벗어날 수 있었다. (102쪽)

희망이란 결국엔 하나의 감정일 뿐이지만, 그래도 어떤 내기의 형태를 취한다. (107쪽)

벌어지는 일이 사유할 수 없는 것이었을 때 어떻게 이것을 사유하기에 성공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이런 미치겠는 의문시로부터 어떻게 희망의 운동을 가까스로(à peine) 또는 고통스럽게(avec peine) 확장할 수 있는가? 마음 전부와 생애 전부가 독일인이었던 빅토르 클렘페러는 하루아침에 독일 사회에서 배제당했고, 선출된 독일 정권에 의해 박해당했고, 목숨을 위협당했다.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랍비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123쪽)

벤야민은 그의 에세이를 끝맺으며 “이야기꾼은 그 안에서 의인(義人)이 자기 자신과 마주치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빅토르 클렘페러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아무리 사소하거나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어떤 사건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올바름(justesse)과 의로움(justice)에 신경을 썼다. 벤야민이 이야기꾼의 기예에 대한 인식론과 시학을 구성하던 그 시기에, 결국 클렘페러는 최대한의 엄밀함으로 하나하나 기술된 천 가지 작은 사물들의 몽타주에 근거한 그 기예를 실천했던 셈이다. (133쪽)

물론 『일기』는 오늘날엔 지나간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그리고 『일기』를 읽는 우리에게 되돌아오는지—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사실 그것들은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또는 결코 완전히 넘어설 수 없다. 악(惡)도 역시 잔존한다. 우리는 악의 회귀와 맞서 싸우기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찾지 않을 수 없고, 심지어 찾아야만 한다. (135쪽)

『일기』의 지혜로운—의인의 성품인 올바른—교훈은, 오히려 그것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자원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그 이야기가 단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문헌학적, 인류학적 자원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이 하지만 없는 감정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정서적 자원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136쪽)

언제나 언어는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언제나 정서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그것을 잘 사용해야만 한다. 언어와 정서들이 우리를 이끄는 나눔 자체로부터. (137쪽)

차례

정서의 독재에 대하여: ‘하지만은 없다’
분열, 나눔, 격리
빅토르 클렘페러, 전체주의 언어의 문헌학자
나눔, 응시, 저항
비판적 결단: 추악한 언어를 듣기
민중의 목소리는 존재하는가?
잇따른 탄압
정서적 사실의 글쓰기
곤경과 욕지기가 분기할 수 있도록
윤리적 가능성에 대하여: ‘하지만 …은 있다’
“내 연필을 따라 기어올라 지옥에서 벗어나기”
희망의 시간을 찾아서
이야기가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옮긴이 해제: 감정의 증언, 징후의 몽타주

저자 및 역자 소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철학자, 미술사학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다. 『히스테리의 발명: 샤르코와 살페트리에르의 사진 도상학』(1982)을 시작으로 50여 권의 책을 출간하며 이미지 개념에 관한 독특하고 풍부한 사유를 개진했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벤야민의 충실하고 독창적인 독해를 통해, 르네상스부터 오늘날까지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시대와 매체의 이미지를 감정, 시간, 역사, 기억, 정치 등 다각적 측면에서 이론화해 왔다. 주요 저작으로 『프라 안젤리코: 비유사성과 형상화』(1990), 『이미지 앞에서』(1990), 『시간 앞에서』(2000), 『잔존하는 이미지』(2002),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2004) 등이 있다. 또한 『장소의 우화』(2001), 『아틀라스』(2010), 『봉기』(2016) 등 그의 연구 주제와 관련한 여러 전시를 기획했다. 개념적 엄밀함과 시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문체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아도르노상(2015), 바르부르크상(2020), 메디시스상(2022) 등을 수상했다.

김홍기
서울과 파리에서 미술사, 철학, 미학을 공부했고, 소르본 누벨 대학교에서 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동시대 예술에 관련한 글을 짓거나 옮긴다. 지은 책으로 『지연의 윤리학』(2022)이, 옮긴 책으로 『반딧불의 잔존』(2012), 『1900년 이후의 미술사』(2016, 공역), 『면세 미술』(2021, 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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