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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머리들 / 소멸자 /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TÊTES-MORTES / LES DÉPEUPLEUR / POUR FINIR ENCORE ET AUTRE FOIRADES

  • 사뮈엘 베케트 지음
  • ,
  • 임수현 옮김
125 × 210밀리미터 / 120쪽 / 사철 하드커버 / 2016년 7월 15일 발행 / 18,000원 / ISBN 978-89-94207-67-4 04800 / 978-89-94207-65-0 (세트)
  • 김뉘연 편집
  • ,
  • 김형진 디자인
  • ,
  • EH(김경태) 사진
  • 서술 행위

원래 가격: ₩18,000.현재 가격: ₩16,200.

사뮈엘 베케트의 단편집 『죽은-머리들 / 소멸자 /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은 베케트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가 쓴 실험적인 짧은 글들이 실린 세 권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주체를 규정짓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며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냈던 소설 3부작(『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이후, 비소설적 산문들이 시작된다. 표현의 한계를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는 글들이 이제 이야기를 넘어 서술 행위로 향하고 있다.

죽은-머리들

「버려진 한 작품으로부터」, 「충분히」, 「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쿵」, 「없는」 등 다섯 편의 짧은 글이 실린 단편집(프랑스 미뉘 출판사 판본)으로, 1957년에 영어로 먼저 집필된 「버려진 한 작품으로부터」의 경우 저작권 문제로 이 한국어 판본에 수록되지 못했다. 나머지 네 편은 프랑스어로 먼저 쓰였다.

집필 시기에 따라 한 권으로 묶인 작품들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버려진 한 작품으로부터」, 「충분히」 그리고 동일한 표현과 이미지가 변주되면서 반복되는 「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쿵」, 「없는」은 그 내용 및 형식이 구분된다(세 작품은 오히려 한국어판에 뒤이어 실린 「소멸자」와 통한다).

“베케트의 문학은 후반기로 갈수록 밖에서 안으로, 의미에서 소리로, 탐색에서 관찰로, 이야기에서 서술 행위로 방향을 잡아간다. 몸의 움직임 또한 전체에서 상반신으로, 상반신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입과 눈으로 점차 축소되고, 모든 표현의 가능성들에 대한 완전한 소멸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디우가 ‘뺄셈의 방식’이라고 명명한 이러한 진행은, 존재의 부정이나 무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최소한의 최소’ 속에서 존재의 출현이 극대화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등장인물이라는 표현은 무의미해진다. 그것은 차라리 머리만 남겨진 어떤 주체의 이미지와 형상들이고, 잠재적이고 우발적인 움직임의 흔적들이다. 어딘가에, ‘지름 80센티미터’의 ‘온통 하얀 원형’(「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안에, ‘하얀 벽들 흰 천장 결코 본 적 없는 1제곱미터’(「쿵」) 안에, 그 ‘출구 없는 진정한 도피처’(「없는」) 안에 있는, ‘벌거벗은 흰 몸’이, ‘죽은-머리’가, ‘두개골’ 위의 두 눈과 입이, 보여지거나 상상될 것이다.” — 「해설」 중에서

조금씩 계속 바뀌며 반복되는 불연속적인 문장들. “죽은-머리들”의 중얼거림 속에서, 베케트의 글쓰기는 “어쩌면 거의 결코 없었던 간신히 하나의 의미”(「쿵」)를 상상한다.

소멸자

둘레 50미터 높이 16미터로 균형을 맞춘 납작한 원통. 그 ‘실험실’의 내부에서, 단죄와 구원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가며, 각자 자신의 소멸자를 찾아다니는 200여 명, 그 몸들에 대한 관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첫 문장에 등장해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 ‘소멸자’는, 그러나 그 이후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베케트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dépeupleur’가 지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 작품의 ‘몸들’ 각자에게 있어서 탐색의 대상이 되는 이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이주시키다’, ‘멸종시키다, 감소시키다’ 등의 뜻을 지니며 ‘비우다(vider)’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프랑스어 동사 ‘dépeupler’로부터 유추해볼 때, ‘dépeupleur’는 ‘무언가를 비우거나 없애버리는 자’일 것이다.” — 「해설」 중에서

소멸자. 부재하는 존재로, 그 부재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나를 불완전하게 만들고 무화시키는 타자. 그러므로 나의 소멸자를 찾는 일은 결국 나를 완성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원통이라는 실험실을 둘러싼 글쓰기라는 실험 속에서, 실험의 주체이자 대상인 작가 베케트를, 베케트 문학의 소우주를 만난다.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다시 끝내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다른 실패작들」, 「멀리 새 한 마리」, 「마주 보기」, 「어느 저녁」, 「절벽」, 「상한(上限)」, 「어느 것도 아닌」이 실린 단편집(프랑스 미뉘 출판사 판본)으로, 이 중에서 영어로 먼저 집필된 「움직이지 않는」과 「상한」, 「어느 것도 아닌」의 경우 저작권 문제로 이번 한국어 판본에 수록되지 못했다. 다른 글들은 프랑스어로 먼저 쓰였다.

머리들은 죽었을지언정 몸들은 아직 움직인다. 그러므로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만일 어떤 끝이 있어야 한다면 절대적으로 그래야만 한다면”(「다시 끝내기 위하여」),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끝내기 위하여. “다시 끝내기 위하여 닫힌 장소 어둠 속에 이마를 판자에 얹은 두개골 하나부터 시작하기.”(「다시 끝내기 위하여」) 반복과 순환은 맞물려 계속되고, 베케트의 문학도 그렇게 계속된다. 그가 『최악을 향하여』에 기록해둔 저 유명한 문구, “다시 시도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는 표현의 한계를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결과다. 베케트는 불가능에서 시작해 기어코 실패로 향한다. “다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할 만큼 실패하는 존재”인 작가로서.


발췌

어디에도 삶의 흔적이 없다고 말하는가, 하, 멋지군, 죽지 않은 상상력, 아니, 그래, 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섬들, 물들, 창공, 초목, 응시하라, 흥, 사라져, 영원히, 입 다물어. 원형 건물의 흰색 안에서 모든 것이 하얗게 될 때까지. 입구는 없지만, 들어오라, 재보라. (19쪽)

모든 게 알려진 모든 게 하얗고 마치 바느질로 꿰매진 듯 두 다리가 달라붙은 벌거벗은 흰 1미터 몸. 빛 열기 흰 바닥 결코 본 적 없는 1제곱미터. 2미터 중 1미터는 하얀 벽들 흰 천장 결코 본 적 없는 1제곱미터. 고정된 벌거벗은 흰 몸 간신히 두 눈만 보이는. 거의 흰색 위의 흰색 같은 잿빛으로 뒤엉킨 흔적들. 바닥을 보이며 공허하게 펼쳐져 늘어진 두 손 직각으로 발꿈치를 모으고 있는 흰 두 발. 빛 열기 눈부시게 하얀 표면들. 고정된 벌거벗은 흰 몸 앗 다른 곳에 고정된. 뒤엉킨 흔적들 거의 하얀 잿빛의 의미 없는 신호들. 흰색 위의 흰색처럼 보이지 않고 고정된 벌거벗은 흰 몸. 오직 두 눈만이 가까스로 거의 하얀 창백한 푸른빛. 제법 치켜든 공 모양의 머리 거의 하얀 창백한 푸른빛의 정면에 고정된 눈 그 안의 침묵. 거의 모두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짧은 중얼거림만 간신히. (23쪽)

폐허들 진정한 도피처 멀리서부터 수많은 거짓들을 거치며 마침내 그쪽으로 향하게 된. 아득히 먼 곳들 뒤섞인 땅 하늘 소리 하나 없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회색 평면 푸르고 창백한 둘 작은 몸 뛰는 심장 홀로 서 있는. 불 꺼진 열린 네 개의 벽이 뒤로 넘어간 출구 없는 진정한 도피처. (27쪽)

몸들이 각자 자신의 소멸자를 찾아다니는 거주지. 찾는 게 허사로 끝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어떠한 도주도 허사로 끝날 만큼 충분히 제한된. 둘레 50미터 높이 16미터로 균형을 맞춘 납작한 원통의 내부. 빛. 그것의 희미함. 그것의 노란색. 약 8만 제곱센티미터의 전체 표면이 각자 빛을 발하고 있는 듯 어디에나 있는 빛. 그 빛을 흔드는 헐떡임. 마치 마지막에 다다른 숨소리처럼 그것은 때로 멈춘다. 그러면 모든 것이 고정된다. 그들의 거주지는 아마도 곧 종말을 고할 것이다. 몇 초 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35쪽)

다시 끝내기 위하여 닫힌 장소 어둠 속에 이마를 판자에 얹은 두개골 하나부터 시작하기. 시작은 그렇게 오랫동안 장소가 사라지고 한참 후에 판자가 뒤따라 사라질 때까지. 그러니까 두개골이 홀로 끝내기 위하여 어둠 속에 목도 이목구비도 없는 빈 곳 어둠 속 오직 마지막 장소인 상자 빈 곳. 예전에는 어둠 속에 어떤 흔적이 가끔씩 빛나기도 했던 흔적들의 장소. 낮에 절대 빛이 없었던 날들의 흔적 그날들의 창백한 빛만큼이나 희미한. 그래서 마지막 장소인 두개골은 사라지는 대신 이렇게 다시 끝내기 위하여 다시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61쪽)

차례

죽은-머리들
—충분히
—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쿵
—없는

소멸자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다시 끝내기 위하여
—다른 실패작들 I, II, III, IV
—멀리 새 한 마리
—마주 보기
—어느 저녁
—절벽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저역자 소개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임수현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파리4대학에서 사뮈엘 베케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이자 극단 산울림 예술감독이다. 옮긴 책으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 『떠나든, 머물든』,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 드니 게즈의 『항해일지』,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타란느 교수』,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서용순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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