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도시: 현장 서울

공유도시: 현장 서울
Imminent Commons: Live from Seoul

배형민 엮음

지난 2017년 11월 15일 막을 내린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는 전 세계 50개 도시, 120개 기관, 40개 대학이 참여했으며, 46만여 관객이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 퍼포먼스, 시민참여 프로그램과 만난 자리였다. 『공유 도시: 현장 서울』은 모두 네 권으로 기획된 2017 서울비엔날레 출판 프로젝트의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1권에서 3권이 ‘공유 도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건축가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던진 이론적, 실천적 제안이었다면 4권 『공유 도시: 현장 서울』은 “도시를 다루는 비엔날레, 즉 어버니즘에 관한 전시는 어떻게 기획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즉 서울비엔날레의 이론과 실천을 다룬다. 현장 프로젝트로 진행된 ‘생산도시’, ‘식량도시’, ‘똑똑한 보행도시’를 비롯해 ‘공유도서관’과 서점, ‘국제 스튜디오 아카이브’까지 서울비엔날레를 만들고,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이 수록되어 있다.

각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획자들의 글 외에도 서울과 평양 두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된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획한 스토어프런트 포 아트 앤드 아키텍처, 3권 『공유 도시: 공동의 도시』에서 집중 조명했던 도시전을 디자인한 오브라 아키텍츠 등의 글이 실렸으며, 2015년에 열린 사전 심포지엄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서울비엔날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빼곡히 실려 있다. 특히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기록은 “서울비엔날레가 전문가 주도의 비엔날레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건축의 이해 당사자이자 진정한 주인인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도시건축’비엔날레로 완성되게 하는 기제”로서 왜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비엔날레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발췌

장소는 억지로 지어낸 전통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의지와 헌신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도시 비엔날레가 장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우선 짚어야 할 것들이 있다. 특정 장소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것이 반드시 그곳에 오래 살아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장소에 대한 의지는 보편주의와 상반되는 것이고, 배타적 지역주의와도 다른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살든, 장소에 대한 애정은 타인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말하겠다, 국제적인 비엔날레가 장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이번 비엔날레의 화두 ‘공유도시’ 또한 ‘헌신’과 상통하는 개념이 아닌가? 개인의 행복이 사람과 사람이 아닌 여럿의 관계에 기반을 둔다는 전제를 내포하는 말들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의 성패와 상관없이, 필자는 재차 확인한다. 서울비엔날레는 장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하였다. (8쪽)

아울러 더 이상 부정하기 힘든 기후변화의 파장과 날이 갈수록 예측하기 힘든 국제사회의 정치적인 기류 또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을 갖기 힘들게 만든다. 2017년 서울비엔날레 현장 프로젝트 ‘식량도시: 서울에서 먹고, 마시고, 숨 쉬기’는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했고, 식량과 연관된 현안들을 통해 서울의 미래를 전망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서울로 유입되어 유통되고 소비되는 식량의 흐름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를 상상하며, 서울의 식량 미래와 그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공유재인 물, 땅, 공기, 에너지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3쪽)

생산도시는 함께 생산하는 사람들의 도시를 그린다. 모든 진행 과정에서 커뮤니티와 다양한 이해관계자, 작가와 시민 관객이 함께 도시의 현장을 만들어나가며, 비엔날레 이후에도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끈다. 현장의 생산자들을 전시의 작가로, 관람객들을 생산의 주체로, 공공 기관의 정책을 문화적 실행으로 풀어간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 ‘다시세운’을 통해 새롭게 조성되는 보행로와 메이커스큐브 일대를 가장 먼저 시민에게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새롭게 이 지역에 이주하는 창의 산업 창업자, 창작자들은 비엔날레의 작가로 참여하여 새로운 이웃으로 인사한다. 비엔날레 행사를 통해 세운베이스먼트에서는 신제조업 관련 연구와 실험이 지속될 수 있는 시설과 자원을 마련하고 그 가능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참여 작가의 작품이 새로운 생산 제품이 되어 세운상가 내에 유통되고, 비엔날레를 통해 구성된 창신동의 새로운 봉제 공장은 젊은 세대가 의류 제조업에 진입하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61쪽)

전통적으로 보행 환경과 보행자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물리적 보행 환경을 제공하는 기관 또는 개인이 존재하고, 보행자는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가기 위하여 일방향으로 제공되는 보행 환경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사용했다. 스마트 모빌리티의 발달, 특히 자율 주행 자동차와 퍼스널 모빌리티가 발달함에 따라 보행은 필수적이고 실용적인 행위에서 선택적이고 여가적인 행위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서울비엔날레 ‘똑똑한 보행도시’ 의 네 가지 프로젝트는 문화적인 행위로서 보행 경험을 디자인함에 있어서, 보행 환경(E: Environment) 과 이용자(U: User) 사이에 어떻게 크리에이터(C: Creator)가 개입하여 기존의 관계와 방향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112쪽)

서울비엔날레는 이 고민에 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서울비엔날레의 주제전, 도시전, 현장 프로젝트는 ‘도시 건축’을 다루는 ‘비엔날레’로서 기존의 여러 도시 행정 관행과 틀을 깨는 유연하고 전위적인 도시 정책 실험을 시도했다. 이렇게 실시된 실험과 논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만났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서울비엔날레가 전문가 주도의 비엔날레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건축의 이해 당사자이자 진정한 주인인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도시건축’비엔날레로 완성되게 하는 기제이다. 시민들에게 보다 쉬운 언어, 보다 다양한 방식, 보다 직접적인 체험을 제공해 서울비엔날레의 도시 정책 실험과 담론에 대한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같이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시했다. (147쪽)

‘공유도시’가 서울비엔날레의 주제로 구상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아카이브를 비엔날레의 열 번째 공유 주제로 추가하려 시도했었다(그리고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특정한 맥락 속에 있다. 건축 및 도시적인 측면에서 (대체로 무신경하게 방관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은 단순히 공간의 변화를 넘어서 그만의 개념적인 층위를 형성하며 스스로 재탄생하는 도시이다. 일례로 서울의 도시 조직에서 흔히 발견되는 파편화와 과격한 병치와 같은 개념들은 한때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 나쁘다’라는 말이 흔히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과 같이, 파편화된 서울은 새로운 종류의 ‘나쁜 것’이 되었다. 우리는 ‘불연속성’을 ‘다양성’이라는 말로 재정의하여 정치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고, 그 결과 이제는 멋지고 굉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63쪽)

미 언론가이자 활동가였던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1961)에서 “도시는 모든 시민을 위해 무언가 줄 수 있다. 단, 그 도시가 모든 시민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만”이라고 말했다. 공간은 사용자의 문화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에 사용자/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재생 에너지를 쓰고 기술력을 동원하기보다는, 건축된 도시 공간을 오랫동안 쓰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다. 건축을 만드는 사람은 건축가이나, 건축을 완성하는 이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시민 참여는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워크숍이다. (193쪽)

양적으로만 본다면, 도시 공간의 절대 다수는 이미 사유화되었다. 즉 대다수 도시민은 대다수의 도시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가 도시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란 고작 어쩌다 들르게 되는 이런저런 건물 로비, 직장, 친구네 집, 학교 건물 등 지극히 한정적이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대다수 도시 공간은 도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속에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원천적으로 접근이 불허되기 때문에—우리가 도시를 떠올릴 때는 광장과 거리, 사원, 교회 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에게 도시는 온통 엄청나게 연계된 공적 공간으로만 인식된다. 엄밀히 따져보면 사적 공간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만, ‘현상학적으로’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도시=공적 공간’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209쪽)


차례

공유의 건축, 공유의 도시 / 박원순
서울비엔날레, 또는 장소 만들기 / 배형민

식량도시
서울에서 먹고, 마시고, 숨 쉬기 / 이혜원
비엔날레 식당
비엔날레 카페
공기방: 서울-베이징-쿠부치

생산도시
함께 생산하는 도시 / 강예린(SoA), 황지은
사물의 구조
신제조업 워크숍
프로젝트 서울 어페럴
현장 행사

똑똑한 보행도시
환경, 이용자, 크리에이터 / 양수인, 김경재
뇌파산책
소리숲길
뮤직시티
플레이어블 시티

시민참여 프로그램
서울비엔날레 × 서울식 거버넌스 / 정소익
서울자유지도 / 강이룬, 소원영
국제 스튜디오: 능동적 아카이브 / 존 홍
공유도서관 / 임경용
영화영상 프로그램: 삶이 투사된 도시 / 최원준
교육 프로그램 / 김선재, 성주은
공유도시 서울투어 / 이선아, 김나연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 / 스토어프런트 포 아트 앤드 아키텍처
공동의 도시를 위한 공간 / 오브라 아키텍츠
비엔날레를 만든 사람들


엮은이

배형민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다.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풀브라이트 재단으로부터 두 차례 후원을 받아 각각 풀브라이트 장학생, 교수를 지냈다. 대표 저서로 『Portfolio and the Diagram』(MIT Press, 2002)과 『감각의 단면: 승효상의 건축』(2007)이 있고 『한국 건축 개념 사전』(2013) 기획위원과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2008년과 2014년에 걸쳐 두 차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2014년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본 전시에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를 비롯해 여러 국제 전시의 초대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이다.


표지 사진

세운상가 보행데크. 사진: 신경섭 스튜디오.

편집

이경희, 박활성, 정소익, 이준영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