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미학의 첨예한 논쟁 지대: 『만화의 발명을』(사용 중 1)
만화라는 예술 장르를 둘러싼 상반된 미학과 그 충돌을 선보이는 만화이론서 『만화의 발명을』이 워크룸 프레스의 새로운 이론 총서 ‘사용 중’ 1권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저서 『만화 형식의 역사』에서 서양 만화의 궤적을 그리며 만화 형식의 본질을 탐구했던 만화 평론가 오혁진은 총서 ‘사용 중’의 첫 번째 참여자로서 자신이 ‘사용’해 볼 상대를 찾는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만화와 ‘망가’의 역사를 연구하며 저서 『만화와 망가의 기원: 수정주의 역사』로 2022년 만화 연구 분야의 최고 영예인 윌 아이스너 상을 수상한 그래픽 내러티브 역사학자 에이키 엑스너(Eike Exner)의 2021년 글 「만화의 발명: 1896–1900년 뉴욕 저널에서 탄생한 시청각 만화」(The Creation of the Comic Strip as an Audiovisual Stage in the New York Journal 1896–1900)이다.
이에 따라 사용 중 1권 『만화의 발명을』의 1부에는 에이키 엑스너의 글 전문이 오혁진 자신의 번역으로 수록된다. 그리고 오혁진은 이 1부를—「만화의 발명」을—사용하여 2부 「선형적 만화 너머: 매체, 장르, 작가」를 쓴다.
만화라는 예술이 발명되다: 만화의 발명(에이키 엑스너)
“빌 블랙비어드의 말을 빌리자면, “이 다섯 칸짜리 스트립에서 확립된 현대 만화의 양식 또는 원형이 미국의 만화 예술을 신속히 지배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웃콜트의 실험과 이후의 만화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1부 만화의 발명, 14쪽)
1부에서 에이키 엑스너는 종이 위에 소리와 운동까지도 표현하는 ‘시청각 만화’가 발명되는 순간을 주목한다. 1896–1900년 무렵 신문 『뉴욕 저널』에 연재된 역사적인 만화 작품들—『옐로 키드』(R. F. 아웃콜트), 『캐천재머 키즈』(루돌프 더크스), 『해피 훌리건』(프레더릭 오퍼) 등—이 그 순간을 이룬다.
‘말풍선’과 ‘충격별’ 등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시청각 만화적 장치들이 바로 이 역사적인 작품들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타났다. 이 장치들은 만화 속 인물들에게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지만 만화 밖 독자들에게는 보이고 들린다. 엑스너는 이처럼 이야기 세계(디제시스, diegesis)를 뛰어넘는(trans) 이 장치들을 전환 디제시스적(transdiegetic)이라고 말한다.
이 횡단/전환은 어쩌다가 하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가능해졌고, 그러한 횡단/전환의 가능성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엑스너는 특히 조너선 크레리, 조너선 스턴 등의 매체 이론과 기술 철학을 참조하여 근현대 시지각에 일어난 변화를 주목한다.
그것만 만화인가?: 선형적 만화 너머(오혁진)
“『옐로 키드』의 “다섯 칸짜리 스트립에서 확립된 현대 만화의 양식 또는 원형이 미국의 만화 예술을 신속히 지배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주장—엑스너가 「만화의 발명」에서 인용하는 빌 블랙비어드의 주장—은 만화의 선형성과 관련해 심도 있게 검토해 볼 의제를 산출한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80쪽)
한편, 2부에서 오혁진은 에이키 엑스너가 수행한 탐구의 섬세함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그 바탕에 놓인 역사적, 미학적 관점과 불화한다. 왜냐하면 「만화의 발명」이 만화가 “발명”되었다고 말할 때 만화가 ‘그제서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에이키 엑스너는 (오혁진의 표현으로) ‘선형적 만화’라는 개념을 전제한다.
그런데 과연 만화는 그때 “발명”된 것일까? 에이키 엑스너의 선형적 만화 개념은 만화라는 장르를 충분히 포괄하고 있을까? 오혁진은 (에이키 엑스너와 다르게) 만화라는 형식의 참된 범주를 ‘선형적 만화 너머’에서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혁진은 특히 발터 벤야민, 클레멘트 그린버그, 로절린드 크라우스 등 여러 예술 비평가의 매체 미학에 주목하며, 총 네 개의 장에 걸쳐 만화라는 ‘근대적인’ 매체, 추상 만화라는 장르, 크리스 웨어라는 작가에게서 ‘선형성과 비선형성의 변증법’이 나타남을 분석한다.
‘젊은’ 매체의 ‘클래식한’ 논쟁
“이론은 혼자 마냥 옳고 강할 수 없고 꼭 함께 존재한다. 앞글을 가져와 실랑이하며 뒷글이 잠시 자립한다. 이론은 불변의 결론을 쌓아 둔 수장고가 아니라 다음 대화를 위한 공구함이다. 눈독 들여 읽고 가져가 쓰기—이론은 사용 중이다.”(총서 소개 글)
총서 ‘사용 중’은 이론이라는 장르의 핵심이 결론의 축적이 아닌 ‘서로 사용되고 사용함’에 있다고 이해하고, 다양한 사용의 형태를 부각한다.
사용 중 1권 『만화의 발명을』은 만화라는 형식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충돌하는 두 관점을 나란히 담고 있다. 이는 마치 회화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모더니즘의 태동기에 벌어진 혼란과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른바 재현과 추상 사이의 충돌은 회화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에서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만화도 그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만화의 발명을』은 만화라는 비교적 ‘젊은’ 장르에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충돌에 주목한다. 만화에 관한 결정된 규정과 범주보다도 그 결정을 향하는 충돌을 목격함으로써, 우리는 만화이론 그리고 예술이론이 무엇을 문제로 삼고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발췌
아마도 『옐로 키드』가 (시청각) 만화 형식을 시작했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루돌프 더크스의 『캐천재머 키즈』(Katzenjammer Kids)와 프레더릭 오퍼의 『해피 훌리건』(Happy Hooligan)이 캐릭터 간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보여 준 1900년 이전까지 시청각 만화가 전반적으로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옐로 키드 기원설에 관한 보다 타당한 비판은, 그것이 현대—즉, 시청각—만화 형식의 시작을 너무 늦게가 아니라 너무 이르게 보았다는 것이다.(1부 만화의 발명, 23쪽)
말풍선과 같은 장치는 비시각적인 내부 디제시스의 내용을 시각적인 외부 디제시스의 형식으로 전환하며, 이것이 내가 말풍선을 ‘전환’ 디제시스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결국 그래픽 내러티브에서 만화라는 형식, 또는 종이 위의 시청각 무대는 그 내용을 내부, 외부, 전환 디제시스 등 세 영역으로 나누어서 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1부 만화의 발명, 35–36쪽)
작가들이 앞에서 언급한 시각 기술에 익숙해진 후—특히 사진의 출현으로 정지된 이미지 내 운동하는 물체가 남긴 흔적을 보는 경험을 한 이후—운동선과 블러 효과를 실험하기 시작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 가능하지만, 통증 같은 생리적 현상을 다소 자의적으로 보이는 그래픽 장치로 재현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처음으로 생각해 냈는지는 덜 분명하다. 만화에 관한 많은 문헌이 전환 디제시스 형식(가령 내면의 상태를 표현하는 별, 전구, 하트 모양 등)의 사용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아무도 그것의 역사와 기원을 설명하려 시도한 적은 없다.(1부 만화의 발명, 42쪽)
이 이론적 논의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든 그러지 않든 간에, 소리에 대한 전환 디제시스 재현이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의 출현과 동시에 발전한 것만은 확실하다. 전자가 후자에 영향을 받았든, 아니면 두 경우 모두 보다 근본적인 지각 지식의 변화에 반응했든 간에 말이다.(1부 만화의 발명, 52쪽)
에이키 엑스너의 1부 「만화의 발명」을 ‘사용’하는 나의 2부 「선형적 만화 너머」의 공통 주제는 만화의 선형성과 비선형성이다. 만화에서 나타나는 선형성과 비선형성은 동일한 하나의 현상이 지닌 이중의 국면이며, 이 두 대립적 속성의 역동적 상호 관계—혹은 ‘변증법’—는 만화의 본질을 구성한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71쪽)
엑스너의 위 인용문들에서 나는 시청각적 “미메시스”로 향해 나가는 목적론적 역사 서술을 본다. 물론 엑스너는 옐로 키드 기원설의 단순한 도식을 거부하고 시청각 형식의 복잡한 계보를 그려 냈고, 그의 작업을 목적론적 내러티브로만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만화사의 특정 국면을 시청각 형식이라는 목표를 향해 진보하는 역사로 서술한 것 또한 사실이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77쪽)
발터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또한 공동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글과 그림이 결합된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를 주목한 점을 고려하면, 그가 근대성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세기를 위한 스토리텔링 실천을 교육하는 데 기여한 만화를 철저히 외면했다는 사실은 의아스럽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114쪽)
몰로티우는 추상 만화를 ‘추상 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연속 예술’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강한 직관적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추상 만화의 지식을 생산하는 데 사실상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몰로티우의 정의는 추상 만화를 길게 늘여 놓은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추상’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추상 만화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닌 것이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124–125쪽)
『러스티 브라운』에서 그려지는 브라운 부자(父子)의 퇴행적 궤적 또한 미니어처 사물을 경유하여 전개된다. 주인공 러스티 브라운에게 ‘슈퍼걸 피규어’는 성적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도피처이다. 특히 슈퍼걸이 살아 움직이는 몽상의 순간은 주목할 만한데, 이때 슈퍼걸은—조지프 코넬의 상자 구조물에 배치된 오브제처럼—유리창을 경계로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2부 선형적 만화 너머, 156–157쪽)
이론 총서 ‘사용 중’
에이키 엑스너·오혁진, 『만화의 발명을』(사용 중 1)
그래프턴 태너·나원영, 『웅얼대는 시체를』(사용 중 2)
‘사용 중’의 첫 두 권은 ‘2026 서울국제도서전’ 워크룸 프레스 부스(A301)에서 처음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에서 예약 구매가 가능하며(6월 29일 출고), 이후 전국 서점에 배본될 예정입니다.
1부 만화의 발명: 1896–1900년 뉴욕 저널에서 탄생한 시청각 만화 (에이키 엑스너)
2부 선형적 만화 너머: 매체, 장르, 작가 (오혁진)
1. 만화라는 매체
2. 만화: 근대적 형식
3. 추상 만화의 추상성
4. 크리스 웨어와 만화의 ‘재발명’
지은이
에이키 엑스너(Eike Exner)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내러티브 역사학자이다. 만화의 세계적인 확산, ‘망가’의 역사 등에 관해 연구한다. 저서로 『망가: 일본 만화의 새 역사』(Manga: A New History of Japanese Comics), 『만화와 망가의 기원: 수정주의 역사』(Comics and the Origins of Manga: A Revisionist History)가 있고, 『만화와 망가의 기원』으로 2022년 윌 아이스너 학술상을 받았다.
오혁진
만화 평론가. 크리틱M 만화평론 신인상 최우수상,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비평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크리틱M』, 『유어마나』, 『크리틱-칼』, 『콜리그』, 『비평 만지작』, 『그래픽노블』, 『지금, 만화』, 『쓺』 등에 기고했다. 만화의 역사와 형식에 관심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만화 형식의 역사』, 『한국 만화 캐릭터 열전』(공저)이 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