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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얼대는 시체를

BABBLING CORPSE

  • 그래프턴 태너
  • ,
  • 나원영 지음
108 x 178 밀리미터 / 236쪽 / 무선 소프트커버 / 2026년 6월 23일 / ISBN 979-11-94232-43-8 04080 / 979-11-94232-41-4(세트)
  • 이동휘 편집
  • ,
  • 예승완 디자인

원래 가격: ₩19,000.현재 가격: ₩17,100.

문화의 죽음 앞에 쓰는 두 편의 음흉한 추도문: 『웅얼대는 시체를』(사용 중 2)

인간성도 역사도 없는 ‘시체’로서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 산업을 비평하는 문화이론서 『웅얼대는 시체를』이 워크룸 프레스의 새로운 이론 총서 ‘사용 중’ 2권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저서 『대체 현실 유령』에서 2010년대 온라인 호러의 양상을 연구했던 ‘인터넷의 심해 잠수부’이자 대중음악 비평가인 나원영은 총서 ‘사용 중’의 두 번째 참여자로서 자신이 ‘사용’해 볼 상대를 찾는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바로 저서 『포에버리즘』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문화이론가 그래프턴 태너의 2016년 책 『웅얼대는 시체: 베이퍼웨이브와 유령의 상품화』(Babbling Corpse: Vaporwave and the Commodification of Ghosts)이다.

이에 따라 사용 중 2권 『웅얼대는 시체를』의 1부에는 그래프턴 태너의 책 전문이 나원영 자신의 번역으로 수록된다. 그리고 나원영은 이 1부를—『웅얼대는 시체』를—사용하여 2부 「시체가 벌떡!」을 쓴다.

인간도 없고 시간도 멈춘 문화: 웅얼대는 시체(그래프턴 태너)

그래프턴 태너는 2024년 국내에 소개된 『포에버리즘』에서 역사와 시간의 문제—노스탤지어와 영원주의—에 입각하여 문화 산업의 징후를 조명하는 대중문화 비평가로서의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한편 그에 앞서 2016년 출간한 『웅얼대는 시체』에서도 태너는 이미 역사와 문화의 교차점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화를 이루는 두 축은 인간과 시간이다. 문화는 인간의 산물이며, 미래가 현재의 문화가 됨에 따라 현재였던 문화는 과거로 흘러간다. 『웅얼대는 시체』에서 태너는 2010년대에 이 두 축—인간성과 시간성—에서 일어난 변화에 집중하여 서구 문화의 병폐를 진단한다.

일단 곳곳에서 인간이 지워진다. ‘인간 지우기’ 현상은 기계화되는 산업 현장, 익명화되는 인터넷 공간, 인류 멸종을 향하는 기후와 국제 정치 등 여러 차원에서 나타난다. 요컨대, 세계는 비-인간적이다. 다른 한편, 미래에 대한 믿음—미래는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은 실패했다. 지금과는 다른 현재를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고갈되었다. 즉, 미래라는 관념은 실패했다.

이처럼 인간이 지워지고 시간이 멈춘 문화는 ‘시체’와 같다. 문화가 역동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시체’일 뿐이다. 우리는 이 “웅얼대는 시체”를 살아간다. “이 웅얼대는 시체는 생명력이 비워졌지만 기계 같은 솜씨로 미쳐 날뛸 수 있으며, 지각력이라곤 거의 없을지언정 너무나도 잘 기능한다.”(30쪽)

그래프턴 태너는 이 “웅얼대는 시체”를 이해하고 그 외부를 상상하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유령론과 (주류 대중문화가 아닌) 베이퍼웨이브 장르를 선택한다.

유령론(hauntology)이란 자크 데리다가 고안하고 마크 피셔가 응용한 이론이자 예술론으로, ‘과거가 약속했던 미래’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과거의 반복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좌절스러운 현실을 상기시키는 어둡고 현란한 이론이다. 그리고 베이퍼웨이브가 있다. 베이퍼웨이브란, 인터넷 시대의 언더그라운드적인 디지털 전자음악 장르로, 과거의 것을 언캐니하고 불길하게 쪼개고 왜곡하여 반복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이론적, 예술적 실천은 2010년대 중반 동시대 문화 산업의 병폐를 재현 내지는 교란함으로써 “웅얼대는 시체”의 대안을 상상케 한다.

과거의 힘을 ‘더 잘’ 활용하기: 시체가 벌떡!(나원영)

한편, 2부 「시체가 벌떡!」에서 나원영은 1부의 문제의식(인간성 소멸과 미래의 실패)과 대안(유령론과 베이퍼웨이브)을 받아들이되, 유령론을 ‘힘’의 문제로 옮겨오고자 한다. “웅얼대는 시체”로서 (과거의) 문화 속의 유령론이란, 나원영의 재해석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발휘하는 힘, 즉 ‘잠재적인 것의 행위성’을 의미한다.

나원영이 바라보는 2020년대 대한민국의 문화는, 그래프턴 태너의 2010년대 미국에 못지 않게, 인간성과 시간성의 실패가 뚜렷하다. 하지만 2010년대 미국에서 베이퍼웨이브가 그 실패를 씹고 뜯으며 분명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과 달리, 2020년대 대한민국의 문화는 여전히 현재의 이익을 위해 과거의 탐닉에 몰두하고 있다. 요컨대 2020년대 한국 문화에는—「토토가」와 팝업스토어의 생명력이 질긴 만큼—‘웅얼대는 시체’에 대한 경계심과 공격성이 비교적 부족하다.

그래서 나원영은 ‘시체’ 상태의 한국 대중문화를 (마치 이 총서의 이름처럼) ‘사용’할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웅얼대는 시체’를 전면화하는 것이 태너가 찬사한 베이퍼웨이브만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대중음악 자체부터가 애초에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으스스함의 온상”이다. 대중문화의 묘지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덤의 표면만 간질이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정말 땅을 파고 가져가 쓸 만한 것을 고르는 일이다. 가령 프로듀서 250의 음반 『뽕』, 스튜디오360 경음악단의 음반 『예언』이 했듯이 혹은 안 했듯이.

같은 방향, 다른 욕심의 두 혼톨로지스트

“이론은 혼자 마냥 옳고 강할 수 없고 꼭 함께 존재한다. 앞글을 가져와 실랑이하며 뒷글이 잠시 자립한다. 이론은 불변의 결론을 쌓아 둔 수장고가 아니라 다음 대화를 위한 공구함이다. 눈독 들여 읽고 가져가 쓰기—이론은 사용 중이다.”(총서 소개 글)

총서 ‘사용 중’은 이론이라는 장르의 핵심이 결론의 축적이 아닌 ‘서로 사용되고 사용함’에 있다고 이해하고, 다양한 사용의 형태를 부각한다.

사용 중 2권 『웅얼대는 시체를』은 방향이 비슷하지만 욕심이 다른 두 이론가의 글을 담고 있다. 태너도 나원영도 현실과 문화를 유영하는 듯한 유희적인 글쓰기를 펼치지만, 그 와중에 10년 늦은 유령론의 수입업자로서 2026년의 나원영은 2016년의 그래프턴 태너보다 더 절박하고 기대치가 높다. 나원영은 과거를 모호하게 윤색해 가며 겉핥는 일을 멈추고, 자신의 과거에 깃든 진짜 ‘행위성’을 직면하고 더욱 잘 ‘뽑아 먹기’를 한국 문화에 촉구한다.


발췌

몇십 년 전의 아날로그 전자 매체에서는 걸핏하면 유령들이 현시되곤 했다. 예를 들어 초기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디지털 매체의 선명하고 유려한 형식과 달리 저음질, 저화질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정보를 전했고, 잡음과 조악한 해상도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흐름을 방해했다. 라디오 신호가 보내지는 동안 다른 채널이 뿌연 퍼즈(fuzz)와 잡음에 뒤덮여 들어올 때면 마치 라디오가 전적으로 스스로 행동하는 것만 같고, 이런 오작동이 생각보다 잦다는 점이 우리를 특히나 심란하게 한다.(1부 웅얼대는 시체, 24쪽)

베이퍼웨이브가 팝 음악에 대해 수행하는 일을 「요리사가 너무 많아」는 2000년대 이전/인터넷 이전 시기 텔레비전에 대해 수행한다. 구역질 날 정도로 반복되는 「요리사가 너무 많아」의 주제가는 단편영화가 재생되는 10여 분 거의 내내 루프하며 전형적인 TV 주제가를 전복한다.(1부 웅얼대는 시체, 63쪽)

유령론적인 음악은 역사의 루프하는 구조와 붕괴하는 시간의 으스스함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나 케어테이커의 1999년 음반 『유령 들린 무도회장의 선별적 추억』(Selected Memories from the Haunted Ballroom)은 「샤이닝」에 경의를 표하며 혼톨로지 장르의 정수를 들려 준다. 시간 감각을 잃은 채로 웅장한 복도 안팎을 서성이며 오버룩 호텔 속을 떠도는 동안 들려오는 것이 바로 이 노래들이다. 이 음반은 역사의 모든 영역을 당겨 오고자 하는 상호텍스트적 혼성 모방이 아니라, 역사를 현저히 정밀하게 환기하는 음반이다. 현재에 출몰하고자 복귀하는 과거처럼 ‘들리는’ 음악이 담긴 음반인 셈이다.(1부 웅얼대는 시체, 81쪽)

나는 이 과정에 세 번째 단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바로 기화(vaporization)다. 음악은 “물건”에서 흐름(stream)으로 그다음에는 마침내 일상을 침투하는 무형의 구름으로 변형한다. 이는 선녹음해 틀어지는 수십 년 전의 뮤작과는 다르다. 기화된 음악이란 홍보의 음악이자 덧없고 공허한 음악의 소리다. 이는—인터넷 광고에서, 클럽과 바에서, 식료품점과 쇼핑몰에서—우리가 마주치지만 청취하지는 않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당신을 진정시켜 주거나 업무를 더 잘 수행하도록 돕거나 꼭 무언가를 팔고자 하지 않는다. 이는 하입(hype)의 소리, 음반을 평가 매기고 발매일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그 가치를 선언하는 음악 비평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소리다.(1부 웅얼대는 시체, 112쪽)

바로 이 ‘잠재적인 것의 행위성’이 내가 고안하고 싶은 유령론 사용법의 근간이며, 여기에는 무언가를 부리는 힘의 문제가 달렸다. 이 사용법에서의 유령은 단순히 신비로운 초자연 현상이 아니라 존재와 현실로부터 가라앉아 잠겨(潛) 있는(在) ‘잠재적인 것’이고, 현실의 존재가 준수하는 온갖 법칙을 얼마든지 무시하는 저만의 ‘행위성’을 갖고 있다.(2부 시체가 벌떡!, 183쪽)

스포티파이의 악명 높은 ‘하이퍼 팝’ 플레이리스트 아래로 미세한 차이를 띠는 곡들이 무성의하게 묶인 탓에, ‘하이퍼 팝’은 전자적인 댄스 팝의 인공미를 극한으로 몰아갔던 2010년대 중순의 PC 뮤직 레이블부터 트랩과 덥스텝에서 파생된 동시대의 양식들마저 집어삼킨 최근의 디지코어(digicore)까지 너무 많은 것을 통칭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이윽고 통제할 수 없는 하입의 흐름 속으로 한순간에 휩쓸려 가, 댄스 팝 음악가들이 조금이라도 튀는 음색의 리드 신스를 사용하면 어디에나 붙어 버리는 홍보 또는 하입용 수식어가 되어 버렸다.(2부 시체가 벌떡!, 207쪽)

뉴트로와 시티 팝 열풍이 한국에서 정점을 찍었던 2018–2019년, 네이버 문화재단과 뮤직 크레이티브 그룹 스페이스 오디티는 ‘디깅 클럽 서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구호인 “주목받아 마땅한, 시대를 앞선 숨은 음악의 재조명”과 “시대를 앞서간 20세기 숨은 음악”은 뉴트로가 과거를 대하는 전략을 뻔뻔하게 드러낸다. 양쪽에서 반복되는 ‘시대를 앞선다’는 표현은 현재에게 평가 기준을 몰아줌으로써 과거의 곡들—장단점 모두가 지극히 그 시대의 산물인—을 도리어 시대착오적인 진기명기로 취급하고, 여러 음악가 및 비평가로 이루어진 ‘큐레이터’들이 선별한 근과거의 가요들 또한 아무리 조용필의 「단발머리」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했더라도 현재의 각본을 따라 모조리 아득한 옛날의 비밀스러운 ‘숨은 음악’으로 포장되니 말이다.(2부 시체가 벌떡!, 223–224쪽)

이판근의 별세 두 달 뒤에 발매된 『예언』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과거에 대한 헌정을 아주 모범적이고 충실하게 실행한다. 1970년대 경음악에 잠재되어 있던 지역화된 대중음악의 힘을 반세기의 격차를 뛰어넘어 불러들이려는 스튜디오360 경음악단의 복원술 또한 아주 모범적이고 충실하게 유령(론)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실용적인 연주 및 배경음악으로서의 경음악에 대한 관심은 혼톨로지 음악가들이 1960–1970년대 영국의 방송 음악을 재사용하고 재구현하는 것이나 같은 시기에 발매된 라이브러리 뮤직이 한 세대 뒤 힙합에서 희소성 높은 샘플로 애용되는 것의 한국적인 판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2부 시체가 벌떡!, 230쪽)


이론 총서 ‘사용 중’

에이키 엑스너·오혁진, 『만화의 발명을』(사용 중 1)
그래프턴 태너·나원영, 『웅얼대는 시체를』(사용 중 2)

사용 중’의 첫 두 권은 ‘2026 서울국제도서전’ 워크룸 프레스 부스(A301)에서 처음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에서 예약 구매가 가능하며(6월 29일 출고), 이후 전국 서점에 배본될 예정입니다.

차례

1부 웅얼대는 시체: 베이퍼웨이브와 유령의 상품화 (그래프턴 태너)
서문
1. 유령적인 현존
2. 인간을 지우기
3. 잃어버린 미래와 소비자의 꿈
4. 진저리와 넌더리
감사의 말
후기

2부 시체가 벌떡! (나원영)
1. 유령(론)을 사용하기
2. 잠재적인 것의 행위성
3. 기화된 정보 흐름
4. 더 많은 진저리와 넌더리

지은이

그래프턴 태너(Grafton Tanner)
작가, 교육자. 지은 책으로는 『시계를 잃어버린 시간: 노스탤지어의 정치학』(The Hours Have Lost Their Clock: The Politics of Nostalgia), 『뱀의 원환: 빅 테크 시대의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The Circle of the Snake: Nostalgia and Utopia in the Age of Big Tech), 『포에버리즘』(Foreverism) 등이 있다. 노스탤지어, 기술, 신자유주의 수사학 등에 주목하며 『NPR』 등에 글을 기고한다.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 2016년부터 웹진 [weiv] 필진으로 활동을 시작해, 대중음악과 그 주변의 문화에 관해 쓰고 있다. 쓴 책으로 『대체 현실 유령: 2010년대 온라인 호러(중 일부)의 역사에 대한 미완의 연작 에세이』(2022)가 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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