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골똘한 질문자, 안규철
미술의 잠재성 가운데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난 30여 년간 안규철만큼 그 작업을 성실히 수행해온 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술이 지닌 급진성 가운데 하나가, 시대를 향한 근본적인 성찰에 있다고 한다면 그 역시 안규철만큼 성실한 질문자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질문은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 선행되는 행위이다. 그는 말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왜?’냐고 묻기 시작했던 아득한 어린 시절의 어느 날부터 세계가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면 그것은 의문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는 “생각하는 조각가”, “사물들의 통역가”로 불려온 안규철이 지난 세월 던져온 질문들이 담겨 있다.
1977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7년간 『계간미술』 기자로 일하며 학교에서 배운 미술이 아닌, 현실의 미술과 부딪힌 그는 1985년 무렵 한국 미술을 뜨겁게 달궜던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며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계열과 민중미술 계열이 첨예하게 부딪혔던 당시의 한국 미술계에서 급속도로 물신화되어가는 기념비적 조각에 대한 답변으로 ‘이야기 조각’, ‘풍경 조각’이라 불리는 미니어처 작업을 선보이던 안규철은 1987년, 서른세 살의 나이에 불현듯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프랑스를 거쳐 도착한 독일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유럽과 우리나라 사이에 놓인 커다란 시차(時差)였다. 이미 20여 년 전에 68혁명을 겪은 그곳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절정기에 건너간 이방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녀온 미술의 언어를 버려야 했다. <그 남자의 가방>,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등은 그 과정에서 나온 산물들이다.
방 안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적힌, 손잡이가 다섯 개인 문이고 다른 하나는 “삶”이라는 단어가 적힌, 손잡이가 없는 문이다. 손잡이가 없으니 삶의 문으로는 아예 나갈 수가 없고, 예술의 문으로 들어가려 해도 손잡이가 다섯 개나 되니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인 상황. 방 한구석에는 화분 하나가 놓여 있는데 “화분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식물이 아니라 다리 하나가 터무니없이 길게 성장하여 줄기 역할을 하는 불안정하고 앉을 수 없는 나무 의자”(최태만)이다. 당시 그의 심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이 방 안에서 그는, 더 이상 무명작가가 아닌 지금까지도 여전히 화분에 물을 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2014. 8. 29 – 12. 13)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은 잎(Flygblad)」이라는 시에서 가져온 말이다. 안규철은 이 말을 가져다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말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 모른다. 이것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미술평론가 우정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어내고, 도무지 쓸데없는 일들이 반복되기만 하는 무의미한 사건을 고안해내기 위해 매일 쉬지 않고 부지런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안규철에게서 소위 바틀비의 모습을 읽어낸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1853)의 주인공 이름이자 질 들뢰즈, 조르조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의 철학자들이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본 바틀비처럼, 안규철은 미술의 “외곽”에서 “더 이상 거대한 혁명을 소망하지 않고, 거룩한 구원을 기다리지 않으며,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우리를 둘러싼 초라한 일상을 성실히 필사한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면서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선호하지 않는지를 제시하지 않은 채 다만 모든 행위의 (불)가능성을 유예의 상태로 남겨놓기만 하기 때문에 파괴적”인 바틀비처럼, 안규철은 한쪽 벽에서 벽돌을 빼내어 묵묵히 다른 곳에 벽을 쌓고, 스웨터의 실을 풀어 또 다른 스웨터를 뜨고, 지워지기 쉬운 모래 위에 글을 쓰는 헛수고를 계속한다. 이윽고 그는 실패를 목표로 삼기에 이른다. 그 실패의 과정을 적나라한 모습으로 제시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안규철의 30년, 그러나 사냥은 계속된다
1992년, 유학 도중 스페이스 샘터화랑에서 가진 첫 번째 개인전 도록에 안규철은 이렇게 썼다. “누군가 미술가의 삶을 사냥터의 토끼의 역할에 비교했던 것을 기억한다. 경제든 정치든 사회든 미술비평이든 저널리즘이든 온갖 가능한 미술의 사냥꾼들로부터 토끼는 달아나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토끼는 이내 붙들려버린다. 반대로 너무 깊은 굴속에 숨어버리면 사냥이 지속될 수가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 그리하여 나는 달아난다. 외람되지만, 나를 잡아보라.” 일견 그는 잡기에 그리 어려운 대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난지 교수의 다음 말을 들어보면 실상은 다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무려 여섯 시간을 인터뷰했다. 오직 작업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로 그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도 대화를 나눌수록 그 작가를 더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는데 그것에 이를 수 없다기보다 원래 없는 어떤 것 또는 꽁무니를 빼는 어떤 것을 추적하는 것 같았다.”
달아날 테니 어디 한번 잡아보라는 호기로운 외침 이후 안규철은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과 해법에 안주하는 예술에 반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미술 지평을 넓혀왔으며, 미술 작품이라는 물고기를 키우는 “저수지에 계속 신선한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일에 한결같은 정성을” 들이며 한국 미술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그의 작품 세계를 망라해 묶은 이 책에는 새로 쓰인 평론들과 인터뷰뿐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안규철에 대해 쓴 평론과 작가 본인의 글들이 엄선해 실렸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과 일부 미발표 초기작도 정리해 실었다. 그러나 대개 이런 책에 바랄 법한 기대, 즉 어느 한 작가의 모습을 포착해 인쇄된 지면에 고정시킨다는 기대는 이루기 요원한 희망인 듯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안규철은 여전히 포위망을 좁힐 수는 있을지언정, 어느 한 굴에 몰아넣을 수 없는 작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김성원이 말한 대로 “다른 많은 작가들과는 달리 안규철 작업에는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혹은 선호하는 이슈는 없어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을 향한 직선 코스보다는 언제나 움직이며 재배치될 수 있는 또 우발적이며 다분히 혼돈스러운 샛길을 택”하는 그의 작업 성향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애초에 너무 많은 문들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치 2004년 로댕갤러리 개인전 때 선보였던 <112개의 문이 있는 방>처럼 그의 문들은 때로는 미로처럼, 때로는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비밀의 입구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사냥은 계속된다.
발췌
나의 작업은 이러한 세계의 역설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일들은 왜 실패하는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진 우리의 선한 의도와 그 일들에 바쳐진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고 우리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이,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도모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 미술계에 어떤 중심이나 주류가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 외곽에 머물러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믿고, 하던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서두를 것도 없고 주변을 의식할 일도 없다. 모든 작품은 하나하나가 도전이고 모험이다. 그것은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다만 미술 작품이라는 물고기를 키우는 내 저수지에 계속 신선한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일에 한결같은 정성을 들일 뿐이다.
미술 작품이 그런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미술이 아닌지 모른다. 그러기에는 나의 작업과 관심사들은 너무 세속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름다움이라면 달빛이나 바람, 노을이나 바위 같이 지금 있는 것들로 충분할 것 같다. 거기에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인가. 막연하지만, 자신의 궤도를 가고 있는 달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잠 못 들게 하듯이, 하나의 작품, 한 사람의 영혼의 궤적이 그런 빛을 저절로 발하는 그런 상태를 꿈꾸어 본다. 그러기 위해서 미술은 오히려 아름다움을 잊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내게는 미술을 하면서 계속해서 미술을 의심하는 병이 있다. 범람하는 이미지의 강력한 힘 앞에서 수공업적 이미지 생산자로서 무력감을 느끼고, 자본과 경제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미술의 역할에 대해 회의한다.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실상을 가리고 왜곡하는 이미지의 수상쩍은 속성을 경계한다.
때로는 이미지의 극단적인 배제를 통해 미술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고, 때로는 미술을 통해서 세상의 지배적인 힘들과 경쟁하려 했었다. 때로는 그것들을 저버리고 자족적인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수도승처럼 실종되고 싶기도 했다. 모호한 선문답이 아닌 정교한 언어로 작업을 규정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논리의 사다리를 버리고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었다.
나는 주변의 사물과 텍스트를 가지고 사소하고 어이없는 농담을 하는 데 관심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몰두하는 중요한 일들에 무관심하거나 이러한 현실의 위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삶을 그렇게 생존과 추락의 갈림길로 내모는 이 압도적 현실에 순순히 투항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각한 미술에 반대하지 않고 감각적인 구경거리로서의 미술에 반대하지 않으나, 그것들이 과연 우리 삶의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나는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과 해법에 안주하는 예술에 반대한다.
현실 세계는 우리의 소망들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세계이다. 평화로운 삶,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계에 대한 꿈은 항상 이러저러한 현실적 이유들로 인해 무산되고 지연된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로 구성된 세계이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며 우리를 체념과 탄식에 익숙하게 만드는 세계이다. 내게 있어서 만화적 상상력은 이러한 세계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힘이며, 그런 점에서 불온하고 무정부적인 상상력이다.
표지 이미지
안규철, 「완성되지 않는 건축」, 드로잉, 2014.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 안규철(국영문)
안규철, 세상에 대한 골똘한 관찰자 / 우정아(국영문)
사물들: 위반의 미학 / 김성원(국영문)
인터뷰 / 안규철 · 김선정
사물과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기로부터 예술의 효용성으로 / 최태만(국영문)
‘나’와 ‘너’를 통한 ‘우리’보기: 대화로서의 미술적 재현 / 이대범
언어 같은 사물, 사물 같은 언어 / 이건수
삶의 부재를 사유하는 공간 / 안소연
나의 작가적 전개 과정에 대해 / 안규철
작가적 슬럼프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곱 가지 작업 / 안규철(국영문)
나의 미술 작업과 만화적 상상력 / 안규철
바깥의 ‘흔적’을 담은 메타 미술 / 윤난지
‘시(詩)와 자’ — 안규철의 조각 / 박찬경
그림, 요리, 사냥 / 안규철
도판 목록 및 작가 노트
출처(국영문)
약력(국영문)
글쓴이 소개(국영문)
작업 노트 2011. 9 – 2014. 5
저자 소개
안규철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외과의였던 아버지를 따라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홉 살 때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유학 온 안규철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조각을 공부했으며, 1977년 졸업 후 『계간미술』에 들어가 7년간 기자로 일했다. 1985년 무렵 ‘현실과 발언’에 참여한 그는 당시의 기념비적 조각 흐름을 거스르는 미니어처 작업을 선보였으며, 1987년 서른셋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듬해인 1988년 독일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수학 중이던 1992년, 스페이스 샘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미술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귀국 이후 《사물들의 사이》, 《사소한 사건》, 《49개의 방》, 《무지개를 그리는 법》,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등 열 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국내외 여러 기획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일상적 사물과 공간에 내재된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발표해왔다. 한편 기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글쓰기는 안규철 작품 세계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저서 『그림 없는 미술관』, 『그 남자의 가방』, 『테이블(43 tables)』,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은 때로 미술이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내는,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그의 글쓰기의 산물이다.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