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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거대도시 서울 철도』, 76-77쪽
코멘터리는 책의 한 면에서 출발하는 저작자와의 대화입니다. 저술의 배경과 맥락, 담지 못한 내용, 출간 후기 등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눕니다.

워크룸 프레스(W): 처음에 253쪽을 골라 주셨는데 바꾸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76-77쪽에 실린 도표에 애착이 많이 가서 맨 처음에 보여 주고 싶어서요. 그런데 253쪽을 고르신 이유는 뭔가요?

전현우(J): 얼마 전 치른 선거 때 무책임한 공약이 난무했던 철도 지하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W: 이번 총선 때 지하화에 관한 공약이 많이 나왔나요?

J: 이번만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슈에요. 제 기억으로는 인천 쪽에서 20년 전쯤부터 계속 나오던 이야기이고, 이게 서울로 번졌던 게 박원순 시장 때였고요. 비수도권 광역시들도 2010년 후반부터 관심을 보였고… 그러다 2020년대 들어와서는 대선급 공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중앙당 차원에서 통합 공약을 낸 건 이번 총선이 처음인 것 같아요.

W: 그러면 지하화가 정말 가시권 안에 들어온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J: 예전에 비하면 그렇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인데, 이전에는 그냥 세금 때려 부어서 만든다거나 재개발 이익을 활용한다는 굉장히 엉성한 자금 조달 대안만 내놨다면 이번에는 자산유동화증권을 이용하는 방안을 들고나왔거든요.

W: 그게 뭔가요?

J: 한마디로 말하면 금융 상품이에요. 자동차, 휴대폰, 항공업처럼 미래 수익이 예상되는데 지금 사업을 벌일 현금은 부족할 수 있는 산업에서 쓰입니다. 핵심은 자산에서 예상되는 미래 수익을 기반으로 증권을 발행하고, 이 증권을 팔아서 얻은 현금을 굴리는 데 있습니다. 물론 미래 수익이 실제로 실현되지 않으면 증권은 결국 휴지 조각이 되죠. 이걸 우회하려고 온갖 기법을 쓰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안전 자산을 담보로 잡는 겁니다. 아마 지하화와 상관없는 철도부지나 자산을 담보로 잡지 않을까요?

W: 재원은 그런 식으로 조달한다고 치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있어야 하잖아요?

J: 2023년 말경에 교통연구원에서 시범 대안을 만들어 놨어요. 서울시의 경우에는 2040년 도시기본계획에 우리는 이거 할 거라고 수록해 놨고… 이제는 국토부가 전체 총대를 매고 지자체한테 기본 계획 짜서 오라고 일을 시키는 단계까지 온 것 같습니다.

W: 그럼, 이렇게 야금야금 추진되고 있는 철도 지하화 이슈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J: 정신이 나간 거죠.

W: 그런 감정적인 이야기 말고.

J: 그래서 고른 게 253쪽입니다. 이 페이지에 감정적인 언어를 걷어내고 압축해서 쓴 구절이 실려 있거든요. 잠시 읽어 보겠습니다.

“비용은 막대하고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지만 편익은 불분명한 경부본선의 지하화가 단시일 내에 가시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서울의 핵심부에서 발생할 부동산 개발 이익 때문에 전국망의 핵심부이자 최대 병목, 광역망의 도심 진입 핵심 통로 지점의 철도 능력을 약화시키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판단은, 중립적으로 기술하더라도 서울의 개발 이익과 서울 바깥의 도심 접근 편의 사이의 충돌에서 서울 측의 손을 들어 주겠다는 뜻이다.”

제가 이 책에서 했던 주요 주장 중 하나가, 결국 거대도시 서울에 철도가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멀쩡히 다니고 있는 선로마저 그 활용 가능성을 땅에 묻어 버리겠다고 하니 답답하죠.

철도의 혼잡도를 보여 주는 경부1선의 다이어그램 일부. 실제 운전 시각표에 따라 작도한 것이다. 2017년 12월 15일 기준.

W: 지하화되면 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경부4선은 물 건너가는 건가요?

J: 그건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어요. 2022년 말에 경부4선을 지하 100미터로 집어넣자는 계획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는 나왔습니다. 통과되었으니 그 계획 자체는 가능할 것 같은데 동시에 현재 존재하는 3복선을 땅속에 묻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고, 또 이 모든 기술적 난제를 극복한다 쳐도 짜 놓은 금융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미지수에요.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처럼 부실 채권을 양산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왜 그렇게 위험 부담이 많은 구조를 만들면서까지 철도를 땅속으로 집어넣고 싶은 건지.

W: 읽어 주신 구절이 포함된 「핵심 선구 연구 1」은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철도 병목을 해소할 수 있는 네 번째 철도, 즉 경부4선을 과연 어디에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서 제안하는 대목이죠. 수십 미터 단위로 부지를 살펴 가면서 어느 아파트 단지 화단을 조금 부서야 한다, 어느 교회랑 토지 보상 협상하는 데 힘들 수 있다 등등을 이야기하죠. 제가 과연 이거 정말 실어야 되는 내용인지 딴지를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잖아요.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도 모를 제안에 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는 게….

J: 책의 서론에도 썼지만 저는 이 책에 전략과 작전, 전술까지 모두 담고 싶었습니다. 전략과 작전 없는 전술 행동은 맹목적이고, 전술적 고려 없는 전략과 작전 계획은 공허한 것이라… 이 부분이 결코 사소하거나 주변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W: 당시에는 좀 편집에 힘에 부쳐서 그랬지만 이렇게 거시적인 이야기와 미시적인 이야기가 함께 펼쳐지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철도라는 복합적인 체계를 거리와 속도라는 추상적 요소에 기반해 분석하다가, SK뷰 아파트 주차장을 활용하려면 아파트 기단에 붙은 화단을 철거해야 한다고 하다가, 100년에 걸친 한국 철도 재정사가 나오고…

J: 단행본의 수준에서 제기하는 담론은 관행처럼 전략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불만이었거든요. 또 현실의 철도에 대해 제안하는 책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제안했던 계획과 실제 노선이 다르게 건설된다고 해도 왜 그런 노선을 제안한 것인지, 즉 철도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W: 얼마 전 GTX가 개통되었는데, 그건 이 책에 실었던 원하시는 그림과 어느 정도나 차이가 나나요?

J: 현재 개통된 노선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제가 했던 주장 중 하나가 서울에서 너무 가까운 데서 철도가 끊어진다는 거였잖아요? 그러지 말고 충청도와 강원도까지 연장해야 된다. 그리고 기존 노선을 최대한 활용해서 연계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그쪽으로 많이 선회한 것 같아요.

W: 제 기억에 GTX C선의 경우 정해진 노선에서 굉장히 큰 수정을 제안하셨던 것 같은데…

J: 좀 과격한 노선을 제안했었죠.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추진하는 걸 보면 오히려 제 주장보다 더 과격해진 느낌이 있어요.

W: 의외인데요?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J: 가령 김포 쪽 축은 책에서는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GTX 다음 노선, D선이 여기로 그어지게 되었죠. 이 책을 집필하던 2018-19년에는 다른 곳에 비해 덜 급한 축이라고 생각해서 제외했는데, 2024년 현재 제일 유명한 지옥철이 김포골드라인이다 보니 사업 속도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또 현재 5차 철도망 구축 계획이 작성되고 있는데, 지역마다 노선에 대한 요구가 빗발칩니다. 경기도에서 내놓은 노선들은 제 그림보다 확연히 더 촘촘하더군요. 다만 이들 노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핵심 역으로 KTX 같은 전국망 열차가 병목 없이 들어오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계획은 부족한 편입니다. 가령 장항선, 서해선은 GTX B선으로 서울을 관통해 올라가도록 만들자고 적었는데, 현실에서는 지금 화성 인근에서 경부고속선에 접속해 서울 시내 경부1선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민간 사업자가 늘어나서 운영이 파편화되고, 이용객도 결코 편하지는 않은 상황도 우려스럽고요. 양적으로 포괄하는 범위는 확실히 광범위해지는데, 효율이 떨어지는 굉장히 지저분한 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입니다.

W: 철도의 유기적인 연결은 이 책의 주안점이기도 하지요. 왜 이렇게 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J: 얼마 전 KTX가 20주년을 맞았어요. 2004년 4월 1일에 개업했으니까 20년이 지났죠. 그래서 몇몇 행사들이 열린 모양인데, 거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고속철도라는 게, 지어 놓기만 하면 비행기처럼 단번에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교통혁명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거죠. 자동차가 지배하고 있던 1990년대에 고속철도 사업을 위한 동력을 얻으려면 그럼 기대감이 필요했을 수도 있어죠. 하지만 정치적 동력과 별개로 이 특별한 열차를 다른 공공 교통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어요. GTX도 마찬가지에요. ‘교통혁명’이라는 소설에 ‘속도’라는 약을 타서 대중에게 팔고 있는데, 아직은 실적이 영 아니죠. 일단 시작은 했으니, 다른 공공 교통을 보완하는 하나의 수단 정도로 담백하게 다루면 될 텐데… 아무튼 20년이나 걸리긴 했지만 KTX에 대한 평가나 반성이 조금씩 나오고 있으니 GTX는 어떨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W: 또 기억나는 건, 이 책에서 제안한 많은 노선이 훨씬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까지 시야에 넣고 제안한 것들인데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J: 아무도 언급하지 않죠. 미사일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니까.

W: 얼마 전에는 남북을 잇는 동해선, 경의선의 도로 가로등마저 철거해 버렸다는 기사를 봤어요.

J: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건, 만약 북한의 개혁 개방이 이뤄진다면 남한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천 공항을 이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니까요. 중국, 일본에서도 비행기가 모이는 지척의 허브 공항을 안 쓰면 자기만 손해죠. 그렇게 되면 이 책에서 제안한 제3공항철도 같은 노선이 빛을 발할 겁니다.

W: 슬슬 76-77쪽에 실린 도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전 세계 50개 거대도시 철도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등수를 매겨 일렬로 나열한 것인데요. 시작부터 이 책의 야심과 스케일을 보여 주는 멋진 도표라고 생각합니다.

J: 사실 항공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건 지리학 쪽에서 조금 나오는데, 철도를 이런 식으로 비교한 건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그런데 구체적인 점수나 등수보다 중요한 건, 철도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수많은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네트워크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이 도표에 녹아 있고,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 관점이에요. 그런 면에서 더 의미 있는 도표라고 생각합니다.

W: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등수죠. 1등이 도쿄, 꼴찌가 보고타, 서울은 총점 41.2점으로 전체 22위를 차지했었는데요. 이 책이 나온 지도 4년 정도 흘렀으니 등수가 좀 바뀐 곳들이 있으려나요? 서울은 어떤가요?

J: 철도의 시간으로 보면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어서 순위 변동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 바로 앞쪽에 있는 상하이나 홍콩+선전 같은 도시는 철도 규모가 상당한 곳들이어서 금방 뛰어넘기는 힘들어요. 뉴욕, 충칭처럼 애초에 철도의 기반이 되는 지형이 균일하지 않은 도시들의 점수도 바뀌기 쉽지 않고요. 다만 책에도 썼듯이 중국 도시들의 개발 속도가 빨라서 광저우 같은 곳은 다시 계산해 보면 등수가 올랐을 수도 있겠네요.

W: 원래 계획대로 이 50개 도시의 철도 체계를 모두 지도로 만들어서 보여 줬더라면 정말 멋졌을 것 같아요. 몇몇 도시를 만들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포기했지만요.

J: 앞서 나왔던 철도 지하화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지하화를 이야기하면서 들고나오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파리에요. 파리처럼 하겠다는데 왜 그러냐, 그런데 사실 여기는 서울역만 한 규모의 역이 일곱 개가 있어요. 런던은 열한 개나 되고요. 이쯤 되어야 철도부지를 일부 정리한다는 이야기도 가능한 거지, 서울처럼 서울역 하나만 믿고 가는 도시에서 철도 지하화란 곧 자멸이라는 걸 지도를 잘 만들어서 보여 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조사를 벌인 건 아니고요. 중국은 좀 다르지만 인도의 경우 철도가 이렇게 크다는 것 자체가 잘 이야기도 안 되고, 다른 제3세계 도시들은 더더욱 사람들이 몰라요.

W: 그렇죠. 여기에 실린 첸나이나 뭄바이, 다카, 라오스 같은 메가시티에 가서 기차를 타는 경험을 몇이나 해 봤겠어요. 그 전에 여기가 메가시티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고요.

J: 메가시티라는 말은 참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만, 단편적인 몇 가지 수치들만 뽑아서, 그것도 잘 알려진 선진국의 소수 거대도시와 서울을 비교해 보는 정도의 논의만 있었죠. 논의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다 보니 나오는 부작용 중 하나가 서울의 철도망이 생각보다 허술한데 엉뚱한 이야기만 많아진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뭐랄까, 하려면 제대로 비교를 하고, 각 도시 망의 약점과 강점을 확인하고, 어떻게 약점을 보완할지 도시마다 생각해 보고… 이게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이었어요. 전 세계 메가시티의 대중교통 수준을 한눈에 보고, 이걸로 도시 개발의 상황을 점검해서 인류의 도시와 교통에 대해 논의할 공통 기반을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이 이 조사를 벌였던 기반에 있었는데, 아쉽죠. 지도로 보여 줬으면 아무래도 반향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도시의 지도화를 시도하다 말았죠. 이러다가 언제 책이 출간될지 몰라서.

작성하다 포기한 전 세계 50개 도시 철도 체계 지도 중 일부, 부에노스 아이레스.

W: 아마도 한 1년은 더 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기한 부분들이 많죠.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도 중간중간 넣으려고 했었다가 뺐고, 부록들도 많이 뺐고. 마지막 부록도 중요한 내용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 주제 하나만으로도 책이 한 권 나올 주제인데 조금 욱여넣는 느낌이어서 빼자고 했다가 꼭 넣어야 한다고 우기셔서 결국 넣었죠.

J: 이 책이 제안하는 대로 교통 전환을 하려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세입세출 시나리오를 짜야 할지 제안하는 글이었죠. 전기차가 늘어나면 유류세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고, 여기서 철도 수송 분담률을 어느 정도로 잡고, 자동차 통행량은 얼마나 억제하면서 세입세출 시나리오를 짜야 할지… 그런데 저는 현재(13퍼센트)의 2배 선인 20-30퍼센트 정도 선으로 제안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48퍼센트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당시 제 제안만 해도 과격하다 싶었는데, 국책 연구기관인 교통연구원에서 이런 제안이 나오고 있어요. 이제 정말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절박해지고 있는 거죠.

W: 그런 의미에서 기후 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3부는 유의미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J: 다른 데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책 나오고 나서 도로공사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어요. 이게 진짜냐, 전기차는 계속 늘어날 테고, 도로와 철도가 계속해서 보완 관계를 이뤄나갈 텐데 이건 너무 과격한 주장 아니냐, 이런 내용이었어요. 사실 이 책이 나올 때만 해도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 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고, 기후 대응에서 철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 잊어먹고 있던 거죠. 하지만 지금 이 책에 실린 기본 가정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고, 심지어 교통연구원에서 이 책보다 훨씬 과격한 숫자를 내놓을 정도이니, 3부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게 맞죠.

W: 솔직히 3부 7장 역시 책에서 빠질 뻔했는데…

J: 철도를 둘러싼 돈의 흐름을 다루는 부분이었죠. 돈 이야기, 경제적 평가에 대한 이야기라 오히려 장벽이 있을 수 있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후 정책과 접속시킨 덕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부분이 되어 버렸죠. 책의 구성이 가진 힘을 느끼기도 했어요.

W: 원래 전공이 분석철학이신데, 이 책에서 철도를 분석하거나 서술할 때 어느 정도 전공이 영향을 미친 듯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J: 분석철학이라는 사조에서 출발한 건 맞는데, 어쨌든 다른 사조들과 다 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하고요. 거칠게 말하면 철학은 크게 세 개로 나뉩니다. 무엇이 존재하느냐를 묻는 형이상학,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 인식론,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묻는 윤리학 등의 가치론. 1장 초반은 철도가 전체 교통 시스템 속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형이상학이고, 1장 후반과 2장은 그 역할을 확인하기 위한 인식론이라고 말하면 적절할 거 같습니다. 사실 각각의 부별로 이런 역할 분담들이 있는 거 같군요. 아무튼 질문을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방식 전체에, 철학이 배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에서 철학적 질문과 실제 경험 과학, 아니면 실용적 질문 사이에 문턱이 없고 상호 침투적이라고 보는 경향을 자연주의라고 말하는데, 이 책은 철도를 활용해 시도한 자연주의적 철학 작업이기도 하다고 쓰면서 늘 생각했습니다.

W: 책이 나오고 나서 뭔가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J: 아직도 경부선 지하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아쉽죠.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철도라는 복합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여전히 정치적 땔감으로 철도가 쓰인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씁쓸하고 아쉽습니다.

W: 그런 거 말고 책에 넣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빼면 좋았겠다 싶은 부분이요.

J: 지금 봐도 뺄 부분은 거의 없어요. 조금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들이 있긴 한데,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고요. 문장 차원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건조한 문장으로, 또 군더더기를 최소화하고 압축적으로 쓰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구조 중에 제일 아쉬운 거라면 뭐랄까, 말씀하신 대로 부록 부분이 아쉽죠. 좀 더 충실하게 다뤘어야 했는데 부록으로 들어가니까 좀 약하게 보이고, 또 그래서 잘 안 읽었을 거 아니에요?

W: 그랬으면 또 한 반년 정도 늦게 나왔겠죠. 그리고 제가 막판에 출간을 서두른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었어요. 막 팬데믹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더 늦었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죠.

J: 기억나네요. 진짜 시간과의 싸움이 확실히 있었어요. 더 늦게 출간되면 코로나의 영향까지 집어넣어야 했을 테니까요. 사실 팬데믹이 끝난 후에 지금까지도 고속철도를 제외하고 다른 철도들은 수요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어요.

W: 교통 3부작 집필은 어떤 상태인가요? 1부가 이 책이었다면 2부가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이고, 마지막으로 3부가 남았는데요.

J: 가제가 ‘도시 속의 철도’인데 어느 정도 그림은 그려놓고 1장을 집필한 상태입니다.

W: 어떤 내용인가요?

J: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 철도라는 시스템을 최대한 압축해서 보여 줬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사실 첫 책에서는 무시되었던 걷기에 조명을 비췄죠. 첫 책에서는 이동시간을 늘리는 ‘마찰 시간’의 주범처럼 썼지만, 걷기란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험이고 철도와 일상이 연결되는 연결점인 거니까… 이 방향에서 교통의 세계를 보지 못하면 기후와 철도 이야기를 해 봐야 반쪽이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남은 세 번째 책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거대도시가 아닌, 그 바깥 도시들에서 철도라는 존재의 의의와 그 답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크게는 진짜로 지금 어디가 허술한지를 짚고 개선 방향을 이야기하는 1부, 제가 주목하고 있는 도시마다 이야기를 풀어 보는 2부, 그리고 한국 바깥과 연결될 때 철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몽상에 대한 3부로 구상 중입니다.

W: 저는 언젠가 이 책에 실으려다 실패한,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철도에 대한 무궁무진한 정보를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책을 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J: 아까 이야기하셨던 에세이. 실패했죠.

W: 저는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내용들로 가득해서 좀 쉬어갈 수 있는, 철도와 관련된 여담이나 에피소드를 중간중간 배치하길 원했던 건데, 뭔가 재료만 달라지고 여전히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글이 나오더라고요. 대표적으로 당산철교에 얽힌 에피소드를 다룬 글을 진행하다 말았죠? 당산철교는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소재여서 충분히 재미있는 글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 글을 이해하려면 당산철교를 이루는 트러스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글이 나와 버렸잖아요.

J: 아무래도 제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다른 것 같긴 해요. 저는 그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아, 트러스 구조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또 그런 글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이 책의 핵심과 상관없다고 여겨져서 당시에 열심히 안 썼던 것도 같아요.

W: 확실히 재미를 느끼시는 지점이 머글들과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

J: 어쩌면 그래서 『거대도시 서울 철도』 같은 책을 쓸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역시 책이 어렵다는 사람들의 말과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면 편집하면서 하셨던 얘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길찾기』에서는 좀 더 실제 전현우가 길 위에서 겪었던 일들을 써 보기도 했죠. 아예 3부 ‘도시 속의 철도’에서 등장할 남부 지방의 지방 도시라면 이 이야기를 더 실감 나게 써야 할 테고요. 구체적인 땅 위의 이야기를 다루려면 그렇게 해 본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는 아내의 말 덕에, 같이 한국 영화와 한국 문학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지고 있어요. 아무튼, 이창동 영화에 나올 거 같은 기차 객실에서 생각을 정돈해 보는 것만은 모두의 경험일 테니,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환승할 만한 지점을 찾기에는 이만한 자료 더미도 없는 것 같습니다.

대화: 전현우, 박활성
2024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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