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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ry
김영나, 『한국의 미술들』, 49쪽
코멘터리는 책의 한 면에서 출발하는 저작자와의 대화입니다. 저술의 배경과 맥락, 담지 못한 내용, 출간 후기 등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 김영나, 박활성
2024년 1월 29일

워크룸 프레스(W): 왜 49쪽을 고르셨어요?

김영나(K): 이 면에 실린 도판은 예전에 내가 발굴해서 처음 국내에 소개한 사진들이라 애착이 가요. 특히 위쪽에 실린 도판은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조선이 도자기, 의복, 농산물, 공예품 등을 선보인 전시 전경을 찍은 사진인데, 찾느라 애를 많이 썼거든요.

W: 어떻게 찾으셨어요?

K: 시카고에 직접 갔죠. 시카고 도서관들을 다 뒤졌는데 찾을수록 우리나라 전시에 대해서 고구마 줄기 캐듯이 관련 자료가 줄줄이 나왔지만, 정작 전시 사진을 발견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마음이 조급해지던 차에 체류 마지막 날 극적으로 그 사진을 찾았어요.

W: 당시 전시 부스를 지키던 조선인이 관람객들이 하도 질문을 하니까 대답하다가 지쳐서 조선 지도 옆에 영어로 써서 붙여 놓았다는 글이 재미있더라고요. Corea라고 써도 틀린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Korea로 써 달라, 우리는 따뜻하게 데워지는 마루가 있는 집에서 산다, 산이 많고 기후는 시카고와 비슷하다 등등...

K: 시카고 박람회는 조선이 국제 무대에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한 자리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길 만했어요. 당시 언론에서도 조선을 이국적이고 고립된 나라로 소개했는데, 자료들을 보면 일본과 중국,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나라 정도로 조선을 인식했던 경우가 많아요.

『르 프티 주르날』에 실린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 삽화, 1900년 12월 16일, 45×30.8cm. 당시 조선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 주듯 중국인 복장을 한 사람과 일본의 단오절 풍습인 잉어 깃발이 보인다.

W: 『한국의 미술들』이 나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K: 표지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도판도 큼직해서 보기 좋고요. 내용에 대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W: 저는 책을 이렇게 크게 만들면 책장에 어떻게 꽂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책장보다는 서점 매대에 안 깔릴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그림을 크게 실으니까 시원하긴 합니다. 크게 보여 줘서 특별히 좋았던 작품이 있나요?

K: 2015년에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창덕궁 대조전 벽화』 전시에서 김은호의 「백학도」(1920)를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회화 가운데 규모가 큰 작품이 많지 않거든요.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1920)는 가로가 거의 9미터에 달하는 대작인데, 이 작품들이 당시 우리나라 회화의 역량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관장을 지낼 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어떻게 가져올 방법이 없을까, 이런 욕심이 들 정도로 굉장히 좋았는데 물론 실물에 비할 수는 없지만 크게 보여 줘서 좋았어요.

김규진, 「총석정절경도」, 1920, 비단에 채색, 195.5×882.5cm.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W: 선생님은 원래 전공이 서양미술이었잖아요? 언제부터 한국 근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K: 요즘 미술사에서는 전공을 따지지 않아요. 20세기 아시아 미술을 연구하려면 서양을 다 알아야 해요. 특히 한국 근대미술사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이 시기에 많은 미술가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또 서양미술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서양미술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미술까지 알아야 하거든요. 책의 서문에도 썼지만 19세기 말은 말 그대로 혼성의 시대, 어떻게 보면 동서양이 연결되는 첫 번째 세계화가 이뤄진 시기인데, 이런 폭넓은 관점에서 한국 미술을 다룬 개설서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사실 미국 유학을 할 때 동양미술사를 가르치던 교수가 나한테 한국 근대미술로 박사 논문을 써 보면 어떠냐고 권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1970년대인데 사실 쓰려고 해도 당시에는 자료가 없어서 어려웠을 것 같고, 서양미술사를 공부한 사람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어요. 이후 유학에서 돌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논문 심사를 맡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근대미술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죠. 그런데 일본 미술을 모르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지원을 받아 1년간 도쿄대학에 객원 연구원을 지내면서 일본어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죠.

W: 그때가 언제인가요?

K: 1990년쯤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일본은 근대미술 작품은 엄청나게 많은데 의외로 연구에 공백이 있었어요.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에 대한 연구는 정말 많은데, 그 이후의 연구가 없었어요. 일본 미술사학계에서는 1920-30년대 미술가들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아직 미술사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았어요. 나는 우리나라 미술가들이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건너간 1920-30년대의 자료가 필요한데, 그 부분이 아직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혼자 자료를 찾으며 독학하다시피 했어요.

W: 저도 이번에 이 책을 편집하면서 근대가 생각보다 먼 과거는 아니구나 싶었던 게, 설마 첫 번째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고희동 화백부터 저작권이 살아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K: 고희동 화백이 아직도 저작권이 살아 있나요?

W: 네, 1965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아직 살아 있습니다. 수소문 끝에 외손녀분에게 연락해서 사용 허락을 받긴 했지만, 거기서부터 걸리니까 좀 막막하더라고요. 이 책에 실리는 작품들의 저작권을 해결하는 게 만만치 않겠구나 싶어서요. 우리는 또 친일 문제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사실 유족 허락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여서 뺀 작품도 몇 점 있고요. 올해 4월쯤 선생님이 쓴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영문판이 네덜란드 브릴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그 책도 도판 저작권을 해결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현재 어떤 단계인가요?

K: 거의 마무리 단계에요. 얼마 전에 표지 시안을 받았는데 서도호의 작품을 표지 그림으로 썼는데 마음에 들어요. 그나저나 그 책 교정을 보느라 눈도 나빠지고 쉽지 않았어요. 특히 색인 부분을 검토할 때는 정말 체력이 안 따라 주더라고요.

W: 찾아보기는 국문으로 봐도 진이 빠지는 작업인데, 영어로 검토하시느라 정말 힘드셨겠어요. 아무튼 미리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해외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K: 여러 해외 대학이나 미술관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연히 연구도 활발해질 테고, 연구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통로도 넓어지리라고 봐요. 예전에는 한국 미술을 공부하면 취직이 잘 안 됐지만 요즘은 해외 대학에서도 아시아 근현대를 다루는 과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아마 이번 워크룸 프레스에서 나온 『한국의 미술들』도 영문판이 나올 것 같아요. 이 시대를 다룬 영어로 된 개설서가 거의 없어서 관심이 많거든요.

W: 개설서라고 하니까 생각나는데, 책을 편집하면서 선생님이 정론을 쓰시려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들었어요. 자기 주관이나 의견을 최대한 자제하고 객관적인 서술을 하려고 하신다. 뭐랄까, 수정을 거듭할수록 형용사가 줄어드는 느낌이랄까...

K: 내가 하려는 말은 다 넣었는데? 평상시에 말할 때도 형용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미술사학자는 될 수 있는 한 작품이나 자료를 근거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특히 이 책은 근대미술사의 기본이 되는 교과서 같은 도서를 목적으로 쓴 것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미술사학자로서 말하려는 바는 책의 구조나 얼개에서부터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에요. 예를 들면 1880년대 개항에서부터 책을 시작한 것, 한국, 일본, 서양의 미술운동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미술을 본 것, 그리고 미술 작품에 드러나는 시대성 분석들에 근대미술을 보는 나의 시각이 모두 반영되어 있어요. 미술사학자는 작품을 선정할 때도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떠나 미적 가치로 감동을 주는 작품, 그 시대의 흐름을 넘어서는 데 큰 기여를 하거나 시대의 진실을 통찰력 있게 표현한 작품을 분석해서 당시의 사회 환경 속에서 미술의 맥락을 이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W: 이 책에 싣지 못해서 아쉬운 작품이 있나요?

K: 일본 유학생들이 그린 작품들이 궁금하기는 해요. 1930년대 이중섭 화백이 그린 유화라든가... 문학수 화백의 작품도 궁금하고. 특히 조각들은 남은 작품이 거의 없으니까 아쉽죠. 이인성 화백의 또 다른 작품들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일본 미술학교 졸업 작품집이나 잡지를 통해 흑백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W: 향후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K: 할 만큼 했는데요? 이번에 나온 『한국의 미술들』의 영문판 작업을 해야겠지만, 한동안 좀 쉬어야지요.

김영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뮬렌버그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도쿄대학과 하버드 대학교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서양미술사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미술사교육연구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박물관 관장을 역임하는 한편,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이끌며 연구, 전시, 교육 분야에서 박물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저서로 『조형과 시대정신』, 『서양현대미술의 기원』, 『20세기의 한국미술』,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Twentieth Century Korean Art』,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Korea: Tradition, Modernity and Identity』, 『韓國近代美術の100年』, 『한국의 미술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