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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코러스

GAME CHORUS

  • 영이 지음
124 × 188밀리미터 / 112쪽 / 사철 소프트커버 / 2025년 6월 18일 / ISBN 979-11-94232-15-5 03690
  • 이동휘
  • ,
  • 우경진
  • ,
  • 성훈
  • ,
  • 이연숙(리타) 편집
  • ,
  • 예승완 디자인
  • 게임
  • 연극
  • 니체

원래 가격: ₩15,000.현재 가격: ₩13,500.

품절

『게임 코러스』는 연극, 서브컬처, 퀴어 문화 등의 어둡고 음습한 구석을 활발히 연구해 온 작가 영이의 첫 게임 이론서이다. 『게임 코러스』는, 제목 그대로, 게임이라는 매체 혹은 장르가 작동하는 고유의 방식을 고대 그리스 연극의 시민 합창단, 즉 코러스와의 연관성 속에 간명하게 분석한다. 이 책에서 영이는 궁극적으로 게임이 가지는 어떤 ‘효용’을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게임을 하는 목적이나 게임의 예술성 따위를 설득하려 하는 안온한 관점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공격을 펼친다.

게임의 UI, 연극의 코러스

『게임 코러스』의 주장은 복잡하지 않다. 게임은 사용자 접속 장치(user interface), 즉 UI로 이루어져 있다. 이 UI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하고자 진입하는 통로인 동시에 플레이어의 참여를 유도하고 유혹하며 명령하는 장치”이다. 공교롭게도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게임의 UI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시민 합창단, 즉 ‘코러스’(chorus)이다.”(14쪽)

코러스와의 유비를 통해, 『게임 코러스』는 UI의 강력한 역량을 규명한다. 마치 코러스가 애초 연극이 태동하던 고대 그리스 시기에는 연극의 부분을 넘어서 연극 그 자체였듯이, UI는 게임의 구조를 구성하는 부분일 뿐 아니라 곧 게임 그 자체이다. 또한, 마치 코러스가 연극 속 세계의 실재성을 믿고 관객을 그 실재하는 세계로 끌어들이듯이, UI는 게임 속 세계의 실재성을 믿고 플레이어를 그 실재하는 세계로 끌어들인다. 마지막으로, 마치 코러스가 관객 자신과 현실 사이의 구분을 뒤흔들고 현실 너머의 근원적 ‘자연’을 드러내는 연극 경험을 제공하듯이, UI는 플레이어가 더 이상 현실의 현실성을 믿지 못하게끔 하는, 그리고 자아의 소멸을 겪게끔 하는 게임플레이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연극과 게임의 근원 현상을 『게임 코러스』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 ‘디오니소스적 도취’라고 부른다.

UI는 어떻게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제공하는가

『게임 코러스』는 이러한 간명한 주장을 세밀하게 뒷받침한다. 먼저, UI는 ‘어떻게’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경험을 제공할까? 간혹 UI는 자신을 아무 근거 없이 관성적으로 믿어 버리는 플레이어의 신뢰를 박살 낸다. 바로 이러한 “배신”을 통해 UI는 플레이어가 의존하는 경험적 현실의 안전함과 견고함을 깨부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게임 코러스』가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게임이 바로 「언더테일」(Undertale)이다.(2장 ‘배신하는 UI’)

한편, UI는 ‘어떤 조건에서’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자칫 실패하는가? 바로 UI가 메뉴 디자인과 플레이 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을 해치고 플레이어의 몰입을 깨뜨릴 때이다. 『게임 코러스』의 3장 ‘UI의 실패 조건’은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의 텅 빈 시작 화면, 「네크로문다: 하이어드 건」(Necromunda: Hired Gun)의 인게임 메뉴 시스템 등과 같이 수많은 사례와 반례를 들어 UI가 실패할 경우의 수를 구체화한다.

마지막으로, UI가 가진 힘은 어느 정도이고 또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UI가 플레이어에게 미칠 수 있는 힘은 때로 전제적일 만큼 강력하다. 가령 체력 바, WASD 키 등의 UI는 “플레이어가 퀘스트나 이야기 등을 떠올리기도 이전에 거의 전의식적(前意識的)인 단계에서 끊임없이 명령을” 내린다.(94쪽)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지배를 통해 UI가—즉, 게임이—궁극적으로 설파하는 바는,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쾌”라는 메시지이다.(4장 ‘UI의 명령과 목표’)

회의와 염세의 게임 이론

영이는 ‘날것’을 쓴다. 그가 폭력, 죽음, 고통 같은 적나라한 대상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게임과 예술을 바라볼 때 그것들의 무용함과 황량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게임 코러스』의 부록으로 수록된 「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 」의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애초에 예술 현상이 무슨 외부적 효용을 위해 벌어진단 말인가?”(111쪽)

영이에 따르면, 무언가를 ‘위해서’ 행위해야 한다는 합목적성은 허위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허위적인 믿음을 무너뜨린다는 점에 게임이라는 장르의 ‘디오니소스적 본질’이 있다. 『게임 코러스』는 이러한 회의(懷疑)와 염세(厭世)의 게임 이론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거기에 담긴 생각은 당장은 수긍하기 어려울지라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도 없을 만큼 저돌적이고 근본적일 것이다.


발췌

이미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든 게임 콘솔이나 컴퓨터 본체의 단말과 접촉하게 된다. 마우스나 조이스틱 등의 물리적인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식의 직접적인 접촉일 때도 있고, 모니터와 스피커가 송출하는 시청각적 정보를 수용하는 식의 간접적인 접촉일 때도 있다. 우리가 접촉하는 게임 장치들은 비록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유기체 덩어리도 아니고 척추에 직접 삽입되지도 않지만, 플레이어를 게임 속 세계로 접속시키는 경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엑시스텐즈」의 팟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게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를 매개하는 연결 단자들을 우리는 사용자 접속 장치, 즉 ‘UI’(user interface)라고 부른다.(8–9쪽)

코러스는 연극 속 세계가 실재한다고 간주한다. 이와 평행하게, UI도 게임 속 세계가 실재한다고 간주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연극도 게임도 어디까지나 코러스와 UI로부터 뻗어 나온 존재라면, 이는 ‘내 몸’에게 ‘나’가 실존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은 차원의 문제이다. 내 팔과 내 눈은 ‘나’라는 개체를 ‘믿고’ 그것의 ‘실제 같은’ 작동을 위해 자신의 기능 전체를 투자한다. 실존주의적으로 개인의 자아가 얼마만큼 현실인지와 별개로 말이다.(19쪽)

그런데 사실 이 약속의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 코러스 자신들은 플레이어에게 명시적으로 신뢰성을 약속한 적이 없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그들의 항상성만을 보고 일방적으로 그들을 믿어 버린 것에 가깝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에서 시민 혹은 대중의 목소리가 그 머릿수만으로 허황된 신빙성을 자동으로 획득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코러스가 “민중”과 “민주주의적 아테네 시민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리라.(28쪽)

하지만 「언더테일」은 적을 플레이어의 친구로 만든 뒤에도 이렇게 끊임없이 쓸모없는 농담으로 UI 내부를 가득 채운다. 심지어 가득 차다 못해 UI의 한계 바깥으로 흘러넘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당연히 레서 도그를 통해 선사되는 장난은 UI에 대한 플레이어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 누가 전투 화면 안에 나타난 개의 목이 무한히 늘어나 화면, 즉 UI의 경계 바깥으로까지 빠져나가리라고 예상하겠는가? 이에 그치지 않고 게임은 악랄한 선택지를 플레이어에게 장난치듯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늘어난 목의 길이만큼이나 깊은 친구가 된 레서 도그의 마음마저 배신하고 단칼에 그 목을 베어 죽일 수 있다. 「언더테일」에서는 UI가 플레이어를 배신하고 플레이어가 NPC를 배신할 수 있다.(37쪽)

게임의 UI가 가장 극적으로 박살 나 무너지는 것은 아스고어와의 싸움 직후 발생하는 ‘플라위’(Flowey)와의 인카운터에서이다. 플라위는 게임을 종료하고, 저장된 파일을 지우며 컴퓨터의 윈도 테두리에 표시되는 게임의 제목을 변경하는 등 게임의 UI, 시스템, 데이터 전부를 직접 조작한다. 다시 말해 플라위는 게임 내의 NPC가 가지고 있던 권한을 뛰어넘어 플레이어가 가지는 권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게임 전체를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다.(45–46쪽)

이는 바꿔 말하면 시작 화면 구성에는 필수적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시작 화면은 이미지 한 장과 네 가지가량의 기능 항목만 배치해도 충분히 게임의 가동 조건을 만족한다. 하지만 이 기능적 단순함으로 인해 시작 화면의 구성이 플레이어가 경험할 몰입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음이 간과되곤 한다. 실제 게임들도 이를 자주 등한시한다. 특히 이른바 ‘텅 빈’ 시작 화면이라는 디자인의 기조가 게으르리만치 남발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63쪽)

실제로 대다수의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탐색 기능이 있어야만 게임 내 숨겨진 요소들을 찾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통찰한 인간의 지각 원리에 의해 플레이어는 탐험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자신이 발견하는 요소의 빛이 바래 감을 보게 되고, 앞으로 찾아낼 것에 대한 기대도, 또 실제로 그것을 발굴할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그것들 하나하나의 의미, 영향력, 존재감도 플레이어에게 점차 작아진다. 따라서 탐색 기능이 플레이어에게 부여하고자 했던 조급함과 강박성은 이제 성가심과 지겨움으로 변화한다.(83쪽)

반면 서바이벌,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코러스는 사방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고함과 비명을 질러 댄다. ‘배고프다!’, ‘목마르다!’, ‘인벤토리가 꽉 차 아주 무겁다!’, ‘도시에 사람이 너무 많다!’, ‘동물들이 울타리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기관을 운영할 자금이 더 이상 없다!’, ‘화장실이 부족하다!’, ‘심심하다!’…. 끔찍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이 어떤 하나의 의미로도 수렴하지 않는 전쟁터에서처럼, 서사나 극은커녕 시민이라는 집단조차 구성하지 않고, 그저 영원히 지속되는 중구난방의 필요들만을 산발적으로 외쳐 댈 뿐이다. 이것이 현실의 끔찍하고 잔혹한 운명과 동일하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리라.(99쪽)

굳이 게임이 예술의 영역 안으로 포섭되어야 할 필요도 없겠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그 어떤 외부적 목적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서 즐거움만을 끌어내기 위해 플레이한다는 지점에서만 예술과 궤를 함께할 수 있다. 아니면 예술이 게임과 궤를 함께 하든가. 물론 이 포섭과 범주의 선후는 중요하지 않다. 둘은 인간 행위라는 점에서 목적과 원리가 동일하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애초에 예술 현상이 무슨 외부적 효용을 위해 벌어진단 말인가? (111쪽)

차례

1. 게임의 UI, 연극의 코러스
2. 배신하는 UI들
3. UI의 실패 조건
4. UI의 명령과 목표

부록—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와 「벼개가 된 사나히」에서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2023년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서 「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으로 수상했으며, 웹진 『연극in』과 『게임제너레이션』에 비평을 게재한다. 『호르몬 일지』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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