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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

GROTOWSKI TRAINING

  • 구자혜 지음
120 × 180밀리미터 / 376쪽 / 사철 소프트커버 / 2024년 6월 20일 / 19,000원 / ISBN 979-11-93480-12-0 03680
  • 박활성
  • ,
  • 이동휘
  • ,
  • 박새롬 편집
  • ,
  • 유현선 디자인
  • 실패
  • 퀴어
  • 연극
  • 희곡
  • 재연
  • 재현

원래 가격: ₩19,000.현재 가격: ₩17,100.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극작가이자 연출가 구자혜가 지난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쓴 희곡 가운데 일곱 편을 엮은 희곡집이다. 표제작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부터 「기다린다는 것, 멈춘다는 것」까지,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그동안 새로운 형식과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받아 온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떤 궤적을 따라 여기에 도달했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개가 사라졌다. 개를 찾는 연극이 시작된다.

개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연극. 사라진 개의 이름은 ‘델마’라고 불러도 오지 않고, ‘그로토프스키’라고 불러도 오지 않는 ‘델마 혹은 그로토프스키’. 사라진 개를 찾는 캐롤과 그 뒤를 쫓아 바닥 아래로 향하는 그의 친구들이 있다. 책 첫머리에 실린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구자혜의 희곡에 진입하는 입구이자, 종국에는 전혀 다른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입구를 지나면 질문들이 기다린다. 빛, 소리, 움직임, 배우, 무대, 혹은 그들 모두가 얽힌 질문들이 중첩되어 쌓이기 시작한다. 기존 연극의 관습과 문법에 대한 질문, 결국 재연이거나 재현일 수밖에 없는 연극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질문들이 무대를 뚫고 현실을 향해 던져진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부터 예술계 내 성폭력 사태를 계기로 확산한 미투 운동,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갑질 논란, 여전히 편협한 시각에 머무는 성소수자 문제까지, 그는 “세계를 훑어보고, 강박적으로 취합하고, 허용되지 않는 논리를 재조합”하며 압도적인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 질문 한가운데 고통받는 존재들이 있다. 아마도 그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전의 연극 만들기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연극계를 휩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 센터 스트리밍서비스공연」에서 보듯 연극은 환영이 아닌 현실의 일부이며, 사라진 개가 다시 돌아와 열어젖힐 암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행히 그 개를 환대할 장소가 존재한다. 현재들의 사건을 똑똑히 “목도하고 겪으며 세계와 시대의 눈치를 보면서” 쓴 한국 연극의 증거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

“구자혜의 희곡에서 연극은 자꾸만 지연되고 취소되고 망쳐진다. 견고한 줄 알았던 사회적 약속들이 무참히 휘발된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이전까지 통용되던 연극(계)의 보편적 약속들을 집요하게 의심하며 마구 헤집고 있다. 실험 연극 어쩌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연극은 기껏해야 재연 혹은 재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떤 연극적 환영도 없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들어가려는 모순된 욕망을 품는다. 이제 그에게 미더운 것은 정교한 계산 끝에 부려지는 빛, 소리, 움직임이 아니라 “각자의 연극학”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 내려는 구체적 존재로서의 “그쪽”이다. 그렇다면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낭만화나 물신화 없이 타자의 고통과 대면하는 존재가 되기 위한 훈련, 곧 ‘시민 트레이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 오혜진, 문학 평론가

“살다 보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내게는 구자혜의 연극을 보는 일이 그렇다.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죽음을 영원한 부재나 상실로 다루기보다, 애도의 퀴어한 방식을 제시한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가 섞이고, 인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애도가 갖는 정치적, 정동적, 그리고 감정적 의미가 떠오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현실과 현실과 현실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함께하는 이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모두 현실을 중첩해서 쌓아 올리며 만든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자, 희곡/연극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최대로 확장하는 작품들이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쌓아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소장


발췌

개의 이름은 길고 긴, 델마 혹은 그로토프스키! 그러다 죽어요. 혀를 내밀고 강렬하게 한 번 헐떡거리더니 개는 죽어요. 저는 가만히 있어요. 무릎을 꿇고, 개를 안은 채로. 개는 하수구에 어떻게 들어간 걸까요. 그렇게 개가 죽습니다. 개를 안아 들고 경비실로 가요. “개로군요. 개가 죽었군요.” 경비는 며칠 전부터 103동 주민들이 개를 찾고 있었다고, 캐롤이 개를 찾고 있었다고. 계속. 혹은. (14쪽)

특히 그 장면. 손에 피가 생기더라. 진짜 피 같았어. 폭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런 건 연극이 뭔지도 모르는 새파란 놈들이나 하는 말이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입만 살아서.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거, 그게 쉬운 일인 줄 아나 보지? 50년이 흘러도 여전히 과감한 시도. 50년간 매번 새로운 연극. 그 정신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연극의 언어와 감각을 제시한, 잔혹하리만큼 예술적인, 연극. 아, 요새 그게 유행이래. 재현과 회상이 없는 거. 재연은 당연히 불법. 그놈의 유행. (178쪽)

이 움직임이 끝난 후, 정확하게 10초 후. 회전무대가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기 시작해야 한다. 정확하게 10초 후. 회전무대가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31초 후.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관객들은 한 호흡을 들이쉬고 박수를 쳐야 한다. 빛이 사라지기 전에 박수를 치는 관객은 경멸한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너희들은 숨을 참고 물속에서 영원히 박수를 쳐야 한다. (182쪽)

이세계를 기록하고자 이곳에 선다 마침표 괄호 열고 타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괄호 닫고 세상을 향해 울었고 쉼표 세상을 썼다 쉼표 그리고 사랑했다 마침표 울고 쓰고 사랑했다 마침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사랑하느라 평생을 울면서 보낸 사람들 말줄임표 마침표 그래서 우리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쉼표 앉아서 쓰지 않고 쉼표 이곳에 서서 쓰고 쓴다 말줄임표 마침표 진심으로 사과가 도달하기에는 상처가 깊었으리 마침표 이 책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갈 쉼표 이세계에서 벌어진 가해의 역사 마침표 태어나길 광인으로 태어나 이세계에서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이 스스로 기록하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 권 마침표 (207쪽)

그나마 그쪽과 만나는 순간만큼은 지금이었어. 그런데 그쪽도 없는 채로 뭐든 하라고? 저기요. 그럼 저기 저 비어 있는 객석이라도 치워 주든가.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로 막 송출해 주었고. 또 또 또 10개월 시간이 흐르니 우리가 하고 있는 걸 미리 찍어서 보내 주면, 이미 재현인 그것의 재연 장면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거 잘해 봤자 재현될 수밖에 없어도, 그걸 뚫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말. 그때 했던 주어진 말들만 손에 쥐고 있지만, 지금 그걸 뚫고 하고 싶은 말 그 한마디 위해, 이거 결국은 또 실패한다 해도 그 단 한마디 말을 하면 재현 속 재연을 구현한다 할지라도 그 인물이 그 말을 통해 유령이 되지 않을 수 있다니까. 한편 함께 실패하기로 해서 부러 망할 수 있는 이런 말들을 했던 했던 그 시간. (325쪽)

우리는, 세계와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 뒤에 서서 그 사람들의 말을 전언하고자 했고, 그 사람들 뒤에 서서 세계와 싸웠던 것 같습니다. 이 희곡이 관념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결국 메타 연극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메타 연극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연극에 대한 연극은, 그리고 이렇게까지 메타적으로 집요하게 묻는 연극은, 결국 연극에 ‘대한’ 연극이 아니라 연극 너머의 것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은 고통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완전히 들어가 볼 수는 없기에 우리는 자꾸 우리가 맡은 사람 뒤에 서 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373쪽)


관련 자료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의 저자 구자혜와의 인터뷰↗︎

대화. 구자혜, 박활성
녹음일. 2024년 5월 14일
사운드 디자인. 임희주
길이. 53분 55초

차례

1부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

타즈매니아 타이거

가해자 탐구—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

2부
21세기 어느 날 밤 코트니 심슨 박사는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 앉아 생각한다. 제4의 벽을 뚫으려 했던 여당극의 연극 만들기 전략이란 무엇인가. 개가 사라졌다. 개를 찾는 연극을 할 것인가. 개를 찾기 위해 연극을 할 것인가? 이 연극의 부제는, 나는 퇴장했지만 보고 들으며 무대 위에 있었다, 가 될 것이며 영업 전략 노출의 리스크, 가 디렉터스 컷이 될 것이다. 클라이맥스템포갈등이 없는데도 바삐 달려가는 이 연극에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2014년 이후의 연극 말이다.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 센터 스트리밍서비스공연

기다린다는 것, 멈춘다는 것

감사의 글

저자 소개

구자혜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한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환영을 인정하면서도 언어가 극장 안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 인물들의 발화를 고안한다. 가해자 연작으로 불리는 희곡들을 지나, 존재의 목소리를 듣는 쪽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그 후, 세월호 참사 이후 천착해 온 무대 위 재현의 논리를 다루는 희곡과 동물의 고통과 동물 재현의 윤리를 다룬 희곡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