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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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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과잉
Melody Surplus

오민, 문석민, 신예슬 지음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며 동시대 음악에서 맞춰지지 않은 채 남겨진 조각들을 찾는 ‘악보들’ 4권이 출간되었다. 노래의 선율과 다른 선이 형성되는 장면을 포착했던 『비정량 프렐류드』, 서로 다른 것이 어떻게 한 음악에서 양립할 수 있는지 살핀 『판타지아』, 그리고 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의 변주를 관찰했던 『리토르넬로』에 이어, 『멜로디 과잉』은 모차르트 협주곡 24번을 경유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분화하는 점들을 따라간다.

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보이려 하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보이지 않으려 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 간다.

나쁜 작곡가, 좋은 음악가

1968년 글렌 굴드는 미국의 방송사 NET에 출연해 「모차르트는 어떻게 나쁜 작곡가가 되었는가」라는 TV 강연을 한다. “방송은 모차르트의 후기작 중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연주하는 굴드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한참 곡의 중반부를 연주하다 돌연 손을 멈춘 굴드는 이런 말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이 곡을 모차르트, 특히 말년의 모차르트가 그다지 훌륭한 ‘작곡가’가 아니었던 이유를 보여 주는 좋은 예로 제안하려 합니다.’”
‘악보들’은 이 굴드의 말로부터 시작해 모차르트 협주곡 24번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상태, 오케스트라와 독주자가 맺는 관계, 관습적인 감각 방식을 교란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선율의 차원에서도, 편성의 차원에서도, 시간의 차원에서도 어느 한 점을 향해 달려가지” 않음으로써 표출되는 노래의 역설이 “결국 시간 위에서 흘러가는 여러 선율을 ‘모두’ 듣게” 만드는 모차르트의 이 곡을 어떻게 바라볼지 제안한다.


발췌

굴드는 모차르트가 의심의 여지 없이 위대한 음악가이자 뛰어난 즉흥 연주자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어가는 말들은 모차르트가 나쁜 작곡가라는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들이다. 예컨대 C단조에 이어 등장하는 E플랫 장조의 ‘테마’들은 사실상 오르내리는 스케일이나 아르페지오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거나, 화성 진행을 잘 예측할 수 없고, 균형 잡힌 진행을 구성하기보다는 특정 시퀀스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른다는 식이다. 또 모차르트의 작품이 즉흥 연주와 닮아 있고, 젊은 시절의 모차르트를 유럽의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그 엄청난 재능이 말년의 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냉정한 평가도 이어진다.

하지만 굴드의 의견을 이 곡에 관한 일반적 평가로 보기는 어렵다. 베토벤이 이 곡의 리허설을 듣고 ‘우리는 결코 이런 곡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탄했다거나 브람스가 ‘영감 넘치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예술의 걸작’이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는 이 곡에 대한 설명문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렇게 양분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18세기의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열정적인 대화’ 모델로 설명되곤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1악장은 그 관습적인 모델을 따르면서도 대화가 배열되거나 생략되는 방식에서 그 이전의 어느 협주곡보다 독창적이라고 분석된다. 수차례 반복되지 않는 주제 선율, 그에 비할 정도로 유려한 연결구들,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에게 독립적으로 주어진 주제 선율, 그럼으로써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다른 선율들. 이런 흐름은 협주곡의 중심을 하나의 주제 선율로, 그리고 독주자 쪽으로 수렴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입장이 보다 동등하게 마주하는 상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멜로디가 과잉한다.


차례

총론
노래하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

서문
나쁜 작곡가, 좋은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No. 24, K. 491, 1악장


저자 소개

오민
예술가. 시간을 둘러싼 물질과 사유의 경계 및 상호 작용을 연구한다. 주로 미술, 음악,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시간 기반 설치와 라이브 퍼포먼스가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한다. 『포스트텍스처』, 『토마』(공저),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스코어 스코어』 등을 출간했다.

문석민
작곡가. 일반적인 악기 소리부터 소음까지 감각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발굴하고 또 그 소리 재료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미술가, 안무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비음악적인 재료를 음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MDI 앙상블, 네오 콰르텟, 앙상블 미장, 앙상블 TIMF 등에 의해 연주되었다.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종종 기획자,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