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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르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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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르넬로
Ritornello

오민, 문석민, 신예슬 지음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며 동시대 음악에서 맞춰지지 않은 채 남겨진 조각들을 찾는 ‘악보들’ 3권이 출간되었다. 노래의 선율과 다른 선이 형성되는 장면을 포착했던 첫 번째 『비정량 프렐류드』와 서로 다른 것이 어떻게 한 음악에서 양립할 수 있는지 살핀 두 번째 『판타지아』에 이어, 『리토르넬로』에서는 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보이려 하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보이지 않으려 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 간다.

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

‘악보들’은 우리가 음악이라 부르는 것 안에서 노래하는 음악과 노래하지 않는 음악이 뒤섞인 양상을 감각한다. 노래하는 음악은 꼭 사람의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음악이 아닌, “노래와 충분히 닮은 음악이다. 부를 수 있고, 보편의 호흡을 넘어서지 않고,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지 않으며, 신체를 긴장시키는 낯선 조합보다는 안정화된 패턴 안에서 움직이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은 그 반대 지점으로 움직이는 음악을 지칭한다. 물론 음악에서 이 둘은 늘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음악은 늘 두 방향 모두를 향해 열려 있다.
리토르넬로는 되돌아온다는 뜻을 지닌 말이자 합주와 독주가 되풀이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을 뜻한다. 바로크 시대 이후 이러한 리토르넬로의 원리는 음악의 일반적인 구조로 정착하면서 형식으로서는 흐릿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변주곡 안에서 이러한 원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은 악보들이 찾는 긴장 관계, 즉 노래하려는 움직임과 노래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맺는 관계를 잘 드러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1837년: 리토르넬로에 대해」라는 글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왜 이러한 유형의 리토르넬로를 내부에서 변형시키고 탈영토화해 음악의 최종 목적인 두 번째 유형의 리토르넬로, 즉 음 기계에 속하는 코스모스적 리토르넬로를 만들어 낼까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 리토르넬로의 근본 원리는 어쩌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탐구하는 예술 형식에 숨은 비밀을 탐구할 실마리일런지도 모른다.


발췌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악기의 음악을 모두 목소리로 따라 부를 수 없지만 그것이 노래와 닮은 선율이라면 가능하고, 손과 귀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거쳐서 생산할 수 있는 선율이라면 기억에 조금은 더 유리할 것이다. 반복 및 재생산될 가능성도 조금은 더 커지겠다. 만약 노래와 충분히 다를 수 있는 음악이 여전히 노래와 유사한 선율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그것은 노래함으로써 노래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기억과 반복 및 재생산의 효과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주곡은 ‘테마’를 다양한 기법으로 바꾸어 쓰는 음악이다. 여기서 테마는 모차르트가 택한 노래처럼 익숙한 관습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규칙적인 리듬, 일관성 있는 선율형, 간단한 화성 진행으로 이루어졌던 그 노래는 누군가를 설득해야만 하는 낯설고 불안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린이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단순 명료한 것이었다.

변주곡에서 테마와 변주의 관계는 ‘악보들’이 바라보는 노래와 음악의 관계와도 닮아 있다. 계속해서 반복, 재생산된 테마의 상당수는 노래의 조건에 부합하지만 변주를 지나오며 점점 비노래화된다. 변주들은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보편의 호흡을 넘어서고,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며, 신체를 긴장시키는 낯선 조합으로 바꾸어 내고, 이를 통해 안정화된 패턴을 깨뜨리는 방법을 실험한다.

『리토르넬로』에서 우리가 자세히 살피고 싶은 것은 구심점이자 출발점으로 자리하는 노래, 그리고 그 노래가 구성적 음악으로 흩어져 나가는 과정이다. 그 자체로 온전한 노래이기도 한 이 테마들을 변주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노래는 왜 노래로 머무르지 않고 달라지는가? 변주는 왜 노래의 조건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전개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어질 사례들을 넘어, 수많은 사례가 안정과 관습을 뒤로한 채 새로운 언어를 탐구하는 이유와도 연결될 것이다.


차례

총론
노래하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

서문
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

안토니오 비발디
트리오 소나타, Op. 1, No. 1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주제에 의한 변주곡, K. 265/300e

루트비히 판 베토벤
변주곡과 푸가 E♭ 장조, Op. 35

요하네스 브람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35
피아노 소품, Op. 118, No. 6 ‘인테르메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42


저자 소개

오민
예술가. 시간을 둘러싼 물질과 사유의 경계 및 상호 작용을 연구한다. 주로 미술, 음악,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시간 기반 설치와 라이브 퍼포먼스가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한다. 『포스트텍스처』, 『토마』(공저),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스코어 스코어』 등을 출간했다.

문석민
작곡가. 일반적인 악기 소리부터 소음까지 감각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발굴하고 또 그 소리 재료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미술가, 안무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비음악적인 재료를 음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MDI 앙상블, 네오 콰르텟, 앙상블 미장, 앙상블 TIMF 등에 의해 연주되었다.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종종 기획자,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