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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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공작

워크룸 프레스 엮음, 홍희범 옮김

적은 내 곁에

거래처에 10분 뒤에 보내야 할 보고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직장 상사가 난데없이 긴급 회의를 소집한다면? 그것도 매일같이? 일주일 전에 들어온 경력직 신입 사원이 시시때때로 병가를 내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한다면? 또는 2주일 전에 맡긴 일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작조차 안 했다면? 초행길에 잡아 탄 택시가 아무리 생각해도 길을 돌아가는 게 분명하다면? 매표소 직원이 승차권을 중복으로 끊어 모처럼만의 기차 여행을 시작부터 잡쳤다면? 영화관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박장대소를 하는 바람에 중요한 대사를 놓쳤다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이런 일에 분노하거나 당황하기보다 이제는 그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그들의 공간에 잠입해 책장이나 결재판 아래, 서랍 안쪽 등을 살펴볼 때다. 거기서 비전처럼 놓인 책을 한 권 발견한다면 모두 같은 책일 공산이 클 테니까.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의 정보기관 전략사무국에서 비밀리에 펴낸 야전교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각국의 정보기관에서는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다. 요인 암살 및 납치, 중요 시설 파괴, 도청 및 감시, 여론 조작, 자물쇠 따기 등 그 방법은 실로 다양했고, 몇몇은 실제로 성공을 거둬 세계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공작을 수행하는 공작원은 사전에 철저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작성한 온갖 교범이 동원됐음은 물론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에서 1943년 1월 26일에 펴낸 『단순 방해 공작 야전교범(Simple Sabotage Field Manual)』이다. 2008년 4월 2일 기밀이 해제돼 일반에 공개된 이 40쪽짜리 책자와 다른 교범에 차이점이 있다면 주된 독자가 특수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공작에는 특별한 도구나 장비 같은 건 필요 없다. 공작원은 특정 집단과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공작에는 첩보 영화에 등장할 법한 특수한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공작원의 무기는 소금이나 못, 양초, 자갈, 끈 등 일반 가정에 흔히 있거나 직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고, 공작원의 무기고는 부엌 찬장, 쓰레기덤, 생활용품이며, 공작원의 표적은 공작원이 일상에서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참여할 수 있는 공작은 쉬울뿐더러 공작원의 직업에 따라 다양했다. 말 그대로 ‘생활 공작’이었다. 공작원이 일하는 곳이 공장이라면 매일 사용하는 공구를 무딘 상태로 보관하거나 잃어버려야 하고, 농장이라면 사람이 먹을 식량을 가축의 먹이로 줘야 한다. 공작원이 여객 철도 승무원이라면 승차권을 중복으로 끊어서 적의 여행을 시작부터 최악으로 만들고, 택시 운전사라면 적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최대한 돌아가야 한다. 공작은 회사에서도 공작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수행할 수 있었다. 공작원이 고용자라면 중요한 작업을 해야 할 시점에 전체 회의를 소집하고, 피고용자라면 맡은 일을 최대한 질질 끌거나 시시때때로 병가를 내고, 지각을 밥 먹듯 해야 한다. 공작원이 무슨 일을 하든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적을 무너뜨리려는 마음이었다.

워크룸 실용 총서의 첫 책 『생활 공작』

워크룸 ‘실용 총서’의 첫 책 『생활 공작』은 『단순 방해 공작 야전교범』을 비롯해 『사기 작전 야전교범(Morale Operations Field Manual)』(전략사무국 발행, 2006년 12월 26일 기밀 해제)의 일부와 『자유의 전사 교범(Freedom Fighter’s Manual)』(미국 중앙정보국에서 1983년 니카라과 상공에 배포, 온두라스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자가 입수해 1984년 무렵 공개)을 한데 엮은 책으로, 군사 전문가 홍희범의 번역으로 앞서 밝힌 생활 공작의 진수만 골라 담았다.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70여 년 적을 괴롭히고 동조자를 모으는 것, 다른 하나는 반대로 내 곁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적을 색출해 확실히 제거하는 것. 마지막 하나는 이 책의 각 항목을 작성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전쟁의 비극을 교훈 삼아 미래의 안녕을 위해 앞장서는 것. 물론 적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만큼이나 사용법은 무궁무진할 테고, 선택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렸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책 「일러두기」의 마지막 항목만큼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늘 주의하라.”

워크룸 실용 총서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헤비듀티(ヘビーデューティーの本)
고바야시 야스히코 지음, 황라연 옮김

문예 비창작(Uncreative Writing)
케네스 골드스미스 지음, 길예경·정주영 옮김

히트곡 제조법(The Manual: How to Have a Number One the Easy Way)
KLF 지음, 미묘 옮김

계속됩니다.


발췌

공작원은 공작을 수행할 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야 한다. 매일 날카롭게 갈던 도구는 무딘 상태로 둬야 하고, 윤활유를 잘 발라야 할 표면은 거칠게 갈아버러야 한다. 근면함을 버리고 일부러 게으르고 무성의하게 행동해야 한다. (41쪽)

공작원은 주머니칼이나 손톱 다듬는 줄칼 등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는 도구 위주로 사용해야 한다. (43쪽)

생활 공작은 의도적 비행(非行)이다. (…) 공작원 일상 도구를 기상천외하게 이용해야 한다. 주위를 평소와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껏 생각지 못한 온갖 무기가 만들어진다. (47쪽)

화장실에서는 화장지가 보이면 바로 치워버리자. 변기나 하수구를 막으려면 변기에 단단하게 만 종이나 머리카락을 밀어넣으면 된다. (55쪽)

적의 여행을 최악으로 만들어야 한다. 승차권에 여정의 일부를 빼먹거나 승차권을 중복으로 끊어서 싸움을 일으키자. (…) 열차 안에서는 음식을 최대한 맛없게 만들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 승차권을 확인하자. (68쪽) 당신이 택시 운전사라면 적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최대한 멀리 돌아가자. 적은 시간을 낭비할 테고, 당신은 그만큼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다. (72쪽)

적에게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전화를 걸어서 일을 방해하자. 적이 전화를 받으면 잘못 걸었다고 둘러대면 된다. (77쪽)

모든 일은 반드시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속한 의사 결정을 최대한 막자. (…) 연설하자. 되도록 자주, 그리고 길게. (82쪽)

지시를 오해하자. 오해한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척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거나 그에 관해 최대한 길게 이야기하고, 가능하다면 궤변도 늘어놓자. (83쪽)

신입 직원이나 일이 서툰 지원에게 노하우를 조금도 가르쳐주지 말자. (86쪽)


차례

생활 공작에 관해
예상 효과
동기 부여
도구, 표적, 시점
세부 지침

부록 1: 소문
부록 2: 위조
부록 3: 회유와 협박

옮긴이의 글


옮긴이

홍희범은 2000년부터 군사 잡지 월간 『플래툰(Platoon)』의 편집장 겸 발행인으로 일한다. 국군방송, 국방일보 등에 군사 관련 자문과 기고를 해왔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군용 총기 백과 3, 4』, 『알기 쉬운 전차 이야기』, 『밀리터리 실패 열전 1, 2』가 있고, 옮긴 책으로 『2차 세계대전사』, 『독일 육군전사』, 『무기와 폭약』(공역) 등이 있다.


편집

민구홍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