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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3: Die Alone
하태우

2025년 4월 29일 게재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매주 화요일, 다섯 번의 연재 이후 단행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림: 노상호

혁오
23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하이그라운드
2017년

2017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 아닐까 싶다. 「도쿄 인」(Tokyo Inn), 「톰보이」(TOMBOY), 「만리」(Wanli万里) 등 좋은 노래가 많다. 특히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에 선정된 타이틀 곡 「톰보이」의 벅찬 감동은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앨범을 여는 첫 번째 트랙 「버닝 유스」(Burning Youth)가, 오프닝부터 사정없이 분출되는 그 에너지가 좋다. 웅웅거리는 저음이 (17초간) 심지처럼 타들어 가다가 처음 폭발하는 부분(좋다), “내일은 흐릿해져”(Tomorrow fades away)라는 구절 이후 기타 리프와 드럼 라인이 동시에 바뀌면서 분위기가 전환되는 부분(좋다), 고조된 텐션이 “나뿐인 건 아니야”(It’s not only, not only, not only, not just) 이후 뚝 끊어졌다가 또 한번 폭발하는 부분(진짜 좋다) 등 「버닝 유스」는 계속해서 연발 폭죽처럼 화려하게 불꽃을 터트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버닝 유스」 한 곡만으로도 『23』을 들어 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EP 『20』, 『22』에 이어 정규 1집 『23』도 노상호 작가가 앨범 커버 아트를 맡았다. 세 장의 앨범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동일한 수채화풍의 일러스트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3』의 음악도 이와 비슷하게 전체적인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조금 더 다채롭고 디테일해진 느낌이다. 혁오는  이 앨범을 발표하는 음감회에서 “새로운 메시지와 주제를 갖고 앨범을 만드는 게 맞을까, 아니면 기존의 메시지, 정서를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23』은 기존의 감성과 색감을 완성시킨 혁오의 훌륭한 첫 번째 음악적 마침표라고 할 수 있다.

앨범 소개에 “‘모두 아는 밴드’가 된 혁오의 ‘젊은 우리’를 위한 송가”라는 문구가 있다. 그래서인지 「톰보이」를 포함해 『23』의 여러 노래들을 ‘청춘 송가’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3』은 마냥 청춘을 칭송하고 기리지만은 않는다. 능청스러운 멜로디로 혁오가 노래하는 것은 오히려 자조와 비관일 때가 많다. 신나는 서프록 「서프 보이」(Surf Boy)조차 “아니 그래도 찬 물살은 너무 추워요. 자꾸 밀어 넣으면 난 못 나올지도 몰라”라며 파도를 타는 일이 즐거운 서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노래한다. 말했듯이 『23』의 하이라이트는 분명 “우리 사랑을 응원해”라고 말하는 「톰보이」이지만, 어째서인지 「혼자 죽는」(Die Alone)의 가사가 마음에 더 와닿는다. “우린 모두 혼자 죽어. 우린 모두 혼자야.”(We all die alone, We are all alone.) 혁오는 비관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좋다.

하태우

1991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휠체어 위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서울에 살고 있다. 첼시FC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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