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근대적 지형에는 중심과 주변이 있고, 그 사이의 역학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근대적 지형이란 오히려 역학 관계를 기반으로 할 때 성립되는 그런 것이 된다. 전국의 미인대회 현장을 기록한 사진 이미지 앞에서 갑자기 근대적 지형을 운운하는 까닭은 늘 그 지형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지루한 풍경 1」(The Tedious Landscape 1)에서 그는 도시와 인접한 외곽 풍경의 시각성을 보여주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되었다는 미인대회 시리즈에서 작가는 이제 외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가장 큰 궁금증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노는가, 라는 단순한 질문이었다고 하지만, 정작 미인대회 시리즈는 훨씬 더 복잡한 문화적 컨텍스트를 건드리고 있다. 즉, 미인 대회에는 여러 가지(어려운) 개념들이 중첩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가장 크게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개념, 그들의 경합 혹은 경쟁이라는 개념, 그 경합의 특정한 형식과 내용, 지방 변두리(주로 군 이하)의 시각 문화, 그리고 그곳의 특산물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 글 또한 이 같은 이질적인 개념이 사진 이미지 속에서 어떻게 표상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김윤호의 사진에는 미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흔히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사진 경연대회에서 카메라가 미인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돌아가며 배치되는 것과 달리, 여기 이 이미지에서는 미인의 얼굴조차 판별하기 힘들다. 그녀들의 어색한 포즈와 과장된 매무새는 보이지만 그녀가 정녕 미인 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가름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각종 대회가 꾸려지는 형식, 그 나름대로의 내러티브가 그녀들에게 미인이라는 호칭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획일적인 미스코리아 식 포즈와 헤어스타일은 대회의 관객이나 사진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녀=미인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는 오히려 멀찌감치 선다. 카메라는 미인보다는 미인의 코드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미인이 아닌, 미인으로 태어나는 방식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김계원, 46, 48쪽)
표지 이미지
김윤호, 「The Tedious Landscape II: 312-810」, 2002.
도판
지루한 풍경 2 / 김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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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저자 소개
김윤호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수료했다. 2002년 다음 작가상, 2006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2011년 몬차 지오바니 비엔날레에서 수상했다. 2003년 인사아트센터, 2004년 연구공간 수유+너머, 2007년 독일 베를린의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9년 미국의 휴스턴, 산타바바라 뮤지엄에서 그룹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