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이자 무용수, 교육자인 조나단 버로우스가 오랫동안 다진 창작에 관한 아이디어가 집약된 『안무가의 핸드북』이 출간되었다.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슬로베니아어, 불가리아어 등으로 번역되며 전 세계 창작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이 책은 안무, 공연, 나아가 예술 작품 창작이라는 매혹적이고도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갈 영감 어린 독려와 조언, 역설로 가득한 실용서이자 지침서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도 괜찮다. 안무는 당신이 방법을 찾지 못할 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안무, 혹은 공연을 창작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나아가면 좋을까. 수없이 많은 가능성과 드넓은 선택의 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아마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건네는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원칙, 내가 어떻게 시작할지 알려줄 원칙을 찾는 것으로 책을 쓰기 시작하려 한다. 이 책을 쓰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나의 춤을 안무하거나 공연을 만드는 방식으로 책을 쓴다. 이건 내게 효과가 있는데, 지금 당장의 주된 두려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책을 쓰기 시작한 저자는 안무 주위를 맴도는 갖은 키워드들로 정교한 직조물을 짜 내려간다. 때로 저자는 재료, 독창성, 서사, 언어, 시간처럼 추상적인 층위를 탐색하고, 때로 저자는 리서치, 스타일, 협업, 기교처럼 실천적인 차원을 건드린다. 때로는 지원금 신청서, 리허설 스케줄, 커미션, 생계유지, 조명처럼 더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기도 한다. 때로는 질문을 던지고(‘재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가?) 단언을 하고(안무는 당신의 몸이 사유하는 패턴과의 교섭이다.) 속내를 털어놓고(때로는 춤을 춰야 하는 어떠한 이유도 찾기 어렵다.) 숙제를 내주고(1분짜리 음악, 1분짜리 영상, 짧은 텍스트와 사진을 선택하라.) 경고하고(연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위안을 준다.(이것은 단지 바보 같은 춤일 뿐이다.)
늘 새롭게 갱신되는 한 편의 안무이자 퍼포먼스
한편 역자들이 밝히듯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안무이자 하나의 퍼포먼스로 읽히기도 한다. 저자가 자유롭게 열어 둔 글의 형식과 구성, 문체에서는 시간과 공간, 호흡과 리듬, 유머와 같은 안무 요소들이 기대치 못한 순간 튀어 오른다.” 앞에 했던 말(대화는 협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을 바로 몇 줄 아래에서 뒤집으며 정반대의 진실을 암시하고(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마라.) 앞서 나왔던 문장을 반복하되 다른 의미로 반복하는 이 책은 다양한 창작 기법을 몸소 시연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에 따라 그 의미가 새롭게 갱신되는 이 책은 “실로 다양한 분야 그리고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안무를 처음 시작하거나, 안무 작업을 지속해 오거나, 혹은 안무가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거나, 보고 있는, 혹은 예술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이들에게까지도 말이다.”
추천사
“작품을 창작하며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두루 포용하는 또렷한, 그러나 동시에 심오한 조언을 건네는 책.”—팀 에첼스, 포스드 엔터테인먼트 예술 감독
“협업, 재료, 멘토링 같은 화제를 단언하면서도 정반대의 진실을 짓궂게 암시하는 유쾌한 책. 교사와 학생, 현장의 실천가들에게 공연에 접근하는 법을 알려주는 유용한 매뉴얼임과 동시에 창작과 수행의 이면을 파고드는 생각을 자극한다.” —에마 미핸, 댄스 노트
발췌
만약 당신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길 원한다면, 춤 만들기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협력자들과 너무 동의하려고 들면, 당신이나 관객 모두가 새로 발견할 것은 없을 것이다.
시야를 열어 두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 닫아야 할지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 당신은 작업을 위해 바보 같은 짓을 감행할 텐데, 역사에 신경 쓰다가는 충분히 바보 같아지기 어려울 수 있다.
훈련은 움직임을 만드는 ‘딱 맞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 준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우리가 이따금 빠지는, ‘실제성’ 즉 진실된 가치를 움직임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최고의 스타일은 작업에서 생기는 기분 좋은 우연이다. 질문은 이러하다: 이것이 중요한가? 때때로 우리는 작업의 독창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타일을 찾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그러한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기교는 관객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저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안무는 안무가 필요 없다. 이러한 이상적 안무에서 하나는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모든 선택은 집중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안무는 당신이 방법을 찾지 못할 때 하는 것이다.
정지와 정적은 어떠한 다른 재료만큼이나 강력하며, 그것들이 없다면 관객은 지쳐 버릴 것이다.
모든 재료는 퍼포머가 모든 것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이 좀 더 자유롭게 직관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퍼포머를 어느 정도 도와주어야 한다. 퍼포머가 순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전체 공연을 유지해 나가야 하면 진이 빠질 수 있기에, 재료는 이러한 과중한 부담에서 퍼포머를 풀어 주어야 한다.
대부분 전자 기타리스트는 먼저 록 음악을 듣고 나서 기타를 산다. 대부분 무용수들은 먼저 수업을 듣고 나서 춤 공연을 보러 간다. 우리의 많은 문제는 이 패러독스에서 기인한다.
개별 움직임은 ‘재료’로서 정의될 수 있을까, 혹은 ‘재료’란 그것들을 함께 놓기 시작할 때 발생되는 것일까? 음악에서는 한 번 연주된 하나의 음표가 반드시 재료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춤을 만들 때 재료가 발견되었고,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조합하는 것뿐이라는 가정으로부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에 대한 컨템포러리 댄스의 관심은 일정 부분, 발레라는 반(反)중력 세계에 맞선 반발이다. 당신에게는 이것이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당신은 어떻게 움직이기를 원하는가?
웃음은 관객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즐거운 반응이다. 틀림없이 그렇다. 그러나 이미 눈치챘겠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미를 찾기에 춤 관객은 유머러스한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축복이자 저주이다.
당신이 실패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관객도 그걸 알고 있다면, 그들은 실패를 좋아한다. 이는 인간의 인정과 공감 행위를 불러온다. 반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실패가 불편하다면 우리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시장에는 더 큰 작업을 더 대단한 예술적 비전과 동일시하는 규모 간의 위계가 있다. 작은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 많은 예술가들이 확장을 독려받고, 그럴 때 많은 이들이 방향을 잃는다.
시끄러운 음악이 당신 작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당신 작품이 에너지가 결핍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더 큰 에너지를 원한다면 에너지 넘치는 무언가를 만들어라.
당신이 작업하기로 선택한 텍스트는 당신이 만들어 내는 시각적 요소와 대화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보게 될 것과 듣게 될 것의 상대적인 무게를 고려하는 것이다. 서사적인 텍스트는 추상적인 움직임이 가볍거나 부차적으로 보이도록 만들 수 있으며, 우리가 신체 언어에서 읽어 내는 미묘한 의미들은 말에 쉽사리 파묻혀 버린다.
테크니션들은 그들이 일하는 공간을 당신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동시에 당신이 무대에 올랐을 때에 관객은 그 공간이 당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테크니션들과의 작업은 이 역설과 벌이는 끊임없는 교섭이다. 테크니션이 공연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당신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다. 그들은 아주 많은 공연을 본다.
우리가 신발을 신거나 혹은 신지 않은 것만큼이나 중요한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없다.
서문
춤추기 / 원칙들
재료
습관
반복
반복
반복
즉흥 / 자르고 붙이기 / 안무
형식
탐구 / 위험
주제 / 영감 / 훔치기 / 익숙한 움직임 / 안무 / 다른 자료 참조하기 / 자기표현
약속 / 공연 공간 / 언어 / 안무
규칙 깨기
리서치 /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 드라마투르기 / 이론 / 호기심
인터뷰 / 미결 사항 / 질문들 / 원칙들
재정의 한계 / 스튜디오 / 지원금 신청서
준비 / 리허설 스케줄 / 중압감
협업 / 관객
독창성 / 패러독스
테크닉 / 어깨 위의 앵무새 / 진정성 / 일상적 실천 / 춤추기 / 스타일 / 씨름하기
기교
쌓아 두기 / 시작
결말
계속하기 / 속도 맞추기
더브 레게 / 변화율 / 단순한 재료 / 자포자기
정지와 정적 /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
최소 그리고 최대
유효한가? / 쇼잉 / 멘토링
다른 몸 / 상태
흐트러트리기 / 패러독스 / 안무 / 공연 / 전자 기타
예측 가능과 예측 불가능 / 기대
서사 / 발레 / 연속성
연속성 / 분할적 작품 / 재료 / 여섯 가지 만들기 / 안무 / 흐름 / 관계
관계 / 솔로, 듀오, 트리오, 콰르텟 / 아이디어
관계 / 시간 / 리듬
시간
추상적 춤
대위법 / 형식적 요소 / 차이
스코어 / 스튜디오 / 즉흥
우연성 / 빈손 / 움직임의 범주 / 제약 / 수고로운 작업 / 철학
장소 혹은 공간?
관객 / 정면을 바라보기 / 대립 / 유머 / 실패
관객
공연 / 원칙들
시장 / 생계유지 / 작업 관리하기 / 커미션
음악 / 협업 / 정적
텍스트
조명 / 테크니션 / 협업 / 의상 / 신발 혹은 맨발 / 세트 디자인 / 누드
제목
촬영 / 역사 / 협업 / 거울 / 휴먼 스케일
위계 / 무용수 혹은 안무가? / 안 혹은 밖 /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단순화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잊어라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 소개
조나단 버로우스(Jonathan Burrows)
안무가. 런던 로열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30년간 작곡가 마테오 파지온과 함께 퍼포먼스 중인 신체에 집중해 작업해 왔다. 『안무가의 핸드북』의 저자이며 현재 코번트리 대학교 춤 연구 센터 부교수이다.
정다슬
이화여자대학교와 독일 폴크방 예술대학에서 움직임을 연마했고,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퍼포먼스 스터디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과 함부르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사회·문화적 장치로서의 안무 그리고 안무 안에서 춤이 아닌 것을 탐구한다. 최근에는 작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정다슬파운데이션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에서 예술사를 졸업하고 영국 서리 대학교에서 무용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 디지털 퍼포먼스 속 몸과 안무 개념을 현상학과 포스트휴머니즘 이론을 바탕으로 탐구하였다. 현재 현상학, 기계 철학, 페미니즘 관점에서 동시대 춤과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