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2018년 『미미한 천사들』, 2020년 『메블리도의 꿈』, 2022년 『찬란한 종착역』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프랑스 작가 앙투안 볼로딘의 단편소설집이다. 앙투안 볼로딘의 이름으로 발표된 열여덟 번째 작품이자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에 이은 두 번째 단편집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면이 반영되기도 한 작품이다. 『작가들』 속 일곱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작가들은 죽음과 실패의 문턱을 오가며 소진되어 가는 자들로, 이들이 반추하는 각자의 삶은 실패하는 글쓰기를 통과하면서 소외된 소수의 문학으로 수렴한다. 책의 부록으로는 프랑스어판 출간 당시 공개되었던 앙투안 볼로딘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일곱 편의 단편, 일곱 편의 투쟁 선언문
실패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이 책의 일곱 작가들은 작품 활동과 삶 모두에서 명백히 실패해 있다. 누군가에게 좀처럼 읽히지 않는 작품을 꾸준히 생산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형태다.
“요양원에 보내진 마티아스 올반은 총을 들고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숫자를 천천히 세어 가며 자살을 미룬다. 감옥에 갇힌 린다 우는 포스트엑조티시즘과 작가들의 정치적 참여를 환기한다. 마리아 300-10-3이라는 이름의 벌거벗은 여인은 감옥에서 즉흥적으로 이미지 이론을 강연한다. 동료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당하는 ‘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종말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저’는 작가로서 자신이 성공하는 데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유머러스하게 감사를 표한다. 보그단 타라셰프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발표하고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을 낳고 죽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품고 있던 니키타 쿠릴린은 실종 사건의 진실을 조사하며 절대로 출간될 수 없는 소설을 구술로 쓴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연이은 실패가 빤히 예견된다면, 이를 우회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들은 왜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들리지 않는 말을 해야만 했을까? 이 책의 작가들 중 한 명인 보그단 타라셰프가 자신의 책을 위한 신간 안내문으로 밝힌 대목이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타라셰프는 제 책을 “글쓰기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경멸의 표시이자, 책이라는 개념, 작가라는 개념과 작가와 관련된 잘못된 가치들을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한 일종의 자해 표시”라고 소개하며, 이를 “글쓰기에 대한 혐오와 공식 출판계에 대한 증오가 혼합된 적대감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93~94쪽)고 밝혔다. 글쓰기를 반박하기 위한 글쓰기. 읽히지 않는다는 예정된 결과를 개의치 않고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글쓰기에 대항한 투쟁이 되고 선언이 된다. 또한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에서 저자 앙투안 볼로딘이 직접 밝힌 것처럼, “이들은 게다가 글을 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말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174쪽). 들리든 들리지 않든 무관히 말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실패는 행동의 산물이다. 시도하고 선언하고 분투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의 작가들 중 또 다른 한 명인 린다 우가 감옥에서 힘겹게 이어 가고 있는, “소진된 자들 혹은 죽은 자들에 의해,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해 발성된, 쓸모없고 몽환적인 최후의 증언”(32쪽)으로 남는다. 이 “무관심과 실패로 막다른 골목에 익명으로 남겨진 작가들의 초상화를 전시한 갤러리”(「옮긴이의 글」 중에서)는 쓸모없는 말들이 이루는 미완의 공동체로서 스스로의 실패를 전시한다. 그리고 이를 개의치 않는다.
이미지와 목소리
『작가들』은 이미지와 목소리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이는 특히 단편 「마리아 300-10-3의 이미지 이론」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사망 판정을 받아 감방에서 안치실로 이송되었지만 자신의 몸 구멍을 막아 줄 라마승 역시 사망하는 바람에 삶과 죽음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는 여인, 마리아 300-10-3은 “우리 포스트엑조티시즘 세계”에서는 “오로지 이미지만이 중요”하다고 단언한다(108쪽). 그의 말에 따르면 “이미지는 처음부터 모든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목소리는 덤으로” 온다(108쪽). 이미지에 뒤따라오고 덧붙여지는 그 목소리는 결국 “이미지에 속하는 목소리, (…) 이미지의 언어적 표현 자체인 목소리”로, 이 “무성(無聲)의 목소리”는 “이미지 고유의 자연적인 힘들을 전제”하기에 그리고 “이미지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된다(109쪽). “모든 이미지가 말을 하지. 모든 이미지가 언어 없이, 무성의 목소리로, 자연스러운 무성의 목소리로 말을 하지.”(116쪽) “이미지가 나타나면 거기에는 침묵이 있을 수 없습니다.”(116쪽)
마리아 300-10-3은 이미지에 목소리가 뒤따라온다는 주장을 증명하고자 여러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경유한다.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과 「수치」, 벨라 타르의 「파멸」,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헤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 왕자웨이의 「동사서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잠입자」, 구로사와 아키라의 「살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 세르조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이반의 어린 시절」과 「거울」이 주요한 예시가 되며, 이는 이 책의 저자인 앙투안 볼로딘이 어떤 이미지들을 주목하고 있는지 부분적으로 보여 준다. 실제로 볼로딘은 예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을 쓸 때 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항상 이미지입니다. (…)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촉각이나 냄새의 질서에 대한 감각 또한 포함되어야 하기에, 다수의 장면이 어둠 속, 그게 아니라면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발생합니다.”(178쪽) 그렇다면 앙투안 볼로딘이라는 작가의 글은 이미지에서 시작되거나, 어둠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책을 읽는 사람인 동시에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볼로딘은 “이미지와 영화를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178쪽). 이렇게 『작가들』은 이 시대의 독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책임을 스스로 증명해 나간다.
발췌
체포되기 전, 마티아스 올반은 작품을 많이 쓰는 작가는 아니었다. 청소년기부터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긴 했지만, 명백한 결말을 위해 출간되는 작품에 담길 만한 산문을 제작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는 시적인 놀이, 단어들의 일시적인 조립, 이미지 속으로의 몰입이, 자신의 존재에는 중요한 차원이지만, 이런 활동은 아무리 시급하다고 해도 책장에 꽂혀 죽은, 규격화된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되면 곤란할 거라고 여겼다. 그는 원고를 방치된 상태로 놔두었고, 마무리하려 애쓰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이 어떤 상태인지 친구들이 물어보면 더러 미완성에 관한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출간할 만한 작품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냈고, 그 뒤로는 무명 시인이라는 자랑스러운 계급에 속한다는 주장도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품고 있던 창작자라는 전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문학적 출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하 투쟁과 테러 보복 준비에, 달리 말해 암살자들을 살해할 여러 가지 구상에 각별히 마음을 쓰면서 전념하고 있을 때, 또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가 글쓰기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그는 마음이 잘 맞는 어떤 출판사에 이야기 모음을 건넸고, 출판사는 그것으로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작품은 ‘보욜가(家)의 어느 가을’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고, 1천 부가 인쇄되었지만 그중에서 마흔 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14–15쪽)
포스트엑조티시즘 작가들은 조잡하고 재능 없는 작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지하활동과 전복의 길을 택했고, 광기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할 확률이 지극히 낮고 매우 희박한 전투에 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전쟁의 최전선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병사들로, 고독한 존재로 거듭났고, 투쟁에 투쟁을 거듭하다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가난한 자들의 아이들이 언젠가는 컴컴하지도, 마피아 같지도, 불평등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되리라는 확신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투쟁을 계속 이어 갔습니다, 죽은 자들을 세고 또 세면서, 죽은 자들을 배반하길 거부하면서, 항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고 무기를 내려놓길 거부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이고 군사적인 포위가 너무 잔혹해서 자신들이 자유 속에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그들은 적 앞에서 자신들의 연설을 바꾸거나 자신들의 목표를 축소하길 거부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아주 필연적으로 죽은 자의 복도나 감옥의 복도로 끌려가게 되었고, 복종할 수 없는 해로운 돌연변이 짐승들이 갇히듯이 거기에 갇혔습니다. (29쪽)
그리고 그는 떠올리고 있다, 자신의 눈을 찔러 왔던 더위를, 아직은 너무 어렸기에 언어 표현, 감정, 이미지, 꿈과 현실, 지식 등 모든 것이 새로웠던 제 삶의 어느 시기에, 최대한 빨리 문자들을 조합해 보고 지금까지 자신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던 낱말들을 배열하면서 지배하려 시도해 보았던 뜨거운 열정을, 그리고 마침 그는 떠올리고 있다, 스스로 만드는 이야기의 세계에 자신이 이제 막 들어섰다는 생각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나이에 자연스럽게 썼었을 글보다 더 복잡한 글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자신을 전위(前衛)에 서게 해 주었다는 천진난만한 승리의 기분을, 또한 이 점에 관해 자신이 분명 뿌듯한 기쁨을 느꼈던 것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떠올리고 있다, 자신의 손가락 아래 쌓여 갔던, 문어(文語)라는 장애물 앞에서 멈추지 않겠노라고, 또한 중요한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 교사를 흡족하게 할 맞춤법에서 쾌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급류가 흐르듯 격렬하게 글을 내려놓는 것, 여타의 모든 고려 사항을 무시하고서 글을 내려놓는 것이며, 무수히 많을 거라고 스스로 의심해 왔던, 규범에 어긋나거나 문법적 근사치에 불과한 용법과 관계없이 글을 존재하게 해야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을, 게다가 그가 이 글을, 이후 성인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대다수가 두 음절 이상의 단어들을 해독하는 데에도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읽어 보라고 제안하려는 은밀한 계획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떠올리고 있다, 글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들겠다는, 어떤 청중을 위해서도 작업하지 않겠다는 확신, 이러한 신념은 그가 첫 번째 공책 표지에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38쪽)
호랑이에게 감사하는 건 이례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싱가포르 동물원의 암컷 호랑이 한 쌍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 하는데, 마오타이주를 잘 마시는 저보다 자기가 위스키를 훨씬 잘 마신다고 주장하던 마리오 부마푸트락이라는 작자와 함께 술을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많이 마시며 저녁을 보낸 후, 야밤에 저는 두 마리의 이 멋진 짐승이 사는 곳에 침입했습니다. 일단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저희에게 더 이상 마실 것이 없어지자, 제 동료가 제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수컷이 우리 안에서 으르렁거렸으나, 주정뱅이들의 싸움에 관심을 보인 두 마리 암컷과는 달리, 수컷은 우리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마리오 부마푸트락을 갈기갈기 찢어 죽임으로써 그 즉시 제 편을 들어 준, 더구나 마오타이주 냄새로 잔뜩 전 제 입냄새를 매우 역겹다고 여겨 주었던, 그 두 마리의 힘센 암컷 동물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암컷 호랑이들은 마리오 부마푸트락을 나누어 가졌고, 제가 울타리를 다시 넘어가 바깥세상과 구덩이를 구분하는 철조망을 천천히 기어오르게 내버려두었습니다. 저에게 베푼 그들의 호의에 대해, 이 자리에서 그 두 마리 암컷 호랑이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74–75쪽)
요약하자면, 장 발바얀이 서명한 이 다섯 권의 책은 대중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비평가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발바얀에 관해 견해를 표명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랬을 때는 교수형에 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약했다.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발바얀은 추리 문학 작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으며, 서스펜스의 규칙에 숙달하지 못한 작가였고, 그의 이야기에는 꼬리도 머리도 없었으며, 주인공들에게는 사실성이 없었고, 더구나 소위 문학적 비순응주의라고 하는 것 뒤에 숨어, 모종의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환경을 묘사하고 성격을 채색하는 데 있어서조차, 자신의 무능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작가였다. (82–83쪽)
저는 이미지의 내부에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한다. 사방은 온통 검었고, 제가 눈을 감자마자 드높은 고원들의 풍경이 하나, 골짜기가 거의 없고 하늘이 지평선까지 뭉개진 거대한 평원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풀들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물결무늬의 천과 초록색 비로드가 돌풍에 따라,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의 기분에 따라 희미해지거나 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빛과 더불어, 풀들로 온통 둘러싸인 바다와 더불어, 거기서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자문합니다. 저는 이미지 안에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습니다,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저는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두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제 두 손은 즉시 저의 감방 벽들에, 혹은 미지근하다시피 한 철제문에 닿았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 제 손이 만지고 있던 것을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욕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것을 말하려고 제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저의 기억력은, 종종 그랬듯, 쇠약해졌습니다. 저는 오로지 즉각적인 현재만을, 다시 말해 눈꺼풀을 내리자마자 제가 있게 된 이미지만을, 풀을 통해 광활한 몽골의 대지와 하나로 어우러진 광활한 몽골의 하늘만을 떠올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미지의 저 무성의 목소리가 저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성의 목소리가 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의 목소리와 심지어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고, 제가 이 목소리를 저의 존재를 말하는 데, 지나갔거나 혹은 최근이거나 혹은 여기 있거나 혹은 꾸며 낸 저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데, 이미지를 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미지를 말했습니다. (120–121쪽)
한동안, 그는 글을 쓰려고 시도한다. 그렇게 하도록 무언가가 그를 부추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악착스레 시도해 보지만, 그는 자신의 출생도, 어머니의 죽음도, 드로지노 숲 저편에서 벌어졌던 학살도 담고 있지 않은 일련의 불균형한 문장들, 뒤죽박죽인 낱말들만 손에 쥘 뿐이다. 그의 모든 작문 시도는 반 페이지 만에 무산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 끔찍한 첫 번째 에피소드는 그에게 고통과 수치심만 안겨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작가로서의 무능함이라는 감정이 여기에 더해진다. 그는 인내심을 잃어 간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완성해야 할 문학적 임무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스스로를 놔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월요일이었던 어느 일요일에 관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었고, 그는 이 제목이 꽤나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다음이 없다. 그는 몇 주 동안 이 일에 매진한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삭제했다가 내버려둔 초안들을 모은다. 그는 불행하다. (138–139쪽)
관련 자료

낭독. 최재원
녹음일. 2024년 5월 17일
사운드 디자인. 임희주
길이. 15분 06초
마티아스 올반
유목민들과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연설
시자카기
감사의 말
보그단 타라셰프의 작품 속 침묵의 전략
마리아 300-10-3의 이미지 이론
내일은 어느 아름다운 일요일이리라
옮긴이의 글
부록
작품 목록
저역자 소개
앙투안 볼로딘(Antoine Volodine)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고 번역했으며,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4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을 통해 문학적 평행 우주 ‘포스트엑조티시즘’을 구현했다. 『미미한 천사들』(1999)로 베플레르상과 리브르 앵테르상을, 『찬란한 종착역』(2014)으로 메디시스상을 받았다.
조재룡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시학과 번역학, 프랑스 문학과 한국문학에 관한 논문과 평론을 집필한다. 시와사상문학상과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시학, 번역, 주체』 『번역의 유령들』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번역하는 문장들』 『시집』 등이, 역서로 앙리 메쇼닉의 『시학을 위하여 1』, 제라르 데송의 『시학 입문』, 장 주네의 『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 레몽 크노의 『떡갈나무와 개』 『문체 연습』,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어렴풋한 부티크』,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