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디자인은 모든 매체의 힘이 집약되어, 의사소통을 위한 집단적 노력과 효과의 정점을 추구하는 새로운 분과로 진화해 왔다. 여기서 시각적 의사소통 수단들은 서로 결합해 놀랄 만한 복잡성을 띤다. 시각 혹은 청각 언어, 상징으로서의 그림, 회화와 사진, 조각 매체, 재료 및 재질, 색채, 조명, (관람객을 포함한) 움직임, 영상, 다이어그램 및 도표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전시 디자인을 하나의 심화된 새로운 언어로 만드는 것은 온갖 조형적, 심리적 수단들의 총체적 응용이다.” ― 헤르베르트 바이어, 「전시 및 미술관 디자인에 대한 양상들」(Aspects of Design of Exhibitions and Museums, 1961)
위에 인용한 헤르베르트 바이어의 글을 읽어 보면, 전시 디자인의 다양한 방법론과 소통의 영향력이 왜 대부분의 미국 미술사 혹은 미술관 체계에서 총체적으로 잊혀 왔는지 궁금해진다. 혁신적인 전시 디자인은 미국과 유럽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를 거쳐 번창했고, 1950년대에는 최고의 실험들이 이루어졌다. 프레데릭 키슬러, 릴리 라이히, 엘 리시츠키, 주세페 테라니 같은 수많은 예술가, 디자이너, 그리고 건축가들은 전시 디자인을 자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바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전시 디자인을 창조했던 이들에게 기술혁신, 대중매체, 장소 특수성, 관객과의 상호작용은 특별한 관심사였다.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많은 작업을 통해 발전된 형태의 전시 기법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났다. 20세기 전반에 나타난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전시 디자인은 오늘날 시각 문화에 널리 퍼져 있는 미술 작업, 즉 설치미술에 대한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혁신적인 설치 디자인을 위한 변화의 요건들은 1920–1930년대 유럽에서 처음 수립되었고, 같은 시기에 대중매체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개방된 전시 공간이 지닌 가능성에 매료된 작가들은 설치 디자인을 현대인의 삶을 변형시키는 새로운 대중매체 영역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영화, 라디오, 아방가르드 극장, 광고, 삽화와 이미지가 적극 활용된 신문과 잡지 등도 여기에 포함됐다. 바이어의 글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대중매체 혹은 미술의 새로운 개척지를 탐색할 당시,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미술가들 사이에서 창작을 위한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서 ‘전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만연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1924년 빈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국제 신무대기법전』(Internationale Ausstellung neuer Theatertechnik)을 위한 키슬러의 설치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매체를 인식한 최초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주 1) 이 전시는 『빈 민속극 및 음악의 예술사』(Art History of the Viennese Folk Plays and Music), 『극장의 역사 1890–1900』(The History of Theatre 1890–1900) 전시와 함께 예술에 대한 빈 사람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기획된 빈 음악연극축제(Music and Theater Festival of the City of Vienna)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주 2) 국제 아방가르드 미술의 주요 행사였던 이 전시에는 100명이 넘는 유명 극작가, 무대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 미술가들의 작업이 선보였다. 그들 중에는 엘 리시츠키, 레온 박스트, 알렌산드라 엑스터, 나탈리아 곤차로바, 페르낭 레제, 프란시스 피카비아, 엔리코 프램폴리니, 한스 리히터 그리고 오스카 슐렘머도 포함되었다. 키슬러는 『신무대기법전』을 기획했으며 자신의 작업도 예시로 보여 주었다. 여기서 그는 ‘레거 운트 트라거’(Leger und Trager, 수평 수직 배열) 혹은 ‘엘 앤드 티’(L and T)라는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설치 디자인 방법론을 발명했다. 이는 엄격한 제약이 따랐던 전통적인 전시 관습에 대해 키슬러가 내놓은 대안으로서 설치를 위한 새로운 언어 형식을 만들어 냈다. 자립형으로 만들어진 이 새로운 설치 구조물은 수직 수평의 사각형 패널들을 지지하는 분리 가능한 수직 수평 막대들로 이루어졌다. 빈 전시에서는 액자에 끼우지 않은 600여 개에 달하는 드로잉, 포스터, 꼭두각시, 사진, 디자인, 그리고 아방가르드 연극 무대의 모형들이 이 구조물 위에 부착되거나 배치되었다. 관객들은 티형(T-type) 구조물의 외팔보를 움직여 그림이나 전시물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엘 앤드 티 시스템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서 전시했던 방식, 예컨대 벽이나 임시 패널에 작품을 거는 전통적인 전시 연출 방식을 벗어났다. 전시실 벽에 작품을 부착하지 않는 엘 앤드 티 시스템는 물리적으로 전시 공간의 장식적 측면이나 건축 내부로부터 작품을 분리시켰다. 키슬러의 자립형 구조는 작품을 관람객의 공간으로 끌어들였으며, 키슬러가 “다채로운 투명성”(varied transparency)이라 부른 것을 창출해 냈다.(주 3) 배열이 가능한 이 유동적인 단위들은 작품을 독립적으로 진열하거나 다른 작품들과 무리를 지음으로써 콜라주 같은 설치를 만들어 냈다.
이런 구조적 유동성과 형태의 유희는 조명 시스템에도 반영되었다. 키슬러는 전구들을 결합해서 개별 작품 혹은 작품군을 집중 조명할 수 있게 했다. 각각의 전시에 어울리도록 색채도 다양하게 변화를 주었다. 임시 구조물로 고안된 단위들은 특정 공간의 특정 요구에도 잘 적용될 수 있었다. 1926년 키슬러는 뉴욕 스타인웨이 홀에서 열린 또 다른 버전의 국제극장전을 설치하면서 이동 가능한 시스템의 유연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주 4)
엘 앤드 티 시스템을 통해 키슬러는 전시를 위한 새로운 물리적 틀을 고안했으며, 상투적이지 않으면서 훨씬 흥미로운 이념적 발판을 새롭게 마련했다. 물리적인 전시 공간으로부터 작품을 분리함으로써 이른바 ‘살롱 스타일’이라고 언급되는, 빽빽하게 작품을 배열하는 전통적인 미술관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주 5) 키슬러는 대신 작품을 관람객의 시공간 속으로 들여놓았다. 쌍방향적 요소는,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관람자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의 틀을 구축했다. 엘 앤드 티 시스템의 개방적이고 투명한 형식적 속성은 끊임없이 팽창하는 무한한 공간 개념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동시대에 일어난 데 스테일, 절대주의, 그리고 구축주의의 시공간 개념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닫힌 공간, 그리고 고전적인 원근법에 있어 고정된 시점을 폐지하는 것이었다.(주 6) 따라서 키슬러의 시스템은 전통적인 전시 기법을 탈피한 급진적인 시발이었고 예술, 전시 디자인 그리고 관람객에 대한 반역사적이고 정적인 접근, 관념주의 미학 모두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61년, 키슬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1922년부터 1924년에 이르는 3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고 언급했다.(주 7) 그는 이 시기에 창조했던 프로젝트와 개념들이 향후 다른 모든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여겼다. 엘 앤드 티 전시 방식은 그의 모든 회화와 조각, 건축, 디자인, 극장과 전시 프로젝트에서 탐구되었던 ‘개념의 연속성과 다중성’의 시작점이었다. 1942년 페기 구겐하임이 뉴욕에 개관한 금세기 미술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엘 앤드 티 시스템과 ‘열여덟 가지 기능의 의자’(eighteen functions of the one chair)를 연계한 것이 그 예이다. 이 작업은 키슬러의 가장 극적이고 잘 알려진 설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되었다.(주 8)
구겐하임의 의뢰로 키슬러는 전시 영역을 네 개로 나눠 각각 회화 ‘도서관’과 연구 공간, 초현실주의관, 추상미술관, 키네틱 전시관으로 만들고 도처에 자신의 의자를 사용했다. 이 의자는 단독으로 놓이거나 동일한 유닛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회화와 조각의 받침대로, 때로는 의자로, 소파나 테이블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개별 의자의 의미는 쓰임새와 맥락, 그리고 문법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의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훨씬 명쾌한 이 혁신적인 결합 방식은 ‘열린’ 시스템, 즉 특정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능적 요인에 의해 의미가 형성되는 프로젝트와 환경을 창출하고자 했던 그의 관심사를 잘 보여 준다. 키슬러가 그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엘 앤드 티 시스템을 호출한 것은 효과적이고 적절한 선택이다. 엘 앤드 티 요소들은 다기능 가구가 작동하는 것과 같은 방식, 즉 다른 조합의 단어들이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는 알파벳문자처럼 기능한다.
1930년대 키슬러는 엘 앤드 티와 같은 프로젝트들에서 탐구하기 시작했던 문제들을 ‘코리얼리즘’(Correalism)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했다. 그는 이것을 “상호 작용하는 힘의 교환 (···) 그 관계의 과학”으로 묘사했다.(주 9) 그는 미술과 삶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특정 문화와 역사 속에서 유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힘으로 설명했다. 1961년, 「두 번째 코리얼리즘 선언」(Second Manifesto of Correalism)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화, 조각, 혹은 한 점의 건축으로 존재했던 전통적 미술 오브제들은 더 이상 분리된 독립체로 볼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확장하는 주변 환경의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주변 환경은 이제 적어도 작품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있다. 작품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호흡하고, 또한 가깝든 멀든, 야외든 실내든 어떤 공간에서도 그 환경의 실제들을 흡수하기 때문이다.”(주 10) 비록 키슬러는 미술과 삶을 다소 신비한 “보편적 힘”이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는 징후로 보긴 했지만, 코리얼리즘의 개념은 반본질주의적이었고, 문화적으로 특수했으며, 의미 창출을 위해 관람객에게 의지하는 것이었다.(주 11)
© Mary Anne Staniszewski
주
1. Frederick Kiesler, ed., Internationale Aussstellung neuer Theatertechnik, ex. cat. (Vienna: Wurthle und Sohn, 1924).
2. 음악연극축제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R. L. Held, Endless Innovation: Frederick Kiesler’s Theory and Scenic Design (1977; reprint. Ann Arbor, Michigan: UMI Research Press, 1982), 21–24 참고. ‘전시 기법’(exhibition technique)은 국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창의적인 전시 디자인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용어다. ‘무대 기법’(theatre technique)이라는 유사한 용어도 창조적인 연출 기법과 극장 디자인에 사용됐다.
3. 키슬러의 자필 원고. “Note on Designing the Gallery,” 1942. Kiesler Estate Archives, 2. Cited in Cynthia Goodman, “The Art of Revolutionary Display Techniques,“ in Frederick Kiesler, ed. Lisa Phillips, ex, cat. (New York: W. W. Norton, 1989), 65.
4. International Theatre Exposition, organized by Frederic Kiesler and Jane Heap, ex, cat. (New York: Theatre Guild, et al., 1926).
5. 다음은 현대 전시와 미술관 디스플레이 실천을 다룬 글들의 목록이다. 1980–1990년대 미술관 및 갤러리 설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다음 글들에 반영되어 있다. Reesa Greenburg, Bruce W. Ferguson and Sandy Nairne, ed., Thinking about Exhibitions (London: Routledge, 1995); Ivan Karp and Steven D. Lavine, ed., Exhibitiing Cultures: The Poetics and Politics of Museum Display (Washington, D. C.: Smithsonian Institution Press, 1990); Tony Bennett, The Birth of the Museum: History, Theory, Politics (London: Routledge, 1995); Andrew McClellan, Inventing the Lourvre: Art, Politics and the Origins of the Modern Museum in Eighteenth–Century Pari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Manfield Kirby Talley, Jr., “The 1985 Rehang of the Old Masters at the Allen Memorial Art Museum, Oberlin, Ohio,” International Journal of Museum Management and Curatorship, 6. no. 3 (September 1987): 229–252; Carol Duncan, “From the Princely Gallery to the Public Art Museum,” in Civilizing Rituals: Inside Public Art Museums (London: Routledge, 1995), 21–47. 덩컨의 글은 많은 부분 다음 글에서 내용을 끌어왔다. Carol Duncan and Alan Wallach, “The Universal Survey Museum,” Art History, 3 (December 1980): 447–469.
이들 가운데 몇몇 글은 앞서 출간된 책들을 기초로 쓰였다. 예를 들어 다음 문헌이 여기에 해당한다. Bazin, The Musuem Age, trans. Jan van Nuis Cahill (Brussels: S. A. Editions; New York: Universe Books, 1967), esp. chaps. 5–12; Niels von Hoist, Creators Collectors and Connoisseurs: The Anatomy of Artistic Taste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Day (New York: G. P. Putnam’s Sons, 1967). 설치 디자인에 대한, 특히 여기서 내가 다룬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글로는 다음 참조. Samuel Cauman, The Living Museum: Experience of an Art Historian and Museum Director―Alexander Corner, intro. Walter Gropius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58), 100–105. 내가 쓴 논문의 서문과 첫 번째 장도 참고할 만하다. Mary Anne Staniszewski, “Designing Modern Art and Culture: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 (Ph.D. diss., City University of New York, 1995), i–82.
6. 1920년대 미술가와 건축가 사이에 일었던 부등각 투영법의 현대적 부활과 데 스테일, 절대주의, 구축주의자의 ‘시각적 해방’, 무한한 환장, 탈원근법적 공간과의 관계를 다룬 흥미로운 연구는 다음 참고. Yves-Alain Bois, “Metamorphosen der Axonometrie / Metamorphosis of Axonometry,” Daidalos: Berlin Architectural Journal, no.1 (15 September 1981): 44.
7. T. H. Creighton, “Kiesler’s Pursuit of an Idea,” Progressive Architecture, 42 (July 1961): 109.
8. Ibid., 115–116.
9. Frederic J. Kiesler, “On Correalism and Biotechnique: Definition and Test of a New Approach to Building Design,” Architecture Record, 86, no.3 (September 1939): 61.
10. Frederic Kiesler, “Second Manifesto of Correalism,” Art International, 9. no. 2 (March 1965): 16.
11. Kiesler, “On Correalism,” 60-70. 그는 다음과 같이 상술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의 경험은 훈련 및 교육 방식을 통한 관습이나 습관 같은 것들, 즉 ‘사회적 유전’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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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y Anne Staniszewski, “A New Language of Form and a New Ideological Scaffolding for Exhibitions: The Installation Designs of Frederick Kiesler,” 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 (Cambridge, MA: MIT Press, 1998), 3-9. 알렉스 콜스 엮음,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장문정, 박활성 옮김(워크룸 프레스, 2013), 21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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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살펴보기
미술사가, 문화사가. 저서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Believing Is Seeing: Creating the Culture of Art, 1995)와 『파워 오브 디스플레이』(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 1998) 등이 있다. 비영리 문화센터인 엑시트 아트의 큐레토리얼 인큐베이터 프로젝트 디렉터이자 총괄 편집자로서 다라 그린월드 및 조쉬 맥피(큐레이터/편집자)와 『변화의 조짐』(Signs of Change: Social Movement Cultures, 1960s to Now)을 펴냈다.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