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덴(판 되르선과 메비스): 『이프/덴』(If/Then)을 위한 디자이너의 선임은 중요한 일이었다.(주 1) 왜냐하면 편집자는 진심으로 디자이너가 편집에 개입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우리가 수행했던 편집 활동만큼 강한 개입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우리의 역할은 불분명했다.
아니 명백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용어를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아트 디렉터’로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실제 작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적응자였다. 어쩌면 그런 관심 때문에 일이 더욱 과도해졌을 수도 있지만, 작가들에 대한 관심 역시 프로젝트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아트 디렉터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미지들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이미지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면 내용을 보다 잘 조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을 이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면서 확실히 더 편집자처럼 행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피에르 비스무트, 제레미 밀러, 샤론 록하트, 제이슨 로즈, 요하네스 슈바르츠, 유히 지히크, 리네커 데익스트라는 물론, 심지어 폴 오스터나 제이미 킹과 같은 작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책의 주제인] ‘뉴미디어’보다는 작가와 사진가들에게 관심이 더 많았던 우리의 유별난 시각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지독하게 엄청난 작업들과 번거로운 일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심지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프로젝트의 전체 형상에 더해진 중요한 어떤 것이었다. 우리는 항상 낙관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꼭 이런 방식, 혹은 저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거야. 이런 것들을 한번 결합시켜 보자.’ 이런 시도 때문에 일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이것은 『이프/덴』 프로젝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항상 너무나 많은 번거로운 일들이 관계되지만,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하는 것은 일종의 편집이다. 그러므로, 여기 『이프/덴』을 더욱 직접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종종 미술가, 출판사 혹은 편집자는 비닐봉지 한가득 편집할 자료들을 들고 나타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어떤 형태로 편집해야만 한다. 일종의 강한 편집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편집하기’는 불필요한 재료들을 치우고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이프/덴』의 편집은 그 반대였다. 편집을 하면서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것을 추가로 소개할 수 있었고, 버려질 수 있었던 재료를 활용했으며, 각 재료들의 관계성을 풀어냈다. 물론 우리가 재미있어 하는 방식으로 재료를 맞춰 낼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이 경우 재료를 의뢰하기도 수월하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것을 발주하였다. 『이프/덴』의 디자인과 내용에 추가할 재료들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완벽히 신뢰하는 작가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내용 생산에 관여한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때때로 이러한 과제들, 예를 들어 KPN 어젠다(주 2) 같은 일에서 무언가를 좀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술가의 책을 디자인할 때, 작품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며 당신은 그 무엇도 추가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편집을 할 수는 있지만 정말이지 추가할 것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과제에 더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미술가의 책처럼 일종의 침묵하는 편집에 있어서도, 편집자의 권위와 디자이너의 구성 작업 사이 어딘가에는 당신이 모종의 비공식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 작업이 어쨌든 많은 경우 물리적이고 시각적이긴 해도, 당신의 작업은 물리적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씩 나는 그저 편집자로서 고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란, 결국 작업을 끝마쳐 놓고 출판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이 한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뭐라도 하긴 했나요?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나요?”
주
1. 『이프/덴』은 메비스와 판 되르선이 디자인하고, 네덜란드 디자인 인스티튜트가 출판한‘ 가까운 미래에 관한 연감’이다. 과학, 예술, 문학이 어우러진 이 책은 40명이 넘는 필자, 디자이너, 사진가들이 협업했으며 일상의 물질문화 디자인에 관한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탐구한다.
2. 네덜란드 왕립 통신회사(KPN)가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부서의 지침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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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am Gillick, Interview, September 2000, Renovation Filter: Recent Past and Near Future (Bristol: Arnolfini, 2000), 6–29. 알렉스 콜스 엮음,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장문정, 박활성 옮김(워크룸 프레스, 2013), 27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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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살펴보기
디자이너, 저술가. 그의 작업과 글은 타이포그래피에서 인간의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언어와 테크놀로지가 서로에게 준 충격을 탐구한다. 1997년 이래 예일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아른험에 있는 베르크플라츠 타이포그래피 논문 지도교수이다. 여러 국제적인 저널 및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