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픽처』는 도처에 넘쳐 나는 이미지, 최적의 경로로 예정되는 미래, 네트워크에 과하게 의존하는 오늘날 여전히 생생한 것은 무엇인지 탐색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 대해 ‘운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대안을 도모한다. 『라이브 픽처』는 운동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자 장소로 마음을 지목한 뒤 이를 하나의 매체로 닦아 내며 그로부터 새로운 시각(들)과 등록 불가능한 것들을 조형하는 일을 다룬다.”(박아람)
마음과 운동
그래픽 편집 소프트웨어의 특정 도구로 이미지를 측량해 선보인 첫 개인전 『자석 올가미 측량』(2014)을 시작으로 회화,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을 두루 거쳐 온 미술가 박아람은 이미지가 가득한 오늘날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행위에 의문을 품는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편집하고 가공하거나 퍼포먼스를 통해 포착될 수 없는 심상을 다루는 등 회화의 외연을 확장해 가는 방향으로 펼쳐졌다. 여러 매체를 다루어 온 작가는 이제 그에 선행하는 ‘마음’의 그림을 주목하게 되었고, 마음의 시각적 역량을 밝히고 펼치며 조형의 자유를 모색하는 중이다. 총서 ‘미술과 말’의 첫 책 『라이브 픽처』는 이러한 흐름을 토대로 ‘마음’과 ‘운동’에 대한 사유를 논리적이면서 유동적인 태도로 전개해 나간다.
『라이브 픽처』는 ‘본다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는 미술가가 미술가로서 품을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면서 이미지의 포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시대에 새삼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현실 자체보다, 현실에 맞추어 나가며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율성과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존재자로서 큰 존재론적 위기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시각의 위기로도 이어진다.”(13쪽) 작가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운동’을 주목한다. 비물리적인 차원에서 비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운동은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적 변화이며, “열린 미래를 확보하려는 어떤 의지”에 가까운 것이다. 즉 이 운동은 시간을 중심으로, 마음으로 행해진다. 운동을 시각화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마음의 일이다. “보임 없는 봄”이라는 운동의 과정으로서, 본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의 문제가 된다.
새로운 시각(들)
이러한 마음의 운동은 다수가 공명(共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 다르듯이, 운동 역시 다 다르다. 마음은 완결되지 않은 과정으로서 운동을 무한히 전개해 나가며 개개인을 공동의 영역으로 이끌어 내는데, 이는 “인간의 마음으로 가동할 수 있는 형식”인 양식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러나 눈과 마음으로 빚어지는 이 양식은 틀이나 방법이 아니다. 즉 양식을 통해 운동에 어떠한 모양이 부여되거나 운동이 따라야 할 특정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스스로 결심해 나갈 수 있도록 공동의 장으로 초대하기. 이러한 열린 형식으로서 양식은 한계 없는 마음을 다루며 새로운 시각(들)을 창출한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각(들)은 “볼 수 있는 것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마음의 형상”을 각자 그리고 함께 조형하며, 직접적인 연결 없이 얽혀 공명해 간다. 『라이브 픽처』는 너와 나, 과거와 미래가 “마음을 조형하는 운동”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나고 시간과 공간을 초과해 가는 끝없는 과정을 안내하고 함께한다.
발췌
마음에는 달과 같은 면이 있다. (7쪽)
어떤 식으로든 운동을 시각화하려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다. 운동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26쪽)
이러한 운동의 일련의 과정은 겉으로 보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보는 일로서, 즉 보임 없는 봄이다. (45쪽)
마음이라는 매체. 마음은 마치 달이 바다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듯 접촉 없이 공명한다. (67쪽)
개별성을 통한 공통성에 의하여 성립되는 시각(들). (69쪽)
시각(들)은 같은 것을 보지 않고도 성립될 수 있는 공동의 시각(들)에 관한 것이다. (70쪽)
양식은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는 등록 불가능한 것의 끌개로서, 등록계에 의해 식별되지 못하는 등록 불가능한 시공을 야기하는 방식의 얼개이다. (73쪽)
이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양식은 직조하듯 작용하며 관계를 생성한다. (78쪽)
그러한 맥락에서 양식은 서로 같은 방식을 취하는 시각(들)을 배태하는 열린 형식을 의미한다. (81쪽)
결론적으로 어떠한 경우이든 시각은 명확한 단수도 복수도 아닌, 오로지 시각(들)로서만 존재한다. (83쪽)
운동은 다수가 전제하고 또 공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행동자들을 동질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그들을 공동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85쪽)
마음의 동작을 통해 운동은 형상을 이루고 또 흩뜨린다. 이러한 조형의 과정은 무수한 결심의 계기로 이루어진다. (107쪽)
총서 소개
‘미술과 말’은 오늘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예술가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 펴냅니다. 회화, 영상, 설치, 조각, 사진, 퍼포먼스 등 미술의 각 분야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작가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작가들은 다양한 형식 아래 여러 주제를 탐구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작품의 안팎을 살피고 질문합니다.
‘미술과 말’은 열 권을 예정하고 있으며, ‘미술과 말’과 느슨히 연결되는 ‘말과 음악’은 2026년부터 출간됩니다.
미술과 말
— 보이는 것, 볼 수 있는 것
박아람, 『라이브 픽처』
김희천
김아영
김동희
윤향로
노상호
김경태
말과 음악
— 들을 수 있는 것, 들리는 것
조율
류한길
라이브 픽처
박아람
미술가. 회화,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등을 다루어 왔으며, 여러 매체에 선행하는 마음의 그림에 관심이 있다. 마음이 오늘날 지니는 시각적 역량을 밝히고 펼치며, 그로 인해 가능한 조형의 자유를 모색한다.
개인전 『벽그림 제6번』(캡션서울, 2024), 『블루, 블루』(더레퍼런스, 2021), 『타임즈』(금호미술관, 2020), 『롤 앤 맆: 2008–2019』(인천아트플랫폼, 2019), 『자석 올가미 측량』(케이크갤러리, 2014) 등을 열었고, 퍼포먼스로 「프로젝트 콜」(0-2-1-3.xyz, 2020), 「콜」(일민미술관/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9), 「콜」(보안책방, 2017)과 3회의 「작도 연습」(2014, 2015, 2016)을 선보였으며, 기획전 『젊은 모색』(국립현대미술관, 2021), 『하나의 사건』(서울시립미술관, 2020),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우주생활』(일민미술관, 2015) 등에 참여해 왔다. 펴낸 책으로 『벽그림 제6번』(2024), 『블루, 블루』(2021), 『전화번호부』(2018), 『자석 올가미 측량』(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