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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2: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할게
하태우

2025년 4월 22일 게재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매주 화요일, 다섯 번의 연재 이후 단행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림: 노상호

더 발룬티어스
“L”
피플 라이크 피플
2024년

장충체육관은 이른 시간인데도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라고 적힌 여러 개의 깃발이 높은 곳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티켓을 발권받고 체육관 주변을 산책하며 입장 시간을 기다렸다. 폭염이 한풀 꺾였다고 했지만 여전히 볕은 뜨거웠다. 그리고 다섯 시… 진행 요원의 뒤를 따라 창고와 대기실이 늘어선 복도를 지났다. 휠체어석은 2층 맨 앞줄에 있었고 난간이 유리로 되어 있어 무대가 잘 보였다. 그리고 여섯 시… ‘The Volunteers 아시아 투어 2024 서울’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콘서트에서는 정규 1집 『더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를 비롯해 TVT의 거의 모든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노래가 많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특히 지난 6월 발매된 EP 『“L”』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심지어 가사가 유치해서 넘겨듣던 「애들한테 말해」[Tell ‘em boys]도 좋았다.) 그런지록과 펑크록, 개라지록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TVT의 음악은 신선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백예린의 목소리는 팝과 록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른 밴드가 따라할 수 없는 색채를 완성한다.

공연이 끝나고 바깥으로 나오자 한낮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바람이 차가웠다. 콘서트의 여운도 잠시,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져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을을 앓는 사람이 되었다. 여름을 보낼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지금처럼 선선해진 저녁 공기에 문득 서글픈 심정이 되어 가을이 왔음을 깨닫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내내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L”」을 들었다. “보내 줘, 사랑을 모르던 때로 보내 줘.”(Take me back to when I never knew what love was, take me back.) 담담한 베이스 라인과 아름답고 쓸쓸한 멜로디. 공연장에서 카드섹션을 위해 나눠 준 종이를 꺼내어 펼쳐 봤다. ‘TVT와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할게’라는 글씨가 진한 핑크색으로 적혀 있었다.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태우

1991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휠체어 위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서울에 살고 있다. 첼시FC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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