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틱 멍키스
더 카
도미노
2022년
하루는 D의 집에 놀러 갔는데 테이블 위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낯선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 D의 미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에—그는 무려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을 호평했다—처음에는 흘려들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자꾸 귀가 가서 못 참고 D에게 물었다. 악틱 멍키스의 정규 7집 『더 카』(The Car)였다. 악틱 멍키스라는 이름만 알았지 음악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느끼하고 끈적거렸지만 그 느낌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나는 외출할 때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집에 있을 때는 수동 휠체어를 탄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밖에서는 신발을 신고 집에서는 슬리퍼를 신는 것과 같다. 그런데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일은 외출인 동시에 집 안에 있는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집에 들어가려면 전동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으면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현관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종종 집에 놀러 가는 친구가 세 명인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H와 T는 내가 전동 휠체어를 탄 채로 집 안에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H는 전동 휠체어가 들어오기 쉽도록 현관에 작은 경사로를 마련했고, T는 전동 휠체어가 들어올 것을 대비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D의 해결법은 조금 달랐다.(그리고 재미있었다.) 새로 이사를 하게 된 D는 어느 날 대뜸 선물을 요구했다. D의 생일이 가까웠기 때문에 뭘 갖고 싶은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수동 휠체어’였다. 자신의 집에 두었다가 내가 놀러 오면 옮겨 탈 수 있게 수동 휠체어를 선물로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휠체어를 선물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D의 집에 놀러가면 D는 나에게 선물받은 자신의 수동 휠체어를 베란다에서 꺼내 온다. 나는 내가 D에게 선물한 D의 수동 휠체어에 옮겨 앉는다. 근래에는 D의 집에 놀러 가도 음악이 틀어져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요즘에는 무슨 음악을 듣는지 잘 모르겠다. 한때 주구장창 『더 카』만 들었는데 이제는 안 들으려나. 나는 가끔이지만 『더 카』를 듣는다. 듣는다기보다 틀어 놓고 글을 쓰거나 멍하니 있거나 한다. 여전히 악틱 멍키스의 프런트맨 알렉스 터너의 노래는 느끼하고 가사는 의미를 알 수 없지만—“은퇴한 지 얼마 안 된 스파이들과 마을에서 아침 커피를”(Village coffee mornings with not long since retired spies)이 도대체 무슨 뜻이야(「상관없음의 조각들」[Sculptures of Anything Goes])—풍성한 현악 사운드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진 느릿하고 끈적이는 무드가 좋다. 독한 위스키 한잔에 블루스라도 추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D에게 위스키 마시자고 연락해야겠다.
참고
1991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휠체어 위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을 썼다. 서울에 살고 있다. 첼시 FC의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