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국경을 넘어서 다른 시공으로 우리를 데려가주는 가장 확실한 관문이다. 인위적으로 시차를 경험하고 노독을 겪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경계이기도 하다. 세상이 좁아지고 공항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에도 이 시차는 우리 몸에 한동안 거역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공간에 의한 시간의 이상한 오염, 장거리 이동이 시간과 공간을 전복시키는 변질이 주는 혼돈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떠나갈 것을 꿈꾼다. 평생토록 국경을 넘는 환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공항은 과연 무엇일까? 열세명의 작가들과 함께 주변에 넘쳐나는 여행서들이 건드리지 못한 이야기들을 헤집어 보고 싶다.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는 일회성 전시 관람에서 벗어나 원할 때마다 펼쳐볼 수 있고 또 누구나 쉽게 소장할 수 있는 미술관 같은 책을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 세계 유수의 전시 공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국내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소장하는 일은 부유한 컬렉터가 아니라면 불가능하지만,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를 만나면 가능해진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미술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제작한 작품들을 책의 형태로 진열한 ‘작은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기획자가 주제를 제시하면 작가들은 주제에 대한 반응으로 문학적 텍스트와 미술 작업을 생산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서 일종의 지(紙)상 전시를 만든다.
1권 『향』은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2009년 7월 말 출간됐고, 제2권 『모래』는 12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2010년 1월에 출간됐다. 1권 ‘향’이 우리를 위로하는 감미로운 어떤 것이었다면, 2권인 『모래』는 우리를 핍박하는 대상이자 헤어날 수 없는 함정 같은 것을 다뤘다. 『향』, 『모래』, 그리고 『공항』에 이어 계속 발간될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는 ‘책 속의 작은 전시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하여 미술의 또 다른 실험이 되기를 바란다.
홍승혜
임자혁
박화영
전준호
이수경
안규철
김을
황혜선
노석미
김태헌
문성식
박병춘
임민욱
기획자의 글 / 강태희
작가 약력
참여자 소개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직하는 현대미술사학자이다. 2년 전쯤 어찌어찌 하다가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고, 그간 기적처럼 『향』과 『모래』를 거쳐 3권 『공항』까지 펴내게 되었다. 온전히 작가들의 헌신과 주변의 너그러운 지원에 기대어 책을 만들어오면서 그간 쌓아놓은 마음의 빚만 한아름이다. 더 좋은 책을 만드는 길이 보답이라는 생각으로 용맹전진 중이지만 이 근거 없는 낙천의 끝이 어딜지 스스로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