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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새와 손편지

  •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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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지음
110 × 150밀리미터 / 256쪽 / PUR 소프트커버 / 2022년 11월 9일 / 22,000원 / ISBN 979-11-89356-88-0 00600
  • 민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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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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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새와 손편지』는 (1)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의 열여섯 번째 전시이자, (2) SF 소설가 김초엽의 신작 소설이자, (3)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회원 및 비회원 194명/팀이 참여한 26분 길이의 영상 작품이자, (4) 작품과 참여자를 종이 위에 망라한 오프라인 출판물이자, (5) 작품과 참여자를 웹사이트상에 망라한 온라인 출판물이다.(http://www.k-s-t.org/vibrating-birds-and-handwritten-letter)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와 작품을 위해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SF 소설가 김초엽에게 신작 소설을 의뢰했다. 소설은 한 외계 생명체가 알파C 서브섹터에서 난파된 우주선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이윽고 깜깜한 우주선 내부를 탐사하던 외계 생명체는 끊임없이 몸을 부르르 떠는 ‘진동새’를 발견하고 그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총 304문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문장 단위로 나뉘어 전시 참여자에게 무작위로 배포됐고, 참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장을 10초 길이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또는 이미지 작품으로 출품했다. 이 책은 『진동새와 손편지』를 둘러싼 여러 실천 가운데 김초엽의 소설과 이를 이용한 전시 참여자의 작품을 한데 묶은 결과물이다. 즉, 『진동새와 손편지』는 독자에 따라 삽화가 곁들여진 소설로, 또는 타이포그래피 작품집으로, 또는 둘 사이의 무엇, 또는 둘을 포괄한 무엇으로 기능한다.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이 소설은 문장 단위로 나뉘어 전시 참여자, 즉 여러분에게 무작위로 부여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장을 마주할지는 저희뿐 아니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조차 알 수 없죠. 자,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예요. 여러분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문장을 타이포그래피적으로 이용하고 해석해 10초짜리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문장 앞뒤를 상상하면서요. 물론, 작품은 10초를 활용한 영상일 수도, 포스터같이 고정된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슬슬 감이 오시죠? 요컨대 결과물은 여러분의 야심과 취향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타이포그래피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렸습니다.”(작품 공모문 「타이포그래피를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중에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시간을 초월한 지금, 『진동새와 손편지』는 내용뿐 아니라 태도의 측면에서 ‘타이포그래피’, 즉 문자와 그것을 다루는 일뿐 아니라 ‘시간’을 다룬다. 소설은 “안녕, 나의 자아들”로 시작해 “고작 그 말을 다시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새들이 필요했다니”로 끝난다. 이리저리 굴러간 어제가 모여 오늘을 이루듯, 흩어진 문장이 모여 개인을 거쳐 소설 한 편으로 완성되고, 소설은 다시 문장 단위로 나뉘었다가 다시 모여 수많은 개인을 거쳐 다른 매체로 탈바꿈한다. “더 재미있는 대목은 이제부터입니다. 여러분의 작품은 한데 모여 한 편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작품이 없다면 이 작품은 온전히 완성되지 않겠죠?”(「타이포그래피를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중에서) 그렇게 완성된 『진동새와 손편지』는 관람객, 독자, 작가 등 결과물을 마주하는 대상에 따라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적절하게 진동한다.

“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르르르르르르 르르르르.”(「진동새와 손편지」 중에서)


발췌

안녕, 나의 자아들. 다들 잘 있겠지? 나는 알파 C 서브섹터에서 이 관찰 데이터를 남기고 있어. (00:10–00:25)

우주선은 몹시 이상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었어. 놀이용 공처럼 동그랗고 몸을 부풀리며 튀어 오르는, 쓸모없는 날개가 달리고 부리로 콕콕 사방을 쪼아 대는, 그리고 끊임없이 몸을 떨어 대는 생물들로. 모든 곳에 그 동글동글한 생물들이 있었어. 바닥에도, 천장에도, 벽 수납장에도. 나는 지금도 그들의 진짜 이름을 모르지. 하지만 우선은 그 생물을 ‘진동새’라고 부르겠어. (05:55–06:38)

Z들이 사는 세계는 빛도 들지 않고 소리도 없지.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건드리고, 두드리고, 진동을 만들어 내며 세계를 알아 나갔을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진동새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파트너였겠지. (20:44–20:54)

진동새들은 고유한 진동 패턴을 가지고 있었어. 그 패턴은 정보를,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바를 담아내지. 정확히 기록된 언어가 하는 역할이야. 그렇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야. 진동새들은 무언가 정보 외의 다른 것도 가지고 있었지. 나는 그것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어. (23:01–23:35)

우리는 지구 문명을 그다지 높게 평가할 수 없었어. 그 조그만 행성에, 효율적인 의사 전달 수단 하나 없이, 어마어마하게 많기만 한 ‘언어’들이라니. 동기화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이 그렇게 많은 언어를 지닌 채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지. 게다가 기록이라는 것의 그 놀라운 비효율성이란. (24:30–24:47)

차례

진동새와 손편지
참여 작가
저자 소개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글자와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연구와 실험을 발표하고 나누는 학술 단체. 학술지 『글짜씨』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한편, 매년 다양한 형식의 타이포그래피 전시를 개최한다.

김초엽
SF 소설가.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온 세계』, 『책과 우연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