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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아

FANTASIA

  • 신예슬
  • ,
  • 오민
  • ,
  • 문석민 지음
188 × 255밀리미터 / 112쪽 / 사철 하드커버 / 2022년 10월 27일 / 24,000원 / ISBN 979-11-89356-86-6 04670 / 979-11-89356-84-2(세트)
  • 박활성 편집
  • ,
  • 김형진 디자인
  • 기록
  • 노래
  • 멜로디
  • 서양 음악사
  • 악보집
  • 음악
  • 판타지아

원래 가격: ₩24,000.현재 가격: ₩21,600.

음악 비평가 신예슬, 작가 오민, 작곡가 문석민이 함께 기획한 ‘악보들’이 출간되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며 동시대 음악에서 맞춰지지 않은 채 남겨진 조각들을 찾는 ‘악보들’은 총 10권으로 기획되었으며, 2권 『판타지아』는 그 두 번째 책이다.

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보이려 하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보이지 않으려 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하려 했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악보를 통해 긴 여행을 시작한다.

노래하는 선과 노래하지 않는 선의 횡단

“공상, 혹은 상상이란 뜻을 지닌 ‘판타지아’는 16세기 무렵 탄생한 기악곡이다. 스페인 음악가 루이스 데 밀란이 어떤 음악을 ‘창작자의 환상과 기술에서 비롯된 음악’이라 표현한 것이 장르의 명칭으로 이어졌다. 그의 표현처럼 판타지아는 연주가의 뛰어난 기술과 작곡가의 자유로운 악상을 선보일 수 있는 장으로, 즉흥 연주에 가까운 부분, 연주가의 기교를 드러낼 수 있는 부분,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 돋보이는 부분, 대위적으로 진행되는 부분 등, 다종다양한 악상이 담긴다.”

‘악보들’의 두 번째 경유지 판타지아는 “음악가들이 상상하는 양극단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관습과 금기를 넘어선 실험을 포용한다. 그 안에서는 고정된 형식, 안정적인 구성, 이해하기 쉬운 텍스처, 당대에 통용되던 완결성을 넘어서는 제약 없는 상상이 펼쳐진다. 그럼으로써 판타지아는 음악의 질서를 유연하게 만들고, ‘하나의 곡’이 포용할 수 있는 범주를 넓힌다. 서로 다른 모양의 조각을 모아둘 수 있는 판타지아라는 장르가 마련한 것은, 무언가의 양 끝점을 점점 더 멀리 밀어 가며 음악의 외연을 확장해 내는”, 노래하는 선과 노래하지 않는 선이 횡단하며 음악이 한층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상상의 무대였다.


발췌

‘악보들’은 일종의 운동을 실행한다. 시간 안에서 변화하며 움직이는 소리를 음악이라고 한다면,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다. 한 음악을 관찰하는 과정 역시 음악을 따라 시간 안에서 행하는 또 다른 운동과 같다. 곡과 곡 사이, 작곡가와 작곡가 사이, 시대와 시대 사이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시간의 안과 밖을 횡단하는 운동에 가깝다. ‘악보들’이 실행하는 운동은 서양 음악의 안팎에서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거나 연구하거나 관찰하는 서로 다른 실천을 통해 얻은 경험의 교환을 동력으로 삼는다.

‘악보들’이 다루는 사례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유럽 지역에서 펼쳐진 음악들이지만, ‘악보들’의 운동은 지금-여기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이 출발 지점이다. 오랜 시간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던 선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며, 새롭게 등장한 덩어리적 음향의 근원은 어디인가?

‘악보들’은 음악이 운동해 온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 악보를 경유한다. 악보는 한 음악을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특정 소리를 특정 기호로 명시한 목표 지향적 기록이다. 동시에 각각의 악보는 음악의 재료, 음악의 생산과 재생산 방식, 작곡가와 연주자와 관객의 관계 구조, 음악 생산자와 사용자의 권리 범주를 포함하여, 음악과 그 주변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단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각 권이 다루는 주제와 관점 역시 일련의 악보 더미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 짐작한다.

판타지아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곡’ 안에 담겼다. 노래 바깥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선과 노래하는 선, 노래의 전통에 기반하지만 동시에 작곡가의 기술을 보여 줄 수 있는 대위적인 부분이 하나로 구성됐다. 음악은 즉흥성과 엄격함, 손의 기교와 노래하는 듯한 성부, 단선과 다성, 수평·수직을 오가는 입체적 텍스처와 선형적으로 평면적인 텍스처 사이를 횡단했다. 노래하는 선과 노래하지 않는 선은 교차하면서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각 부분은 질서정연하고 균형 잡힌 구조를 이루기보다는 이질성을 또렷이 드러내며 차이를 강조했다.

판타지아에서는 대조적인 것들이 한 곡 안에 모여든다. 이들은 하나의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서로 다른 것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판타지아에서 발견되는 노래와 노래하지 않는 선의 횡단은 일관된 곡의 흐름을 뒤흔든다. 때로는 한동안 유지되어 온 흐름을 완전히 깨뜨리는 데 목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앞의 텍스처를 가장 반대되는 형상으로 산산이 부순다. 이를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음악을 언제나 그 이전의 역사로부터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익숙함을 깨면서 등장한 ‘이상한 것’ 혹은 ‘이질적인 것’ 들이기 때문이다.

차례

총론: 노래하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
서문: 노래하는 선과 노래하지 않는 선의 횡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프렐류드(판타지) A단조, BWV 922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판타지아 C장조, H. 284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판타지아 D단조, K. 397/385g

루트비히 판 베토벤
-판타지아 G단조, Op. 77
-피아노 소나타 No. 30, Op. 109, 1악장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프렐류드, Op. 28, No. 24
-녹턴, Op. 62, No. 1

프란츠 리스트
-파가니니 대연습곡, S. 141, No. 2
-초절기교 연습곡, S. 139, No. 9 ‘회상’
저자 소개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종종 기획자,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오민
예술가. 시간을 둘러싼 물질과 사유의 경계 및 상호 작용을 연구한다. 주로 미술, 음악,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시간 기반 설치와 라이브 퍼포먼스가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한다. 『포스트텍스처』, 『토마』(공저),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스코어 스코어』 등을 출간했다.

문석민
작곡가. 일반적인 악기 소리부터 소음까지 감각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발굴하고 또 그 소리 재료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미술가, 안무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비음악적인 재료를 음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MDI 앙상블, 네오 콰르텟, 앙상블 미장, 앙상블 TIMF 등에 의해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