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린의 친동생은 누구인가?
사드는 잔혹한 포르노그래피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드의 모든 저작이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사드의 ‘소프트 버전’ 또한 존재하며, 이들 작품으로 사드는 문단 진입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 서술의 유무 혹은 그 많고 적음으로 사드의 작품을 하드코어 버전과 소프트 버전으로 나눌 수 있지는 않다. 그중 1795년에 출판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이하 『알린과 발쿠르』)은 주인공의 미덕과 정조를 끝까지 지켜 주고 미덕의 가치를 철학 담화로 전개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가 이후에 쓴 소위 ‘하드코어 소설’ 『라 누벨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행』 그리고 『언니 쥘리에트 이야기 혹은 악덕의 번영』과 자주 비교된다.
그렇지만 사드의 작품을 포르노그래피의 유무로 구분하기는 위험천만하다. 비록 『알린과 발쿠르』에 이 내용이 적다 하나 사회와 풍속, 그의 유물론 철학 전반에 걸친 토론의 내용과 수위는 ‘하드코어 버전’에 버금갈 뿐 아니라 이미 이를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알린과 발쿠르』는 사드의 포르노그래피의 순화된 버전일 수는 있어도 그가 평생 견지한 급진적인 사상에 있어서는 그가 쓴 어떤 소설 못지않게 단호하고 체계적이다.
당대 방탕주의(libertinage)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 강요된 결혼, 교회와 풍속의 타락, 미덕의 불운, 진기한 여행기를 두루 갖춘 『알린과 발쿠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두 연인을 둘러싼 편지 혹은 쪽지의 교환으로 구성된다. 이런 점에서 사드의 이 소설은 18세기 소설의 주제와 형식에 특히 충실하다. 더욱이 소피, 생빌, 레오노르가 겪은 긴 이야기를 삽입하거나 돈 후안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인 스페인 콩트를 끼워 넣어 이야기를 다채롭고 복잡하게 만드는 수법 또한 그렇다. 또한 딸에게 젊은 연인이 있음에도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버지 친구와의 강요된 결혼이라는 주제와, 아버지의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는 딸과 어머니의 전략과 운명은 사드가 깊은 영향을 받았던 루소의 소설 『쥘리 혹은 라 누벨 엘로이즈』(1761)를 금세 떠올리게끔 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방탕한 삶을 공유해 온 알린의 아버지 블라몽 판사가 역시 그의 리베르탱(libertin) 친구 돌부르를 자기 딸과 강제로 결혼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정부들이 낳은 친딸들을 성적인 노리개로 삼아 왔다. 그중 한 명인 소피는 만삭이 된 몸이다. 아버지의 친구 돌부르의 매질과 추방으로 몸이 상한 그녀는 어렸을 때 자신을 길러 준 이자보를 찾아 나섰다가 알린과 블라몽 후작 부인 등에게 발견되었고, 몸이 낫자 그들에게 자신이 겪어 온 이야기를 해 준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기억해도 어머니가 누군지는 모르는 소피는 어느 포도 재배꾼의 아내 이자보를 어머니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열세 살이 되자 소위 아버지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녀를 자신의 ‘작은집(la petite maison)’으로 데려가 친구 돌부르의 정부로 삼는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블라몽 부인은 소피가 이유 없이 납치되었던 알린의 친동생 클레르라고 확신하게 되고, 남편과 돌부르가 그녀의 불행의 원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또한 18세기 소설에 자주 등장했던 ‘출생의 비밀’과 ‘인정(reconnaissance)’ 주제의 반복이다.
그런데 사드는 이 주제를 기이하게도 복잡하게 얽는다. 「편지 XXIV」에서 발쿠르는 친구 데테르빌의 권유로 이자보에게 맡겨지기 이전 소피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추적한다. 블라몽 판사는 아내의 반대를 뒤로하고 딸을 부유한 혼처로 보내기 위한 모종의 음모 아래 둘째 딸 클레르를 클로딘 뒤피라는 유모에게 맡겼다. 탐욕스러운 클로딘은 자기 딸과 클레르를 바꿔치기한 후, 블라몽의 음모대로 클레르가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가짜 장례식까지 치른 후 블라몽에게 자기 딸을 내준다. 그래서 클로딘의 딸이 ‘소피’가 된다. 이후 클로딘은 케르뇌이 백작 부인의 딸 엘리자베트를 맡게 되는데 이 아이는 석 달 만에 사망한다. 유모는 죽은 엘리자베트 대신 클레르를 백작 부인에게 내준다. 그래서 블라몽 판사의 둘째 딸 클레르는 케르뇌이 부인에게 인도된 엘리자베트 드 케르뇌이로 살아갔고, 유모인 클로딘 뒤피의 딸이 소피가 되어 이자보에게 넘겨진 것이다. 뒤에 클레르-엘리자베트는 이후 젊은 지방 귀족 카르메이 백작과 결혼하고자 했으나 사망했다고 밝혀진다.
이렇게 ‘출생의 비밀’을 복잡하게 얽은 까닭은 첫째 소피를 통해 블라몽 판사와 돌부르의 관계와 그들의 방탕한 행위를 폭로하기 위함이고, 둘째 소피를 블라몽 판사 부인의 잃어버린 딸로 만들어 그녀를 남편과 돌부르의 유린으로부터 보호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여기에 『알린과 발쿠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생빌과 레오노르의 일화가 끼어든다. 그들은 이 책의 주인공인 알린과 발쿠르처럼 역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강요된 결혼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 도피하자마자 상대를 잃고 서로를 찾아 세계여행을 한 후 얼마 전에서야 겨우 재회한 커플이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블라몽 부인은 생빌이 바로 생빌 드 카르메이 백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 D. A. F. 드 사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성귀수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5, 480쪽. 그렇다면 그의 연인 레오노르는 사실 자신의 잃어버린 딸 클레르임을 깨닫게 된다. 이제 블라몽 부인에게 소피는 비로소 클로딘의 여식이 되고, 레오노르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엘리자베트 드 케르뇌이, 즉 자신의 친딸 클레르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사드가 왜 이 ‘출생의 비밀’을 이렇게 복잡하게 엮었을까, 하는 점이다. 잃어버린 딸 레오노르를 되찾은 기쁨도 잠시, 블라몽 부인은 자신의 진짜 딸이 소피가 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또한 그녀의 남편은 아이가 바뀐 줄도 모르고 클로딘의 딸을 소피로 확신하지 않는가? 블라몽 부인은 “[남편이] 계속 착각하게 놔”두고자 하며, [*] 사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814쪽. “망상에 사로잡힌 그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레오노르의 출생에 관해 그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게끔 놔둘 생각”이다. [*] 사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815쪽. 결국 소피는 블라몽 부부의 딸이 ‘되어야’ 한다. 남편에게는 자신의 딸 소피를 돌부르가 유린하는 것이 그의 방탕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고 아내에게는 남편의 방탕으로부터 소피를 안전하게 지켜 내야 하는 까닭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덕을 경시하는 레오노르에 대한 부인의 실망이 더해진다. 천성이었든 자기 자신이 고된 인생 여정을 겪어서였든 레오노르는 미덕과 종교를 조롱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적선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취한다. [*] 사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781쪽.
결국 『알린과 발쿠르』에서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함에도 삽입된 생빌과 레오노르의 이야기는 블라몽 부인의 잃어버린 딸을 소피에서 레오노르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남편에 대한 블라몽 부인의 복수가 있다. 블라몽이 소피를 그토록 되찾고자 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야 돌부르와의 ‘계약’이 성립하고 그의 삐뚤어진 욕정도 채워진다. 블라몽 부인은 소피를 곁에 두고 남편의 손에서 지킴으로써 그의 욕망이 그저 뜨거운 머리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조롱한다. 두 번째로 「편집자의 말」에서 이미 표현되었듯이 이 이야기만큼 “지극히 대조적인 양상이 동일한 붓에 의해 이처럼 적나라하게 그려진 전례가 없다”. [*] 사드,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 23쪽. 사실 『알린과 발쿠르』 전체에 걸쳐 블라몽과 블라몽 부인은 물론, 알린과 결혼하고자 하는 두 남자 발쿠르와 돌부르, 블라몽과 볼레 백작, ‘작은집’에서 두 리베르탱을 상대하는 소피와 로즈, 순결과 정조의 문제를 토론하는 레오노르와 앙젤리크, 그리고 알린과 레오노르 자매의 상이한 도덕관이 짝을 맞춘다. 그랬을 때 소피는 블라몽 부인과 알린의 연속이자 등가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들의 운명이 동일하다는 점(실종, 자살, 독살)이 우연인가? 반면 이들의 미덕을 조롱하는 레오노르는 승리를 구가하고 부를 불린다. 이 대립은 이후 ‘하드코어’ 사드 소설의 두 자매 주인공 쥐스틴과 쥘리에트의 운명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미덕은 영원히 고통받고 악덕은 번영을 누린다. 사드 소설의 잔혹함은 소설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행동에 있지 않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미덕의 찬양과 실천은 결국 실패하며 불운의 원인이 되고 말리라는 사드의 굳건한 생각이 그의 작품 전체를 ‘하드코어’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알린과 발쿠르』는 적어도 사드의 소프트한 버전이 아니라 그의 사상 전체의 강렬한 요약이라 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통상대학 교수다. 쓴 책으로 『자연의 위반에서 자연의 유희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기 프랑스의 괴물논쟁』이, 옮긴 책으로 D. A. F. 드 사드의 『규방 철학』, 장 스타로뱅스키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자유의 발명 1700~1789 / 1789 이성의 상징』,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정치경제론·사회계약론 초고』, 필립 피넬의 『정신이상 혹은 조광증의 의학철학 논고』, 쥘리앙 오프레 드 라 메트리의 『인간기계론·인간식물론』, 드니 디드로의 『미의 기원과 본성』 『백과사전』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자연의 해석에 대한 단상들』 『맹인에 대한 편지』 등이 있다.














